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관점 (2)
조용한 집안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바닥이 소름 끼치게 차갑고 창백해 보이는 전등은 불길하게 느껴졌다.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혼자 응접실에 서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여기가 꿈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을 때. 밖 어딘가에서 찰딱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젖은 맨발로 뛰어다니는 듯한 소리였다.
‘뭐지?’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혼자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불안을 부추기는 소리였다. 발소리는 요란하고 다급했고, 조용한 집안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울렸다.
곧 위험이 닥칠 것을 경고하는 듯한 소리 같았다.
언제까지고 여기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고 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발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리고 있어 방향 잡기가 어려웠다. 일단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큰 것 같아 오른쪽 코너를 돌았다.
발소리는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나는 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발소리와 더불어 희미하게 우는 듯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
조금 더 빨리 걸었다. 그래도 발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이제는 거의 뛰는 듯이 걸으며 소리를 뒤쫓았다.
‘안 보여.’
어느덧 뛰고 있었다. 주변 풍경이 거울이 깨지듯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뒤늦게 이 집 복도가 이렇게 길었던가 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뛰기 시작한 다리는 이제 멈출 수 없었다. 조종을 당하는 것처럼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빨간 구두를 신고 멈출 수 없는 춤을 추게 된 느낌이었다.
말도 안 되게 긴, 긴 복도가 무한 회랑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지나온 뒤가 점점 하얗게 허물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저기에 삼켜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향하는 앞도 똑같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의지를 가진 듯 멈추지 않던 다리가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고 견뎠다. 내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천천히 눈을 떴다. 온통 새하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렸다.
아래도 위도 옆도 없는 것 같은 공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점차 빠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 치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소름 끼치는 감각에 본능적으로 멈춰섰다.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주먹만 하게 커다란 눈 두 쌍이 코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새까만 동공에 놀란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매부리코 아래로 보이는 녀석의 입술이, 말 그대로 귀에 걸릴 정도로 씩 찢어졌다. 그게 웃음을 지은 거라는 걸 뒤늦게 눈치채고 숨을 삼켰다.
얼굴만 둥둥 떠다니던 녀석이 어느새 발끝까지 모두 자라있었다.
* * *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한에 몸을 벌벌 떨었다. 어쩐지 너무, 너무나 추웠다. 늘 그렇듯 꿈의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단 하나 강렬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눈을 가진 형상이 코앞에서 징그럽게 웃는 모습.
이 세상의 불길함이란 불길함은 다 뭉쳐 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쭉 이어져 오던 흉몽이 마침내 오늘 완성됐다는 걸 깨달았다.
쨍그랑!
밖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소리에 흠칫 몸을 굳혔다. 문밖에서 들린 작은 소리였지만, 고요한 새벽이 그 이질적인 소리를 부각했다.
‘누가 있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발소리를 죽여 소리가 들린 곳으로 나아갔다.
사람의 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밤의 집안은 늘 그렇듯 조용하기만 했다. 아까 그 소리가 꿈결에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만큼.
방 안엔 역시 아무도 없었다. 밤안개가 낀 듯 희미한 달빛이 내려서 있는 방을 느린 걸음으로 가로질러 걸었다.
곧 자리에 멈춰섰다.
서랍 위에서부터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액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잘 보일 만큼 선명한 색채를 가진 액체였다.
황금의 물결이 흐르는 듯했다.
깨진 원형 통 밖으로, 흔히 ‘액체 괴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게 철퍼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 충격으로 가볍게 튕기는 소리를 내며 원형 통 역시 그 위에 엎어졌다.
징그럽고, 불쾌했다.
그 모습을 보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젠장!”
소리치고 욕지기를 삼키며 슬라임의 근처로 다가갔다. 머리끝까지 오른 분노가 도통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다리를 들어, 슬라임을 퍽퍽 짓밟았다. 있는 힘껏.
발바닥을 타고 오르던 둔통이 어느새 찌르는 듯이 아파 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의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러 번 밟힌 금빛 액체가 점점 탁해져 가는 걸 보며 발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헉, 헉…….”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발아래가 축축해서 기분이 나빴다. 차가운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떨며 밭은 숨을 내뱉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기분이었다. 굉장히 불쾌하고, 우울하고…… 쓸쓸했다.
새벽의 정적이 사무치게 차갑게 느껴졌다.
발바닥이 두근거리며 아팠다가, 아프지 않았다가를 반복했다. 플라스틱 통도 함께 힘껏 밟아댔으니…… 그 파편이 맨살을 다 찢어놓은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발을 들어 아래의 참상을 확인했다.
움찔, 몸을 떨고 숨을 삼켰다.
흐릿한 빛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던 금빛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뚝, 뚝, 느리게 떨어져 내리는 탁한 액체 밑에 있는 것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산산이 조각난, 악령석의 파편들이 흐린 달빛을 받아 불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건…… 정말 신기하군요.”
의뢰인이 탁자 위에 늘어선 악령석 파편들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새벽에 있었던 일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발바닥을 타고 오르는 홧홧한 통증이 그걸 방해했다.
깊게 박힌 파편이 없어 살만 좀 긁혔을 뿐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조심스레 파편을 하나 들어 살펴보는 의뢰인을 보며 한숨을 삼키고 말했다.
“저주는 없어진 건가요?”
내 질문에 의뢰인이 다시 파편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예.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합니다. 저도 이 일을 은근히 오래 했지만, 이런 식으로 저주를 푸는 건 생전 처음 봅니다.”
“그런가요…….”
모호하게 대답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의뢰인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저주를 푼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주가 걸린 물건에서 저주만 따로 풀어내거나 분리하는 경우는 봤어도, 아예 분쇄하는 방법으로 풀어낸 건 처음이라.”
