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74화 (74/84)

[74] 대면 (3)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한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재느라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태가 식겁한 듯 외쳤다.

“네에? 살인자라니요! 가윤 님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절대로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태의 열렬한 변호에 누군가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 편이야?”

분명 나랑 한주와 동행한 걸 봤는데 이가윤을 싸고도니 의아한 것이다.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 이가윤이 지태를 무시하고 한주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니?”

난감한 듯 웃으면서 고개를 기울이는 폼이, 정말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그 능청스러운 표정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태가 여기 있는 한 꼬리가 잡힌 상태인 것을 알 텐데.

진행자가 상황을 보다 끼어들었다.

“근거 없는 비방은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주에게로 쏠렸다. 한주 역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이가윤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는 최근 일어난 영능력자 범죄 사건들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김지태 씨는 그 증인으로 데려온 거고요.”

한주의 말에 지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말입니까? 증인이라니…….”

이가윤을 싸고도는 지태가 이가윤의 악행을 증명해줄 사람이라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했다.

한주는 지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몇 개월 전 사이비 교단의 교주 모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죠. 그 모녀는 악령석 때문에 희생당했습니다. 이가윤은 그 사건을 주도한 범인이고요. 교주에게 살인을 유도하고 직접 교주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한주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감색 빛을 띤 팔각형 보석이었다. 보석에 새겨진 세공에서 굉장한 세공이 느껴졌다.

눈에 익은 보석이다.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저걸 잊고 지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한 기억이 담긴 보석이었다.

이가윤이 이 회의실에 들어와 처음으로 표정을 굳히고 한주를 노려봤다. 한주가 꺼내 놓은 것이 악령석이란 걸 눈치챈 영능력자들도 표정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게, 보통 악령석이 아니니까.

악령석에 둔 시선을 조금 올려 다시 이가윤의 얼굴을 쳐다본 한주가 순간 움찔 몸을 굳혔다. 그리고 곧 조금 허탈한 듯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 영문 모를 반응에 의아함을 담아 한주를 봤으나, 한주는 금방 평정을 되찾고 한 손으로 악령석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게 그 교주입니다.”

소름이 끼친 듯 영능력자들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사람을 재료로 한 보석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응당한 반응이었다. 단 한 사람, 가윤만이 탐욕에 젖어 그 보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들이켠 지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이 책상이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황당함을 가득 담아 지태를 쳐다보자, 지태가 머쓱해하며 대꾸했다.

“아, 혹시 거기 뭐가 있습니까?”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는 지태를 사람들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이 대화에서 지태가 일반인이라는 게 확실히 증명된 듯, 다들 잠자코 한주의 설명을 기다렸다.

“이가윤은 사람을 재료로 만든 악령석을 모으는 수집가입니다. 그러한 악령석을 벌써 아홉 개나 모았고요. 아마 지금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한주가 말하는 동안 이가윤은 무표정으로 한주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잠자코 상황을 보던 진행자가 이가윤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사실입니까?”

그 말에 가윤이 눈을 내리깔고 입을 열어 조용한 목소리를 냈다.

“글쎄요. 아니라고 하면 믿어주실 건가요? 아니면 제 몸을 다 뒤져보기라도 하실 건가요?”

이 자리의 누구도 이가윤에게 그런 압력을 행사할 권한이 없다. 설령 이가윤이 정말로 모든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한주는 처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가윤을 말없이 응시했다. 짜증을 내는 것도 황당해하는 것도 아닌 덤덤한 표정이었다. 두 자매가 모두 입을 다물자 차현이 나서 입을 열었다.

“우선 여기 계신 김지태 씨의 말씀을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저도 저분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차현의 말에 영능력자들이 동조했다. 지태가 움찔 몸을 떨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지태는 한주가 한 말을 이해하는 데만도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슬쩍 한주를 쳐다봤으나 한주는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몇 개월 전, 저는 영광의증명 교주의 딸인 송예린 양의 의뢰를 받아 영광의증명에 잠입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송예린 양은 이미 교주에게 살해당한 상태였습니다.”

“잠입? 스파이셨습니까?”

지태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런 지태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영광의증명 내부에서 처음 이가윤을 만났고, 곧 이 모든 이가윤과 박세훈의 목적이 교주를 악령석으로 만드는 것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잠입 기간 저는 기숙사에서 박세훈, 김지태 씨와 룸메이트로 지냈고요.”

