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섬마을 유령저택 (3)
황급히 수화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계단 밑, 일 층 로비에 수화가 있었다.
눈도 감지 못하고 쓰러진 채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수화의 등 뒤가 크게 젖어 있었다. 비 냄새 사이로 피비린내가 훅 풍겨왔다.
옆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주가 천천히 내 옆을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그 자리에 앉아 수화를 살핀 한주가 우리가 있는 곳을 올려다봤다.
“죽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한주 표정이 묘했다.
옆에서 마가 한걸음 뒷걸음질 치는 게 느껴졌다.
저택에 들어와 하룻밤 만에 사람이 죽었다. 슬픔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말문이 막힌 채로 한주의 얼굴만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잠시 나와 마를 올려다보던 한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차현 씨.”
“네.”
놀라 정신이 나간 우리보다 그나마 좀 진정이 된 차현이 차분히 대답했다.
“경찰에 연락은 하셨어요?”
“그게…… 통신장애 때문에…….”
“가지가지 하네 진짜.”
짜증스럽게 내뱉은 한주가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더니 하는 수 없다는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이렇게 둘 수도 없으니 모포 같은 거라도 덮어줄까요. 이불 좀 가져다주실래요? 장마 씨도 같이 다녀오세요.”
두 사람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걸 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정신이 멍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수화의 눈이 조금도 깜빡이지 않는 게 소름 끼쳤다.
“함수화 씨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차현이 한주를 보며 물었다. 한주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모르죠.”
같은 방에 묵었으면서도 수화의 행방을 몰랐고, 수화에게서 불길한 미래도 읽어내지 못했다. 행방을 몰랐던 거야 한주의 잠귀가 어두워서라고 치더라도…….
미래를 읽지 못했다는 건 내게 꽤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주의 말을 나침반 삼아왔는데.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잃은 느낌이었다.
“사고를 당하신 건지, 아니면 악귀한테 당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차현이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사고나 악귀도 아니라면…… 살해당한 걸까.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이가윤…….”
한주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닐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한주를 거의 노려보듯 쳐다보자 한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가윤이…… 누구……?”
마가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결계사랑 같이 숨어다닐 거라고 했던 퇴마사요.”
한주의 대답에 차현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 사람 이름이 지금 왜 나옵니까?”
“살인마니까요. 벌써 여덟 명이나 죽인 끔찍한 범죄자예요.”
“가람아.”
“그렇잖아요.”
차현이 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숨어다니는 살인마가 있다, 그 말인가요?”
한주가 잠시 차현을 응시하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하지만 목적이 없으면 사람을 딱히 건들진 않아요. 수화는 특히 이가윤이랑 오랫동안 꽤 괜찮게 지내와서, 여기서 이렇게 죽일 이유도 없고요.”
“살인마가 있는 건 맞다는 거죠?”
“그렇죠.”
분위기가 한층 더 심각해졌다.
진지한 얼굴로 바닥만 내려다보는 차현과 마에게 한주가 다시 말을 건넸다.
“이가윤의 짓이란 게 확실한 것도 아니에요. 악귀의 소행일 수도 있으니, 간밤에 뭔가 일이 있었다면 들어보고 싶은데요. 미리 말해두지만 전 별일 없었어요.”
한주의 말에 마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는 못 들었네요. 폴터가이스트 소음 때문에 묻혔을 확률이 높지만.”
세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저는 방이 시끄러운 줄은 몰랐어요. 밤새 옆방에서 한주 씨랑 수화 씨가 떠드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는데…….”
“나 수화랑 안 떠들고 그냥 잤는데?”
“네. 꿈이었나 보더라고요. 한주 씨…… 가 아니라 한주 씨 목소리를 내면서 창문 쪽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했어요.”
한주와 마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주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랑 수화가 밤새 뭐라고 떠들었는데? 내 목소리에 대답하거나 하진 않았지?”
“노크하는 게 창문이란 걸 깨달으니까 들켰다면서 창문이 깨져버렸는데 그 순간 깼어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 얘길 하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어떻냐느니 젊은 게 더 좋다느니 해서.”
내 말에 마가 창백해진 얼굴로 한주를 돌아봤다.
“그…… 그 방엔 폴터가이스트…….”
“모른다니까요. 푹 잠들어서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두 사람의 반응이 생각보다 컸던 터라 괜히 기가 죽어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왜 그래요? 뭔가 문제 있어요?”
“대답했으면 아마 잡아먹혔을 거야. 이런 곳에선 자잘한 악귀들이 모여서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거든. 특징은 홀리는 동안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심하다는 거고.”
