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누명
─ 장마입니다. 전화 안 받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변화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휴대폰 화면을 빤히 쳐다보다 그대로 내려놓았다. 누군가와 얘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당장은 차분하지만, 별것도 아닌 일로 폭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집안은 여느 때처럼 조용했고 그게 더 내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가만히 시계 초침이 울리는 소리를 듣는데, 어디선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서 생활소음이 나고 있었다면 들리지 않았을 아주 작은 소리였다. 현관문을 가볍게 치고 간 것 같은 소리. 자연적으로 난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낸 것 같은 소리였다.
‘뭐지?’
그대로 잠시 기다려봤지만, 이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 찾아온 거라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렸을 텐데. 그냥 가볍게 한 번 퉁, 치고 돌아간 게 이상했다.
여기가 번화가에 있는 연립주택이었다면 전단이라도 붙이고 지나갔겠거니 했겠지만…… 외진 곳이다. 한주를 찾아오는 것이 아닌 이상, 굳이 올 일이 없는 그런 곳.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슬리퍼를 신고 문밖으로 나서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문을 확인했다.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엄청나게 흘려 쓴 악필이라 한참을 쳐다본 뒤에야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저주받은 집]
‘뭐야, 기분 나쁘게.’
인상을 찌푸리고 종이를 찢어버리려다 멈칫했다. 종이에서 미약하게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약해도 확실한 의도를 담은 기운이었다.
저주받은 집이라는 그 말대로 이 종이엔 가벼운 저주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문득 나와 한주가 이번 영능력자를 향한 무차별 테러 사건에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건 아마 그 소문을 아는 누군가의 보복인 것 같았다.
이 저주법이 강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술사의 힘 자체가 약한 듯 저주 자체는 별거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잠시 종이를 노려보다 그대로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시작이었다.
종이는 꾸준히 붙었다. 내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집 근처를 맴돌며 내게 들키지 않을 타이밍을 재다가 종이를 붙이고 도망가는 것 같았다.
이번 사건들이 터지면서 나와 한주에게 큰 불만을 품은 사람의 소행인 게 틀림없다. 아마 평소에도 원한 관계에 있거나, 미움을 사거나 하지 않았을까.
‘짜증 나.’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요 며칠 새 이런 식으로 깔짝깔짝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종종 현관이나 창에 돌을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이상한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따로 아는 영능력자가 적었기에 내 개인 번호로 따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이따금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 대뜸 욕설을 내뱉는 무리도 있었다.
내 생각보다 많은 인물에게 미움을 산 것 같았다. 이번 사건으로도 그렇고, 평소의 한주도 그렇고.
그래도 이전에 나를 찾아와 경고랍시고 오지랖을 부리고 간 할머니 정도의 패기도 없는 듯 방법이 참 졸렬했다.
그러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기분은 엄청나게 나빴지만.
그래, 다른 건 둘째치고 당장 기분이 나쁜 게 문제였다.
‘하나하나 찾아내서 족칠 순 없지.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멍하니 허공을 보며 생각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건 역시 이가윤을 잡아 진범을 밝히는 것이겠지만…… 쉽지 않을 테고, 별로 내키지도 않았다.
이가윤에겐 사람의 감정을 조작하는 능력이 있다. 속된 말로 정치질하기 딱 좋은 능력이다.
아마 이가윤이 작정하고 우리를 범인으로 내몬 것이라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갖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터였다. 그러고도 이가윤을 범인으로 몰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그런 해결법은 별로 내키지도 않았다.
억울함을 푸는 것과 잡놈들을 족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실 진범은 따로 있었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뿐이랍니다─ 하며 나쁜 놈들을 잡고 결말이 나버리면, 지금 나한테 테러를 가하는 저놈들은?
이가윤의 잘못과 저놈들의 잘못은 별개의 문제다. 그냥 나와 한주가 미워서 사실 여부도 따지지 않고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까.
오해를 풀고, 잘못을 뉘우치고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당장 화가 나니까 지금 당장 자기들이 한 걸 돌려주고 싶다.
‘하나를 잡아서 본보기로 삼을까. 호되게 당하는 걸 보여주면 시비를 걸었던 다른 녀석들도 언제 보복당할까 두려워할 테고.’
그럼 또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겠지만, 의심받는 이상 무엇을 하든지 아니꼽게 보일 뿐이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가만히 있는 대로 말이 나오겠지.