지태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걸 곁눈으로 보고 한숨을 삼켰다. 저 순진한 녀석은 지금껏 나름대로 이가윤을 존경하고 세훈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밝혀 충격을 주는 게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김지태 씨는 이가윤이 영광의증명에 몸담았다는 것을 밝혀줄 증인으로 데려왔습니다. 지금껏 보셨으니 아셨겠지만, 김지태 씨는 이가윤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이가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소리에 이가윤에게 이목이 쏠렸다. 잠시 뜸을 들인 이가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저는 한때 영광의증명에서 간부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한가람 씨에게도 말씀드렸을 텐데요. 악령석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곳에 들어간 것이라고요.”

가윤이 약간 울상을 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교주의 악령석화를 막지 못한 건 내 잘못이에요. 하지만 제가 그걸 노렸다는 비난은…….”

말을 잇지 못한 이가윤이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그 꼴을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깜빡 속아 넘어갔던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묘한 분위기 속에 툭, 무언가를 가볍게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주였다. 한주가 자신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화면엔 언젠가 봤던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이 영상은 한 오피스텔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일을 담고 있습니다. 한동안 난리가 났으니 다들 아시겠죠. 악령석을 사용한 살인 사건 건이요.”

다들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태도 함께 휘말렸던 사건이라 기억이 나는 듯 가만히 한주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한 리뷰어가 찍은 인터뷰 영상입니다. 이 여자의 뒤를 주목해서 봐주세요.”

한주의 휴대폰을 가져간 사람들이 모여서 영상을 확인했다. 나는 이 엉성한 분위기에 약간 신물을 느끼며 슬쩍 한주를 쳐다봤다. 한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

처음 목소리를 낸 건 마였다. 이내 다른 사람들도 깨달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영상과 이가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영상엔 인터뷰하는 여자의 뒤쪽으로 해당 사건의 범인과 나란히 걷는 이가윤의 모습이 찍혀 있었으니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한주가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 살인자랑 동행하는 것도 그 살인자를 구하기 위해서였을까요? 납치 및 살인 행각들은 모두 모른 척 내버려 두고서?”

그렇게 말하는 동안 한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가윤에게로 옮겨갔다. 영상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 반응으로 상황을 눈치챈 가윤이 짜증이 난 듯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한주를 노려봤다.

한주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을 이었다.

“그 사건에 사용된 악령석도, 그리고 이번 저주 사건에 사용된 악령석도 모두 교주가 지니고 있던 악령석이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주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바닥은 좁으니까 조금만 추적해보면 그 사실을 밝히는 건 일도 아니겠죠.”

그 사실이 밝혀지면 정황상 이가윤이 범인인 것이 확실해진다. 입을 꾹 다문 이가윤이 한주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 곧 재미있다는 듯 미소지었다.

“그래서?”

그 목소리에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내가 범인이면 뭐 어쩔 건데?”

한주는 그 약 올리는 듯한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가윤의 말대로, 범인이 밝혀져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어쩔 수는 없으니까요.”

회의실 안에 정적이 맴돌았다. 각자 고민이 많아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힘을 가진 사람들로서 반성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조용한 한주의 목소리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한주를 돌아봤다. 매번 범인에게 죗값을 받게 하는 것에 회의적이던 한주였는데.

“하지만…….”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끼이익,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난 곳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이가윤이 웃으며 한주를 보고 있었다.

“늦었어.”

이가윤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힘이 터져 나왔다. 뼛속까지 저릿저릿한 기운이었다. 맨살로 한파를 견디는 듯한 느낌. 그 압력만으로 피부가 찢길 것 같았다.

“으윽…….”

신음하면서도 애써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이가윤의 손에 아홉 개의 악령석이 들려 있었다.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각자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가윤……!”

씹어뱉듯 이름을 외치자 이가윤이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멍청하긴! 이제 다 끝났어!”

환희에 잠긴 목소리가 머릿속에 웅웅 울리는 것 같았다. 머리를 부여잡은 순간 검은 것이 빠르게 옆을 스쳤다.

“큭……!”

