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섬마을 유령저택 (5)
의외의 말에 놀라 마를 응시했다.
“뭐라고요?”
내 반응에 마가 조금 자신 없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제가 주술이나 저주 같은 건 좀 알아서……. 보니까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될 수도 있고요. 해봐야 아는 거라……. 그래도 필요하시면 한번 해보고요…….”
마의 말이 들렸는지 한주가 남헌과의 말다툼을 멈추고 우리 쪽에 말을 걸었다.
“뭘 해봐?”
한주의 개입에 마가 더 자신 없어 하며 별 그림을 가리켰다. 그제야 별 그림을 발견한 한주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이가윤이 여기 있어?”
“그런가 봐. 어쩔래? 나는 솔직히 얘길 해보고 싶은데, 넌 좀 불편하지?”
수화의 말에 반응한 건 한주가 아니라 차현이었다.
“우리 말고 숨어다닌다는 그 팀이 여기 있단 얘기죠, 지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살인자라던데요.”
차현의 말에 수화가 애매하게 웃었다.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렇게까지 위험한 사람은 아니에요.”
“살인자인데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김차현 씨 말뜻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합류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수화는 그렇게 말하며 남헌이 있는 쪽을 힐끔 쳐다봤다. 차현과 마로서는 저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수화의 시선을 본 나는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가윤에겐 감정에 개입하는 능력이 있으니 쓸데없는 다툼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거란 뜻이었다.
“합류할지는 저쪽이랑 얘기를 해봐야 하는 거고. 일단 결계는 풀기로 하죠. 숨어다니는 게 더 신경 쓰이니.”
한주가 그렇게 말하며 마를 응시했다. 한주의 말에 차현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요. 장마, 한번 해봐.”
갑작스레 쏠린 관심에 마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별 그림 앞으로 가 섰다.
잠시 자리에서 쭈뼛대던 마가 별 그림 위에 가볍게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마의 주변으로 작게 바람이 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밝은 빛과 함께 쨍!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빛이 사그라들자 자리에 새롭게 나타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멍하니 우리를 응시하는 사람, 세훈이 거기에 있었다. 가윤 역시 세훈의 바로 뒤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가윤이 눈웃음치며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우리라기보다도 한주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주도 지지 않고 가윤을 마주 봤다.
가윤의 얼굴엔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얼굴 오른편 눈 아래에 대각선으로 길게.
영광의 증명에서 나오던 날 내가 폭주하면서 냈던 상처다.
가윤을 혐오하지만 내가 낸 큰 상처를 달고 있는 꼴을 보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불편한 기분에 가슴 안쪽이 술렁거렸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가윤이 날 바라봤다.
“……가람 씨도 오랜만이네요.”
미묘한 표정이었다. 웃고 있지만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
대답하지 않고 가윤을 노려봤다. 가윤이 같잖은 듯 픽 웃음을 흘렸다.
묘한 분위기를 자르고 나선 건 다름 아닌 차현이었다.
“당신이 이가윤 씨입니까? 같이 계신 분이 결계사이시고요?”
“박세훈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제 결계를 깬 건가요?”
어느새 당황을 갈무리한 세훈이 차현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차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결계를 깬 건 이 친굽니다.”
차현이 마를 가리키며 말하자 세훈의 시선이 마로 옮겨갔다. 마가 주춤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세훈이 마를 보며 인사하자 마가 살짝 눈치를 보며 가볍게 묵례했다.
세훈은 웃고 있었지만, 조금 불쾌한 기색이 느껴졌다. 자신의 결계를 간단하게 깨부순 마가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그 와중에도 가윤의 시선은 나와 한주에게 붙어 있었다. 나는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으며 한주 근처로 다가갔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수화가 뒤늦게 나섰다.
“언니. 잘 지냈어? 이번 일 관련해서 상의할 게 좀 있는데. 지금 좀 위험한 상황이라.”
가윤이 드디어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수화에게 대답하려는 순간, 잠자코 대화를 엿듣던 남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의? 너 진짜 미쳤어? 위험한 녀석들이라며?”
그 노성에 가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남헌을 응시했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알겠네.”
가윤이 그렇게 말하자 수화가 애매하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협력적인 일행이 있는 건 치명적이다. 남헌이 우리의 걸림돌이라는 걸 가윤이 단번에 눈치챘다.
이가윤이란 인간은 싫어도 능력 하나만은 유용하단 걸 인정해야만 했다. 가윤이 도와주면 남헌도 고분고분해질 테니.
솔직히 도움받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런 도움을 받기엔 가윤은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여기 생각보다 위험해. 사람이 한 명 죽었거든. 도플갱어도 있는 모양이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니. 세훈이랑 같이 다니면 별문제 없는데.”
수화와 가윤이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뉘앙스 하나만은 알아들은 차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여기엔 마가 있습니다. 결계를 풀 수 있는 능력자가 이쪽에 있는데 기고만장해하시진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가윤이 이제야 차현을 쳐다봤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라니…….”