가만히 앉아서 억울한 것보단 화는 풀어가면서 억울하고 싶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나는 지렁이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저들이 지렁이처럼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손에 들린 종이를 빤히 응시했다.
[저주받은 집]
본보기를 보여주려면 가장 먼저 시비를 걸어와 아직도 이 짓을 꾸준히 하고 있는 이 녀석이 제일 좋겠지.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실패한 저주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걸 이용하면 굳이 난폭한 수를 쓰지 않아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을 거다.
한주의 서고에 들어왔다. 한주와 함께 몇 번 들어온 적은 있지만, 허락 없이 맘대로 꺼내보는 건 처음이었다.
‘괜찮겠지. 솔직히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게 다 한주 씨 탓이나 다름없고.’
그렇게 생각하며 주술과 관련된 서적을 꺼내 읽었다. 원하는 주술은 단순한 종류의 것이라 그것에 대해 다룬 책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방법도 효능도 모두 제각기라, 가장 적합한 걸 찾기 위해 많은 책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방법은 내겐 불가능해 보였고, 또 몇몇은 효능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책을 넘기던 손이 드디어 멈췄다.
“주술이 잘 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길을 깨끗이 닦아놓아라.”
간단하고 적당한 효과를 보장하는 방법이 책에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본보기로 삼기엔 저주의 힘이 미약하니 그 힘을 조금 증폭해줄 술수가 필요했고, 지금 그 방법을 찾았다.
잡동사니를 모두 치워 깨끗해진 현관문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저주를 담은 종이가 붙었다.
손에 들린 종이엔 이젠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불린 저주가 담겨 있었다. 예상컨대 이 저주는 이미 술사의 힘을 넘어선 기운을 품고 있을 거다.
사람을 죽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꽤 큰 타격을 줄 힘.
이 종이를 붙인 범인은 아마 가벼운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여왔겠지만, 이젠 돌이키기 어렵게 됐다.
겁을 먹었다는 게 느껴졌다. 매일매일 꾸준히 붙여오던 종이가 이제는 며칠의 공백을 두고 붙게 됐으니까.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게 된 저주가 무서워 그만하고 싶지만, 그만할 수 없는 거다. 실패한 저주는 본인에게 돌아가니까.
무서워도 저주를 마무리해야만 하겠지. 본인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후우…….”
한숨을 내쉬고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계획대로 되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상대다. 헛소문에 휘둘려 죄 없는 나를 공격했다. 약한 저주라 이대로 진행이 됐어도 큰 타격을 줄 수는 없었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주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정신적인 피로감을 겪어야 했다. 자기 딴엔 가벼운 골탕일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에게 시비가 걸리고 있는 나로선 그게 조금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강해진 저주가 무서워 하루빨리 내게 그 힘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정말 무서웠다면 그리고 양심이 있었다면, 저주의 힘이 더 강해지기 전에 진즉에 이 짓을 멈췄어야 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이 장난이 종결되도록.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며칠이고 계속되고 있다.
범인의 안중에 내 안전 따위는 없는 거다.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있는 것은 내게 향하는 미움뿐.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실에 의심의 여지를 느끼지 않는데, 그래도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제 이 짓도 다 끝난다. 이제는 전부 되돌려줄 생각이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하늘이 조금씩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한 집 안에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그저께랑 어제는 허탕이었지. 그럼 아마 오늘은 올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늘 그렇듯 녀석은 바깥에서 집안의 상황을 살피고 종이를 붙인 뒤 돌아갈 거다.
내가 자신을 잡기 위해 집 근처의 기운을 모두 읽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소파에 기댔던 등을 둥글게 말고 바닥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순간,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탁─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발끝에 살짝 힘을 주자 땅속을 타고 내 힘이 빠르게 범인에게 뻗어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힘이 이내 무언가에 닿았다는 것도.
“으악!”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서둘러 갈 것도 없으니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설렁설렁 걸어 문을 열자 땅에서 솟아 나온 나뭇가지에 결박당한 범인의 모습이 보였다.
내 또래…… 아니, 나보다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갓 성인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의 앳된 얼굴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범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힉…….”
숨을 삼키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웃으며 말을 걸자 범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 꼴을 감상하며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저주를 담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유감입니다. 저한테 들켜서. 이젠 그쪽이 저주받을 차례네요.”
범인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벙긋거리는 걸 보고 먼저 말을 가로챘다.
