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숲마을 타이쿤 (4)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제대로 된 설명을 했다.
“원숭이 할머니를 찾았어요. 놓쳐버렸지만. 근데 갑자기 나무가 자라더라니까요! 그리고 현기증이 났어요!”
진지한 얼굴로 말했으나, 한주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네가 초등학생이야? 제대로 설명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제대로 된 내용을 설명했다. 원숭이를 보았다는 것, 위험한 순간에 갑자기 나무가 자랐는데 아무래도 내 힘 같다는 것을.
“나무라.”
한주가 그렇게 말하며 날 살펴봤다. 이미 아까 느꼈던 고양감은 가라앉아 있었지만, 어쩐지 몸이 가뿐했다.
“그러게. 듣고 보니…… 너 뭔가 길이 트였다고 해야 하나, 기운이 매끄러워진 느낌이네. 이건 누가 닦아준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되진 않을 텐데.”
한주가 그렇게 말해 머리핀을 잃어버렸던 소녀와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소녀의 힘을 빌려 썼었는데, 나무가 자랐을 때 그 힘을 쓸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얘길 하자 한주가 이상한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봤다.
“네가 뭐가 예쁘다고 신들이 꼬이지?”
“말을 그런 식으로 해야 해요? 예쁨받을 수도 있지.”
한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긴. 신들 취향은 다를 수도 있겠지. 아무튼, 다행이네. 한들의 힘을 좀 더 가볍게 받아 쓸 수 있게 됐으니까. 그건 그렇고.”
그렇게 말하며 말을 끊은 한주가 날 빤히 쳐다봤다.
“어때 보였어? 원숭이 할멈.”
그 말에 원숭이 할머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색이 그대로였어요. 역시 죽은 게 아닌가 봐요. 그리고 얼마나 빠르던지, 나도 빨리 달린다고 달렸는데 어느새 거리가 이만큼…… 악!”
생동감 있게 전하겠답시고 팔을 크게 벌리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손등을 세게 부딪혔다.
얼얼한 손등을 반대쪽 손으로 부여잡고 손이 부딪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옆에 둥둥 뜬 하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방금 이거에 손 박았어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묻자 마가 내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뭐 문제라도……?”
마의 말에 나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한주를 쳐다봤다.
“이거 원래 손에 안 닿지 않았어요?”
한주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주가 손을 뻗어 자신의 하트를 만지려고 했다. 그런데 한주의 하트는 그대로 손을 빠져나갔다.
“난 안 만져지는데.”
한주가 하는 걸 가만히 보던 마가 드디어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맞다…… 나도 처음엔 안 만져졌었지…….”
마의 말을 들은 한주가 자신의 옆에 있는 하트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나 잃어야 만져지게 되어있나? 그러고 보니 현기증이 어쩌고 했었지. 하트를 잃으면 이 공간에 더 동화되는 걸지도 몰라. 조심해.”
나도 한 번 더 내 옆의 하트를 건드려보고 말했다.
“그래야겠네요. 근데 원숭이 할머니는 어쩌죠? 나랑 얘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던데.”
“그래도 따라다녀 봐야지.”
한주가 뭘 물어보냐는 투로 말해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요, 생각해봤는데 마을주민을 죽이는 게 탈출법이 아니면 어떡해요? 이런 게임이 원래 끝이 없잖아요.”
아까 퍼뜩 든 걱정을 얘기하자 한주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빨리도 걱정한다.”
“뭐야, 생각하고 있었어요?”
묻자 한주가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것저것 수작이 있을 건 뻔하잖아. 그래도 보험차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한 한주가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 눌러앉아 살게 되면 환경이라도 쾌적해야 할 것 아냐.”
“……그 농담 재미없거든요.”
살짝 노려봤지만, 한주는 웃기만 했다.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눈치였다.
한주와 함께 다시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딱히 목적지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일단은 같이 촌장이 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소지금을 확인하고 씨앗도 살 겸 촌장한테 말을 걸려고 했는데…… 촌장이 또 새로운 대사를 내뱉었다.
