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신령한 존재 (2)
많은 사람이 귀신을 봤다.
처음 귀신이 나왔다고 했을 때는 다들 별일 아닌 듯 행동했지만, 과반수가 귀신이 보고 나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타이밍을 노린 듯 숙소 내에 불이 들어오지 않게 됐다. 기계가 돌아가는 걸 보면 전기가 끊긴 건 아닌데, 형광등만이 켜지지 않았다.
아까까지의 신나는 분위기가 거짓말인 것처럼, 지금은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숙소 내에 구비돼있던 촛불을 죄다 끌어와 모두 한방에 모여 앉았다.
나를 의심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옅어졌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다수가 귀신을 목격했으니.
얼굴을 긁힌 여자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던 문주 아주머니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귀신일까요? 많이 위험할까요?”
날 바라보는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한번 봐야 할 것 같아요.”
귀신에 대한 묘사만 들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까. 귀신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눈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귀신 찾는 거 도와드리겠습니다!”
지태의 말에 얌전히 앉아있던 세훈도 입을 열었다.
“저도요.”
내가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나는 아까 한 번 봤으니 더 잘 찾을 것 같은데. 자신 있다니까.”
귀신을 처음 봤던 남자가 그리 말하며 허락을 구하듯 나를 응시했다.
……나 퇴마하는 법 모르는데. 왜 찾아서 퇴치하는 분위기로 흐르는지 모르겠다.
한숨을 삼키고 이실직고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맡겨주십시오! 우리는 한가람 씨만 믿으면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태였다.
“맞아요. 진짜 실력 있는 영능력자라니까요.”
어딘가 어색한 홈쇼핑 광고 같은 투로 세훈이 쐐기를 박았다.
그리하여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귀신을 찾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한 손에 캠코더를 든 지태가 말했다.
“세 팀으로 나누죠! 저는 박세훈 형제님과 다니겠습니다. 한가람 씨는 혼자 다니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다. 세훈이 어디에 있든 신경 쓰이지만, 지태가 데리고 있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할 것 같고.
“그러죠.”
내가 동의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팀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걸 지켜보다 나도 뒤돌아섰다. 내가 찾아볼 곳은 주방. 처음에 귀신이 나왔던 곳이다.
불 꺼진 주방에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기계들이 발하는 희미한 빛을 쳐다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뭐지?’
밥솥의 불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검은 무언가를 보고 숨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두세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귀신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다.
‘벌레잖아!’
난데없는 소동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음식물 냄새를 맡고 벌레가 기어 나온 모양이었다.
……들어가기 싫다. 진심으로. 차라리 귀신이 낫지.
주방 입구에 서서 머뭇거리는데 어딘가에서 걸걸한 비명이 들려왔다.
“악! 악! 여기! 여기예요!”
잘됐다 싶어 바로 몸을 틀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지태 쪽은 아닌 것 같고. 문도들이 향한 방향으로 곧장 걸었다.
지태와 세훈은 나보다 먼저 소리가 난 곳에 도착해 있었다. 방문턱에 서서 지태는 안쪽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고, 유일하게 내가 온 걸 눈치챈 세훈이 방 안쪽을 턱짓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세훈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들여다본 방 안엔…… 두 남자가 멍한 얼굴로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귀신은 온데간데없고.
“보셨습니까?”
지태가 내게 캠코더를 들이대며 물었다.
“아, 찍지 마세요.”
얼굴을 가리며 짜증을 냈지만 지태는 꿋꿋했다.
“외계인 같았죠, 그렇죠!”
“……못 봤어요.”
실수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웅얼거리듯 말하자, 세훈을 제외한 세 사람이 경악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못 봤다고요?”
처음 귀신을 본 남자가 따지듯 물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사라지고 없던데요.”
변명하자 들으라는 듯이 노골적인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한번 봅시다!”
문도들의 짜증을 눈치채지 못한 지태가 명랑한 목소리로 외치며 캠코더를 들여다봤다.
함께 재생되는 화면을 본 지 얼마쯤 지나서였다.
“잘 안 보이네요.”
세훈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동의했다.
“그러게요. 어둡고 흔들려서…….”
뭔가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겠지만 그뿐이었다.
“음, 심령 촬영할 때 적외선 카메라 같은 걸 쓰는 이유가 있었네요.”
그렇게 말하고 방긋 웃는 세훈을 보며 지태가 실망한 목소리를 냈다.
“특종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보는 게…….”
세훈이 사람들을 격려하려던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꺄악!”
“으악! 으아악!”
사람들이 모여있는 방 쪽에서 여러 사람의 비명이 터졌다.
“저런.”
