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지구의 안쪽 (1)
지구의 안쪽이 있다는 도시에 도착했다. 지태는 빼놓고 나와 한주만.
─ 그쪽은 알아서 오세요.
한주가 그렇게 말하며 출발했을 때 버려진 지태의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사는 곳 바로 근처 도시라 와봤자 새삼 새로울 건 없고, 바로 지구의 안쪽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전에 목마르니까 음료수부터 사고.
“목마르면 물 마셔.”
생수를 하나 꺼내 들며 말하는 한주에게 되받아쳐 줬다.
“한주 씨, 전 콜라 마시고 싶어요.”
“그거 마셔봤자 달아서 목만 더 마르잖아.”
냉장고 앞에서 한주랑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는데 누군가 우리 근처로 다가왔다.
“한주? 이한주?”
나와 한주가 동시에 돌아봤다.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한주 얼굴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맞지? 진짜 오랜만이다.”
아는 사람인가? 그런데 한주는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을 모르는 눈치인데. 여자도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다시 입을 열어 설명했다.
“나 민지 언니야. 기억 안 나니? 가끔 과자도 주고 그랬었잖아.”
그 말에 한주가 입을 열었다.
“아, 맞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말은 그렇게 해도 여전히 모르는 눈치였다.
“나야 잘 지냈지. 넌 어떻게 지냈어? 동훈이네랑 같이 이사 가고 나서 소식을 통 못 들어서. 참, 가윤이는 잘 지내니? 너희 아직도 그래?”
가윤? 이가윤? 여자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평범한 사람 같은데. 한주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아는 사이인 사람인가.
한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도 이가윤이랑 연락이 끊겼어.”
“너흰 자맨데 어쩜 그러니. 하긴, 가윤이가 일방적으로 널 싫어했었지.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잠시 대화를 나누던 한주가 날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언니, 나 이만 가봐야 해서.”
그 말에 드디어 언니란 사람이 날 봤다.
“아, 그래. 내가 괜히 시간 뺏은 거 아니지? 다음에 또 보자.”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오면서 한주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몰라. 어릴 때 이가윤 친구였나 보지.”
“영능력자?”
“아니. 아닐걸.”
거기까지 얘기하고 잠자코 조수석에 올라탔다.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물었다.
“근데 혹시 여기 살았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느낌이었는데.
“응.”
역시. 살았던 곳이라면 희수 님에 반응했던 이유도 뻔하다.
“그 함희수 님인지 뭔지도 아는 사람?”
확신하고 물었지만, 한주가 내 말을 무시했다.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어쩐지 어색해진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그 희수 님이란 사람은 뭐가 목적일까요?”
“돈이나 힘 같은 뻔한 거겠지. 원래 욕심이 좀 많은 애라.”
“역시 아는 분인가 보네요.”
“…….”
또 말이 없다. 잠시 한주를 쳐다보다가 적막함을 날리기 위해, 여기에 오면서 찾은 정보들에 관해 얘기했다.
“지구의 안쪽이란 게, 말 그대로 지구 내부를 말하는 거래요. 이 사람들 주장으론 지구 속이 텅 비어있는데, 그 비어있는 공간이 바로 에덴이라고 하네요.”
한주는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거기로 통하는 입구가 있는데 희수 님만이 데려다줄 수 있대요. 근데 지구가 비어있다는 건 이 사람들이 시작한 주장은 아니고, 지구공동설이라고 원래 있기는 한 주장이라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근데 함희수가 누구예요?”
한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랑 이가윤 친구.”
그렇게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이던 한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랑 이가윤은 원래부터 사이가 그다지 좋진 않았어. 이가윤이 날 싫어했거든. 그래도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함희수 덕분이었어. 걔가 우리 사이를 잘 중재해줘서.”
이번엔 내가 잠자코 한주의 말을 들었다.
“근데…… 희수가 악령석에 빠져버렸지. 그 후의 일은 저번에 얘기한 대로야.”
……잠깐.
“저번에 얘기한 대로라고요?”
“그래. 악령석이 됐다고. 저번에 얘기했었잖아?”
“아니, 근데 그렇게 된 사람이 지금…….”
한주가 날 힐끗 쳐다보더니 내 말을 잘랐다.
“그래. 그게 이상하니까 온 거 아니야.”
그래서 그런 반응을 보였구나.
근데 진짜 그 함희수가 맞을까? 단순히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기엔 좀 특이한 이름이긴 하지만.
내 생각을 알아챈 건지 한주가 다시 말했다.
“아니면 내 알 바 아니고. 혹시 모르니 확인하러 온 거야.”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어두웠다. 무언가를 직감한 사람처럼.
아닐 가능성에 대해 말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확실히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어디십니까ㅠㅠ 저도 도착했습니다! 같이 찾아봅시다!!
번호 괜히 가르쳐줬다.
귀찮게 자꾸 날아오는 지태의 문자메시지를 보다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전화 오기 전에 그냥 꺼버리자.
한주는 옆에 서서 동네 뒷동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작게 조성된 공원 안에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원래 이래요?”
“뭐가?”
“아니, 장비들이 다들…….”
