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신령한 존재 (1)
현장엔 반가워하면서도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지태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무슨 님, 무슨 님 하는 걸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세훈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여긴 왜 오신 거죠?”
날 선 목소리로 묻자 세훈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한가람 씨처럼 김지태 씨께 초대받아서요.”
“김지태 씨랑 계속 연락했어요?”
세훈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최근에 연락이 닿아서. 김지태 씨가 하는 말이, 또 크게 한 건 해결하셨다던데요. 역시 한가람 씨라고.”
세훈이 묘하게 웃으며 내 반응을 살폈다.
그 모습에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그 십삼 층 이야기를 하는 거다. 본의 아니게 가윤의 계획을 저지했던.
비꼬는 방식이 기분 나쁘다. 대답하지 않고 노려보듯 세훈을 쳐다보자, 세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무섭잖아요.”
“먼저 시비 거셨잖아요.”
“제가요?”
뻔뻔하게 나오는 세훈에 다시 입을 다무는데, 타이밍 좋게 지태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 죄송합니다. 문도님들이랑 인사 좀 하느라고.”
지태의 말을 세훈이 친절하게 받았다.
“괜찮습니다. 근데 게임을 하지도 않는 저희가 참가해도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세훈의 말에 지태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다들 환영하고 계십니다! 숙소가 귀신 들린 곳이니까요!”
지태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왜 그런 델 숙소로 잡으셨어요.”
질책하듯 묻자 지태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제 여름이고 이왕 모이는 거 시원하게 모일까 해서. 제가 유능한 영능력자님을 안다고 하니까 다들…….”
거기까지 듣고 더 안 듣기로 했다. 들어봤자 나만 짜증 나는 얘기나 해대겠지.
“다들 가시려는 거 같은데요.”
아예 말을 끊고 그렇게 말하자 지태가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내 말대로 일행들이 바닥에 놓아두었던 짐을 챙기고 있었다.
우리가 이제부터 가려는 곳은 시골에서도 외진 곳으로, 차로 들어가긴 어려워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했다.
멀고, 교통 불편하고, 심지어 귀신까지 나오는 숙소를 대체 왜 잡는 걸까.
“아니, 그건 둘째치고 원래 게임 정모를 이렇게 숙소 잡아서 하나?”
일행의 뒤를 따라 걸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세훈이 용케 들었는지 대답했다.
“규모가 작은 무협 게임이라 다들 사이가 돈독하다고 하더라고요.”
“……아, 네.”
대충 대답하며 일행들을 살폈다. 세훈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젊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나이대가 있었으니까. 심지어 아이를 데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신난 아이의 옆얼굴을 보다 세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상한 짓 하려고 온 건 아니죠?”
혹시 지태한테 들릴까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세훈이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안 할게요.”
가윤이랑 같이 온 건 아닌 것 같고. 속셈이 뭔지 모르겠다. 게임 정모에서 뭐 얻을 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경계는 할 거지만.
이십 분쯤 걸어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여기 참 외지고 오래된 곳이구나, 하는 감상 외엔 딱히 뭔가가 느껴지진 않는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세훈이 숙소 앞에 서서 무언가 이상한 동작을 취하는 게 보였다. 내가 살짝 노려보자, 금세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는 얼굴로 양손을 펼쳐 보였지만.
굉장히 수상했다.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들은 들뜬 목소리를 내며 숙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을 연 순간 옅은 먼지 냄새가 풍겼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신발을 벗고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영능력자님 뭔가 느껴지십니까?”
“…….”
영능력자님이란 호칭에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않고 아주머니를 쳐다보는데, 지태가 끼어들었다.
“아! 한가람 씨 이분이 문주님이십니다.”
문주님은 또 뭐야.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한가람이라고 합니다. ……문주님.”
“하하, 네, 반가워요. 영능력자님.”
그게 아니라 한가람이라고 부르고, 이름을 알려달란 거였는데. 자기소개할 타이밍이잖아.
……아냐, 관두자.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고. 깊게 생각하지 말자.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적당한 인사말을 건네고 남자 방으로 들어갔다. 세훈은 언제 들어왔는지 이미 짐을 풀고 편하게 앉아있었다.
“저희도 짐 풀고 좀 쉽시다! 오늘은 밤늦게까지 달릴 거니까요!”
씩씩하게 세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지태를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또 이렇게 같은 숙소에서 묵는 날이 올 줄이야.
술자리의 열기로 떠들 법석한 가운데 슬쩍 일어나 자리를 떴다. 방을 나서고 나니 요란한 환호성이 들렸다.
