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희생양 (1)
“동물권 단체에선 벌써 난리가 났어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하자 한주가 날 흘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후미진 곳이라 CCTV도 고장 난 지 오래라고 하네요. 다시 달 거라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당분간은 동물권 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순찰할 거래요.”
내 말에 한주가 조금 귀찮은 기색을 담아 대답했다.
“그럼 빨리 해결해야겠네. 범인이 조급해지면 사람까지 해칠지도 모르니까.”
그 말을 듣고 조금 머뭇거리다 말했다.
“설마 이번에도 이가윤 짓은 아니겠죠?”
“모르지.”
한주의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목소리에 투덜거리듯 말했다.
“도대체 뭐길래 죄 없는 동물들이 희생당해야 하는 걸까요? 의식이라도 하는 건가?”
“글쎄.”
그때 옆에서 화면을 같이 들여다보던 한들이 갑자기 내 휴대폰을 가로챘다.
“어, 야! 게임은 이따가 해!”
졸지에 휴대폰을 빼앗겨 외치자 한들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대꾸했다.
“게임하려는 거 아니거든. 이것 좀 자세히 보려고.”
화면엔 동물권 단체 게시판에 올라온 사건 정리글이 떠 있었다.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내가 그렇게 묻자 휴대폰을 빤히 쳐다보던 한들이 대답했다.
“이거, 질 나쁜 저주네.”
“저주? 어떤 저주?”
뭔가를 아는 듯해 물었지만 한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몰라. 그냥 느낌이 그래.”
* * *
의뢰장소에 도착했다. 단박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코가 마비될 정도의 악취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옆을 보니 한주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으…… 여긴 뭔데 이렇게 냄새가 나죠?”
상가 사이에 가려진 작은 주차장. 딱히 냄새날 요소가 있지도 않은데 발붙이고 있기가 힘들었다.
한주가 코를 손으로 덮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냄새가 아니야. 한들 말대로 누가 여기서 질 나쁜 저주라도 펼치는 모양인데.”
의뢰인은 재앙이 되기 전에 일을 해결해달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아직은 괜찮겠거니 했는데, 직접 와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냄새가 날 정도로 악의가 득실거리는 거면…… 이미 재앙 수준이 아닌가?
불쾌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떠는데, 옆에 서 있던 한주가 풀밭 쪽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거기 뭐 있어요?”
뭘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는데. 한주가 쭈그려 앉아 풀을 가볍게 헤쳤다. 그 상태로 아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주의 모습에 불안감이 올라왔다.
“한주 씨?”
천천히 한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주의 어깨 너머로 풀밭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작게 숨을 삼켰다.
“이건……”
내가 신음하듯 내뱉자 한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이 녀석인 모양이네.”
아직 어려 보이는 삼색 고양이가 싸늘히 식은 채 풀밭 위에 누워 있었다. 누가 봐도 자연사한 게 아니라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한주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거기 뭐 있습니까?”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동물권 단체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아, 그…… 여기에…….”
머뭇거리며 대답하자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곧 고양이 사체를 확인한 남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두 분이 발견하신 겁니까?”
그 말에 한주가 남자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네.”
남자가 한주를 보며 물었다.
“혹시 수상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아뇨.”
“그렇습니까…….”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서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우리 단체로 연락 좀 주세요. 요즘 동물학대범이…….”
“단서를 하나도 못 잡은 건가요?”
한주가 남자의 말을 끊고 질문했다.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밝혀진 게 아직 없습니다.”
“순찰하는데도 단서가 하나도 없다고요?”
살짝 따지는 듯한 한주의 말투에 남자가 살짝 기분이 상한 투로 대답했다.
“워낙 계획적인 녀석이라서요. 어떻게 아는지 순찰 시간을 쏙 피해 나타납니다. 근데 그런 건 왜 물어보십니까?”
남자가 한주를 수상한 인물이라고 생각한 듯 살짝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한주는 당당한 태도로 남자의 말을 받아쳤다.
“범인을 신고할 거면 인상착의 정도는 아는 게 좋잖아요. 근데 여태껏 하나도 모르신다니. 그럴 거면 순찰이 무슨 소용이에요?”
그 말에 남자가 한동안 말을 않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신고 부탁드립니다.”
고양이 사체를 수습하고 자리를 뜨는 남자의 등이 보이지 않을 때쯤 한주에게 따지듯 말했다.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해요?”
“그런 식이 뭔데?”
