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심령사진 (3)
차현의 말의 요지는 이랬다.
방송사에 아는 사람이 이번에 흉가 촬영을 가게 됐는데, 거기가 장난 아니게 위험한 곳이란다. 그게 아무래도 불안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두고 싶었다고.
“그 대신 이한주 씨께 걸린 저주를 푸는 방법을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저주 분야에서는 마가 이한주 씨보다는 정통하니 훨씬 나을 겁니다.”
차현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한주가 입을 열었다.
“가람이의 저주도 해결해줄 수 있나요?”
그 말에 차현이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한가람 씨도 저주에 걸리셨습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마도요. 약간 그런 기미가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랬군요.”
그렇게 말한 차현이 다시 한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장지은 씨는 저도 같이 설득해보겠습니다. 촬영 건은 잘 부탁드립니다.”
“네. 뭔가 알아낸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한주의 대답에 차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됐다.
* * *
내가 나가는 것도 아닌데. 어색한 느낌에 어깨를 움츠렸다. 촬영 스태프가 나와 한주를 발견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이한주 님 맞으시죠? 차현 씨께 말씀 들었어요.”
차현이 지인이라고 말했던 사람인가 보다. 그녀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 갈 흉가는 아랫지방에 있는 곳으로 예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무당의 집이라고 한다.
인구가 적은 시골에 교통편도 좋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한동안 방치돼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오컬트 매니아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곳이라고.
그 흉가가 찍힌 사진을 건네받았을 때 한주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던 게 떠올랐다. 나 역시 그리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던 것도.
사진만으로도 거기가 얼마나 기분 나쁜 곳인지가 전해졌으니까.
‘역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삼켰다. 차현도 온 힘을 다해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하니…… 경솔하게 말을 꺼내 그냥 보내는 것보단 같이 가는 게 나을 거다.
─ 신령한 것 중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잘 벗어나도록 만들어진 것들이 있어.
언젠가 한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한들…… 신목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였다.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가 이제서야 나타난 건, 그만큼 커다란 불길함을 떠안은 곳이라서가 아닐까.
한껏 표정을 흐리고 사람들 이야기를 흘려듣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보자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뭐라고 할까, 초면인 사람인데 노골적으로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데, 타이밍 좋게 차현의 지인이 여자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분이 우리 프로그램 전속 영매사님이세요. 인사 나누세요.”
나를 노려보던 여자, 영매사가 고개를 돌려 한주를 응시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퇴마사랑 일하는 건 오랜만이라 긴장되고 걱정되네요. 이한주 씨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다소 낮은 목소리에 뭔지 모를 거만함이 느껴졌다. 한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고, 성격 자체가 본디 기가 센 사람인 것 같았다.
입을 다물고 있던 한주가 영매사를 마주 보며 말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뵙는 분이랑 일하려니 저도 긴장되네요.”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뭘 얼마나 어떻게 아는 건지 한주를 싫어하는 티를 내는 영매사와, 그러는 넌 듣보잡이라고 대답하는 한주 사이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약한 소리를 하자 한주가 날 흘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영매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제작진이 영매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다 다시 앞을 쳐다봤다.
눈앞엔 다 낡다 못해 허물어진 집 한 채가 있었다. 잡초가 이렇게 무성한데 벌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귀신 하나 없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텅 빈 곳.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는 곳은 처음이었다.
다만 집안에서 그 텅 빈 것을 모두 메꾸고도 남을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머리가 너무 아파. 여긴 죽은 장소예요. 없는 장소예요. 다들 무서워서 도망 간 거야. 저기 있는 게 무서워서.”
영매사가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작진한테 답했다. 영매사의 손은 정확히 기운이 느껴지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사람 가짜는 아니었구나.’
그나마 안심이 됐다. 저렇게 불길한 것을 앞두고 있는데 전문가라고 따라온 사람이 가짜였으면…… 굉장히 막막했을 거다.
“퇴마사님 어떻게, 퇴마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제작진이 한주에게도 말을 걸었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선 채 사람들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한주는 제작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거의 울기 직전인 영매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죠.”
한주와 흉가를 번갈아 본 영매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주도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혼자 가는 거면 몰라도, 사람들을 줄줄이 달고 가려니 그게 못내 짜증이 나는 듯했다.
차현이 굳이 부탁을 해왔을 정도니…… 확실히 까다로운 일일 터다.