“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한테 말 좀 잘 전달해 주세요. 가만히 당해줄 생각 없으니까, 당신처럼 엿 먹기 싫으면 괜히 사람 건들지 말라고.”
거기까지 말하고 범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주가 갑자기 강해진 거, 본인도 느꼈죠?”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어주자 범인이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안 그만뒀어요?”
여전히 멍한 표정을 하던 범인이 곧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중얼거림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설마 저주가 갑자기 혼자 강해진 건 줄 알았어요?”
능력을 풀어 범인을 놓아줬다. 범인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채 창백한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범인의 얼굴을 응시하다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닫힌 문밖에서 빠르게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한가람 씨, 김차현입니다. 전화를 받지 않아 메시지로 용건 전합니다. 영능력자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쓸데없이 서두가 긴 차현의 문자는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저주로 크게 앓아눕게 된 주술사가 있다. 그 주술사가 말하길, 이는 다 한가람 때문이며 그 사람을 건드리면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거라고 한다.
……이 내용이 사실이냐는 거였다.
사실이면 뭐 어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며 차현의 문자 역시 무시했다.
가라앉은 마음은 도무지 회복될 것 같지가 않았다. 누워만 있고 싶었고, 끝도 없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크게 앓아누웠다고.’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내가 생각할 사안이 아니었다. 알아서 할 일이지. 자업자득이니까.
소문을 이상하게 퍼뜨리는 게 괘씸했지만, 덕분에 이상한 테러가 뚝 끊긴 것도 사실이었다. 집 전화는 울릴 일 없이 잠잠해졌고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게 됐다.
모든 게 잘 풀렸다. 화풀이도 했고 당장 문제도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내 선택에 대한 후회라기보다, 찝찝함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그래, 원래라면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안쪽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요즘은 계속 그랬다. 내가 하지 않았을 법한 선택을 자꾸만 하게 됐다.
나는 설령 그것이 악귀더라도 잔인하게 찢어 죽이는 취미는 없었고, 사람을 짓누르고 자신의 안위를 지킬 정도로 신경 줄이 굵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서성거렸다. 나를 둘러싼 상황도 그리고 나 자신도 변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화도 나고, 속상하고, 찝찝하고, 불안한 기분.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진정하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숨소리가 점점 빠르고 거칠어졌다.
이윽고 처음 이름을 불렀을 때처럼,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한들!”
그리고 모든 것이 차갑게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쿵, 곤두박질친 심장이 이내 빠르게 쿵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조용했다. 어두웠다. ……아무도 없었다.
막연했던 분노가 확연한 불안의 형태로 다가왔다.
‘언제부터? 도대체 언제부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언제부터 한들이 없었지? 한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왜 여태껏 한들이 없다는 걸 몰랐지?
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부터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급히 숨을 들이켰다.
한번 든 의심은 멈추지 않고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는 왜 장마나 차현의 연락을 무시한 걸까. 왜 한주에게 연락하지 않았던 걸까.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게 된 걸까.
부쩍 쉽게 흥분하게 됐고 폭력적으로 됐던 자신의 모습을 되새겼다. 한들이 악령이 되어감에 따라 나 역시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강한 확신이 나를 움켜잡았다.
나는 지금 저주받고 있는 거다. 가랑비 젖듯 조금씩 나를 침식해온 저주를 눈치채지 못한 채 휘둘려 왔던 거다.
이가윤이 잘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는 것. 그런 이가윤이 내게 보내온 저주니, 아마 비슷한 종류의 것일 테다.
사람을 의심하고 미워하고 거리를 두도록. 그리하여 스스로 분열하도록.
한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없다. 그건 나와 이가윤에게도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되든지 이제는 이 이야기를 끝내야만 한다.
하지만 나와 한주가 있는 한 이가윤은 계속 방해를 받을 테니까. 그렇다면 분열시키는 거다. 의심받아 몸을 사리게 만드는 거다.
‘내게 걸린 저주도, 영능력자들 사이의 긴장감도 전부 다 눈을 흐리게 만들 장치였던 거야.’
이가윤은 이제 공물의 준비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입술을 깨물었다. 막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순간 혼자라는 사실이 내게 뼈저리게 다가왔다.
초조하고 불안해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그 자리에 다시 털썩 앉아버렸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전화가 온 건.
“여보세요.”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아 습관적으로 말하자 전화 건너편에서 익숙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 너 때문에 나도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잖아. 왜 그러는데?
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