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악귀 (4)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기도, 혹은 꿈속으로 빠져든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좁은 골목길 한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아까까지 느끼지 못했던 추위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낮인가? 이렇게나 어두워서 밤인 줄 알았다.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굉장히 굉장히 초조했던 것 같은데…….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떠올리려 해봐도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뿌옜다.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비 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툭툭툭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이 묵직한 게 느껴졌다. 손잡이를 느슨하게 잡고 있어 우산이 빗방울이 두드리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폭풍이라도 닥친 것만 같은 날씨였다. 심한 비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다.
어서 마음 편히 몸을 뉘일 수 있는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좁은 골목길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놀렸다.
팅팅티이잉, 팅팅티이이잉.
“응?”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동전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제서야 눈치챈 게 이상할 정도로 아주 많은 동전들이었다.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동전의 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 앞에 어린 소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소년은 천천히 걸으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서. 몹시 춥고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숨이 막혀왔다. 심장이 빠르게 쿵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다가가선 안 된다는 경고와 빨리 가서 말을 걸라는 외침이 어지럽게 섞여들었다.
자연스럽게 발을 멈춘 순간, 강한 바람이 불었다. 봄이 가깝다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추위가 시리게 몸에 박혀 들었다. 추위를 넘어 고통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소년 역시 그 바람에 작고 가벼운 몸이 크게 비틀거렸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소년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을 텐데도 소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폭삭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년에게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었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잘게 떨었다. 꼭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거운 입술을 떼 겨우 목소리를 냈다.
“어디 가는 길이니?”
소년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함을 느끼며 한 번 더 되물었다.
“가까운 곳이면 내가 데려다줄게. 그러니까 말해봐.”
그러자 소년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커다랗고 귀여운 눈동자가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부드럽게 묻자, 소년이 팔을 뻗어 자신이 가던 길을 가리켰다. 그 순간 이 자리를 삼켜버릴 듯 사납게 내리던 비가 순식간에 그쳤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갑작스러운 고요에 어안이 벙벙해져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까지 내리던 빗소리가 귀에서 웅웅 울리는 것 같았다.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소년의 조용한 질책이 내 귓가에 파고든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헉, 숨을 삼켰다. 기억 속에서 깜깜한 길이었을 그곳에 희미하게 문이 생긴 것이 보였다.
한들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약속을 어겨?”
툭, 우산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바닥을 구르는 우산에 시선을 줄 수 없었다. 안타까운 듯 서러운 듯한 한들의 눈동자가 눈을 돌리는 것을 용서치 않고 있었다.
“한들아.”
무심코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한들의 눈망울에서 맑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가람, 정말 그럴 생각이야?”
떨리는 그 목소리에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한들이 내게 무엇을 실망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싫었어. 그래도…….”
한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한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다 미안해. 끌어들여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왠지 여기서 이렇게 대화를 끝내버려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한 한들을 보챘다.
“왜 그러는데. 뭐가 싫었는데. 말해줘. 제발.”
내 말에 한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 머뭇거리던 한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이가윤은…… 다 알고서 나랑 계약한 거니까, 네가 이가윤을 희생시키겠다고 정했으면 그건 막을 생각 없어. 하지만…….”
한들이 코를 훌쩍이고 말을 이었다.
“그 악령석들은 싫어……. 너도 그랬잖아.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사람의 본질이 남을 헤쳐서 득을 꾀하는 것이냐고.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거냐고.”
“…….”
한들의 말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한들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내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서서 사람이 되길 바라?”
그 질문에 숨을 삼켰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한들을 내려다봤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한들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한들의 목소리에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 풍경이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도 못한 채로 멀어져가는 한들의 모습을 끝까지 응시했다.
눈앞에 다시 현실이 닥쳤다.
“안 돼!”
공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가윤과 한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를 큰 힘으로 나는 가윤이 한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한가람!”
한 번 더 방해받은 가윤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나도 지지 않고 이가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절대로 그 공물을 바치지 못하게 할 거야! 내가 막을 거라고! 그러니까 포기해!”
아까와 같은 외침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달랐다.
아까는 이가윤과 한들의 거래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찬 상태였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공물을 바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 공물만은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한들의 목소리가…… 진짜 한들의 것인지, 아니면 내 망상에 불과한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다만, 정말이어도 망상이어도 한들을 잔인한 희생 위에 세우고 싶지 않았다. 이가윤이 가진 공물만이 지금 이 상황을 풀어나갈 열쇠라고 하더라도.
“비켜! 꺼지라고!”
이가윤이 소리치며 기운을 쏟아냈다. 어둡고 음습한 기운이 다시 한번 내게 닥쳤다. 나도 지지 않고 힘을 써 이가윤의 기운을 몰아냈다.
다시 아까와 같은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싸움을 이어갔다. 부하가 걸린 몸이 삐걱거리는 것 같아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한들을 네 뜻대로 다룰 수는 없어! 내가 있는 한은!”
진심으로 소리치며 피부를 찢을 듯 따가운 기운을 견뎠다. 모든 것이 으스러질 듯 아파 왔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절대로.
일 년 전, 한들은 이가윤을 만나 해서는 안 될 약속을 했다.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상관도 없는 사람을 기꺼이 희생시키겠다고.
한들이 나를 택하고 나와 계약을 맺은 건 나를 희생시킬 의도가 아니었지만, 결국 그렇게 될 뻔했다. 그날 섬마을 저택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도 한주도 이미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휘말렸듯, 자신의 염원 때문에 엄한 사람을 희생시키려 한 한들은 천벌을 받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라왔던 몸은 불에 타서 볼품없어졌고, 점점 타락해갔다. 신이면서 점차 악귀가 되어갔다.
