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지구의 안쪽 (2)
“조용!”
소리를 빽 지르자 너도나도 방방 뛰며 소란을 피우던 잡귀들이 바짝 얼어 나를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녀석도 있어 뻘쭘하게 덧붙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눈치 볼 필욘 없는데.”
그러자 잡귀들이 또 일제히 팔을 쳐들었다.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우려는 듯해 재빨리 못을 박았다.
“다 들어볼 거니까. 그러니까 얌전히 자리에 앉아. 제발.”
두어 번 정도 속이 터진 다음에야 잡귀들과 둥글게 원을 만들어 앉을 수 있었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고 잡귀들을 둘러봤다. 잡귀들은 입이 근질근질 한 듯 앉아서도 산만하게 굴고 있었다.
“먼저 얘기해 줄 귀신?”
내가 그렇게 묻자 맞은편에 있던 외눈박이 귀신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일 번! 내가 일 번이야!”
“그래그래. 얘기해 줘.”
“야호!”
외눈박이 귀신은 드디어 말할 수 있어서 신났는지 자리에서 방방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틈새를 노리고 옆에 앉은 초록 귀신이 재빨리 말했다.
“희수 님은 사람이야! 힘이 강해서 무서워!”
“아니 순서를…….”
지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한 명이 새치기를 해버리자 속수무책이었다. 너도나도 떠들기 시작했다.
“아냐! 희수 님은 귀신이야! 무서워!”
“아냐! 사람이야!”
“아냐! 귀신이야!”
너희 안다면서. 사람이라는 거야 귀신이라는 거야. 결론은 그냥 강하다는 거야?
말릴 기운도 없다. 옆에서 아이와 앨버트가 잡귀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주나 찾아볼걸.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 위에 손을 올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옷을 잡아당겼다.
뭐지? 뒤를 돌아보니 처음에 손을 들었던 털북숭이 귀신이 있었다.
“왜?”
그렇게 묻자 털북숭이 귀신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나 알아…….”
“…….”
“진짜야.”
슬쩍 아수라장의 한복판을 쳐다봤다. 녀석들은 이제 난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끼리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다시 털북숭이 귀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얘기해줄래?”
털북숭이 귀신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희수는 인간이야. 희수 님은 귀신이고.”
“그게 무슨 말이야? 희수가 죽어서 귀신이 됐단 얘기야?”
내가 그렇게 묻자 털북숭이 귀신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 예전에 희수라는 인간이 있었어. 무서운 기운을 풍겨대던 인간이었어. 근데 죽었어. ……죽었다고 들었어. 그 후부터 구걸귀가 희수를 따라 했어. 그래서 희수 님이라고 불러.”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한주가 아는 희수는 죽은 게 맞고, 지금의 희수 님은 사칭이라는 얘기지?
“그 구걸귀는 뭐 하는 귀신인데?”
“나쁜 귀신은 아니었어. 그냥 사람들을 배고프게 만드는 장난을 치는 귀신이었는데, 희수가 죽고 무서워졌어.”
털북숭이 귀신이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사람들을 엄청나게 잡아먹고…… 지금은 살이 너무 쪄서 못 움직여. 근데 사람들이 먹히러 찾아가.”
그 말은, 등산 장비 풀 세팅하고 재수 삼수를 해댔던 게 악귀한테 먹히기 위해서였단 말야?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근데 왜 지구의 안쪽이야?”
황당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는데 털북숭이 귀신이 들었는지 대답해줬다.
“그 구걸귀 이름이 지구였어.”
“아…….”
말 그대로 지구의 안쪽 맞네…… 어떻게 와전돼서 이렇게 된 건진 몰라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주는 희수가 아니면 알 바 아니라고 했지만, 왜 하필 희수를 사칭하게 된 건지도 궁금하고 사람들이 제발로 잡아먹히러 가는 것도 신경 쓰인다.
“털북숭이야, 있잖아. 하나만 더 물어볼게. 그 희수 님이 어디 있는지 알아?”
“왜?”
“잡으려고. 사람을 잡아먹는 걸 두고 볼 순 없어.”
내 대답에 털북숭이 귀신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안 잡으면 안 돼?”
날 걱정해서 하는 말 같진 않고. 진심으로 희수 님이 죽을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왜 그러지? 친구였나?
털북숭이 귀신이 살짝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긴 우리 같이 약한 귀신들이 살기 좋은 곳이야. 희수 님 때문에 무서운 귀신들이 오지도 않고, 희수 님은 살이 쪄서 못 움직이니까. 희수 님이 죽으면 우리도 여기서 떠나야 해.”
그 말에 털북숭이 귀신을 잠시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려 아이와 앨버트를 쳐다봤다. 두 명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잡귀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살 곳을 찾지 못해 떠돌다가 이제야 정착할 곳을 찾은 것 같은데.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희수 님을 모른 척하기도 어려운데. 어쩌지.
