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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호더-45화 (45/84)

[45] 숲마을 타이쿤 (1)

“의뢰받은 일이 아니라고요?”

한주가 게임기를 살펴보며 묻자 차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의뢰로 받은 건 아닙니다.”

가운데 작은 화면이 있고 양옆에 버튼이 달린 옛날 게임기.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주가 거침없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게임기는 반응 없이 검은 화면만을 내비쳤다.

“안 켜지네요.”

한주가 그렇게 말하자 차현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제가 켜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응? 이 말은 뭔가 이상하지 않나? 의아한 기분이 들어 차현을 보며 물었다.

“그 말은…… 어떤 게임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차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해가 안 가, 따지듯 물었다.

“근데 그 게임을 하고 장마 씨가 사라졌다면서요?”

한주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게임기를 응시하며 차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 게임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아요.”

“뭐야, 그럼 아닐 수도 있다는 거네.”

한들이 게임기를 집어 들며 대화에 끼어들자 차현의 몸이 움찔 떨렸다.

“네, 네에…….”

차현은 한들이 근처에 있는 게 불편한 듯 몸을 슬금슬금 옆으로 옮겼다. 신기해하며 게임기를 들여다보던 한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해 다행이었다.

나는 그런 한들을 빤히 쳐다봤다. 쟤가 악령이 된다고……? 한들에게 습격당했던 날들이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렸다.

빨리 환생궤도에 태워 보내야 할 텐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감당도 못 할 물건을 왜 얻었어요? 원래 수집에 취미가 있으셨나 보죠?”

미묘한 분위기를 자르고 한주가 차현을 보며 물었다. 차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수집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럼요?”

“함수화 씨께 받았습니다. 자기도 우연히 얻은 건데, 꺼림칙해서 가지고 있지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받아놓기로 했다가 마가 사라졌다는 건가. 내가 보기에도 마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할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이게 원인일 확률이 커 보인다.

“그랬군요. 수화가…….”

한들 손에 들린 게임기를 보며 한주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차현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런 저주나 주술 방면은 마가 좀 잘 아니까, 괜찮을까 하고 받았던 건데…… 너무 안일했나 봅니다.”

크게 한숨을 내쉰 차현이 한주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한 제일 유능한 퇴마사는 이한주 씨입니다. 부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게임기는 낮에 차현과 이야기했던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아두었다. 한주는 차현에게 게임기는 보관하고 있을 테니 마의 소재를 계속 파악하라고 전했다.

아무 일도 아니었거나,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풀리면 좋으련만.

직감이랄지, 경험이랄지…… 나는 이번 일이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된 거겠지.

“멍청이.”

톡 쏘아붙이는 한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예전 같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꿍얼거릴 배짱 정도는 생겼다.

“솔직히 한주 씨도 이렇게 될 거란 거 알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잘했다는 거야?”

“아니, 꼭 내 잘못은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좀 잘 보관해 뒀으면…….”

열심히 백 퍼센트 내 과실은 아님을 어필하는데 한주가 말을 잘랐다.

“시끄러워.”

한숨을 푹 내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한 공간에 나와 한주 둘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눈앞엔 키가 일 미터쯤 되어 보이는 쥐인지 곰인지 개인지 애매한 도트 캐릭터.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말풍선 도트 그래픽.

평면적인 모습에 입간판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서오세요 우리 마을에!]

녀석은 숨을 쉬는 듯한 잔떨림만 보이며 우리가 있는 방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 캐릭터, 본 것 같기도 하다. 홀렸던 상태라 기억이 애매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걸려든 것이다. 게임기의 저주에.

어쩐지 정신이 멍하고, 어디선가 한주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난 것도 같지만 대답하지도 못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주와 함께 게임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말…… 걸어야겠죠?”

조심스럽게 묻자 한주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애매한 동물 캐릭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안녕.”

한주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녀석의 도트 그래픽이 살짝 흔들렸다. 무기질적인 효과음 소리와 함께 문구가 변했다.

[반가워요. 저는 이 마을의 촌장인 산토끼랍니다.]

토끼였어? 네가 어딜 봐서 토끼야? 의아함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촌장은 계속 문구를 적어내렸다.

[여러분들이 마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제가 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인가? 머릿속에 저절로 게임기의 생김새가 떠올랐다. 그야말로 옛날 게임기 같은 생김새였는데.

그런 게임기에도 시뮬레이션 게임이 들어있던가? 당연히 슈팅 게임일 줄 알았는데.

홀려서 게임기를 두드렸을 때 어떤 게임을 했었는지 떠올려보려 노력했지만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시뮬레이션 게임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응. 부탁할게.”

저 상태로 문구가 변하지 않아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다시 촌장의 도트가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변하는 문구.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곤란한 게 있답니다. 가서 도와주면 정말 고마워할 겁니다.]

이 문구를 읽은 것과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배경이 도트로 된 숲속 마을로 변했다. 마을이라고 해도 집도 나무도 다 평면적이라 판자를 세운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지만.

“누구를 도와주면 되는데?”