세훈의 긴장감 없는 목소리를 신호로 모두가 있는 방으로 다 같이 달려갔다.
가장 먼저 문을 연 지태가 흠칫 놀라는 걸 보고 바로 방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으나…… 역시 귀신은 없었다.
사람들의 놀란 얼굴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 숙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귀신을 봤는데, 평소 악귀에 시달리는 나만이 그 존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힘이 강한 사람 앞엔 나타나지 않는 거 아닙니까? 영능력자인 걸 알아보고 피하는 거죠.”
지태의 말에 그럴듯하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세훈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세훈이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지태가 보고 영상까지 찍었으니 옆에 있던 세훈도 분명 봤을 거다.
나는 한들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그냥 보일 뿐인 사람이고, 세훈은 퇴마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결계 능력이 있다.
강한 사람에게서 도망치는 귀신이라면 내가 아니라 세훈이 보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째서일까. 귀신으로서는 나를 제일 맛있는 먹잇감으로 느낄 텐데.
연주랑 체질이 바뀌기라도 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사람들이 토론으로 불이 붙은 틈을 타서 세훈에게 다가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무슨 짓 했어요?”
모르는 새 안 보이게 하는 결계라도 펼쳤나. 의심의 눈초리로 세훈을 노려보자 세훈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은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세훈이 내게 그럴 이유 또한 없었다.
“대체 여기 왜 왔어요?”
따지듯이 내내 맘에 걸렸던 질문을 던졌다. 세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김지태 씨가 불러서 왔다니까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진짠데.”
말없이 세훈을 노려보는데, 지태가 대뜸 내게 말을 걸었다.
“한가람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생각해?
얘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아서 난감했다. 머쓱한 기분으로 무슨 얘기냐고 묻기 위해 입을 떼려던 때였다.
“네. 그렇게 하죠. 이번엔 저랑 한가람 씨 둘이 찾아볼게요.”
세훈이 사람 좋게 웃는 얼굴로 나 대신 대답했다.
결국 세훈과 둘이 다시 방 밖으로 나왔다. 지태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자기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단순해서 세훈의 말솜씨에 그대로 넘어가버렸다.
“당신이 남는 게 나았을 거 같은데요.”
“결계사니까요?”
잠시 날 쳐다본 세훈이 말을 이었다.
“저는 영능력자라고 밝히고 싶지도 않고, 갑자기 방에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 이상해 보이잖아요.”
그러십니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설렁설렁 걷는데 세훈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진짜 못 보셨나 봐요?”
“내가 볼 땐 벌써 사라지고 없었으니까요.”
내 말에 세훈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저 방에 달려갔을 때요.”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 세훈을 흘끗 쳐다봤다. 세훈은 정면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한가람 씨보다 더 늦게 들어갔는데, 전 봤거든요.”
“네?”
“사라지기 직전이고, 구석에 숨어있어서 뭐, 당황했으면 못 봤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거기까지 말한 세훈이 날 슬쩍 보며 말했다.
“앞에 안 보이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앞, 어둠 속에 흉흉한 붉은 빛을 발하는 눈동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헉…….”
반사적으로 숨을 삼켰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검은 귀신이 스르르 어둠 속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환각을 본 것 같은 느낌에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내 옆에 멈춰선 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한가람 씨 눈도 정상이 아닌 것 같고. 원래대로라면 도망갈 게 아니라 당신한테 달려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세훈을 쳐다봤다.
“나한테 진짜 무슨 짓 한 거예요?”
따지듯 물어도 세훈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요 몇 달간 익숙해졌던 감각이 거꾸로 뒤집히는 느낌. 이 현상이 지속된다면 무사히 귀신을 모르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설 곳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어 현기증이 났다.
“아무튼, 보긴 보셨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엔 불길한 종류의 귀신인 것 같은데요. 어쩔까요? 쫓아버릴 거면 도와드릴 순 있는데.”
세훈의 말을 흘려들으며 귀신이 사라진 곳을 계속 응시했다. 왜 세훈이 말하기 전까진 모르고 있었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내게 계속 말을 거는 것도 지쳤는지, 세훈이 일단 다시 방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계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어깨의 힘을 뺐다.
“어땠어요?”
소식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문주 아주머니가 물었다. 대답은 세훈이 대신했다.
“귀신이 자꾸 도망가더라고요. 그래도 보긴 봤어요. 영능력자님이 불길하다고 하시던데요.”
“그래요?”
문주 아주머니가 내 쪽으로 보고 물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퇴마 가능하실까요?”
조급함이 묻어나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잘…….”
“하긴. 도망가는 상대를 붙잡는 건 어려운 일이죠!”
