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36화 (36/84)

[36] 13층 괴담 (2)

긴장한 채 엘리베이터 바깥쪽을 응시했다. 아까 십이 층에서 봤던 것과 같은 구조의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다른 건, 복도 천장에 드문드문 달린 비상구 표시등의 초록 불빛 외엔 어둡다는 점이었디.

당장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지는 않다. 불빛이 치직 소리를 내며 깜빡거렸다. 고요한 분위기. 긴장감이 고조됐다.

“나가봅시다.”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려는 지태의 팔뚝을 붙들었다.

“아뇨. 다시 내려가요.”

한주랑 같이 오는 거면 몰라도 너랑 같이 오는 건 사양이다. 지태를 붙잡아놓고 다시 일 층 버튼을 눌렀다.

두 번, 세 번. 여러 번 눌러 봤지만 먹통이었다.

“안 움직일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문도 안 닫히고.”

지태의 말대로 엘리베이터는 이대로 고정된 듯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어떡하지.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는데 지태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괜찮을 겁니다. 나가봅시다. 우리 둘이 그 리뷰어도 찾아내면 대박이지 않습니까. 탑클래스 영능력자도 아직 못 한 건데!”

그 탑클래스 영능력자 조수가 바로 나거든. 지금 우리가 탑클래스 영능력자만 쏙 빼놓고 오합지졸 파티로 올라온 상황이거든.

그렇지. 한주한테 전화부터 걸어볼까. 휴대폰을 꺼내보았으나 예상대로 통신 불가였다.

“안됩니까?”

내가 휴대폰을 노려만 보고 있자 지태가 질문해왔다. 고개를 끄덕이니 지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역시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천진난만해 보이는 지태를 잠시 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도피해봤자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됐으니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주변을 경계하며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섰다. 지태가 먼저 나가고 내가 뒤따라 완전히 나간 순간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어정쩡하게 열린 엘리베이터 문 뒤쪽이 깜깜해져 있었다.

“……떨어졌나 봅니다.”

지태의 말대로 문 건너편에 두꺼운 로프가 엉망으로 끊어진 채 늘어져 있었다.

우리 둘 다 잠시 말없이 로프를 쳐다보다가 다시 복도로 눈을 돌렸다.

깜깜한 복도일 뿐인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번엔 또 뭘로 고통받을지. 스트레스가 확 올라왔다.

발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복도 특성상 원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도 있지만 고요한 분위기가 그걸 더 크게 부각했다.

아까 십이 층을 둘러봤을 때도 느꼈지만 가구 수가 꽤 많다. 탐색하려면 방도 하나하나 살펴봐야 할 텐데. 딱 봐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지태에게 말을 걸었다.

“뭔가 보여요?”

내 말에 지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보입니다.”

그렇군. 지태의 대답을 듣고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내 눈엔 깜깜한 복도 위에 복잡하게 얽힌 또 다른 길이 보였다.

길 같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아까 밑에서 한주와 함께 봤었기 때문에 저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귀신들이 다니는 길. 귀도.

그 길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이어져 있었다. 십삼 층은 귀도를 통해서 올라오는 건가?

자세히 보니 지태의 발밑에 그 귀도가 묘하게 겹쳐 있었다. 십삼 층에 올라오게 되어버린 건 순전히 지태 때문인 모양이다.

잠시 지태의 발을 쳐다보다 갑자기 울컥해서 대뜸 지태의 발을 차버렸다.

“으악! 왜, 왜 그러십니까?”

지태가 화들짝 놀라 날 돌아봤다. 난 모르는 척 뻔뻔하게 둘러댔다.

“죄송합니다. 긴장해서 발이 헛나갔나 봐요.”

누가 봐도 고의로 찬 거지만. 지태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말을 믿어주었다.

“이해합니다. 무서운 상황이긴 하죠.”

내 발에 채서 그런지, 지태의 발밑에 겹쳐 있던 귀도는 이미 떨어져 없어진 상태였다.

