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61화 (61/84)

[61] 환상상가 (1)

눈을 떠도 어둠뿐이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익숙하고 마음이 무거운 꿈을.

고개를 돌리면 낯익은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하고 엄숙한 문은 여전히 자물쇠를 꽁꽁 두른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움켜쥔 손바닥 안에 차가운 감촉을 깨닫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하게 악령석을 자물쇠에 끼우면 또 한 번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쩐지 깨달았다. 이제야 십 분의 일쯤 왔다는 걸.

* * *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기상할 때 마라톤을 달리고 난 듯 지친 기분을 느끼는 건 이제 익숙했다.

악령석을 바치는 꿈을 꾼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에 이어진 꿈은 늘 그렇듯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기상에 적응하는 것과는 별개로 기분은 늘 찝찝했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창밖으로 어스름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해 뜨기 전, 어두운 시간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간단하게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못 견디게 답답한 기분에 산책이라도 좀 하고 싶었다.

“시원하네.”

한여름이라 새벽 기온도 미적지근했지만, 막 잠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뻘뻘 흘린 몸은 약간의 바람에도 시원함을 느꼈다.

사람 마음 참 얄팍한 게 이런 사소한 일 하나에도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콧노래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쾌적해진 기분에 즐겁게 발을 놀렸다.

확실히 산책이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았다.

시원하고, 조용하고, 새벽만의 운치도 있다. 십여 분쯤 걷고 이만하면 됐다 싶어 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 다시 잠들면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적을 찢듯 복잡한 소리의 무더기가 주변을 감쌌다.

“뭐야……?”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새까만 하늘 아래, 붉고 노란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조용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활기차게 변해 있었고, 인기척 없던 주변은 와글와글한 인파로 북적였다.

아니, 인파가 아니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이 미터는 될 것 같은 파란 피부의 여자가 내 어깨를 치더니 가볍게 사과를 건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까딱여줬지만,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다.

주변은 귀신으로 가득했다. 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렇게 끝도 없는 귀신의 무리를 보는 건 처음이라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이 양반은 왜 대로 한복판에 서 있담?”

내 키만한 쥐가 내게 핀잔을 주며 옆을 지나쳤다. 일단 눈치를 보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귀신 무리에서 좀 떨어져 상황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신경질 섞인 소리가 들렸다.

“멈춰!”

움찔 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하얀 한복을 입고 입가에 피를 늘어뜨린 귀신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동안 날 노려보던 귀신이 내 발밑을 쳐다봐 나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내 들린 발꿈치 아래 귀신이 펴놓은 돗자리가 있었다.

하마터면 귀신의 돗자리를 밟을 뻔해 성질을 낸 것 같다.

나는 조심조심 몸을 돌려 다시 귀신의 돗자리를 살폈다. 분홍 돗자리 위에 조잡해 보이는 물건들이 이것저것 놓여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묻자 하얀 한복을 입은 귀신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긴 뭐야. 내가 파는 물건들이지.”

“이걸 사는 녀석이 있어?”

솔직하게 물었더니 귀신의 표정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그럼! 얼마나 잘 팔린다고!”

귀신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물건을 다시 살폈다. 어설프게 접다가 구겨 놓은 색종이 같은 퀄리티였다. 이걸 산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얀 한복 귀신처럼 돗자리를 펼쳐놓은 귀신들이 많이 보였다.

“다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아직도 투덜거리는 귀신의 말을 끊고 묻자 귀신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응시했다.

“너 환상상가도 몰라? 처음 와 본 거야?”

“응.”

고개를 끄덕이자 귀신이 하! 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곧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귀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에, 환상상가를 모르다니. 이런 촌놈이 다 있나.”

“유명한 곳이야?”

귀신이 더더욱 거만을 떨며 대답했다.

“됐어! 너 같은 촌뜨기랑은 더 말 안 해. 촌내가 옮으면 어떡해. 딴 데 가서 놀아.”

그 말에 살짝 울컥했지만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물었다.

“그러지 말고 알려줘. 여기는 뭐 하는 곳인데?”

귀신이 픽 웃으며 고개를 팩 돌렸다.

“가라니까. 물건 사지도 않을 거면서 귀찮게 굴지 말란 말야.”

“이거 사면 알려줄 거야? 얼만데?”

마침 호주머니에 잔돈이 좀 있었다. 돈이 부족하거나 사람의 화폐는 쓰이지 않으면 어쩌지 싶어 좀 걱정이긴 했지만.

내 질문에 눈을 깜빡이던 귀신이 푸하하 웃으며 말했다.

“얼마냐니, 너 정말 촌뜨기구나.”

“아니, 웃지만 말고 알려줘. 이거면 살 수 있어?”

가진 잔돈을 내밀며 묻자 귀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뭐야 이거. 사람이 쓰는 화폐 아니야?”

“그런데.”

귀신이 대뜸 손 위에 있는 지폐를 확 가로채더니 이리저리 뒤집어봤다.

“야!”

갑작스러운 행동에 핀잔을 주듯 외치자 귀신이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이걸로 사람 세계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지?”