지태야 원래부터가 문파인지 뭔지 소속이고, 세훈도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나도 이제 사람들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세훈이 수상한 거동을 하진 않을까 걱정되고, 귀신이 나온다는 말도 신경 쓰여 영 불편했다.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오니 미지근한 공기가 뺨을 감쌌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 생각하며 띄엄띄엄 별이 뜬 하늘을 올려다봤다.
멍하니 서 있는데 어쩐지 흙냄새가 굉장히 향긋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자연의 정취인가.
약간 감성적인 기분에 젖어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를 현실로 이끌었다.
‘응?’
동물이라도 있나 싶어 나무 아래 어두운 곳을 빤히 쳐다봤다. 어둠 속 작은 형상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애? 엄마, 아빠 따라온 애인가?’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까 싶은 아이가 혼자 쭈그려 앉아있었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봐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말 걸어도 되려나…….’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인데. 귀신인 것까진 괜찮은데, 위험한 녀석인지 뭔지 모르겠으니까. 참견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아이, 단발머리를 한 소녀는 이 와중에도 작은 손으로 흙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으우…….”
이윽고 벌레 울음에 섞여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를 훌쩍이며 눈가를 훔친 소녀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소녀가 큰 눈을 깜빡이며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이렇게 되면 무시하기 어렵고…… 딱히 위험한 느낌도 들지 않아 결국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뭐 잃어버렸어?”
그리 묻자 소녀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머리핀이 없어졌어.”
“어떻게 생긴 건데?”
소녀가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굴리곤 대답했다.
“꽃이 있는데, 분홍색이야. 리본이 있고…… 연두색인데…… 그렇게 생겼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녀의 반응을 보니 딱히 위험한 녀석인 것 같지도 않고. 시간 때울 겸 괜찮을 것 같다.
“내가 같이 찾아줄게.”
소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응!”
소녀가 더듬던 흙바닥을 함께 살펴보았다.
여자애 머리핀이면 큐빅 같은 게 달려있을 확률이 높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에 반짝이는 게 없나 둘러봤다.
예상대로 조금 떨어진 곳에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쪽으로 가보니 잡초 사이에 머리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소녀가 말한 대로 분홍 꽃 밑에 잎사귀처럼 연두색 리본이 달린 머리핀이었다.
‘응?’
그런데 이거…… 뭔가 낡지 않았나? 자주 하고 다녀서 때가 탄 거랑은 느낌이 달랐다. 말 그대로 오래된 느낌이…….
가만히 머리핀을 노려보는데, 언제 온 건지 소녀가 옆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거! 그거야!”
소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을 쳐다봤다. 소녀가 순진한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어떻게 찾았어?”
소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역시 귀신인지 뭔지 모르겠다.
……귀신이면 어때. 착해 보이는데. 이 숙소에 나온다는 귀신이 얘라면 안심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신난 소녀에게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잘.”
내 말에 소녀가 눈을 깜빡이더니 받아쳤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곧 픽 헛웃음이 나왔다.
“뭐어?”
어디서 배웠냐니. 엉뚱한 말에 킥킥 웃자 소녀도 따라 웃었다.
기분 좋게 웃고 소녀에게 머리핀을 건네주었다. 소중한 것처럼 받아드는 소녀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였다.
“으아아아아악!!”
신난 목소리로 떠들썩하던 숙소 안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온 것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숙소 밖에서도 똑똑히 들렸다.
나도 긴장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도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일어나는 게 보여, 소녀에게 말했다.
“잠시, 가봐야겠어.”
그러곤 소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숙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술 냄새를 훅 풍기는 사람들 사이로 흥겨운 열기는 이미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반사적으로 세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세훈 역시 내 쪽을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확실히 뭔가를 한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지만, 그건 모르는 거다. 세훈을 노려보며 다가가는데 타이밍 좋게 지태가 달려오며 외쳤다.
“주방이랍니다!”
지태의 외침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반응했다.
“대체 무슨 일이래요?”
“누가 다쳤어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주목을 받던 지태가 고개를 붕붕 저으며 말했다.
“귀신이 나왔답니다!”
소리쳤던 사람은 사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누군가 가져다준 어묵 국물을 홀짝이더니 억울한 듯 외쳤다.
“진짜라니까요! 진짜 있었다니까?”
그러자 아까 문주라던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술김에 벌레나 그림자 잘못 보고 귀신인 줄 안 건 아니고?”
“아, 글쎄!”
보통은 귀신을 봤대도 못 믿는 게 당연한 반응이지. 귀신 나오는 숙소니 영능력자님이니 해도 반신반의하며 장난으로 그랬던 거다.
적어도 한 명은 빼고.