고통스러운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다. 이가윤에게서 뻗어 나온 불길한 기운이 한주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목을 움켜잡는 한주에 놀라 그 곁으로 다가갔다.

“한주, 씨……!”

겨우 목소리를 내뱉으며 한주를 돕기 위해 팔을 뻗은 순간이었다. 이가윤이 빠르게 테이블 위에 놓였던 교주의 악령석을 낚아챈 것은.

“너!”

고함을 치며 이가윤을 노려봤다. 이가윤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감색 빛이 도는 팔각형 보석을 높이 쳐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다 모았어!”

격양된 그 목소리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둘 줄 알아!”

버럭 외치는 순간 귀가 먹어버릴 정도로 커다란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많아서 이제 사람의 목소리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게 된 많고 또 많은 염원도.

구토감이 치밀었다. 격렬한 감정의 한복판에서 떠밀려내려 가지 않게 버티는 것에 급급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혼란스럽고 또 혼란스러웠다.

커다랗게 뻗은 가지가 이가윤의 살을 갈랐다. 그 옆구리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보자 나무 향기가 한껏 짙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으읏…….”

이가윤은 괴로운 목소리를 내면서도 입가에 담긴 웃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한 자의 표정이었다. 이 자리에서 떠나는 것만이 이가윤에게 남은 과제였다.

놓쳐서는 안 된다. 절대로.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가윤을 공격했다. 이가윤은 악령석의 힘으로 겨우겨우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나와 이가윤 둘 중 한 명이 지쳐 나가떨어지면 끝이었다. 이 감정의 격류에 모든 것이 휩쓸리더라도 이가윤을 놓아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내 귀에 맴도는 것이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인지 염원의 소리인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 안에 남은 것은 오직 눈앞의 사람을 붙잡는 것뿐. 설령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붙잡는 것만이 내 안에 남은 감정이었다.

“정신 차려!”

한주가 다급하게 외치며 내 옷깃을 꽉 붙잡은 것은, 내가 한들에게 먹히기 일보 직전의 순간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주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 굳히고 이가윤에게 향하던 공격이 다소 누그러진 순간, 기회를 노린 이가윤이 절뚝거리며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가윤!”

다급하게 외치며 이가윤을 쫓아가려 하였으나, 순간 눈앞이 점멸하며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안 되는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몸을 빠져나간 기운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천천히 눈을 감으며 초조함에 신음했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주의 차 뒷좌석에 누워 있었다. 해는 완전히 떨어져 깜깜했고 이따금 바깥에서 빛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현기증에 금방 다시 쓰러져버렸다.

“일어났어?”

달리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던 한주가 말을 걸어왔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곧 기절하기 직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한주 씨!”

다급하게 외치자 한주에게서 느긋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

그 목소리가 하도 태평해 순간 모든 일이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초조함을 숨기지 않고 한주에게 질문했다.

“이가윤은…….”

한주는 내 말을 다 기다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못 잡았어. 나는 너랑 이가윤한테서 사람들 지키느라 급급했고…… 걔는 그렇게 다쳐놓고선 잘도 도망치더라.”

그 말에 황망함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떡해요. 이가윤이 공물을 전부 다 모아버렸잖아요!”

끝에는 거의 따지는 듯한 투였다. 그런데도 한주는 흐음, 하며 느긋한 목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그래도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네 공격에 크게 다쳐서 움직이기 힘들 테니까. 거래하려면 일단 한들하고 만나야 할 텐데, 한들은 우리 집에 있고.”

“그래도…….”

한주의 말에 반박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진정하려고 애쓰며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주 씨가 거기서 그걸 꺼내지만 않았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 말에 한주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너무 위험한 짓이었어요. 결국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고. 한주 씨, 정말로 이가윤이 그걸 빼앗아 갈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거예요? 아니면 그래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내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한주가 작게 웃더니 말했다.

“가져간 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져간 거였어.”

그 말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한주 씨!”

내 반응에도 한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보석을 꺼낸 순간, 빼앗기게 될 거란 걸 깨달았어.”

그 목소리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느낄 수 있었다. 한주가 재미있어하는 것이 아니란 걸.

화를 내거나 후회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허탈함과 시원섭섭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보석을 꺼낸 순간, 한주가 묘한 반응을 보였던 게 떠올랐다. 그것과 관계가 있을까?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한주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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