< 괴물 배터리 -002- >
002.
토픽 같은 걸 보면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은 사람 얘기 같은 게 나온다. 반대로 엉덩방아를 찧었을 뿐인데 뇌진탕으로 죽은 사람 얘기도 있고.
내 경우는 후자, 재수가 없는 쪽이었다.
“괜찮아,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뭘 해도 잘하잖아. 걱정하지 마. 괜찮아, 우리 아들.”
날아오는 방망이에 팔꿈치를 맞고 병원에 갔다 온 날, 엄마는 나를 껴안고 한참이나 흐느껴 울었다.
골절이 어쩌고 관절이 어쩌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기억도 안 난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선수생활이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태웅이 아버님. 정말로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뭐라고 사죄를 드려야 할지…….”
“아뇨, 아뇨. 감독님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혹사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불의의 사고인데요. 재활만 하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거랍니다.”
우리 학교는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했다. 내가 내려간 뒤의 마운드를 1실점으로 지켜낸 모양이었다.
하기야 뭐, 아웃 카운트 하나 남은 상태였으니. 그거 뒤집혔으면 오히려 욕을 먹어야지.
그럼에도 선수들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주전 선수가 두 명씩이나 부상으로 이탈했으니, 설령 우승해서 기쁘더라도 티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음,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왜들 이렇게 오버야.’
초상이라도 난 듯한 주변 분위기에 비해, 나 자신은 의외로 담담했다.
싫은데도 억지로 야구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히 야구에 목을 맨 것도 아니었다.
주전 선수들은 초등학생밖에 안 되는 주제에 벌써 야구를 진로로 생각한다. 그와 비교하면, 나의 열의 따위는 미지근하기 짝이 없었다.
관두면 관두는 거지, 왜들 저리 호들갑인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죽을병에라도 걸린 줄 알겠네.
“그나저나 시간이 남아 돌아서 주체가 안 되네. 이렇게 오래 연습 빠진 적이 없었는데. 그치, 태웅아?”
한편, 찬희의 부상은 크지 않았다. 통깁스를 하기는 했는데, 부상이 심각해서가 아니라 하루빨리 낫기 위해서라고 했다. 목발도 없이 잘 돌아다니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찬희는 게임기나 만화책 따위를 들고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에 쳐들어왔다. 본인 말로는 갑자기 연습을 쉬니까 뭘 하고 보내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태웅아. 라면 먹을 거지? 두 개 끓인다?”
“오늘 필기 안 했지? 공책 내놔봐.”
“야야, 떨어뜨리면 어쩌려고 그래? 비켜봐. 내가 들어줄 테니까.”
종일 붙어있다 보니, 찬희는 팔이 불편한 내 심부름을 잡다하게 도맡아서 해주었다.
처음에는 찬희가 귀찮은 일을 대신 해주니까 생각 없이 좋아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한 달쯤 넘어가자 슬슬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팔도 아프면서 무슨 그림 숙제를 하고 있어? 선생님도 그냥 넘어가 줄 텐데.”
“몰라. 오른손으로 그려서 삐뚤빼뚤해도 되니까 성의만 보이라잖아.”
“아, 진짜. 너희 반 선생님은 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냐? 됐어, 내놔봐. 내가 해줄 테니까.”
“내 숙제를 왜 네가 해? 공책 필기야 도와주는 거라고 쳐도…….”
“됐으니까 내놔! 넌 가서 게임이나 해!”
“…….”
이런 상황이 나만 이상한 건 아니겠지. 엄마도 진지한 얼굴로 ‘혹시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 괴롭히고 그러는 거 아니지?’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을 정도니까.
아니, 그런데 나도 슬슬 부담스럽거든? 내가 하겠다고 그러면 도끼눈을 뜨고 덤벼서 무섭다고.
한 달쯤 됐으면 다리도 슬슬 나아갈 텐데, 얘는 야구부 연습 안 나가도 되나?
“그나저나 이건 또 무지하게 키워놨네. 어느 세월에 따라잡으라고 그러냐.”
나도 남자인지라, 쫀 티를 내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괜히 게임기에 대고 투덜거렸다.