지태는 이 상황이 신나는 듯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역시! 귀신 나오는 숙소라는 게 진짜였나 봅니다! 어땠습니까? 어떻게 생겼습니까?”
혼자 흥분해 묻는 지태에 귀신을 봤다던 남자도 동화돼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어두워서 잘 못 봤어! 근데 두 눈에서 흉흉한 빛이 나오더라니까! 나는 문도들 중 누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남자의 말에 문주 아주머니가 에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양이라도 잘못 들어왔나 보지.”
“아, 글쎄! 사람처럼 생겼다니까!”
“그럼 사람이었나 보지.”
“문주님도 알 거 아니요! 나랑 저 양반 말곤 다 모여있었잖아!”
남자가 나를 가리키며 외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영능력자님, 어디 계셨어요?”
문주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물었다.
“밖에요. 바람 쐬러 나가 있었어요.”
솔직하게 대답하며 남자가 한 말을 생각했다. 나랑 저 남자를 빼면 다 같이 모여있었다고. 그럼 세훈은 아무것도 안 한 건가?
아니, 그건 아직 모르는 거다. 여기 온 이유도 불분명하고.
혼자 이것저것 고찰하는데 문주 아주머니가 재차 물었다.
“진짜 밖에 계셨어요?”
“네?”
그 목소리에 의심의 기색이 묻어있어 나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 아니에요.”
문주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돌아섰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확실히 전달됐다.
네가 귀신 소동을 만들려고 꾸민 건 아니냐고.
믿지 않는 사람한테 영능력자란 그런 이미지인 거다. 실제로 귀신이 나오면 내가 득 보는 그림이 그려질 테니까.
왠지 기운이 빠졌다. 세훈이 온다는 말에 낚여 참석했건만, 역시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인 사람들도 한바탕 난리가 지나고 나니 흥이 식었는지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왠지 싫은 분위기 속에서 다들 술자리가 파했다는 걸 느꼈는지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태 혼자 신나 이것저것 떠들고 있었지만 들어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또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나왔다. 다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귀신이 나온 걸까요?”
좀 차분해졌던 지태가 또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좀 지겨운 느낌을 누르며 세훈을 쳐다봤다.
세훈은 아까부터 얌전히 물티슈로 바닥을 훔치고 있었다. 세훈이 왜 또 날 보냐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봐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아닌가? 긴가민가했다.
일단 비명을 무시할 수도 없어 함께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현장엔 이미 몇몇 사람이 모여있었다.
이번에 소리를 지른 사람은 문주 아주머니였던 모양이다. 어쩐지 목소리가 귀에 익더라니. 잠시 머뭇거리다 근처로 다가갔다.
덜덜 떨고 있던 문주 아주머니가 날 발견하곤 대뜸 외쳤다.
“어디 있었어요?”
“……정리하는 거 돕고 있었는데요.”
“계속 거기 있었어요? 다른 데 안 가고?”
“저기요…….”
그 질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아닌데. 문주 아주머니는 날 의심하고, 난 세훈을 의심하고. 의심의 굴레라도 되는 건지.
“한가람 씨는 계속 저희랑 같이 있었습니다!”
문주 아주머니의 질문 속에 담긴 저의나 내 기분을 눈치챈 건 아니겠지만…… 지태가 적절하게 우리 사이를 중재했다.
문주 아주머니는 잠시 의심의 눈초리로 날 봤지만, 아닌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는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도 봤어요. 귀신. 사람 같았는데, 눈이 붉은빛으로 흉흉하게 빛나더라고. 그리고…… 검은색이었어요. 그냥. 뭔가…… 그림자가 움직이는 듯한…….”
붉은 눈을 빛내는 그림자.
지금껏 봐온 귀신이랑 비교하면 무난한 느낌이었지만, 내성이 없는 사람들한텐 분명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겠지.
생김새만 생각해봐서는 해가 없는 녀석이라는 느낌도 안 들고. 너무 위험한 녀석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민하는데, 또 안쪽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악! 아악!!”
또야? 당황하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이번 비명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소리가 연쇄적으로 울려 퍼졌다.
불길한 느낌에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뭔가 일이 벌어졌나?
빠르게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지금까지와 달리 분위기가 굉장히 심각했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다급하게 묻자 근처에 있던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돌아봤다.
“귀신이…… 나왔는데…… 아니, 사람이 다쳤어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더듬거리는 목소리였다.
사람이 가장 몰려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왼쪽 얼굴을 양손으로 덮고 엉엉 울고 있는 내 또래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불길한 기운이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지고 있었다.
내게 설명을 하려 했던 남자가 어깨를 붙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 영능력자랬죠……. 우리 괜찮은 거 맞죠? 어떡해야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