고작 뒷동산인데.
다들 등산 장비 풀 세팅을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뒷동산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목숨 걸고 올라야 할 험난한 산인가 할 정도로.
“희수 님이 여기 계신가 보지.”
한주가 주변 사람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한주의 말이 들린 모양인지 옆에 서 있던 아줌마가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랑 총각도 희수 님 뵈러 왔어요? 아유, 근데 복장이 왜 그래? 그렇게 가면 큰일 나.”
그럼 동네 뒷산인데 도대체 뭘 어떻게 입고 오라고…… 아줌마가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봐. 얼마나 단단히 입고 왔는지. 소문을 듣자니…….”
가만 놔두면 끝도 없이 떠들 것 같다. 슬쩍 자리를 피하려고 타이밍을 재는데, 한주가 아줌마의 말을 싹둑 잘랐다.
“안 사요.”
그러더니 터벅터벅 나아간다. 나도 황급히 한주의 뒤를 따랐다. 다시 보니 확실히 혼자 등산 스틱을 잔뜩 들고 있었다.
장사까지 할 정도면 확실히 여길 찾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직은 인근 주민들만 찾아오는 것 같은 눈치지만, 이대로 두면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겠지.
예상대로 동산 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한주는 얌전히 등산객 무리의 뒤를 따르지 않고 중간중간 멈춰 서며 주위를 살폈다.
“뭐 하세요?”
그게 한참이나 이어져 지겨울 지경이었다.
“길 찾는 중.”
귀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쪽으로 무작정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을 걷다 보면 희수 님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그게 언제인지도 모르고, 누가 불릴지도 모르는 거고. 확실히 직접 찾는 게 낫긴 하겠다.
슬슬 발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얌전히 입을 다물고 한주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순간 발을 헛디뎠다.
“으악!”
발이 거하게 미끄러졌는지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나도 모르게 한주의 팔뚝을 잡았다. 갑자기 내게 팔을 잡힌 한주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나와 함께 넘어졌다.
“아야야…… 아! 죄송…… 한주 씨?”
크게 뒹굴어 정신을 못 차리다가 한주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무서워 벌떡 몸을 일으켰는데…… 한주가 옆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어?”
방금까지 있던 곳이 아니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을 올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저기서 떨어지면 백 퍼센트 추락사다. 난 오십 센티나 될까 말까 한 데서 넘어진 것뿐인데.
이 풍경은 도대체 뭔지. 또 이세계에 끌려들어 왔나?
지겨워 한숨을 내쉬었다. 한주랑 같이 찾아도 같이 넘어져도 결국 나 혼자 들어오는구나.
이번엔 또 어떤 개고생을 할지 걱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툭 엉덩이를 터는데 누군가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으악!”
“악!”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자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린 존재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누누누, 누구세요?”
버럭 화를 내는 아저씨에게서 물러서며 물었다. 아저씨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깜짝 놀랐네.”
그건 제가 할 말인데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아저씨에게 따졌다.
“아니, 누구시냐고요.”
“헛헛헛. 당황했구먼.”
아저씨가 웃으며 내 어깨를 탁탁 쳤다.
당신 진짜 누군데? 어디로 보나 사람인데 왜 이렇게 태평하지? 내 의심의 눈길을 즐기던 아저씨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 기회는 또 오니까.”
말이 안 통한다. 성공은 또 뭐고 기회는 또 뭐야. 내가 대답 없이 쳐다만 보고 있자, 아저씨가 험험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희수 님은 저 절벽 위로 올라가야 뵐 수 있어. 근데 청년 차림 보니까 이번엔 힘들어. 딱 봐도 초보자인 거 알겠네. 산길이 얼마나 험난한데.”
희수 님. 맞게 찾아왔나 보다. 엄밀히 말하면 끌려들어 온 거지만, 아무튼.
어쩐지 뒷동산에 다들 장비가 번쩍번쩍하다 싶더라니. 여길 위해서였구나. 근데…… 어떻게 알고? 성공이니 기회니 하는 걸 보니 혹시 여러 번 들어올 수 있는 건가?
“아저씨 여기 몇 번 들어와 봤어요?”
“이번이 세 번째야.”
세 번째…….
역시 여러 번 출입이 가능한가 보다. 생각보다 프리한 이세계였다.
“그럼 잘해 보라고. 그 차림으론 힘들겠지만.”
“아, 잠시만요!”
내가 잡아채자 아저씨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마침 좋은 수다쟁이가 나타났으니 얻을 건 다 얻어가야지. 내 질문에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냥 올 때처럼 갑자기 나가지던데?”
“그럼…… 안 나가지면요?”
여기서 살라고? 당황해 묻자 아저씨가 ‘지구가 도는 거죠?’ 같은 뻔한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깜빡였다.
“희수 님 찾아야지.”
그렇겠지. 지구의 안쪽인지 에덴인지에 가려고 온 사람이니까. 근데 뒷동산에서 끌려들어 오는 거면 그냥 휘말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내 표정을 본 아저씨도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그냥 산책하던 중이었어?”
그런 건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저씨가 씩 웃었다.