내가 꽃으로 추정되는 초록 위의 빨간 점에 한눈을 판 사이 한주가 촌장에게 물었다.

[우선은 돼지 아주머니께 가봅시다. 아들 꿀꿀이 군이 아파서 정말 걱정하고 계십니다. 돼지 아주머니댁은 바로 왼편에 있답니다.]

마을의 집들은 촌장 집을 맨 끝으로 왼쪽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배치할 기술력이 없어 이렇게 해놓은 거겠지만, 길 헤맬 걱정이 없으니 우리로선 다행이었다.

“가보자.”

그렇게 말한 한주는 거침없이 왼쪽으로 향했다. 겨우 네다섯 걸음 만에 도착한 돼지 아주머니 집 앞에 서서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계세요?”

그러자 끼이익─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효과음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어 문 앞으로 떠오르듯 나타난 돼지 캐릭터가 말풍선을 띄웠다.

[어머나, 어쩐 일이세요?]

“촌장님 말씀을 듣고 찾아왔어요. 아드님께서 아프시다고…….”

내가 대답하자 말풍선의 내용이 바뀌었다.

[정말 걱정이에요. 마을 끝에 자라는 약초만 있으면 우리 꿀꿀이를 고칠 수 있는데…….]

“그럼 직접 따오면 되잖아.”

순간적으로 나도 생각한 부분을 한주가 냉정하게 꼬집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태클을 걸었다.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왜 안 되는데?”

“암묵적인 룰 같은 거라고요. 플레이어가 따오겠다고 해야 한다니까요.”

한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돼지 아주머니는 여전히 문구를 바꾸지 않고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그럼 저희가 따올게요.”

내가 그렇게 말한 다음에야 겨우 문구가 바뀌었다.

[미안해서 어쩌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비로소 바뀐 문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봤죠? 얘네가 원하는 대로 대답해줘야만 진행이 된다니까요.”

의기양양한 내 말에 한주가 마을 안쪽으로 걷기 시작하며 코웃음 쳤다.

“네네. 전문가 납셨네요.”

그리 오래 걷지 않아 마을 끝에 도착했다.

지나온 집은 촌장과 돼지 아주머니 집을 포함해 총 열 가구. 한집에 몇이나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캐릭터가 그렇게 많진 않을 거다.

스무…… 명? 마리? 까진 안 되려나. 지나온 길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한주가 말을 걸어왔다.

“야. 근데 뭐가 약초야?”

한주가 쳐다보고 있는 곳에는 작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저런 식물이 자라있는 것 같기는 한데…… 뭐가 뭔지 파악하기는 어려운 생김새였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약초를 어떻게 찾아서 돌아가? 이거 다 뽑아버리면 되나?”

“그건 좀…….”

한주의 방법은 너무 과격하다. 난감해하며 초록 덩어리들을 응시하는데 아까 들었던 이상한 효과음과 함께 맨 끝 집의 문이 열렸다.

[무슨 일 있나요?]

기계음과 함께 친절한 문구를 띄운 닭 캐릭터가 우리를 응시했다.

“약초를 찾고 있는데.”

한주가 말하자 닭 캐릭터의 대사가 바뀌었다.

[약초? 돼지 아주머니댁 꿀꿀이를 고칠 약초 말인가요? 그거라면 아래 줄기가 오른쪽으로 동그랗게 말려있는 노란 꽃을 찾으면 될 거예요.]

듣고 보니 비슷한 풀이 몇 개 보였다. 줄기가 왼쪽으로 말려있거나 꽃의 색이 다르거나 하는 함정이 있긴 하지만, 난이도는 어린애들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안 친한가? 알고 있으면 자기가 직접 따다 줘도 될 것을. 몇 걸음이나 된다고.”

한주가 투덜거렸지만 그건 게임 내 불문율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찾기나 하죠.”

쪼그려 앉아 닭이 말한 꽃을 찾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 와서 처음으로 만져본 풀은 차가운 스티로폼을 만지는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이걸 선물로 드릴게요.]

돼지 아주머니에게 약초를 건네주자 뜬 대사가 이것이었다. 읽자마자 삐릭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한주의 옆에 각각 이상한 덩어리가 생겼다.

“이게 뭐야?”

“글쎄요.”

뭐냐고 물어도…… 빨간 하트란 것 외에 해줄 말이 없다.

“일단 다시 촌장한테 가볼까요?”

그렇게 말하자 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꿀꿀이 군이 완치했다는 소문이 마을에 쫙 퍼졌답니다. 정말 대단해요!]

“약초 주고 일 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완치하고 소문까지 냈다고?”

한주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해 대신 변명해줬다.

“게임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의 대화엔 신경 쓰지 않고 촌장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번엔 돼지 아주머니댁 옆집에 사는 여우 총각의 집에 가보십시오. 난감해하는 것 같았으니까 말입니다.]

“이거 설마 집마다 하나씩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한주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짜증을 내며 걷는 한주의 뒤를 잠자코 따랐다. 그래도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으니 일단은 다행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역시 얼마 걷지 않아 여우 총각의 집에 도착했다.