“우리가 결계를 치면 계속 깨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가윤이 부드럽게 웃으며 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투는 게 좋으신가 봐요. 의뢰받은 일을 하기에도 바쁘지 않으신가요?”
가윤과 세훈에겐 불리한 상황일 텐데도 전혀 기죽지 않는다. 우리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의견이 모이지 않은 상태다.
수화는 가윤 일행과 합류하고 싶어 하는 눈치고,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한주의 생각은 모르겠고, 차현과 마에겐 설명이 필요하다.
잠시 말없이 서로의 눈치만 보는데 가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목적지는 같은 것 같은데 일단은 같이 가볼까요? 갈라져서 따로 갈 수도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응시한 건 비좁은 통로가 있는 벽이었다.
다들 찝찝해도 그 말이 동의한다는 듯 통로를 응시하는데, 또다시 남헌이 초를 쳤다.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아니면 몇 사람만 정해서 들어가! 다들 위험해질 필요는 없잖아!”
“안 돼요. 함부로 갈라질 순 없어요. 지금 연락 수단도 없고 도플갱어도 나오고요. 가짜가 또 나오면 너무 막막해지잖아요.”
내 반박에 한껏 성난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본 남헌이 갑자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가람 씨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가윤이 나긋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남헌의 표정이 더 묘해졌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냥, 상황이 너무 위험하니까.”
“여덟 명이나 함께 다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가윤의 상냥한 미소를 본 남헌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그 말에 동의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고.”
남헌의 갑작스러운 심경변화에 차현과 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헌을 응시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아, 아니. 송남헌 씨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는 거지, 완전히 동의한 건 아니야! 그보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안 들어가?”
“그렇죠. 들어가야죠……. 혹시 먼저 들어가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
차현이 얼떨떨해하면서도 이야기를 진행 시켰다.
통로를 지나 새로운 방에 도착하니, 바닥을 제외한 다섯 개의 면이 모두 거울로 되어있는 방에 도착했다.
은은한 푸른 조명 아래 온통 거울뿐인 공간. 처음 들어왔을 땐 순간 우주에 있는 줄 알았다.
“신기하네.”
“그러게요. 꼭 테마파크에 온 것 같아요.”
한주의 감상에 그렇게 대답하자 마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여기 전기 안 들어오지 않나……?”
그러고 보니. 깜짝 놀라 마를 돌아봤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눈을 깜빡이는데 수화가 웃으며 말했다.
“조명이 아니라 자연령들이에요. 드물게 이렇게 모이는 곳이 있긴 해요. 보통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에 모이는데, 신기하긴 하네요.”
“여기에 뭔가 있단 소리겠지.”
한주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말이 없던 나머지 사람들도 방을 탐색하고 있었다. 나와 마도 부랴부랴 함께 탐색을 시작했다.
“이건…….”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한주가 뭔가를 찾은 듯 목소리를 내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뭐 찾으셨어요?”
차현이 묻자 한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엽서?”
“응. 여기 뭐라고 쓰여 있는데.”
한주가 찾은 건 손바닥 크기의 엽서였다. 한주가 엽서 안쪽에 적힌 글귀를 읽기 시작했다.
“이곳에 도착한 후배들에게. 이 집의 핵심은 네 면이 거울로 이뤄진 이 방이다. 부디 너희들에게 실력이 있어 원하는 것을 찾아가길 바란다.”
이 집의 이상한 구조는 모두 이 방을 숨기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 여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면 의뢰도 완료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가 봐.”
한주의 대답에 골똘히 생각하는데, 수화가 의아한 듯 말했다.
“네 면이 거울?”
그게 왜?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가 놀라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방은 모든 벽이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즉, 사 면이 아니라 천장까지 오 면이 거울인 방이다.
“하난 가짜란 소리네요.”
가윤이 그렇게 말하자 한주가 그 말을 받았다.
“가짜 거울이 있는 곳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테고.”
어느 게 가짜 거울일까.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고민하는데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렸다.
“이게 가짜 같은데요?”
수화가 우리가 들어온 통로 바로 맞은편에 있는 거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세훈이 묻자 수화가 거울 가까이 다가가 어딘가를 보며 말했다.
“여기에 대놓고 문이라고 적혀 있어요.”
……어디에? 적혀 있다는 말을 듣고 살펴봐도 전혀 모르겠다.
다들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서도 아리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요. 밑에.”
수화가 말하는 곳에 정말 깨알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참나.”
한주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수화가 글귀를 빤히 쳐다보며 읽어내렸다.
“문에 들어가는 자는 분명하게 확연해야 한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남헌이 모두를 대표해 한마디 했다. 수화가 어깨를 으쓱하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확연해야 한다, 라…….”
고민하는 차현을 보며 한주가 말했다.
“여긴 우리가 좌우가 반전된 도플갱어를 쫓다 발견한 장소인데. 연관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좌우가 반전되는 게 뭔가 거울하고 비슷하군요.”