“운이 진짜 좋네! 청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아저씨가 떠나고 막연한 기분으로 절벽을 올려다봤다. 기어 올라가는 건 절대 불가능하고…… 어딘가 길이 나 있을 거다.
혼자서라도 찾아봐야겠지?
잠시 상황을 생각하다 휴대폰을 꺼냈다. 어차피 통신장애겠지만 시도라도 해볼까 해서였다.
통신장애가 있어도 경험상 한주는 나한테 전화를 걸 수 있으니까, 괜찮겠…….
……휴대폰이 꺼져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태가 귀찮게 굴어서 꺼놨었다. 아저씨랑 얘기하는 동안 전화 걸었던 건 아니겠지? 황급히 전원 버튼을 눌렀으나 켜지지 않았다.
“아, 진짜…….”
믿었던 수단 하나가 무용지물이 됐다. 아무리 한주라도 꺼진 전화기에 전활 거는 건 무리겠지?
어떡할까 생각하다 일단 발을 뗐다.
길만 찾아놓고 정비해서 한주랑 다시 오는 것도 방법이다. 기회가 주어진 건데 써야지.
나가는 방법은 모르지만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살짝 산책하는 기분으로 산길을 걸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기엔 길 난이도가 하드코어긴 했지만. 그래도 맑은 공기 마시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자. 좋게좋게.
‘좋게좋게는 개뿔이!’
길이 하도 험해, 그리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여기까지 오면서 사람을 세네 번쯤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다들 익숙한지 요령 좋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두 번 오른 폼이 아닌 걸 보니 다들 재수 삼수생들인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등산 스틱이라도 사둘걸…….’
별 후회 같지도 않은 후회를 하며 바위 사이에 쭈그려 앉았다. 절벽만 오르면 된다기에 쉽게 봤는데, 생각보다 길 찾기가 어려웠다.
“집에 가고 싶다…….”
가서 샤워하고 편하게 드러눕고 싶다. 한숨을 푹 내쉬는데 눈앞이 일렁이며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당황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갑자기 한주가 나타났다.
“한주 씨?”
내가 이름을 부르자 한주가 뒤돌아 날 쳐다보고, 그대로 풍경이 변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뒷동산 위였다.
한주를 봤는데? 한주가 데리러 온 건가?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휙 고개를 돌렸다.
“또 실패했구먼…….”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까 만났던 수다쟁이 아저씨가 실망한 표정으로 내 옆에 있었다. 한주는 없고.
“어, 청년…….”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정색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주가 없다. 혹시 이번엔 한주가 들어가고 내가 나온 건가.
아니, 엇갈려도 꼭 이런 식으로 엇갈려야 하나.
어쩌지. 얌전히 한주가 나오길 기다릴까 다시 들어갈 방법을 찾아볼까.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와!”
근처 어디선가 환호성이 터졌다. 뭐지? 자리에 멈춰 잠시 고민하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더 걸어 도착한 곳엔…… 잡귀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희수 님과 관련이 있는 녀석들인가? 나무 뒤에 숨어 녀석들이 하는 걸 지켜봤다.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데. 의식이라도 하는 중일까.
잠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데, 잡귀들 사이에 익숙한 형상이 보였다.
“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쳐버렸다. 춤을 추던 녀석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그 칼 같은 동작에 몸이 움찔 떨렸다.
“뭐야?”
“인간?”
녀석들이 웅성거리며 날 쳐다봤다. 그 사이로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신비한 눈동자의 아이 귀신과 앨버트. 생각도 못 했던 얼굴들이 반가운 표정을 하고 잡귀들의 사이를 뚫고 나왔다.
“동쪽으로 간다며?”
내 말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왔잖아?”
뭐…… 동쪽이긴 한데. 이렇게 조금일 줄은 몰랐지. 아이와 앨버트를 내려다보다 잡귀 무리로 눈을 돌렸다. 녀석들은 내 눈길에 몸을 움찔 떨더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날 봤어!”
“아냐, 날 봤어!”
……아이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아니, 놀림감인가?
미묘한 기분으로 녀석들을 쳐다보는데 손등에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앨버트가 내 손등 위에 손가락만한 자신의 손을 얹고 있었다.
“미안, 사람이 우릴 보는 일이 드물다 보니 신기해서 그래. 그래도 착한 애들이야.”
“응.”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지만 조그만 손이 귀여워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근데 형은 여기 왜 왔어?”
아이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희수 님을 찾으러 왔는데.”
“희수 님?”
아이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좀 멀리 걸어오기도 했고 길도 따로 없는 곳이니까. 여기는 희수 님이랑 별로 상관이 없는 곳인가 보다.
“같이 찾아줄까?”
아이가 그렇게 말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고. 노는데 방해해서 미안해.”
그만 가보겠다고 덧붙이려는 순간, 잡귀 무리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나 알아! 희수 님! 나 알아!”
덥수룩한 털에 덮여 있는 땅딸보 귀신이 펄쩍펄쩍 뛰며 내 시선을 끌려고 애썼다. 그러자 조용하던 귀신들도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나도 알아!”
“내가 더 잘 알아!”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얘네가 진짜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