[하트 도둑을 보셨습니까. 잡아다 주시면 회수한 하트를 드리겠습니다. 지급이 늦어진 보답으로 골드 보상도 드립니다.]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는 대사에 눈만 깜빡였다.
“하트 도둑?”
내가 묻자 촌장이 말풍선 안에 새로운 문장을 띄웠다.
[원숭이를 발견한다면 제게 잡아다 주십시오.]
원숭이 할머니가 하트 도둑? 우리가 하트를 잃은 건 아니고. 내가 잃은 건 멍때리다 잃은 거고. 그럼 다른 마을주민의 하트를 말하는 건가?
‘회수한 하트를 준다라…….’
혹시 마을주민 하나당 하트 하나씩을 주게 되어있었나? 그러고 보니 보통 튜토리얼 보상으로 무언가를 주기 마련인데 촌장은 아무것도 안 줬었다.
지급이 늦어진 보답이란 말을 하는 걸 보니, 남은 하트가 튜토리얼 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혹시…… 하트가 원숭이 할머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와 연관이 있나? 확인해 보는 게 좋다.
“한주 씨.”
슬쩍 한주를 쳐다보자 한주도 뭔가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봐.”
그렇게 말하며 가라고 손짓하는 한주를 보고 몸을 틀었다.
하트가 중요한 거라면 멍하니 있다 하나 잃은 게 뼈아팠다. 후회해봤자 엎질러진 물일 뿐이지만.
그나저나 고민이 됐다. 하트가 중요한 거일 가능성이 커졌는데…… 그럼 원숭이 할머니를 팔아넘기고 하트를 채워둬야 하나?
영 내키질 않는다.
아니면 이걸로 협박해서 원숭이 할머니한테 정보를 들어볼까.
보아하니 협력해줄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던데.
어느 쪽을 택하든 일단 만나야 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끊임없이 걸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찾았다.
원숭이 할머니는 처음 발견된 풀숲에서 또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
내가 외치자 이번에도 변함없는 도트 그래픽 뒤로 당황하는 기색이 전해져 왔다.
또 성급히 다가가면 도망갈 것 같았기에 놓치지 않도록 유의하며 그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해서 머리 위에 아무 표시도 띄우지 않았다. 너랑 대화하기 싫다는 말조차.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어떻게 촌장한테 안 죽을 수 있었어요? 하트로 뭔가 할 수 있는 거예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할머니, 촌장이 할머니를 찾고 있어요.”
그렇게 말한 순간 원숭이 할머니가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 기다려! 도망가지 마!”
당황해서 외치며 따라가다 문득 한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길이 닦였다고 했지.
할머니를 빤히 응시하며 아까 느꼈던 감각을 되살려보려 노력했다. 잡아야 해, 잡아야 해!
속으로 외친 순간 감각이 되살아났다. 갑자기 자란 나무가 원숭이 할머니를 포박했다.
“됐다!”
재빨리 원숭이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무는 원숭이 할머니가 손에 잡히자마자 금방 사라져버렸다.
나는 내 손에 잡힌 원숭이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다가 놓치지 않도록 힘을 주고 오두막을 향해 뛰었다.
원숭이 할머니는 마가 만든 나무 장 안에 얌전히 갇혔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하네요.”
내가 원숭이 할머니를 보며 말하자 마도 같은 쪽을 보며 말했다.
“촌장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그럴지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가 가꾼 텃밭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주가 돈을 꽤 열심히 모았는지 독초에 독버섯, 도토리나무까지 전부 자라고 있었다.
독초랑 독버섯은 하나뿐만이 아니라 두 송이씩은 있었다.
“돈을 언제 저렇게 모았대.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말하자 마가 한주가 했던 말을 전해줬다.
“혹시 모르니까, 라고 하시던데…….”
거기까지 듣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한주도 생각이 있겠지.
아직 한주가 돌아오지 않아 마와 얘기하며 시간을 때우곤 있지만, 빨리 모여서 상의를 하고 싶었다.
