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외전2. 꼬마 친구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앨버트?”
고양이 눈을 한 아이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의 품에 안긴 고양이 인형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근처일 거야.”
긍정적인 대답이었지만, 목소리엔 힘이 없다. 근처라고 해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작은 두 귀신이 다니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양기가 강한 곳이라 둘이 오래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데도 아이와 앨버트가 이곳을 헤매는 이유가 있었다.
“가람이 형한테 사과하고 싶은데……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고…….”
기운 없이 말하는 아이의 손등을 앨버트가 가볍게 두드려줬다.
“걱정하지 마. 분명 찾을 수 있어. 실망하지 마.”
앨버트의 격려에 아이가 살짝 미소지었다.
“큰 목소리로 불러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앨버트의 말에 아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불러보자. 가람이 형이 들으면 분명 달려와 줄 거야.”
“못 찾았어.”
아이가 실망스럽게 말하며 무릎을 끌어안았다. 앨버트가 안절부절못하며 아이의 바짓자락을 끌어당겼다.
“좀 더 찾아보자. 여기까지 왔잖아.”
“하지만…….”
앨버트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앨버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꼭 찾고 싶었는데…….”
아이가 힘없이 말하고는 무릎 위로 머리를 파묻었다. 그 순간이었다.
“뭘 찾고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들린 낯선 목소리에 아이가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작고 약하니 언제 누가 시비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만도 수없이 시비에 걸렸다.
아이와 앨버트는 잔뜩 긴장해서 갑자기 끼어든 존재를 쳐다봤다. 예상외로 귀엽게 생긴 소년이었다. 소년은 의아한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귀엽게 생겼다고 해도 아이보다는 덩치가 커서, 고양이 눈의 아이와 앨버트는 여전히 소년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누구야……? 우리한테 볼일 있어?”
아이의 말에 소년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나? 한들이라고 하는데, 심심해서. 그래서 너희는 뭘 찾는데?”
소년, 한들에게서는 악의나 장난기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순수하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조심조심 눈치를 봐도 시비를 걸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아 앨버트가 살짝 경계를 풀고 대답했다.
“찾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러자 한들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물었다.
“사람? 귀신이 아니라?”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들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더니 아이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말했다.
“그래, 좋아.”
한들의 뜬금없는 말에 아이와 앨버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들이 그 표정을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사람 찾는 거, 내가 도와줄게!”
그 말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정말?”
한들이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차피 할 것도 없고. 심심했거든! 이한주는 나랑 안 놀아준단 말이야. 놀아주긴커녕 시끄러우니까 나가서 놀라지 뭐야. 치사하지 않냐?”
아이와 앨버트는 이한주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러려니 넘기고 반갑게 웃었다. 안 그래도 제법 막막하던 차였다.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줬으면 했다.
“정말 고마워, 한들아.”
아이의 진심이 담긴 인사에 한들이 아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뭘! 근데 어떻게 생긴 사람을 찾는 거야?”
아이는 한들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으음, 갈색 머리에 키는 나보다 훨씬 큰 형인데…… 그게…….”
한 번도 사람의 얼굴을 묘사해본 적이 없어 아이는 표정을 흐렸다. 갈색 머리에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 인간은 이 거리에 넘쳐났다. 한들도 저런 설명으로는 부족한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름은? 몰라?”
한들의 질문에 앨버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아. 한가람이라고 했어.”
그러자 한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와 앨버트를 번갈아 봤다. 한들의 반응에 작은 두 귀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한들을 응시했다.
이윽고 한들이 확인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치며 물었다.
“한가람? 한가람 말이야?”
생각보다 큰 반응에 아이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왜?”
아이의 조심스러운 표정을 본 한들이 픽 웃고는 말했다.
“아니, 한가람이라면 나도 아는 녀석이야! 그냥 걔한테 너희 같은 친구도 있었나 해서.”
한들의 당당한 말에 아이와 앨버트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정말? 정말 가람이 형을 알아?”
반색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한들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알지 그럼. 사는 곳도 알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
“어디야? 데려다 줘!”
아이가 양손으로 한들의 손을 꼭 쥐고 외쳤다. 그러자 곧바로 대답하려던 한들이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고양이 눈의 아이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혹시 가람이 형한테 무슨 일 있어?”