굉장히 철없고 순진해 보이는 모습에 더 화낼 생각도 못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지. 그 돈이면 과자나 음료수 정도나 겨우 사 먹겠지만.”

“오오!”

귀신이 밝은 얼굴로 날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 이걸 받고 팔아주지. 너 촌놈 주제에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게 그렇게 신기해?”

“그럼. 우리가 사람을 꺼리는 것처럼 사람도 우리를 꺼리니까.”

그렇군. 그렇게 생각하며 귀신의 돗자리 위에서 아무 물건이나 골라잡았다. 그러자 귀신이 더욱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오, 그걸 고르다니. 너 보기보다 눈썰미가 좋구나.”

“이거 좋은 거야?”

내 눈엔 찌그러진 색종이로밖에 안 보이는데.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귀신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그건 특히 정성을 들여서 만든 거란 말이야.”

역시 핸드메이드였군. 손에 들린 찌그러진 색종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피면서 어중간한 대답을 돌려줬다.

“그렇구나…….”

그래도 귀신은 내가 반응한 것이 신나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첫 개시 손님이니까 특별히 이것도 줄게.”

귀신이 작은 버전의 찌그러진 색종이를 내밀어 얌전히 받아들었다. 두 색종이를 살펴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첫 개시라니. 역시 안 팔리는 거잖아.”

그러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귀신이 빼액 외쳤다.

“아니거든! 이제 막 장이 서서 그런 거거든! 너 궁금한 거 안 알려준다!”

“아, 그래그래. 미안해. 알려줘.”

단순하고 다혈질적인 귀신에게 적당히 져주며 대답하자 귀신이 뚱한 얼굴을 하면서도 설명을 시작했다.

“여긴 귀신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야. 좋은 물건도 나쁜 물건도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곳이라, 장사꾼도 손님도 늘 붐벼.”

“그렇구나.”

“그리고 네가 모르는 것 같아 말해주는 건데. 여긴 돈으로 사고파는 곳이 아니야.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물건으로 바꾸는 곳이지.”

그래서 아까 촌놈이라며 웃었던 거구나. 아는 게 있어야지.

“하나만 더 물어볼게. 여기서 나가는 길을 알아?”

내 질문에 귀신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왜? 이왕 온 거 구경하다 가지.”

“길을 잃고 잘못 들어온 거라. 가봐야 하는 곳이 있어서 그래.”

적당히 핑계를 대자 귀신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 온 거면 구경할 게 참 많을 텐데……. 그래도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니 어쩔 수 없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저승? 도깨비 소굴? 잊혀 사라진 땅?”

아니, 선택지가 왜 그래.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계는?”

그러자 귀신이 깜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하계라니! 그런 곳엔 왜 가!”

얘는 나를 귀신이라고 아는 것 같은데. 아까 귀신도 사람이 껄끄럽다고 했으니 이제 와서 사람이라고 밝힐 수도 없고.

그냥 얼버무리기로 했다.

“……볼일이 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 너 혹시 하계에 있다가 여기로 온 거야?”

그 질문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귀신은 그걸 놓치지 않고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하계에 있다가 온 거야? 그렇다면 너 혹시…….”

사람인 걸 이제야 눈치챘나. 웬만하면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응. 실은…….”

귀신이 말하기 전에 먼저 이실직고하려는데 귀신이 더 빨랐다.

“지박령이야?”

“어…… 응? 어, 어어…… 지박령이야.”

다행이다. 지지리도 눈치가 없는 귀신이었다. 내 긍정에 귀신이 역시! 라고 외칠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쯧쯧, 그러니 여태껏 환상상가도 몰랐지. 이왕 여기 온 거 이제 미련 버리지그래.”

“아니…… 그럴 수가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귀신이 불쌍한 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너도 사연이 있겠지. 그런데 하계에서 여기로 잘못 길을 들었다니, 너도 어지간한 길치구나.”

“으응, 그래서 하계로는 어떻게 돌아가야 해?”

틈만 나면 귀신 세계랑 얽히는 것도 길치의 범주에 드는 건가. 엉뚱한 생각을 하며 물었다. 귀신이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대답했다.

“하계에서 온 거라면…… 어쩔 수 없어. 시장이 파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시장이 언제 끝나는데?”

내 질문에 귀신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곧 끝날 거야. 해가 뜨면 파하거든. 시장 세우고 시간도 많이 지났고. 나도 슬슬 집에 갈 준비하려던 참이었어.”

“그렇구나. 그런데 아까는…….”

“응?”

귀신이 순진한 눈으로 쳐다봐 입을 다물었다. 아까는 막 장이 서서 안 팔렸던 거라더니…….

대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마워.”

결국 잔돈과 맞바꾼 쓰레기를 든 채 환상상가를 구경하게 됐다. 귀신은 터질 듯이 많고 그에 비례해 신기한 물건들도 많았다.

돗자리와 팔 것만 있으면 누구든 판매를 할 수 있는 듯 주먹구구식의 분위기가 어쩐지 귀엽게 보였다.