원숭이도 잡았고, 마을주민을 죽일 무기도 거의 준비됐고, 촌장은 점점 수상하고.
“한주 씨는 언제쯤 올까요.”
기다림이 지루해 말을 꺼내봤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타이밍 좋게 한주가 왔다.
“어, 뭐야. 잡았네?”
집으로 들어온 한주가 원숭이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쟤한테 뭐 들은 거 있어?”
이번엔 날 보며 물어 나도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 도망만 가고 말은 하지 않는다고. 얘기를 들은 한주가 말했다.
“말을 못 하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슬슬 준비할까? 마지막으로 이것만 마저 키우고.”
그렇게 말하며 내민 건 한주가 추가로 더 사 온 식물 씨앗들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적당한 곳을 골라 섰다. 주변에 독초, 독버섯, 도토리, 양장 책 등을 포진시키고.
주변을 둘러본 한주가 이만하면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제 마을주민들을 불러오죠. 최대한 큰 소리를 내요. 가능한 한 많은 마을주민을 끌어들여야 하니까.”
한주의 말에 마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워, 원숭이 할머니는…… 어떡하죠?”
그 말에 한주가 원숭이 할머니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일단 놔두죠. 보험으로 쓰게. 아무 말도 못 해도, 촌장을 상대하는 법이나 도망가는 길을 알고 있을 테니. 여차할 때 하는 걸 보고 따라하면 될 거예요.”
왠지 긴장돼서 심호흡했다. 한주는 이미 순서대로 잡자는 계획을 버리고 다음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을주민들을 잡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모양이다. 한꺼번에 죽는 주민이 많으면 주술이 불안하게 흔들리는걸.
주술이 깨질 정도의 충격이 아니면서도 조금만 더 세면 출구를 찾아볼 만한 흔들림이라 쓸 만할 것 같았다고.
그 말에 처음 눈을 떠 마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흩어지는 검은 점 뒤로 공기가 일렁거렸었다.
세 사람 모두 기합을 잔뜩 넣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 끝도 없이 모여든 마을주민들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공간의 일렁임을 타고 마을 공간과 현실 사이의 애매한 곳까지 당도하는 것에 성공했다.
처음 마을로 넘어가기 전 우리와 촌장만 존재했던 바로 그 장소 말이다.
공간을 넘어오자마자 원숭이 할머니가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풀어줘 볼까요?”
이제는 풀어줘도 잡을 자신이 생겨 말했더니 한주도 그러라는 듯 말했다.
“얘가 길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원숭이 할머니는 풀어주자마자 품속에서 하트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걸로 뭘 하려고?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할머니가 어느 곳을 향해 하트를 힘껏 던졌다.
삐릭. 삐삐삐삐삐삐─
하트가 어디론가 사라지자마자 듣기 거슬리는 소리가 울렸다. 뭐지? 인상을 찌푸리는데, 마가 하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세요?”
그렇게 물으며 나도 마가 바라보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도 나란히 헛숨을 삼켰다.
엄청나게 거대해진 촌장이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거대한 말풍선을 띄우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괘씸한 놈들!! 감히 게임을 망쳐!!]
그런 대사를 띄우는 촌장의 몸이 빨갛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한주가 어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촌장한테 하트가 통하나?”
“아……!”
“맞다!”
한주의 말에 나와 마가 동시에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그래, 게임!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현실에서 했던 게임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니었다.
저 촌장한테 하트를 던지는 슈팅 게임이었지!
원숭이 할머니는 그걸 알고 하트를 훔쳐 달아났던 거다.
뒤늦게 다시 원숭이 할머니가 있던 쪽을 쳐다보았으나 이미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달리는 꼴을 보니 나가는 길을 찾나 본데.”
한주가 태평한 투로 말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럼 따라가야죠!”
내 외침을 신호로 우리 세 사람 다 원숭이 할머니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대해진 촌장의 발도 굉장히 빨라졌다는 것. 소리도 내지 않고 지척까지 다가온 촌장의 모습에 마가 파드득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그거 던져요!”