사락, 사락.
종잇장처럼 뻣뻣해진 나뭇잎이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가을을 맞아 낙엽이 쌓이는 것 같았으나, 달랐다.
푸르르던 나뭇잎들이 검게 말라붙어 보기 싫은 꼴이 되어버렸다. 초록색 빛을 띠며 바닥을 물들이던 나무 그늘도 이제는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처럼 느껴졌다.
타락해감에 따라 당당하게 이곳에 솟아났던 나무도 점점 추하게 말라 비틀어져 갔다.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한들아! 제발 정신 차려! 저 공물을 받아선 안 돼!”
필사적으로 외치고 또 외치며 한들을 깨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말라붙은 나무는 오히려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탐욕스럽고 추악한 기운이 그 몸체에서 풍겨 나왔다.
금방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를 것 같았다.
저 공물을 받아 거래한다면, 아마 한들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다. 천벌을 받았던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엄한 벌을 받게 될 거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었다. 한들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방법이 없다.
뻗어 나온 한들의 가지가 이가윤에게 닿았다. 한들은 저 공물을 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든 간에. 그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르는데.
분노와 초조함과 안타까움이 어지럽게 뒤섞여서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마음을 다해 외쳤다.
“안 돼! 제발!”
그 순간이었다.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이 이 공간을 감쌌다.
“헉!”
이가윤이 숨을 터뜨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꽉 감았다. 쨍, 쨍, 쨍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긴장의 끝에 다다라 내가 내쉬는 숨이 차게 느껴졌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짚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적으로 구토감이 치솟았지만, 그보다 먼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가윤에게 거의 닿아 있었던 한들의 가지가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하얗게 반짝이는 빛이 그 거리감을 채우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이 거래를 끝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둘의 거래를 방해하고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빛을 내뿜으면서.
눈을 감았을 때 들리던 쨍, 쨍, 쨍 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가윤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안에 든 악령석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였다. 느리게 반복되지만,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고 또 부딪치고 있었다.
“무슨…….”
멍하니 중얼거리자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가윤이 단번에 악귀와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날 돌아봤다.
“한가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서슬이 퍼런 외침에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나도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멍한 표정 그대로 입을 벌리는데, 그 순간 미묘한 공기를 찢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쨍!
이가윤이 몸을 움찔 떨더니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곧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을 돌아봤다.
날카로운 소리는 그치지 않고 반복해서 계속 들려왔다. 쨍! 쨍! 쨍! 이가윤의 손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가윤이 저렇게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니까.
한들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대로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날카로운 소리는 딱 열 번 울린 뒤 사그라들었다. 이가윤의 손 틈으로 곱게 갈려 입자가 고운 가루가 스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빛나던 보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탁하고 보기 흉한 가루였다. 잿가루 같이 불길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이가윤이 준비한 공물들이 모두 깨져버렸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가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들과의 거래가 성사되기 직전에 모든 악령석들이 깨져버렸다.
나도 영문을 알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혼란 속에서 밝은 빛만이 여전히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가윤이 모은 손 위에 떠 있던 밝은 빛이 조금씩 그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둥글던 모양이 점점 꽃이 피어가듯 벌어져갔다.
아니, 꽃이 피어가듯이 아니라…… 정말로 꽃이 피고 있었다.
가윤의 손 위에서 꽃이 만개했다. 무수한 반투명한 흰색의 꽃잎이 그 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숨을 삼키자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만개하기 전의 겸육설봉 유리 모형이라네. 좋은 물건이야.
환상상가에서 저승사자를 만났을 때, 저승사자가 그렇게 말했다. 겸육설봉…… 흰 국화의 일종이라고.
그러자 반박하듯 외쳤던 내 목소리 역시 머릿속에 맴돌았다.
─ 흰 국화면 죽은 사람한테 바치는 거잖아요! 재수 없게!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바로 그때의 그 꽃이 지금 이가윤의 손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기억보다 훨씬 커진 상태로.
기억과 많이 달라진 크기에 깨달았다. 깨져 없어진 이가윤의 악령석들은 저 꽃을 피우기 위한 재료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나는 숨을 삼키고 조금 뒷걸음질 쳤다. 이 상황을 이해한 순간 소름이 돋아, 이가윤의 곁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저승에서 건넨, 죽은 사람에게 헌화하는 꽃. 저 유리공예 꽃에 얼마나 많은 재수 없는 상징이 들어있는지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가을이 되어 이가윤의 악령석을 양분 삼아 마침내 피어난 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그야말로 죽음의 상징이 응축된 꽃이었다.
“왜, 저게…….”
이가윤의 손에 있지. 그렇게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 떠올라서였다. 꿈속의 철문 앞에서 실루엣이 보였던 건너편을 확인하려다 무언가를 떨어뜨렸던 것을.
그때 그 안쪽으로 굴러갔던 게, 바로 저 흰 국화를 본떠 만든 유리 공예품이었다.
“이게 뭐냐고…….”
이가윤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채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장막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얼굴이 그린 듯이 눈에 보였다.
“이가윤.”
이름을 부르자 이가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불길함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각을 느끼고 숨을 삼켰다.
이가윤이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이가윤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그 외침에 대답을 돌려주지 못했다. 다만 망부석처럼 서서 이가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곧 죽게 될 사람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한주가 한 말의 의미를 지금 여실히 깨달았다. 그 말은 결코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그 말뜻 그대로 이가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검게 뻥 뚫려 있는 얼굴이 그 어떤 귀신보다 괴기스럽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한가람!”
바짝 얼어붙어서 목이 찢어져라 외치는 그 목소리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