요새 우리가 하는 게임은 직접 키운 선수로 팀을 꾸리는 ‘베이스볼 트레이너’라고 하는데, NPC 선수를 섞어서 만든 팀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팀과 대전하는 야구게임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7명이었던 찬희 팀의 육성선수가 8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쯤 되면 밤새 게임기만 붙들고 있었다는 말인지라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야구 지겹지도 않냐? 허구한 날 야구하면서, 게임도 야구게임을 하고 싶어?”
질려서 툭 던져본 말일 뿐인데, 어째선지 찬희의 어깨가 움찔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찬희가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난 너랑 다르잖아.”
“달라? 뭐가?”
“넌 진짜 야구로도 훨훨 나니까 상관없겠지만, 나는 이런 게임 아니면 평생 홈런 하나도 못 쳐보잖아.”
음. 확실히 찬희 타율이 별로긴 했지. 홈런 치는 것도 본 기억이 없고. 포수 역할을 잘 해주는 덕분에 찬희의 타격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 때문에 가져온 거 아니야. 네가 이제 야구 못하니까, 게임이라도 하고 싶을까 봐 그런 거지.”
“……응? 아니,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그래도 자기가 지겨워서 안 하는 거랑 다쳐서 못하는 건 많이 다르잖아.”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어리둥절해서 뭐라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뒤돌아 있던 찬희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는 야구 그만두면 안 돼……. 이렇게 야구 못하게 되면 안 된단 말이야…….”
“아니야……. 가, 갑자기 왜 그래, 너?”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찬희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지금 녀석이 흐느끼는 건지 화내는 건지 도통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난 잘하지도 못하는데! 어차피 누가 야구 관둬야 하는 거면 내가 그랬어야지! 너는 야구 그만두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는 천잰데!”
“……잠깐만. 야야야, 그, 그건 아니지.”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싶었던 나는 별안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찬희가 내 부상을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왜 그게 자기 때문이야?’
아니, 아니. 갖다 붙이려면 못할 거야 없지. 찬희가 데드볼을 맞았고, 내가 위협구로 화풀이했고, 그 보복으로 방망이가 날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이건 너무 억지 아니야? 박현성인가 하는 놈이 방망이를 일부러 던진 건지도 모를 일이고, 찬희가 데드볼 맞을 만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부터 열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부터 아홉까지는 그놈이 나쁜 건데. 왜 맞은 놈이 책임 타령을 해?
“나 야구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은 거 알잖아? 네가 나보다 야구 훨씬 좋아하는데, 당연히 네가 야구하고 내가 그만둬야지! 안 그래?”
“…….”
한참이나 쩔쩔매면서 달랬지만, 찬희는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릴 생각을 않았다. 결국에 나는 찬희를 달래기보다도 나 자신이 답답해서 한소리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 그러면, 네가 대신하면 되잖아.”
“……뭐?”
“어차피 난 이제 야구 못한다잖아. 그런데 너 맨날 내가 프로 되는 거 보고 싶다면서?”
“…….”
“네가 나 대신 프로 돼서 엄청 잘하면 되잖아! 그래서 상도 많이 받고, 1등 돼서 ‘내가 아는 최고의 투수는 최태웅이다.’라고 인터뷰 하는 거야! 그러면 네가 미안할 것도 없이 다 해결되잖아!”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찬희한테서 프로가 되라는 말 듣는 것이 짜증 날 때도 있었다. 무슨 모기가 왱왱거리는 것도 아니고 원. 그렇게 프로선수가 멋있어 보이면 자기가 직접 할 것이지, 왜 나를 붙잡고 그러는지.
“내가 어떻게 프로가 돼……. 프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웅얼거리는 찬희의 목소리는 풀이 죽은 것보다도 자학 같은 느낌이 났다.
찬희가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잘 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야구를 접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서 가슴이 다 서늘했다.
“네가 아무나인지 어떻게 알아? 아직 키도 다 안 컸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키 엄청 클지도 모르잖아! 초등학교 때는 못했다가 그때부터 잘하게 되는 사람도 엄청 많대!”
“…….”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나 같은 팔병신보다는 가능성 높을 거 아냐?”
살랑살랑 왼팔을 흔들자, 비로소 찬희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찬희의 눈은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아니, 미안하면 미안한 만큼 열심히 연습해서 네가 대신 프로 돼. 알았어?”
“태웅아…….”
“징그럽게 뭘 또 불러대? 아무튼 내 핑계 대고 야구 그만두기만 해봐? 나 진짜 화낸다. 내일부터 연습 꼭 나가는 거다?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