한주가 외쳐 마가 반사적으로 자기 옆에 있던 하트를 집어던졌다.
삐릭. 삐삐삐삐삐삐─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촌장의 몸이 스턴이 걸린 듯 빨갛게 반짝거리며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도망가기 전까지 그걸로 시간을 벌어야겠네.”
한주가 열심히 달리면서 말했다.
“한주 씨도 해야죠!”
내가 외치자 한주도 지지 않고 외쳤다.
“난 내 거 못 잡아!”
참. 그랬지. 끙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원숭이는 계속 달리고 있고, 출구가 어딘지는 아직 모르고.
공간에 아무것도 없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긴 한지도 잘 모르겠다.
답답한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차분히 생각하려 했다, 하트가 공격 수단이면 우선 잘 파악해둬야 한다.
남은 하트는 나와 마를 합쳐 여섯 개. 하트를 다 잃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실상 쓸 수 있는 기회는 네 번.
한주 것은 있으나 마나고.
슬쩍 뒤를 돌아봤다. 잠시 멈췄던 촌장이 다시 무서운 기세로 뒤를 쫓고 있었다.
“악! 어떡해요!”
경악해서 외치고 내 하트를 하나 집어던졌다. 촌장이 잠시 멈춰선 틈을 타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었으나…… 한주랑 마의 발이 느렸다.
“빨리 좀 뛰어요!”
빽 소리지르자 한주도 나란히 소리질렀다.
“빨리 뛰고 있거든!”
“가, 가까워요……!”
우리가 싸우는 틈에 마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새 지척까지 다가온 촌장에게 마가 자기 하트를 던졌다. 이로써 마의 수중에 남은 하트는 하나가 됐다.
“이제부턴 제가 던질게요!”
마를 보며 외치자 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스턴 기회는 두 번. 촌장은 다가오는 속도가 빠르고, 원숭이 할머니는 멀어지는 속도가 빠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촌장은 또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악!”
거대한 도트 그래픽이 바로 뒤까지 다가와 소리를 빽 지르고 하트를 던졌다.
삐릭. 삐삐삐삐삐삐─
빨갛게 반짝이는 몸체를 보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두 사람보다 내 속도가 더 빠르니…… 둘을 미끼로 던지고 난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치사한 짓은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도망가는 속도마저 내 맘대로 못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원숭이가 점점 멀어지는데!”
한주가 저 앞을 보며 외쳤다. 그 말대로 원숭이 할머니의 모습이 슬슬 보이지 않게 될 지경까지 이르러 있었다.
“한주 씨! 뒤에요!”
한주의 뒤에는 또 바로 촌장이 다가와 있었고. 하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하트를 던졌다. 그리고……
“너 거기 안 서!”
아까 했듯이 나무로 멀어지는 할머니를 낚아챘다. 할머니가 잡힌 걸 확인하고 달리는데, 마가 날 빤히 쳐다보며 외쳤다.
“그, 그런데 그걸로 촌장을 공격할 수도 있지 않아요……?”
“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게임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촌장을 공격할 생각을 못 했다. 홀렸던 건가?
뒤를 슬쩍 돌아봤다. 촌장은 또 금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큰 나무를 키웠다.
거대하게 자란 나무가 촌장의 몸을 관통했다.
그러자 촌장에게서 떨어져 나온 거대한 도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공간이 불안하게 깜빡이고 일렁거렸다.
촌장은…… 몸이 관통당한 채로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데미지를 입진 않은 모습이었다.
“어, 어떡하죠!”
당황한 목소리로 외치던 순간 나무에서 벗어난 원숭이 할머니가 촌장에게로 뛰어들었다.
정확히는 촌장을 관통한 나무를 타고 뚫린 그래픽 안쪽으로.
“저기 봐!”
한주가 외쳤다. 자세히 보니 촌장의 가슴에 난 구멍 뒤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익숙한 응접실의 풍경이.
“가요!”
내 목소리를 신호로 한주와 마도 비스듬히 난 나무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