아이의 질문에 한들이 퍼뜩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일은 무슨. 그게 아니라 지금 찾아가면 화내거든.”
“화를 낸다니?”
한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앨버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한들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이거든. 저번에 학교에 있을 때 찾아갔다가 간식도 못 얻어먹었어. 아는 척도 안 하더라, 치사하게!”
“그럼 지금 못 만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이는 한들이 말하는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 만날 수 없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한들은 아이의 표정에 난감한 얼굴로 으음, 소리를 내다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조금만 기다리면 끝날 거야. 그때까지 나랑 놀자.”
아이와 앨버트에게 한들은 겨우 찾아낸 가람과의 끈이었다. 그런 한들이 지금은 만날 수 없다고 하니 떼를 쓸 수도 없었다.
어차피 한들이 아니었으면 거의 찾을 가능성이 없었다. 한들과 놀다보면 분명 가람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아이와 앨버트는 한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이와 앨버트는 한들을 따라 제과점 유리 앞에 서 있었다. 한들은 유리 너머로 보이는 과자들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경했다.
한동안 한들을 따라 과자를 구경하던 아이가 한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뭐야?”
아이의 질문에 한들이 신나서 대답했다.
“과자야! 먹으면 달콤한 맛이 나. 저건 초콜릿 맛이고 저건 안에 잼이 들어 있어. 아, 난 저게 제일 좋더라.”
유리창 너머로 하나하나 손가락질하며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한들에 아이와 앨버트가 눈을 끔뻑였다. 흥분한 표정의 한들이 입가의 침을 닦으며 말했다.
“너희 먹어본 적 없어?”
그 질문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사람 음식은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먹을 필요도 없고.”
아이의 대답에 한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뭐라고! 저렇게 맛있는데!”
불쌍한 것을 쳐다보듯 아이와 앨버트를 쳐다보는 한들에 아이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맛있다고 해도…… 사람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면 화를 입는걸.”
그 말에 한들이 아이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아이가 놀라 어깨를 흠칫 떨었지만, 한들은 개의치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따가 한가람 만나면 사달라고 하자.”
그 말에 아이와 앨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람이 형은 저거 살 수 있어?”
아이의 질문에 한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한가람이라면 백 개라도 살 수 있을걸?”
그 말에 앨버트가 깜짝 놀라 말했다.
“정말?”
한들은 아이의 어깨를 놓고 팔짱을 끼고는 언뜻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엄! 근데 평소엔 쪼잔해서 한 개씩만 사주거든. 오늘은 너희도 한가람을 찾으러 왔으니까 잔뜩 사달라자. 모처럼이잖아.”
한들의 말에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앨버트를 내려다봤다.
“기대된다! 그치?”
앨버트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두 귀신의 반응을 지켜보던 한들이 씩 웃고는 말했다.
“이제 구경할 것도 딱히 없으니까, 한가람 학교 근처로 가서 기다리자. 슬슬 끝날 시간이야.”
아이와 앨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 처져 있던 분위기가 거짓말같이, 아이와 앨버트는 잔뜩 신나 있었다.
한들 덕분에 그동안 무서워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문화를 많이 알게 되었고, 간만에 다른 귀신에게 시비도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막 학교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무언가 커다란 손이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으악!”
아이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거구의 흉악한 귀신이 아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아이는 또 시비에 걸린 거란 걸 직감했다.
이곳에 익숙한 한들이 있더라도 꼬마 세 명의 조합은 만만하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방금까지 들떴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누, 누, 누구세요?”
아이가 잔뜩 겁먹어 더듬거리며 묻자, 흉악한 귀신이 표정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고는 말했다.
“야, 꼬맹이! 여기는 내 구역이야. 누구 맘대로 들어오라고 했어? 맞고 싶어?”
금방이라도 아이를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 쩌렁쩌렁하게 내는 목소리가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아이는 기가 죽었지만, 덜덜 떨면서도 말했다.
“하, 하지만, 나는 찾을 사람이 있는……”
“아앙?”
“힉!”