나는 밖에 남은 스태프들과 함께 흉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나는 한주를 따라왔을 뿐이고, 한주가 있는 안쪽보다 일반인만 남은 여기가 더 신경 쓰이기도 했으니까.
“여기 뭔가 춥지 않아?”
“그러게요. 외투 가져올 걸 그랬다.”
“한여름에 무슨 외투.”
뒤에서 속닥거리는 걸 들으며 한숨을 삼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하고 더 멀리 물러나 휴대폰을 꺼내 보니 화면에 차현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걱정돼서 전화한 건가? 통화버튼을 누르자 ‘여보세요’를 말할 틈도 없이 차현이 다급하게 내 이름을 외쳤다.
─ 한가람 씨!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방송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닌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괜찮은데요. 왜 그러세요?”
─ 제가 지금 장지은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네.”
─ 집에 안 계십니다.
“네. 그런데요?”
그게 이렇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 사안인가? 어리둥절한 기분을 그대로 목소리에 전달하자 차현이 초조한 목소리를 돌려줬다.
─ 걱정돼서…… 사실 장지은 씨를 뵈러 온 건 두 번째인데, 처음엔 계셨거든요.
“잠깐 나간 걸 수도 있죠. 집 밖으로 잘 안 나가는 이미지긴 했지만…… 그래도 밖에 안 나가고 살 순 없잖아요.”
뭘 그리 과민반응하냐는 식으로 대답하니 전화 건너편에서 답답한 듯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번에 뵀을 때 제가 실언을 좀 한 것 같아서.
“실언이요?”
─ 이한주 씨는 어디에 갔느냐고 하도 다그치길래…….
“네.”
─ 기세가 너무 흉흉해서 저도 모르게 거기로 촬영하러 갔다고 말해버렸거든요. 근데 오늘 와보니 여기 없어서…….
혹시 여기로 오지 않았나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지은의 상태는 빈말로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고, 한주에 대한 원한도 깊은 모양이니.
휴대폰에서 다소 차분해진 차현의 음성이 이어졌다.
─ 저주 기간이 늦춰졌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습니다. 죽어도 혼자는 못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었는데……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려줘서 감사해요.”
그래도 설마 그 추레한 사람이 여기까지 왔겠느냐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은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안 돼! 말려! 빨리!”
흉가 쪽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흠칫 놀라 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봤지만, 돌벽에 가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오늘은 뭔가 심상찮은데. 가봐야 하나?”
당황이 묻어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흉가 쪽으로 달렸다.
악귀도 악귀지만 지은이 여기 왔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차현의 말이 점점 불안감을 키우고 있었다.
벽을 돌아 사람들이 모인 곳을 확인했다. 어디를 다친 듯 주저앉아 우는 사람과 달래는 사람.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영매사를 중심으로 한 뭉텅이가 되어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주는 그 어느 쪽과도 조금 떨어져 방 안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한주가 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숨을 삼켰다.
다 뜯기고 허물어진 벽 너머, 방의 한가운데에 누군가 정좌하고 앉아있었다. 외벽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몸이 발하는 희미한 빛이, 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 몸을 중심으로 음습한 기운이 흩어져 나오고 있었다. 차갑고 가볍고…… 짙은, 사람을 홀리는 기운이었다.
점점 멍하니 가라앉던 머리가 요란한 방울 소리에 퍼뜩 놀라 정신을 차렸다.
“영매사님!”
들고 있던 방울을 죄다 내던진 영매사가 대뜸 그 자리에 주저앉아 미친 듯이 잡초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홀린 듯이.
“한주 씨!”
어떡하냐는 눈빛으로 한주를 쳐다보자, 한주가 인상을 팍 찡그리고 영매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퍽!
가차 없이 영매사를 발로 찼다.
“꺅!”
당황한 제작진이 소리를 지른 건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정신 차려요.”
한주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영매사가 우웩, 웩 소리를 내며 잡초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몸이 움찔움찔 떨리는 게 경련마저 일어난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스태프 한 명이 영매사를 부축해주며 물었다. 힘겹게 숨을 내쉬던 영매사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안도할 틈도 없이 온몸이 얼어붙는 듯 선뜩한 기분이 들었다.
“야! 왜 그래!”
아까 우는 스태프를 달래던 사람이 당황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엉엉 울던 스태프가 눈물 젖은 얼굴로 어느새 정색하고 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컥, 컥컥…….”