다시 털북숭이 귀신을 내려다 봤다. 털북숭이 귀신의 눈동자에 주먹만 한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양심이 콕콕 찔렸다.
친절하게 알려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도 없고…….
착잡한 심정으로 털북숭이 귀신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소란스럽던 잡귀 무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앨버트!”
아이의 다급한 외침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소가 앨버트를 발로 밟고 있었다.
희수 님이 지배하고 있어서 무서운 귀신이 못 온다며? 어디로 보나 악귀인 검은 소의 출현에 숨을 삼켰다.
“으, 으아…….”
정신없던 잡귀들이 도망도 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찌었다. 두려움에 젖은 몸을 부르르 떨며 굳어 있었다.
저러다 전부 죽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검은 소가 눈을 번쩍 떴다. 빨간 눈동자 네 개가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나 때문이구나.
저 녀석은 나 때문에 여기로 불려 왔다. 녀석이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긴 혀가 아래로 내려가 앨버트를 감아올렸다.
“이, 이거 놔!”
앨버트가 버둥거리며 혀를 풀려고 애썼다.
“애, 앨버트!”
아이가 정신없이 울며 검은 소에게 뛰어들었다.
“기다려! 가지 마!”
큰소리로 외쳤지만 아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앨버트도 아이도 죽는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목소리들이 정신없이 내 뇌리를 채웠다.
“그만두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검은 소가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한 바람이 불며 나무 냄새가 짙어졌다.
신목의 힘을 휘둘렀다. 검은 소의 혀가 잘려나갔다.
“으악!”
앨버트가 공중에 튕겨 올랐다. 검은 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꾸라진 몸뚱이를 일으키려 애썼다.
도망치려는 소를 단단히 붙잡았다. 악의를 담아 힘껏. 그러자 검은 소가 파스스 부서져 버렸다.
악령석이 될 정도로 강한 악귀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검은 소는 한 줌의 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자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소리가 마음을 짓눌렀다.
검은 소가 사라진 공간을 응시하며 진정하려 노력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기를 반복했다.
“형……?”
아이가 앨버트를 꼭 끌어안고 날 올려다봤다. 그 얼굴에 충격과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잡귀들이 내게서 떨어지려고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내가 무섭구나. 그 사실을 실감하자 어쩐지 허탈해졌다. 그런 한편으로 나쁜 감정이 기어 올라왔다.
감히. 구해줬는데. 저런 표정이나 짓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냐, 진정하자. 빨리 여기서 떠나야 할 것 같다. 한걸음 뒷걸음질 치는데 뒤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가 이렇게 강한지 몰랐어.”
털북숭이 귀신이었다. 닥쳐. 말하지 마. 지금 혼란스러우니까. 휙 녀석을 돌아봤다. 털북숭이 귀신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러다간 사고 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 잠깐!”
뒤에서 날 잡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빠르게 빠르게 달려나갔다. 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가야 할 곳은 명확했다.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쪽. 이 땅의 지배자, 희수 님이 있는 곳.
희수 님을 잡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는 것 같았지만, 주체할 수 없었다. 녀석을 잡지 않고는 진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바위 사이를 지나자 주변을 감싼 공기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풍경이 확 바뀌었다. 아까 봤던 높은 절벽이 보였다.
길을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절벽 위였다.
“찾았다.”
희수 님은 동굴 안에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사 미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덩치, 울퉁불퉁한 살이 접혀있어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내뿜는 살의를 느낀 녀석이 육중한 몸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해 스스로 걸어들어오는 인간만 삼킬 수 있는 귀신이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역겨운 살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희수 님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종이가 구겨지듯 쉽게 뭉쳐졌다.
“아악!”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이 들릴수록 가학심이 불타올랐다. 더, 더 괴로워해. 더.
이윽고 녀석이 한 줌의 보석으로 압축 당했을 때, 등을 발로 차였다.
“윽!”
그대로 고꾸라진 채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악령석을 낚아챈 한주가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정해, 멍청아.”
그 말을 들은 순간 한들과의 동화가 풀려버렸다. 눈앞이 깜깜해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시원한 땅의 느낌이 좋아 잠들었었는데. 커다란 목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수풀 밖으로 고개를 빼서 보니 세 명의 소녀가 있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저 애들을 알고 있다. 분명히 희수, 가윤, 한주였다.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곤 하는.
─ 지구야, 저 여자애들은 위험해. 특히 희수를 조심해.
그렇게 일러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수풀 안쪽에 다시 몸을 숨겼다. 들키지 않게 숨을 죽이고 아이들을 지켜봤다.
딱 보기에도 좀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아악!”
희수가 몸을 덜덜 떨며 정신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가윤과 한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희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희수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희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풀밭 위로 떨어졌다.
“희수 언니!”