“계세요?”

내가 큰 소리로 묻자 예의 이상한 효과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누구신가요?]

“난감한 일이 있다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여우 총각의 도트가 살짝 흔들리며 다른 문구가 나왔다.

[저는 옆집 고양이 아가씨를 좋아해요.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편지가 없어 난감합니다.]

“뭐라는 거야.”

역시 한주가 신경질을 냈다. 하나같이 얼토당토않은 얘기만 해대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편지를 어디서 얻어오면 될까요?”

일단 한주를 내버려 둔 채 묻자 여우 총각의 대사가 바뀌었다.

[아홉 번째 집의 원숭이 할머니라면 편지를 가지고 계실 거예요.]

“직접 좀 갈 것이지.”

한주가 쏘아붙이며 다시 마을 끝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희가 받아올게요!”

나도 급히 대답하고 한주의 뒤를 따랐다.

“계세요?”

약속처럼 묻자 역시 문이 열렸다. 다른 캐릭터들보다 키가 작은 원숭이 할머니가 우리를 보며 문구를 띄웠다.

[귀여운 아이들이구나. 무슨 일이니?]

“편지 받으러 왔어.”

한주가 뻔뻔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맡겨둔 거 찾는 것도 아니고…….

잠시 머리 위에 ‘……’을 띄운 원숭이 할머니가 다시 문구를 적어내렸다.

[잠시만 기다리렴. 편지가 어디에…… 아! 여기 있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나마 단순해 보이는 디자인대로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른 게임 같았으면 ‘편지가 다 떨어졌으니 나무부터 베어오거라’ 같은 말도 안 되는 퀘스트를 내줬을지도 모르는데.

나와는 달리 한주는 이것만으로도 성가신 듯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다시 여우 총각에게 넘어가 편지를 건네주자 여우 총각 역시 돼지 아주머니와 비슷한 덩어리를 우리에게 건네줬다.

[정말 고마워요. 이건 보답입니다.]

“이게 진짜 뭔데?”

“글쎄요.”

이로써 빨간 하트가 두 개가 됐다. 머리 바로 옆에 떠 있는데 만지려고 해도 잡히지 않고……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만 갸웃거려야 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

한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요. 마을 사람들 부탁을 다 들어주면 뭐가 변할까요?”

그러자 한주가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돼지 했고, 여우 했고. 아직 둘이잖아. 지겨워서 언제 이걸 다 들어주고 있어?”

“그건 그렇지만…… 지금은 뭐 방법이 없잖아요. 일단 다시 촌장한테 가 봐요.”

한주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순순히 다시 촌장에게로 향했다.

촌장은 그대로 서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자 말풍선을 띄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여우 총각과 고양이 아가씨가 무사히 서로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집이 고양이네 집이었지. 이번엔 여우랑 연애질 도와달라고 하려나.”

한주가 시큰둥한 투로 말했다. 순서대로 진행하고 있으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얌전히 고양이 아가씨를 도와주라는 촌장의 대사를 기다리는데, 촌장이 이번엔 의외의 문구를 머리 위에 띄웠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이 있답니다.]

“안타까운 소식?”

되묻자 촌장의 대사가 바뀌었다.

[예. 돼지 아주머니와 꿀꿀이 군, 닭 선생, 여우 총각, 고양이 아가씨 모두 우리 곁을 떠나게 됐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이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돼 멍한 얼굴로 문구를 응시하는데 한주가 입을 열었다.

“다 죽었다는 건가? 왜?”

촌장의 도트가 살짝 흔들리더니 새로운 대사가 떠올랐다.

[여러분이 가져다준 약초는 사실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약초랍니다. 그걸 꺾어버려 마을에 몬스터가 들어왔습니다.]

“몬스터도 있었어?”

한주가 의아한 듯 물었지만 촌장은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몬스터는 마을 맨 끝에 사는 닭 선생을 잡아먹고, 데이트를 위해 나와 있던 여우 총각과 고양이 아가씨도 습격했습니다.]

“아, 그래……. 돼지들은 왜 죽었는데?”

한주가 왠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황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집 밖에 나와 있다고 죽일 거면 우리가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촌장이 죽거나.

게임 스토리 상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볼 때 바깥에 나와 있는 사람은 우리랑 촌장뿐이었는데.

이해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치는 수밖에.

[약초는 노란 꽃이 아니라 주황 꽃이어야 한답니다. 노란 꽃에는 독성이 있습니다. 먹으면 죽게 됩니다.]

“그럼 닭은 자업자득이네.”

“그러게요.”

그렇게 대답하고 조금 후회했다. 잘못 알려준 것 치곤 대가가 컸으니까. 이러나저러나 닭 선생은 호의로 그랬던 건데.

게임 캐릭터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봤자 별로 슬프거나 하진 않지만…… 기분은 찝찝했다.

이상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듣기 싫은 효과음과 함께 촌장이 새로운 대사를 띄웠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엔 여섯 번째 집의 다람쥐 형제를 찾아가 보세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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