한주와 차현의 대화를 듣던 수화가 “아!” 하며 나와 가윤을 번갈아 봤다.
“그럼 가윤 언니랑 가람 씨가 들어가면 되겠네요.”
나랑 가윤? 뜬금없는 조합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 하필 저랑 이가윤이에요?”
“그야…….”
“상처 때문이구나.”
수화의 말을 자르고 가윤이 말했다.
상처. 다리를 다친 나와, 얼굴을 다친 가윤. 확실히 일행 중 상처를 달고 있는 건 나랑 가윤밖에 없긴 하다.
“과연. 점이나 짝눈 같은 건 좌우가 바뀌어도 확연한 정도는 아니지만…… 상처는 확실하겠네요.”
차현의 말에 수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나와 가윤이 확실하긴 했다.
그래도…….
“둘만 가는 건 싫어요. 몸에 낙서하거나 문구가 적힌 티셔츠 같은 걸 입어도 구분은 되잖아요.”
정말로 단둘이 있기는 싫었다. 둘만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없다.
공교롭게도 일행들은 전부 좌우가 바뀌어도 별로 티가 안 날 옷만 입고 있었다. 그래도 그건 갈아입으면 해결될 문제다.
내 주장에 일행들이 서로를 마주 봤다. 제일 먼저 대답한 건 한주였다.
“난 마땅한 옷도 없고 펜도 없어.”
한주의 말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안 될 이유를 털어놓았다.
아니 어떻게 한 명도 쓸 만한 옷이나 펜을 안 가지고 있을 수가 있지?
황당해하는데 수화가 곤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옷이나 펜이 있더라도 ‘분명히’ 확연해야 한다는 조건에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잖아요. 이번 한 번만 딱 눈감아 주시면 안 돼요?”
싫다. 싫은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난 좋은데.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도 있고요.”
가윤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가윤을 노려봤다.
“나한테 무슨 장난 쳤어요.”
“뭐가요?”
가윤이 시치미를 떼며 나를 마주 봤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자꾸 누그러지려고 하고 있었다. 누구의 장난일지는 뻔했다.
“내 감정 가지고 장난치지 마요.”
그렇게 말하자 가윤이 얼굴의 상처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치만 전에 당한 게 좀 있잖아요. 저번처럼 가람 씨가 폭발하면 위험해질 게 뻔한데, 이 정도는 보험으로 괜찮지 않아요?”
“당장 그만둬요.”
풀어지려는 기분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나와 가윤이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자 차현이 참다 못했는지 끼어들었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영문 모를 말들만 하시는 겁니까? 저희도 알아들읍시다 좀.”
마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꼭 듣고야 말겠다는 분위기에 결국 한주가 나서 설명했다.
“이가윤한텐 감정에 간섭하는 능력이 있어요.”
“뭐야?”
한주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아까 당한 전적이 있는 남헌이 바로 끼어들었으나 무시당했다.
“가람이는 신목의 힘을 쓸 수 있고요.”
가윤의 능력을 설명했을 때 남헌의 일을 떠올리며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던 차현과 마가, 이번에는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수화 역시 힘을 쓸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는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신을 모시는 거예요?”
“뭐……. 네. 그렇긴 한데요.”
수화의 물음에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봤자 힘을 어떻게 쓰는지도 잘 모르는 바보지만.”
한주가 그렇게 말했지만 차현이 그래도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신목의 힘을 쓸 수 있다니.”
“신한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죠.”
가윤이 그렇게 말하며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다시 미묘한 기류가 흐르자 차현이 습관적으로 중재에 들었다.
“그만! 어쨌든 두 분 다 실력자란 거죠. 그럼 두 분이 들어가셔도 걱정 없겠네요. 가짜가 나와도 구분하기 쉬울 테고요.”
그렇게 말한 차현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물론 일행이 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람 씨라면 괜찮겠죠? 설마. 하하…….”
뒤늦게 가윤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는지 못을 박는다.
분위기가 나와 가윤이 들어가는 걸로 굳어지려 한다. 싫은데. 매달리듯 한주를 쳐다봤다.
내 시선을 알아챈 한주가 잠시 말없이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빨리 다녀와.”
“한주 씨!”
“여기까지 와서 허탕 칠 수도 없잖아. 뭐 하나라도 더 캐서 나와. 좋은 거 있으면 몰래 꿍쳐두고.”
그랬다. 한주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말을 대놓고 하나.
싫지만. 정말 싫지만. 방법이 없어 보인다. 싫은 표정 그대로 가윤을 쳐다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가윤이 방긋 웃었다.
“갈까요?”
속내를 알기 어렵다. 잠시 가윤을 노려보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허튼짓하지 마세요.”
내 말에 가윤이 픽 웃었다.
“누가 보면 나한테 속기만 한 줄 알겠어요.”
속기만 했다. 진짜로. 하지만 더 말싸움하기도 싫어 가윤과 나란히 가짜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앞에 손을 얹자 거울이 일렁였다. 눈앞에 생겨난 길에 망설이며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