흉악한 귀신이 아이를 후려치려는 듯 손을 올려 아이가 움찔 몸을 굳혔다. 뒷덜미가 잡힌 상태라 도망칠 수도 없어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곧바로 닥칠 이어질 충격에 대비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때리는 척 마는 척 하며 놀리려는 걸까? 그렇다면 참 성가신 상대한테 걸렸다. 아이는 벌써부터 앞으로의 고난이 걱정됐다.
“끄윽, 끅, 끅…….”
그런데 문득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에 아이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통나무같이 커다란 귀신의 팔이 가늘디가는 한들의 손에 꽉 붙잡혀 있었다.
귀신의 팔에 힘줄이 잔뜩 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니 힘을 굉장히 많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팔을 잡고 있는 한들은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한들!”
아이의 놀란 외침에 굳은 표정으로 귀신을 노려보던 한들이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으아악!”
흉악한 귀신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울렸다. 아이는 귀신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재빨리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너희 빨리 내 뒤로 와.”
한들의 말에 아이와 앨버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한들의 뒤로 숨었다. 귀신이 눈을 부라리며 한들을 노려봤다.
“너어…… 이 자식이……!”
분노로 떨리는 그 목소리에 아이와 앨버트도 겁을 먹고 벌벌 떨었지만, 한들은 픽 코웃음을 치더니 부러 거만한 척하며 말했다.
“시비 걸지 말고 꺼져 허접아. 이제부터 여긴 내 구역이니까!”
맹랑한 한들의 말에 귀신의 얼굴이 더욱더 흉악해졌다.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이 적잖이 약이 오른 듯했다.
“이, 이……!”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귀신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반대쪽 손을 쳐들었다. 금방이라도 내리칠 것 같은 순간 한들이 귀신의 무릎을 발로 뻥 찼다. 말 그대로 뻥! 하고 작지 않은 소리가 울렸다.
“끅!”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삼킨 귀신이 그대로 무너졌다.
자리에 엎어진 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 귀신을 한들이 장난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꺼지라니까, 허접아.”
“너……!”
흉악한 귀신이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한들이 압도적인 기운으로 귀신을 내리눌렀다. 거의 찍어누르는 수준이었다.
그 순간 귀신의 눈에 한들의 본체인 거목이 보였다. 이런 곳에 거목이 자라있을 리 없으니 단순히 귀신의 착각이었지만, 귀신은 그 거대한 힘 앞에서 순식간에 두려움에 잠겼다.
“십 초 줄게. 안 꺼지면 잡아먹어 버릴 거야. 하나, 두울…….”
그렇게 말하고 수를 세기 시작하는 한들에 귀신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들에게 채인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한들에게서 도망쳤다.
귀신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건 위험하다는 걸.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이윽고 멀어진 귀신에 한들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잡아먹는다는 건 거짓말인데. 바아보!”
귀신이 도망간 방향을 향해 메롱, 하며 놀리기까지 한 한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가자!”
발랄하게 말하는 한들을 아이와 앨버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두 귀신의 싸한 반응에 한들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왜 그래?”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휘휘 젓고는 말했다.
“아니…… 너 정말 세구나. 덩치가 엄청나게 큰 귀신이었는데…….”
그 말에 한들이 슬쩍 귀신이 도망간 방향을 보고는 말했다.
“덩치만 크면 뭐하냐? 완전 약해빠진 녀석이었는데.”
한들의 태연한 반응에 아이가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아이와 앨버트뿐이었다면 죽어도 이길 수 없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에 아이는 자신들의 약함에 속상해야 할지, 한들의 강함에 신기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왠지 가람이 형 같네.”
아이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어딜 봐서 한가람 같아?”
“아니, 왠지…….”
느낌이 비슷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이가 우물거렸다. 한들은 잠시 아이를 쳐다보다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무렴 어때. 이제 가자. 조금만 더 가면 돼.”
아이는 머뭇거리며 한들의 손을 잡았다.
학교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을 가면서 아이와 앨버트 그리고 한들은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곧잘 시비가 걸리곤 한다는 아이의 말에 한들은 제 가슴을 치며, 여기에 있는 동안은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형 노릇을 했다.
사람들의 눈에 이 귀신들의 모습이 보였다면 귀엽다고 미소짓게 될 광경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학교에서 가람이 이들을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뛰어오는 걸 보면서, 아이와 앨버트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