없앨 생각으로 찬 건 아니고 그냥 얄미워서 그런 거였는데.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다 둘러봤지만, 뭔가가 나오진 않았다. 깜빡이는 초록 불빛이 긴장감을 드높일 뿐. 귀신의 길은 보이는데 귀신은 보이지도 않았다.

“방에 들어가 봐야겠네요.”

내 말에 지태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문이 쉽게 열릴까? 걱정하며 1301호 문을 당겨봤다. 예상대로 문이 잠금쇠에 걸린 듯 덜컥거리며 열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어. 한숨을 내쉬며 지태에게 말했다.

“잠겨있는 것 같아요. 비밀번호를 알아야 들어갈 수 있겠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는데 지태가 태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열리는데요?”

지태 쪽을 쳐다보자 지태가 막 1302호 문을 열고 있었다.

“어떻게 열었어요?”

“그냥 열렸습니다.”

잠겨있는 문이 있고 열린 문이 있나. 잠긴 문만 붙들고 있을 수도 없고, 지태의 옆으로 다가갔다.

1302호 문을 열자 미묘한 악취가 풍겼다. 여기도 역시 불이 꺼져 어두운 상태였다. 그래도 어둠에 눈이 익은 상태라 안쪽의 형태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됐다.

평범한 원룸의 형태였다. 기본으로 딸려 나오는 거로 추정되는 가구 외엔 아무것도 없어 방이 텅 비어 보였다.

그런데 바로 맞은편 창문 아래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바닥에 옆으로 누워 쓰러져 있는 형체. 체형으로 보아하니 성인 남자인 것 같은데.

혹시 의뢰인의 친구인가? 아니면 귀신? 가늠할 수가 없어 긴장한 채 그 형상을 쳐다봤다.

얌전히 옆에 서 있던 지태도 그 형상을 발견한 모양인지 숨을 들이켰다.

“저거 리뷰어 아닙니까? 가봅시다.”

“잠깐…….”

말릴 새도 없이 지태가 성큼성큼 그 형체 가까이 다가갔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지태의 뒤를 따랐다.

쭈그려 앉아 그 형상을 확인하는 지태를 잠시 보다가 창문에 시선을 돌렸다. 바깥은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단단히 못을 박듯이.

“헉…….”

지태가 숨을 들이켜고 엉덩방아를 찌었다. 왜 그러지? 나도 어깨 너머로 그 형체의 모습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성인 남자가 맞았다. 그런데…… 어디로 보나 시체였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은근한 악취가 한층 강하게 느껴졌다.

생김새를 보니 의뢰인의 친구는 아니다. 다른 실종자인 모양이다. 죽은 지 시간이 꽤 흐른 것으로 보인다.

“이거…… 시체 맞죠?”

그렇게 묻는 지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다시 살펴봐도 귀신 같지는 않다. 어디로 보나 시체가 맞는 것 같다.

“그런 것 같은데……”

대답하는 내 목소리 역시 떨렸다.

차라리 귀신의 장난이라면 좋을 텐데. 정말 시체라면…… 도대체 어떻게 죽은 걸까.

나갈 길을 찾지 못해 아사한 걸까? 놀라서 심장마비? 아니면 위험한 귀신이 있어서 살해당한 걸까?

죽은 남자는 불쌍하지만 당장 우리도 문제다. 어떻게 죽었냐에 따라 우리도 이런저런 대비를 해야 한다.

이 모습을 보자 의뢰인의 친구는 과연 살아 있을지도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찾는 게 좋겠지만, 정말 시체로 발견되면 굉장히 찜찜할 것 같은데.

그때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방향을 생각하면 1301호 문이 열린 것 같은데.

뒤를 돌아봤다. 예상대로 1301호 쪽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곱슬머리에 검은 마스크를 쓴 남자. 그 남자가 현관 앞에 서서 우리를 주시했다.

“사람……?”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마스크를 내려 턱에 걸쳤다.

“예. 사람인데요.”

느릿한 목소리. 저 남자 역시 의뢰인의 친구는 아니었다. 귀신도 아닌 것 같고. 실종자 중 한 명인가?