“눈치챘는데도 창문이 깨졌다는 건…… 누군가는 응했다는 뜻인데…….”
모두의 시선이 수화에게로 모였다. 폴터가이스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는 게 뼈아팠다.
차현이 우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함수화 씨가 홀려서 죽은 걸까요?”
마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고 나는 한주를 쳐다봤다.
수화가 속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퇴마사가 아니라 악령석을 만들 정도로 영력이 높고, 무엇보다 본인도 자신만만했었다.
한주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닐 거 같은데요. 만약 방에 폴터가이스트가 있었다면 아무리 잠귀가 어두워도 깼을 가능성이 크고요.”
한주의 말에 차혁이 침음을 흘렸다.
“그럼 역시 그 이가윤이란 사람의 소행이 아닐까요?”
“글쎄요. 확실한 건 지금 상황이 위험하단 거예요. 개인행동은 하지 않기로 하죠.”
개인행동은 하지 말자니. 나는 살짝 놀라 물었다.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그럼 가니? 간다 치더라도, 비는 저렇게 오고 이 섬엔 묵을 곳도 따로 없는데 뭘 어쩌게?”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내린 로비에 요란한 빗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주의 말대로다. 갈 곳이 없다. 적어도 비가 멎을 때까지 버티는 수밖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걱정만 한가득 늘려가는데 저 위층에서 엄청난 비명소리가 울렸다.
다들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뭐, 뭐였죠?”
차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그 목소리…… 송남헌 씨 같지 않았어요?”
잘 모르겠다. 목소리 같은 건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차현의 말에 선뜩한 느낌이 들었다.
“……가봐요.”
동의를 구하듯 한주를 쳐다봤다. 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희가 다녀올게요. 두 분은 여길 지키고 있어 주세요.”
한주의 통보와 함께 계단을 오르는 내 팔뚝을 누군가 붙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 같이 다녀요. 연락할 수단도 없고…….”
“그래요. 위험한 상황인데 여기서 또 갈라지고 싶지도 않고. 솔직히 말하면 두 분만으론 불안합니다.”
차현이 마의 말을 뒷받침했다. 잠시 수화 쪽을 내려다본 한주가 실랑이하긴 귀찮은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비명은 단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현실을 부정하려는 몸부림 같았다.
소리에 가까워질수록 이 목소리의 주인이 남헌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삼 층에 올라선 순간 근처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경계하며 방 안에 들어섰다.
남헌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송남헌 씨?”
차현이 조심스럽게 남헌을 불렀다. 남헌이 우리를 훽 돌아봤다.
겁먹은 눈동자로 우리를 경계하던 남헌이 몸을 웅크리고 신음했다.
“헉…….”
마가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마는 남헌을 넘어 더 안쪽, 건너편의 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 피가 뱀처럼 느릿하게 기어 나오고 있었다.
차현이 안쪽 방 앞으로 달려갔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한 차현이 뒤돌아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남헌과 차현의 반응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방 안쪽이 얼마나 끔찍할지도.
저 피의 주인이 누굴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뻔하다.
수화에 이어 형필도 죽었다.
하룻밤 만에 두 사람이 죽었다.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기세를 더해가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
남헌은 이제 공포에서 좀 벗어난 듯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차현이 여전히 나쁜 안색으로 남헌에게 물었다. 남헌이 입술을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몰라. 모른다고.”
“아는 것만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모른다고 했잖아! 밤에 잠을 못 자서…… 아침에서야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이 모양이었다고.”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한주 역시 이 부분이 걸렸는지 남헌을 향해 물었다.
“밤에 왜 잠을 못 자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남헌이 숨을 거칠게 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폴터가이스트 때문에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었다고!”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형필을 죽인 건 악귀들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송남헌 씨. 실은…… 함수화 씨도 돌아가셨습니다.”
차현이 어렵사리 말했다. 남헌이 차현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 때문에 섬을 나갈 순 없으니 여기서 버티든가, 아니면 도민분들께 부탁을 드려보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현이 차분하게 제안했지만, 남헌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뭐라고, 누가 또 죽었다고?”
“……네. 함수화 씨가……. 시체들을 어떻게 수습할지도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함부로 건들면 안 될 것 같은데, 이 마을엔 경찰도 없으니…….”
차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남헌 씨?”
남헌이 벌벌 떨며 우리들을 노려봤다.
“너희들 미쳤어? 사람이 둘이나 죽어나갔는데 여기서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난 여기 더 못 있어!”