괴로운 듯 벌린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표정만은 싸늘했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팔을 잡아당겨도 요지부동이었다.
“나가! 썩 나가! 그만두지 못해!”
스태프에게 다가간 영매사가 외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눈을 돌려 방 안의 사람을 노려봤다.
여전히 정자세로 앉아있는 그 형상이 지금 이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생전에도 힘이 있었던 사람답게, 죽어서는 더 큰 능력을 구사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이제 그만해!”
내가 버럭 외치자 그에 화답하듯 뒤에서 또 다른 외침이 들려왔다.
“넌 또 왜 그래!”
그랬다. 한주가 상황을 살피며 악귀를 노려만 보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더 강한 힘으로 주위 사람을 휘두르니까.
역시 그만두는 게 좋았다. 이런 무모한 촬영.
“야! 죽어! 진짜 죽어! 야! 야!!”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한층 더 다급해졌다. 목을 조른 지 시간이 좀 지났다. 정말로 말리지 않으면 사람 하나가 죽어 나가게 될 판이었다.
이판사판이다.
나는 온몸의 힘을 끌어모았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
몸 안쪽에 강한 힘이 뭉치는 게 느껴졌다. 그걸 그대로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에게 쏘아 올렸다.
“으악!”
누군가의 비명이 울렸다.
강한 기운이 충돌하며 사람을 떠밀 정도로 힘센 바람이 불었다. 눈도 뜨기 어려운 힘 앞에서 애써 버티며 눈앞의 형상을 노려봤다.
어느새 자란 나무가 악귀를 강하게, 강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우지직, 우지직, 하고 뼈가 으스러지는 건지 뿌리가 부러지는 건지 모를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를 애써 견디며 자리를 지키길 한참, 악귀의 몸이 한껏 구겨져 하나의 보석으로 뭉쳐졌다.
쨍, 쨍, 쨍.
나무줄기를 타고 악령석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순간 자라났던 나무도 사라졌다.
겨우, 숨을 토했다.
“괜찮아? 괜찮아? 어떡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지만 이전과 같은 다급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긴장해 힘이 양껏 들어갔던 어깨가 피로감을 호소하는 걸 느끼며 뒤늦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한주 씨는 뭐 하고 있었지?’
나 좀 도와주면 덧나나. 힘들었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한주 쪽을 쳐다보고,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에 그대로 굳어졌다.
‘이게 뭐야.’
꿈인가? 영화라도 보는 건가? 눈앞의 광경이 현실 같지 않았다. 지독한 비현실 속에 있는 감각에 차가워진 손끝이 덜덜 떨렸다.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배를 움켜쥔 한주가 조금 뒷걸음치더니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헉…… 헉…….”
힘겹게 숨을 내쉬는 한주의 배에 박힌 날붙이가 무엇인지 새삼 인식한 순간, 작은 숨소리가 공기를 미세하게 간질였다.
“힉.”
웃음소리.
한주에게서 눈을 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 천천히 든 건지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다.
속이 메슥거렸고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졌다.
해골 같은 몰골의 얼굴. 눈을 부릅뜬 장지은이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나 혼자선 안 죽어.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거의 숨소리에 가까운 꺼질 듯한 목소리가 그 어떤 비명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원망 어린 말.
원한 하나로 여기까지 쫓아온 장지은이 한주를 찌르고 어두운 산속으로 내달렸다.
놓치면 안 돼.
그 여느 때보다 짙은 나무 흔들리는 소리에 소원들에 귀가 멀 것 같았다. 고약할 정도의 나무 냄새에 코가 마비될 것 같았다.
어지러운 사람들의 염원들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만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카페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한주의 뒤에 멀뚱히 서 있던 한주의 원혼.
구역질이 났다.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본능에 휩쓸리는데, 홧홧한 손목의 통증이 순식간에 정신을 일깨웠다.
온통 강렬한 감각들 속에 약한 힘으로 옷가지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 하지 마…….”
한주가 내 옷을 꽉 붙잡고 힘겹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한들과 동화까지 했으니까 제어하기 어려웠을 거야. 네가 도 넘은 짓을 할 땐 내가 오늘처럼 멈춰줄 테니까.
한들과의 동화를 못 견뎌 이가윤의 목을 졸랐을 때,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내게 건넸던 말이 머리 한편에 떠올랐다.
한주가 나와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