남자가 한 걸음 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실종자라면 일단 뭉쳐서 함께 다니는 게 좋을 거다. 좀 특이한 사람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나도 남자 쪽으로 다가서는데 갑자기 몸이 뒤로 당겨졌다.

“김지태 씨?”

지태가 내 옷을 움켜쥐고 당기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는데 지태가 한 번 더 힘을 주는 바람에 그대로 넘어져 뒤로 나뒹굴었다.

“으악! 왜 이래요!”

넘어지면서 팔꿈치를 부딪쳐 얼얼함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지태는 그런 날 신경도 쓰지 않고 벌떡 일어나 내 앞에 섰다.

“한가람 형제님.”

지태를 올려다봤다. 목소리에서 잔뜩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저 사람 손에……”

손? 손이 왜? 현관 앞에 선 남자의 손을 쳐다봤다. 한쪽 손을 등 뒤로 숨기고 있었다.

“아, 봤나 보네.”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등 뒤에 숨겼던 손을 앞으로 빼냈다. 그 손에 들려있는 걸 보고 나도 숨을 들이켰다.

기다란 사시미 칼. 비상구 표시등의 불빛을 받아 칼날이 번뜩였다.

그걸 보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남자가 킥킥 웃으며 칼을 쥔 손을 앞으로 들었다. 옆에서 지태가 긴장한 채 자세를 다잡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저 남자의 정체가 뭘지 고민해 볼 여유도 없었다.

저 남자는 우리를 죽일 생각이다.

그 확신 하나만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뒤는 막혀있다. 근처엔 마땅히 무기 삼을 만한 게 없고, 남자의 손엔 시퍼렇게 날 선 칼이 들려있다.

그래도 이쪽은 둘이다. 순순히 당하진 않는다. 심호흡하며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제가 잡을 테니 한가람 형제님은 칼을 빼앗으세요.”

지태가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네.”

내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것을 신호로 지태가 먼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나도 지태를 따라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남자가 칼을 크게 치켜들었다. 지태가 빠르게 남자의 팔을 움켜쥐었다.

지태를 찌르려 하는 남자와 필사적으로 남자를 막는 지태의 사이로 달려들어 남자의 팔과 사시미 칼의 손잡이를 쥐었다.

“내놔!”

이를 악물고 외치며 양손으로 칼의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남자의 힘이 엄청났다. 날 선 칼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지태의 어깨에 생채기를 냈다.

“흐읍……! 하압!”

지태가 기합 소리를 내더니 남자의 몸을 힘껏 뒤로 밀었다. 팔에 힘을 집중시켰던 남자가 뒤로 나자빠졌다.

남자의 팔을 잡고 있던 나도 함께 넘어졌지만 지태가 빠르게 내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도망갑시다!”

지태가 그렇게 외치며 빠르게 달렸다. 이리저리 휘둘려 주춤거리던 나도 필사적으로 자세를 다잡고 지태를 따라 달렸다.

바짝 긴장해 달리는데 뒤에서 선뜩한 느낌이 났다. 불길하다. 본능적으로 앞에서 달리는 지태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온 힘을 짜내 지태와 함께 바로 옆에 난 갈림길로 몸을 굴린 순간이었다.

“끼야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흰색의 무언가가 우리가 달리던 방향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악귀다. 그대로 달렸으면 저것에 잡혔을 거다.

녀석이 되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크게 넘어져서 그런 건지 악귀에 먼저 당한 건지, 아직 오는 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빨리 숨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근처에 있던 방문을 열어 몸을 밀어 넣었다.

“허억…… 헉…… 이게 대체……”

지태가 자기 어깨를 움켜쥐며 날 쳐다봤다. 칼에 조금 긁혔을 뿐이지만 피가 꽤 많이 나오고 있었다.

나라고 영문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방금 악귀를 보니 이거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를 공격한 남자는 사람이 분명하다.