음, 애매하게 신음하며 악령석만 빤히 응시했다. 의뢰인이 여전히 신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새로운 술법의 기초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가람 씨의 이름이 붙은 주술이 생겨날 수도 있는 거고요.”
한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차마 무식하게 밟아서 물리적인 힘으로 깨버렸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 주술이 생긴다고 해도 내 이름이 붙는 건 죽어도 사양하고 싶고.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 저도 방법은 잘 생각나지 않네요…….”
“그렇군요. 그건 아쉽습니다.”
순순히 믿고 더 묻는 걸 포기해주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뢰인은 그 한숨을 뭐라고 해석했는지 위로하듯 말했다.
“너무 아까워하지 마세요. 분명 다음 기회도 있을 겁니다.”
“네, 하하…….”
마른 웃음을 돌려주니 의뢰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통에 걸어놓은 주술이 저절로 깨져버렸다고 하셨죠?”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의뢰인과 눈을 맞췄다.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그랬습니다. 깨지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혼자 흘러내리고 있더라고요.”
내 말에 의뢰인이 의아하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참 이상합니다. 간단한 주술이긴 했어도 봉인이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 텐데.”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의뢰인이 말했다.
“혹시 집안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 대비해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의뢰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그런데 이 악령석 파편은 어떻게 할까요?”
내가 묻자 의뢰인이 고개를 내려 악령석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쩐지 살짝 내 눈치를 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가져가서 연구해도 괜찮겠습니까? 저희가 지금 이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중이라.”
뭐, 난 가지고 있어봤자 딱히 쓸모도 없고. 저것만 보면 별로 떠올리기 싫은 어제 새벽의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시죠.”
선뜻 수긍하자 의뢰인이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진심으로 의외라고 여기는 듯한 모습에 눈을 깜빡이며 의뢰인을 응시했다. 왜 저러지? 별로 이런 찝찝한 물건 가지고 있고 싶지 않은데.
“네. 정말입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 질문에 의뢰인이 내 얼굴을 빤히 응시하며 대답했다.
“아뇨…… 한가람 씨는 이한주 씨의 조수분이니까요. 악령석에 집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했다.
“한주 씨면 몰라도 저는 악령석에 별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서진 건 한주 씨도 딱히 관심을 두지 않을 거예요.”
내 말에 의뢰인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물론 조각나서 힘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꽤 큰 힘이 남아 있는데요.”
왜 저런 말을 하지? 멍하니 생각하다 깨달았다. 보통은 그렇게 여기겠구나, 하고.
악령석에는 강한 힘이 깃들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힘을 원해 악령석에 탐을 낸다. 악령석 수집가로 유명한 한주 역시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겠지.
한주의 강한 힘 역시 악령석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테고. 한주가 악령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마 다들 모르고 있을 거다.
이렇게나 모아놓고 쓰지 않는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았을 것 같고.
평소 한주의 거침없는 언행과 보유한 수많은 악령석. 그리고 일반적인 영능력자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힘.
분명 영능력자들의 눈에 한주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또는 시기의 대상으로 보였을 거다. 동경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한주의 성격상 대부분의 사람에게 미움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대화 중에 갑자기 생각에 잠긴 내가 의아한 듯 의뢰인이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뇨…….”
적당히 대답하고 잠시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 말에 의뢰인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의뢰인의 긍정적인 대답에 잘게 깨진 악령석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제게 이걸 맡기면서 저주 걸린 물건들이 많아졌다고 하셨죠. 그럼 소문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의뢰인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소문 말씀입니까? 어떤…… 아.”
되레 내게 묻던 의뢰인이 퍼뜩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저 반응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의뢰인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살짝 돌렸다.
“범인에 대한 소문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의뢰인이 난감한 듯한 기색을 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조용하던 의뢰인이 곧 입을 열었다.
“알고는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저는 출처도 없는 소문만으로 누구를 의심하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의뢰인이 어려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그 틈에 말을 꺼냈다.
“한주 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주 씨와 저를 범인으로 몰고 있습니까?”
의뢰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한가람 씨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요새 들어 영능력자가 공격을 받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다들 날이 많이 서 있습니다. ……아주 많이.”
그 말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나만 몰랐지 소문은 꽤 많이 퍼져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직접 이 일을 하지 않는 동훈도 알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소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제 그 충고랍시고 사람 귀찮게 만들고 간 할머니는 양반 축에 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최근 영능력자들이 연달아 곤란을 겪는 것을 목격했고 많은 일에 휘말렸다.
만약 이 일로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당하였거나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리고 범인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나와 한주에게 원한을 품은 일이 있다면…….
해코지하러 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지 모른다.
왠지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의뢰인을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질문했다.
“혹시…… 이가윤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내 질문에 의뢰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없이 의뢰인을 응시하자 의뢰인이 이가윤, 이가윤…… 하고 곱씹으며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만으로도 이가윤이라는 사람이 이 업계 사람에게 생소하다는 걸 깨달았다.
수화의 말대로다. 사람들은 한주는 알아도 가윤은 몰랐다. 그러니 그 소문을 듣고 이가윤을 떠올리는 건 나나, 주변 사람들 정도뿐이란 얘기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그랬다.
엄마를 막아달라며 한주를 찾아왔던 예린이도 이가윤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섬마을에 있는 폐저택에 갔을 때도 같은 의뢰를 받았던 영능력자들이 한주는 알아봤어도 가윤에 대해선 잘 모르는 눈치를 보였다.
그만큼 한주가 강하고, 유명하기 때문이었겠지. 가윤이 제 친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한주의 존재감이 강렬하니까.
그게 독이 되어 돌아온 지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내가 미우나 고우나 의지하던 끈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억울한 사태에 혈혈단신의 몸으로 버려진 느낌이었다.
거기에 못을 박듯 의뢰인이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