한주가 놀란 얼굴로 희수가 서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한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크게 벌어진 눈이 땅 위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혀 있던 가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빨리 한주의 곁으로 달려간 가윤이 바닥에 놓인 무언가를 낚아챘다.
가윤이 충격받은 얼굴로 손안의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가, 가윤 언니?”
한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가윤을 불렀다. 가윤이 손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이거야……”
“뭐? 뭐라고?”
가윤이 대뜸 고개를 쳐들었다. 한주를 응시하는 눈이 점점 휘어졌다. 웃는 것처럼.
“이거라고.”
그 얼굴에 어느새 희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윤이 손안에 있던 걸 번쩍 쳐들었다. 반짝이는 돌이었다.
“이거야! 이거면 돼. 이거면…… 강해질 수 있어.”
가윤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한주를 내려다 봤다. 한주는 그저 놀란 얼굴로 가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널 이길 수 있어.”
가윤이 내뿜는 기운이 무시무시했다. 정말로 한주를 죽일 것처럼.
순식간에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침을 꿀꺽 삼킨 순간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었다. 데굴데굴 굴러 바위에 처박혔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가윤이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가윤을 내려다보던 한주가 한두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시야 밖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그때 발밑으로 굴러들어온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붉게 빛나는 조각. 희수가 자주 들고 다니던 돌의 작은 파편이었다.
그 위에 손을 올린 순간 믿을 수 없는 허기에 휩싸였다.
“헉!”
번쩍 눈이 뜨였다. 방금은…… 지구, 희수 님의 과거? 꿈을 꾼 건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어둠뿐인 공간 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긴…… 익숙한 꿈속. 아니나 다를까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커다란 문이 덩그러니 생겨났다.
손에는 안쪽에 빨간 파편이 들어 있는 회색빛 보석이 들려 있었다.
“하아…….”
보석을 다시 움켜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음이 엄청나게 불편했다.
충동적으로 희수 님을 죽여 잡귀들의 터전을 빼앗고, 한주의 과거도 엿봤다.
과거…… 머릿속에 처절한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 이거면…… 널 이길 수 있어.
그렇게 말하던 가윤의 얼굴엔 어둡고 질척거리는 감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눌어붙어버린 열등감이.
심호흡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주랑 얘길 해보자. 그리고 잡귀들한테도 제대로 사과하자.
딴생각에 잠긴 채 기계적으로 자물쇠 위에 악령석을 끼워 넣는데, 눈가에 어떤 그림자가 스쳤다.
퍼뜩 고개를 들었다. 문 반대편에 누군가 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해 볼 새도 없이 빠르게 공간이 녹아내렸다.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나무 천장에 잘린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에야 벤치 위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어났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주가 머리맡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주 씨?”
내 부름에 한주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날 내려다봤다.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
한주가 태평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벙긋거렸다.
“왜, 또 목소리가 안 나와? 인어공주 콤플렉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 봤어요. 희수 님의 과거.”
“그래?”
“한주 씨의 과거였어요. 희수가 악령석으로 변하던 날의…… 희수 님이 그걸 다 보고 있었더라고요.”
한차례 침묵이 이어졌다.
“이가윤이 한주 씨를 질투했어요?”
내 말에 한주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차별이 좀 심했어. 늘 이가윤이 비교당했지.”
“……그랬군요.”
날 잠시 쳐다보던 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또 뭔데?”
그 말에 한주를 올려다봤다.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고민이 또 있잖아. 뭔데?”
“……제가 희수 님을 잡았잖아요.”
한주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수 님 덕분에 여기 잡귀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대요. 근데 내가 잡아버렸으니까…… 이제 그 애들은 또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나야겠죠?”
내 말에 한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아. 걱정할 거 없어.”
그렇게 말한 한주가 내게서 눈을 떼 주변 풍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봐. 네가 희수 님을 잡아서 땅이 정화됐잖아. 오히려 희수 님이 있을 때보다 더 살기 쾌적해졌을걸.”
“하지만…….”
한주가 내 말을 잘랐다.
“괜찮아.”
잠시 한주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귀들을 한 번 더 찾아가 볼까 했지만, 그만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좋은 환경이 됐다면 알아서 잘 살겠지 생각하며.
* * *
“오늘은 새가 죽어 있었어요. 그 전엔 고양이었고.”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불온한 기운이 느껴져요. 재앙이 되기 전에 끊어내 주세요.”
평소라면 그런 일은 경찰서나 가보라고 얘기하던 한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한주의 승낙이 떨어지자 의뢰인은 미련 없이 사무소를 나섰다. 잠시 눈치를 보다 한주에게 물었다.
“웬일로 이런 의뢰를 받은 거예요?”
대답을 돌려준 건 한주가 아니라 한들이었다.
“저 여자도 영능력자야. 날 계속 의식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