생김새는 다양하지만, 특별히 무서운 녀석도 없어 보이고 다들 들뜬 분위기에 마음이 풀려 있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산책하러 나온 참이었고, 이런 느낌이라면 산책이 좀 길어져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때였다.

“거기! 너! 너 말야!”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샛노란 피부의 땅딸보와 눈이 마주쳤다. 땅딸보가 아는 체를 하며 반갑게 말했다.

“그래! 너!”

이리 오라고 손짓해 가까이 다가가자 땅딸보가 내 손에 들린 쓰레기를 보며 말했다.

“그것은 무언가?”

어…… 글쎄? 찌그러진 색종이? 개인적으로는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지만 하얀 한복 귀신에게 예의가 아니니 포장해서 대답했다.

“신입 아티스트의 작품……?”

“신입 아티……? 뭐인지는 몰라도 대단하군 그래.”

비꼬는 건가……? 아니지? 눈빛이 초롱초롱한 걸 보니 진심인 것 같다. 나는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가질래?”

난 이런 쓰레기 별로 필요 없어서. 쓰레기나 치우자 싶어 말한 건데, 땅딸보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날 올려다 봤다.

“진심인가?”

“응, 뭐.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그러자 땅딸보의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졌다.

“너 정말 친절하군. 좋아. 내가 파는 물건과 바꾸지. 마음에 드는 것 아무거나 가져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돗자리 위엔 길가에서 대충 주워도 될 법한 돌멩이들이 놓여 있었다.

“아, 아니……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양의 뜻을 전하자 땅딸보의 표정이 몰라보게 시무룩해졌다.

“내 물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니, 아니, 아니. 마음에 들어. 그래, 이거랑 바꾸자.”

아무 돌멩이나 집어 들며 말하자 땅딸보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눈썰미가 있구먼. 그건 정말 좋은 돌이야.”

어딜 어떻게 봐도 그냥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인데. 그래도 찌그러진 색종이보다는 쓸모가 있겠지.

녀석에게 색종이를 넘기고 돌을 챙겨 다시 귀신의 무리에 섞여 걷기 시작했다.

밝은 등은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며 예쁜 광경을 연출하고, 알아보기 어렵지만 다들 표정이 밝고. 바람도 선선하니 제대로 기분전환이 됐다.

장이 끝나면 돌아갈 수 있다니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조금 뾰족해서 손바닥을 따끔따끔 찌르는 돌을 움켜쥐고 거리를 걷는데, 이번엔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그건 무언가?”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삿갓을 눌러 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귀신이 있었다. 언뜻 사람이 분장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다리 아래가 없는 걸 보고 그러면 그렇지, 생각했다.

삿갓 귀신이 내 손을 가리키며 말해 돌멩이를 쥔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이 돌멩이 말이야?”

내 말에 삿갓 귀신이 조심조심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여전히 돌멩이에 고정된 채였다.

“왜? 갖고 싶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삿갓 귀신이 어쩐지 밝아진 톤으로 대답했다.

“그래. 갖고 싶어. 혹시 이거랑 바꾸지 않을래?”

그러면서 삿갓 귀신이 내민 건 파란 복주머니였다. 누가 봐도 돌멩이보다는 값어치가 있어 보이는 그런 복주머니.

“내 눈엔 그게 훨씬 더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내 질문에 삿갓 귀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복주머니는 별거 아니야. 그냥 운이 좋게 해주는 정도지. 그런데 그 돌멩이는 가지고 있으면 손님을 부르는 돌멩이잖아. 난 손님이 많이 필요해.”

“이게…… 효과가 있는 돌멩이였어?”

난 그냥 땅바닥에 있는 거 주워서 파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다는 건 찌그러진 색종이에도 뭔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혼자 생각하는데 삿갓 귀신이 말했다.

“마음을 열고 잘 찾아봐.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좋은 물건이 아주 많으니까. 어쩌면 네게 다가올 재앙을 쫓아줄 물건을 찾을지도 모르고.”

왠지 간과할 수 없는 말이 들려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은…… 내게 재앙이 닥칠 거란 소리야?”

삿갓 귀신이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미안해. 내 말은……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다 재앙을 겪으니까. 그런 의미였어. ……그런데 그거 바꾸기 싫어졌어?”

“아니. 바꾸자.”

이런 물건이 없어도 찾아올 손님은 찾아올 테고. 솔직히 나는 운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는 게 좋았다.

돌멩이를 내밀자 삿갓 귀신도 복주머니를 내밀었다. 서로 바꾸고 인사를 한 뒤 헤어져 다시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곧 접을 시장이라곤 하지만 아직도 귀신은 와글와글하고 분위기도 좋았다. 언젠가 야시장에 갔다가 실망했던 적이 있는데, 적어도 여기가 거기보단 즐거웠다.

살 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신기한 물건이 많아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걷던 순간이었다.

“어! 너는!”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상대도 나를 발견하고 부른 게 맞았던 모양인지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저승에 잘못 끌려갔을 때 만났던 저승사자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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