“그렇게 시비 거는 것처럼요.”
“것처럼이 아니라 시비 건 거야.”
그러십니까. 나는 싸움 날까 봐 조금 조마조마했는데. 왜 애먼 사람을 붙잡고 시빌 걸고 앉았는지. 오늘 기분이 별로인가?
잠시 풀밭을 내려다보던 한주가 말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오자.”
“알곡 가져와.”
“네?”
알곡? 알곡이 뭔데? 먹는 건가? 물어볼 기회도 없이 한주가 쌩하니 떠나버렸다. 마트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다가 일단 식품 코너로 발을 옮겼다.
바로 주차장으로 가나 했더니 뜬금없이 마트에 오고 무슨 생각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게다가 웬 알곡?
이리저리 헤맨 끝에 혼합 잡곡을 품에 안고 돌아갔다. 한주는 고양이 간식을 들고 서 있었다.
“그걸로 뭐 하게요?”
한주는 대답 없이 내가 들고 온 걸 보더니 성큼성큼 계산대로 향했다. 뭐야 진짜?
쇼핑을 마치고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악취가 덜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펴봤다.
“오늘은 왠지 냄새가 덜 나네요?”
내 말에 한주가 사 온 고양이 간식을 뜯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오늘은 아무것도 안 죽었으니까.”
“어떻게 알아요?”
“보면 알지.”
그렇게 말한 한주가 포장을 다 뜯었는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야옹’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늘어 어느새 제법 많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해? 너도 그거 뜯어.”
“이거 새먹이 아니에요? 고양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건 좀…….”
“서로 공격 안 할 거야.”
한주가 그렇게 말한 순간 어린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천천히 우리 발치께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 고양이…….
“어제 본 애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한주의 다리 사이를 빙글빙글 돌며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보며 천천히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한주도 몸을 낮추고 앉아 고양이에게 간식을 내밀었다.
“맞아. 어제 본 애.”
애교 있게 간식을 받아먹는 녀석을 보다가 한주를 쳐다봤다.
“그럼…….”
“여기에서 죽은 녀석들을 불러낼 거야. 그러니까 너도 뜯어.”
어느새 한주의 주변으로 고양이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이제는 살았을 때만큼 몸을 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는 듯 사람 앞에서도 간식에만 한눈이 팔려있었다.
“얘네한테서 뭐 들을 수 있어요?”
그렇게 물으며 잡곡 봉지를 뜯었다.
“동물하고 말은 못 해도 행동을 보면 대충 알겠지.”
한주는 아우성치는 녀석들의 입에 간식을 넣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게 이 애들의 추모의식이 될 수도 있을 거고. 얘네를 성불시키면 저주의 힘도 많이 약해질 거야.”
“그렇구나.”
잡곡 봉지를 뜯자 날갯짓 소리와 함께 새들이 근처로 모여들었다. 가만 보니 새뿐만 아니라 햄스터들도 있었다.
새들이 내 팔이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차가운 느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잡곡을 쪼아 먹었다.
열심히 받아먹는 모습이 귀여워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려던 순간, 동물들이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
갑작스러운 모습에 당황해 몸을 일으키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당신들입니까.”
어제 만났던 동물권 단체옷을 입은 남자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뭐하고 계셨습니까?”
남자가 나와 한주 손에 들린 걸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알 것 없어요.”
한주가 단호하게 대답하며 내 등을 툭툭 쳤다.
“가자.”
그 말에 어렵게 발을 뗐다. 남자의 시선이 끈덕지게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동물들이 많이 죽는 곳에서 간식을 들고 있었으니 의심스럽게 보인 걸까? 아니, 아니다.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저건…… 저건 의심이라기보단 경계의 시선이었다.
“한주 씨…….”
잡곡 봉지를 꼭 끌어안고 한주를 불렀지만 한주는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한주 씨, 저 사람이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자 한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물들이랑 말은 안 통해도 하는 걸 보면 대충 안다니까.”
그 말에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 사람이 범인인 거죠?”
“저 사람 말곤 없지.”
한주의 대답에 고개를 숙이고 망설이다 물었다.
“어떻게 잡죠?”
“잡자고?”
“……네?”
빨간불에 걸려 정차한 차 안에서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차가 다시 부드럽게 출발하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설마 안 잡을 생각이에요?”
따지는 듯한 내 목소리에 한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증거가 있다고 잡아.”
언젠가 들었던 질책과 비슷했다. 그놈의 증거.