“잠깐만요!”
순식간이었다. 내가 저지하려 했으나 남헌이 훨씬 더 빨랐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독행동은 위험한데. 잠깐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차현이 마를 데리고 남헌의 뒤를 따랐다.
“두 분은 기다리세요!”
나는 다리가 온전치 않고 한주 역시 그리 빠르지 않으니, 쫓아가 봤자 뒤쳐질 확률이 높다.
세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한주가 형필의 시체가 있는 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한주 씨 뭐해요!”
“앞에서 기다려.”
결국 한주가 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는 한주의 말대로 방 입구 근처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마 방 안을 들여다보진 못하겠고, 한주는 나오질 않고……. 초조함에 다리만 떨었다.
조금 들여다볼까 마음먹었을 때 한주가 안색이 나쁜 얼굴로 방을 나왔다.
“괜찮아요?”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한주가 겨우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요?”
한주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까 수화 말이야. 위형필이랑 비교해보니까 뭔가…… 뭔가가 다른 것 같은데.”
다르다니……. 그렇게 말해도 난 모른다. 한주가 중얼거리듯 말을 덧붙였다.
“위형필이랑 비교하니까…… 수화는 뭔가 인형 같았어.”
“인형?”
“그래. 아무튼 뭔가 이상해.”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뭐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생각이 많아 보이는 한주를 따라 나도 의아해지려는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새 쫄딱 젖은 차현과 마가 창백한 얼굴로 달려 들어왔다.
“송남헌 씨는요?”
그렇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함수화 씨가 사라졌습니다!”
“네?”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뭐라고? 누가 사라져? 한주도 놀란 얼굴로 차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송남헌 씨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려서……. 근데…….”
마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저 밑 수화가 있을 방향을 쳐다보았다.
“송남헌 씨를 쫓을 땐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했는데, 다시 올라오려고 보니 함수화 씨가 없었습니다. 핏자국도요. 심지어 이불도 잘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차현이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수화가 있을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접 가봐요! 있는지 없는지!”
그 말에 한주가 차현을 지나쳐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다급히 한주의 뒤를 따랐다.
등 뒤로 차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여기 있겠습니다. 또 다 같이 갔다가 이번엔 위형필 씨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요.”
차현에게 알겠다고 답변하고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빗소리는 여전히 사납지만 더 이상 피비린내는 풍겨오지 않았다.
차현과 마의 말대로 수화가 사라지고 없었다. 계단 아래 덩그러니 놓인 잘 개인 이불이 묘한 그림을 연출했다.
상황이 조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수화가 장난이라도 친 걸까?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악질적이다. 그럴 이유도 없고.
수화의 죽음을 확인한 건 한주였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만에 하나 장난이었다면 한주도 공범이란 소리가 된다. 한주 쪽을 돌아봤다.
한주도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계단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예요?”
“모르겠어.”
수화만 사라진 게 아니라 냄새와 핏자국마저 사라졌다. 무엇을 생각하더라도 무엇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잠시 망연자실 아래를 바라보다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차현과 마는 각자 편한 자리를 찾아 걸터앉아 있었다. 우리가 돌아오자 착잡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없죠?”
차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현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렇게 말한 차현이 피곤한 얼굴로 입술을 씹어댔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가는 게…… 어떨까요.”
마가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냈다. 숙박시설은 없지만 도민들은 좀 있으니 도움을 청해볼 수는 있다.
생판 초면인 젊은이들을 의심 없이 집에 들여줄 도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수화 씨랑 위형필 씨는 어떡하죠.”
내가 조심스레 묻자 차현이 대답했다.
“일단은 두고 나중에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떨까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매몰차지만 맞는 말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선례를 보고서도 산 사람들까지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우릴 들여보내줄 도민이 과연 있을까요. 내가 도민이었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텐데.”
“최대한 부탁드려봐야죠.”
한주와 차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한숨을 삼켰다. 차현과 마는 저택을 나가는 걸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한주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나도 이 저택을 나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문제는 한주였다.
한주는 우리가 모두 나간다고 하더라도 혼자 여기서 버틸 인간이라.
고민하며 눈치를 보는데 차현이 단호하게 못박았다.
“아무튼 저희는 지금 당장 짐 싸서 나갈 겁니다.”
그나마 차현과 마라도 있으면 여기서 버틸 만도 하겠는데. 두 사람이 나가겠다니 걱정이 커졌다.
한 번 설득이라도 해보려고 입을 여는데 뒤에서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벌써 포기하고 가시는 거예요?”
수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