존재감이나 풍기는 분위기 등을 비교해보니 확실히 달랐다.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우릴 공격한 걸까. 정체가 뭐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악귀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 악귀가 이 십삼 층의 주인인가? 혹시 남자한테 씌어 있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다급해 보이는 내 모습에 지태도 놀랐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이 방에 귀신의 길이 있을지도 몰라서요. 아까 악귀가 우리 뒤를 따라왔거든요.”

빠르게 대답하며 방 안을 훑듯이 살폈지만 귀도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없습니까?”

“네. 안 보이네요. 운 좋게 귀신의 길이 없는 방에 들어왔나 봅니다.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진 못할 거예요.”

내 대답에 지태도 조금 안심한 듯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

“아까 그게 악귀였습니까? 그 남자요.”

지태가 바깥 동태를 살피며 물었다.

“아뇨, 그건 사람이었습니다.”

내 대답에 지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근데 왜 사람이 이런 곳에서 저러고 있습니까?”

글쎄. 나도 그게 궁금하다. 설마 아까 1302호에 죽어 있던 사람도 그 남자 짓인가. 그 가능성을 떠올리자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달릴 때 따라오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대로 기절했거나 악귀한테 당한 거면 좋으련만.

만약 우리를 다시 찾고 있다면…… 가구 수가 꽤 많으니까 그래도 당분간은…….

그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쳐들고 지태를 쳐다봤다.

“왜 또 그러십니까?”

지태가 움찔 몸을 떨며 물었다. 그러자 어깨에서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피.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피를 흘리면서 움직였겠지? 그럼 우리가 어떤 방에 들어갔는지는 티가 다 날 거다. 남자가 다시 움직인다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김지태 씨……”

지태와 상의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옆,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으아아아!”

나와 지태 둘 다 깜짝 놀라 화장실을 응시했다. 젊은 남자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며 샤워기 헤드를 흔들며 뛰쳐나오고 있었다.

“엇!”

샤워기 헤드에 머리를 맞을 뻔한 순간 지태가 남자를 가볍게 제압했다.

아까도 그렇고, 힘쓰는 거 보니 저 근육이 그냥 멋내기용 근육은 아닌가 보다.

상황을 보니 한주를 두고 와서 같이 와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한주가 있으면 오히려 위험했을 수도 있었겠다.

“아악! 놔!”

지태에게 제압당한 젊은 남자가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 이 사람 그 리뷰어 아닙니까?”

지태의 말대로, 제압당한 젊은 남자는 의뢰인의 친구였다. 운 좋게 여기에 숨어 지금껏 안전했었나 보다.

무사히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가기만 하면 의뢰 완료인데. ……지금 나도 못 나가고 있는데 찾으면 뭐 하나.

한주를 두고 와서 다행이란 말은 취소다. 나갈 수가 있어야지. 한주가 있었으면 방법을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지태가 남자를 놓아주고 물었다.

“실종됐다는 오컬트 리뷰어 맞으시죠?”

질문을 해도 꼭 저렇게…… 지태의 말을 들은 의뢰인 친구가 꺾였던 팔을 매만지다가 지태를 노려봤다.

“갑자기 사람 팔을 꺾으면 어떡해요!”

뻔뻔하긴. 갑자기 샤워기 헤드를 휘두른 게 누군데.

의뢰인 친구의 앙탈에도 불구하고 지태는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잘도 저런 표정이 나온다.

“오! 목소리도 같습니다. 찾아서 다행입니다. 한가람 형제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아니, 우리 이럴 때가 아닌데.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네. 그렇네요. 근데 지금 당장 나갈 방법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현관문 쪽에서 똑똑, 하는 느긋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찾았다. 사냥감들.”

문밖에서 우리를 공격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문 앞으로 달려 현관문을 막았다. 지태도 함께 막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의뢰인 친구도 문 앞으로 달려들었다.

세 명이 문을 막아서니 남자 혼자의 힘으론 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우리 모두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윽!”

아픈 몸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쉽게 현관문을 연 남자가 히죽히죽 웃으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옆에서 바짝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난 오히려 힘이 빠졌다.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것 때문이었다.

대량의 악령석이 남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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