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걸까. 동물도 저렇게 명확하게 행동하는데. 왜 귀신은 사람들 눈에 안 보여선.
“범인을 아니까 증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뚱한 표정으로 말하자 한주가 날 흘끗 쳐다봤다.
“저 사람도 귀신 볼 수 있는 사람이야. 우리가 눈치챘다는 걸 저 사람이 모르겠니?”
한주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한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가람. 착각하지 마. 우리 목적은 거기에 닥칠 재앙을 막는 거지, 범인을 잡는 게 아니야.”
생각해보면 뻔했다.
동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고양이나 새를 잡을 수 있을까. 잡는 건 둘째치고 어디에 숨었는지도 알기 어려울 거다.
당장 나한테 고양이를 잡아 오라고 말해도 어디서 잡아 와야 할지 모르겠는걸.
동물권 단체를 통해 움직인 것도, 수월하게 정보를 얻으면서 행동하려면 그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을 거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죽은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직접 확인했고 범인도 아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계획을 훼방 놓는 것뿐이라니.
“왜 그래?”
문득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들이 날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주를 건 범인을 찾았어.”
그렇게 말하자 한들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응. 잘됐네. 근데 왜 그래?”
“범인을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없어?”
“귀신은 증거가 될 수 없잖아. 그렇게 많은 동물을 죽였는데. 하긴,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처벌하긴 어렵겠구나. 입맛이 썼다.
“사람의 법으로 처벌해야만 벌인 건 아니잖아?”
씁쓸해하는데 한들이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벌을 말하려는 거야?”
내 말에 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한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천벌 같은 게 있어?”
한들이 날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마도?”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야. 확실하진 않은 거잖아. 내 표정을 본 한들이 씩 웃었다.
“그래도 벌은 받게 할 수 있잖아.”
“어떻게.”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한들이 장난스러운 투로 말했다.
“저주를 막을 거라며?”
“그랬지.”
“그럼 됐어. 실패한 저주는 자신에게로 돌아오니까.”
그런 거였어?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나마 납득하고 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게 문제야.”
한주였다.
“그 녀석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해요? 불길하게.”
내 투덜거림에 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자는 거지.”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이는데 뭔가 희미한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응?”
밖에서 무언가가 넘어진 것 같은 소리였다. 한주가 걷다가 장식품이라도 쓰러뜨렸나?
……근데 한주가 이 시간에 이쪽으로 올 이유가 없는데? 여긴 주방이랑도 멀고, 화장실도 그쪽에 따로 있으니까.
그럼 한들인가? 한들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이상 뭔가를 넘어뜨릴 일은 없을 텐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한주도 한들도 아닐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떡할까 고민하다 침대 옆에 있던 무드등을 켰다. 불을 켜기는 불안하고 어둠 속에서 움직일 자신도 없어서였다.
살금살금 걸어 조심스럽게 방문을 잠갔다. 문에 귀를 대고 바깥 기척을 살피는데, 아까보다 좀 더 커진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또다시 무언가를 넘어뜨리는 소리.
밖에 사람이 있다. 이 소리는 한주나 한들이 내는 소리와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누구지?’
도둑인가? 침입자가 있는 거라면 위험하다. 한주는 자고 있을까? 누군가 들어왔다는 걸 알려야 할 텐데.
일단 한주에게 연락하든 경찰에 신고하든 휴대폰이 있어야 한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기 위해 문에서 몸을 떼어낸 순간이었다.
철컥철컥.
밖에서 내 방의 문고리를 거칠게 돌려댔다. 그 소리에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문을 응시했다. 이윽고 소리가 멎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듯 바깥에 있는 누군가도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대로 돌아가서 휴대폰을 챙기고 싶은데. 왠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깥의 누군가가 그걸 눈치챌 것 같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한주 씨는 괜찮을까?’
걱정이 치밀었다. 한들은 힘도 있고 귀신이니 괜찮겠지만 한주는…… 아니, 한들의 힘을 노리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잖아.
속이 울렁거렸다. 뭐라도 해야 할 텐데, 내 코가 석 자라 당장 움직이는 것조차 용기가 안 났다.
입술을 꽉 깨물고 조심조심 뒷걸음질했다. 무언가에 부딪히지 않도록, 부딪히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도록 신중하게.
그 순간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휴대폰에서 연달아 메시지 알림음이 울려댔다.
“헉!”
긴장감을 유지한 채 숨을 죽이던 바깥에서 엄청난 기세로 문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