지태가 씩씩한 목소리로 받아주는 게 왠지 위안이 됐다. 하지만 지태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 대답에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어쩌지…….”
누군가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처음 귀신을 본 남자가 대답했다.
“어쩌긴! 여기서 귀신과 하룻밤 보내는 것보단 나가는 게 낫다니까. 어둡고 외져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일 있으려고!”
나와 세훈이 나가 있는 사이, 아예 숙소를 나가 밖에서 밤을 새우자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밖에서 날밤 새우는 건 싫지만, 불안한 사람들 데리고 여기서 싸우는 것보단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부모님 따라온 아이들도 두 눈에 졸음을 가득 붙이고 불안한 표정을 하는 게 가엾기도 했고.
불붙기 시작한 토론 소리를 들으며 방 안을 살펴보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어.”
그 작은 목소리에 사람들이 다들 말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뭐 보셨습니까?”
그 분위기와 지태의 물음에 당황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변명했다.
“아, 아뇨. 여기 있는 애들이 다인가 해서.”
“애들? 꼬마들 말입니까?”
그렇게 묻는 지태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뭐. 여자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머리핀을 잃어버렸다며 눈물을 훔치던 여자애를 떠올리며 말했다. 역시 걔는 귀신이었구나.
“꼬마들은 처음부터 남자애들만 왔는데요.”
세훈이 날 빤히 쳐다보며 말해 약간의 짜증을 담아 대답했다.
“네. 제가 착각했네요.”
하지만 세훈은 내가 성가셔하든 말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뭔가 보셨나 봐요? 여자애 귀신이라든가?”
그 말에 방 안의 긴장감이 팍 치솟았다.
“그 귀신은 여자애처럼은 안 보였는데요.”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했다.
“뭘 보셨어요?”
세훈이 그렇게 물어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여자애가 밖에서 머리핀을 잃어버렸다기에 찾아준 것뿐이에요.”
“귀신인지 모르셨나 봅니다.”
지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훈이 물었다.
“그리고요? 혹시 꼬마애를 밖에다 그냥 두고 들어오셨어요?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두면. 아니면, 직접 데리고 들어왔어요?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니 두고 왔든, 데리고 왔든 매한가지로 욕먹을 상황처럼 들린다. 한숨을 내쉬며 그 말을 반박했다.
“두고 그냥 들어왔어요. 두고 왔다고 해야 할지, 갑자기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서.”
“그럼.”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 세훈이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머리핀을 건네자마자 귀신이 나온 거네요.”
숙소에서 나가자던 의견은 자연스럽게 들어가버렸다. 대신 내가 자초한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 귀신은 나쁜 귀신 같지 않았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아까보다 조금 쌀쌀해진 기운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 주위를 둘러봤다.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영 내키지 않아 속도가 더뎠다.
아까 머리핀을 찾았던 곳 앞에 우두커니 서서 땅만 쳐다봤다. 소녀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고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짧은 착신음이 들리고 곧이어 특유의 쌀쌀한 목소리가 들렸다.
─ 왜.
“한주 씨, 물어볼 게 있는데요.”
─ 뭔데.
“순진해 보이는 소녀 귀신이랑 불길해 보이는 그림자 귀신을 오가면서 사람을 놀리는 귀신도 있어요?”
─ 몰라. 내가 그런 걸 하나하나 다 어떻게 알아.
그 말에 끙, 신음하며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수화기 너머로 하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큼 늦은 시간이다. 곧 짜증을 낼 것 같아 재빠르게 물었다.
“그럼요, 갑자기 제 체질이 바뀌거나 귀신이 잘 안 보이게 될 수도 있어요?”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진 뒤 대답이 돌아왔다.
─ 안 될 것 없지. 한들이랑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근데 너 그거…….
말이 더 이어지려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됐다.
바로 다시 걸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휴대폰을 쥔 내 손 위에 살포시 얹힌 작은 손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내가 찾아준 머리핀을 한 소녀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귀신이었니?”
내 질문에 소녀가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있잖아.”
내 옆에 똑같이 쪼그려 앉는 소녀를 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안에 있는 귀신 말이야.”
널 의심하는 게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입속에서 말을 골랐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소녀가 먼저 물었다.
“봤어?”
“어, 응?”
“안에 있는 귀신, 봤어?”
“응. 봤어.”
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던 형상을 떠올리며 대답하자 소녀가 눈썹을 낮추며 말했다.
“보고 싶어? 귀신.”
“어……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봐야 한다고 할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대답하고 있는데 소녀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 숙소 쪽을 쳐다봤다. 나도 덩달아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세훈이 싱긋 웃더니 소녀를 응시했다. 속셈이 있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