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섬마을 유령저택 (2)
“뭐?”
“그만두고 그냥 가는 게 좋지 않겠어?”
한주의 말에 깡마른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주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본 깡마른 남자가 팽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쓴소리 좀 들었다고 그런 식으로 어른을 협박하면 쓰나? 이래서 어린애들이랑은 안 돼.”
뚱뚱한 남자 역시 인상을 팍팍 쓰며 한주를 노려보고는 깡마른 남자를 따라 방을 나가버렸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이상해졌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니 차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현은 다 같이 잘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틀어지는데 참고 버텨봤자 언젠간 일이 터졌을 거다.
시큰둥한 얼굴로 두 중년 남자가 나간 문을 쳐다보는 한주에게 물었다.
“근데 얼굴이 안 보인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한주가 살짝 귀찮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질문에 대답한 건 한주가 아니라 이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마였다.
“곧 죽을상이라는 뜻인데……. 아니면 그만큼 큰 화를 당한다든가…….”
마의 말을 수화가 받았다.
“맞아요. 예지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팔자가 불길한 사람의 얼굴이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럼 그 깡마른 남자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
마음 같아서는 된통 당했으면 좋겠지만, 죽을상이라든가 큰 화를 입는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큰 소동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난감하게 됐네요. 우린 저분들 성함도 모르는데……. 아직 안 오신 분들도 계시고, 방을 어떻게 정할 건지 뭐 그런 걸 좀 정하고 싶었는데요.”
차현이 그렇게 말하자 수화가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저, 저 사람들 알아요. 전에 잠깐 인사 나눈 적이 있어서. 마른 분이 위형필 씨고 살집 있는 분이 송남헌 씨예요.”
아는 사이였다고? 눈 한 번 안 마주치더니.
나만 궁금한 게 아니었는지 차현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는 체를 전혀 안 하셔서 초면인 줄 알았는데요.”
그 말에 수화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예전에 잠깐 인사만 했던 거라서요. 저쪽에서는 절 기억 못 하시나 보네요.”
“그러셨구나. 그런데 방은 어떡할까요? 일행별로 나누기엔 거기 계신 도련님이 좀 난감하시겠죠?”
차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일행별로 나누면 수화 씨가 혼자가 되니까요.”
내 말에 차현이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어? 세 분이 일행이 아니었나 봐요?”
“네. 저는 따로 왔어요.”
잠시 고민하는 얼굴로 우리를 살펴보던 차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안 오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실지를 몰라서……. 그거라도 알면 좋겠는데요. 지금 우리끼리 정했다가 나중에 또 다시 정해야 하면 귀찮으니까.”
그 말에 한주가 입을 열었다.
“걔네들은 벌써 왔어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할걸요.”
“벌써 왔다고요? 어떤 분들인지 아세요?”
한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그쪽엔 결계사가 있어서. 자기들끼리 그냥 숨어다닐 생각인가 본데요.”
“그렇군. 그럼…… 아가씨들이 같은 방을 쓰시고 도련님은 우리랑 같은 방에서 지낼까요? 위형필 씨랑 송남헌 씨 방에 들어가긴 좀 그렇죠? 어딘지도 모르고. 혼자 지내실 수도 없고.”
“네. 잘 부탁드려요.”
저택 안에는 따로 전기나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밖에 바로 공중화장실이 있고, 도보로 십 분쯤 걸리는 곳에 작게나마 슈퍼가, 거기서 조금 더 걸으면 공중목욕탕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편하게나마 밖에서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다.
집 안에는 가구가 드문드문 남아있다. 테이블이나 소파 같은 것은 그럭저럭 쓸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침대를 쓰기는 찝찝했다.
언제 챙겨둔 건지 한주가 램프나 손전등, 침낭 등을 넘겨주어서 다행이었다.
형필과 남헌이 어디를 지낼 방으로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쪽 연락처를 따로 아는 것도 아니고, 연락하더라도 협조적인 태도가 아닐 것 같아 그냥 두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총 삼 층으로 된 저택의 정가운데에 자리를 잡기로 합의를 보고, 유사시에 대비해 여자팀과 남자팀의 방을 붙어 있는 방으로 정했다.
결국 이 층의 여러 방 중 정가운데에 위치한 방을 골라 왼쪽 방에 한주와 수화가, 오른쪽 방에 나와 차현, 마가 지내게 됐다.
우리가 지내게 된 방은 방 가운데에 싱글 침대가 놓여 있는 방이었다.
침대를 기준으로 오른쪽 아래에 문이 있고 문의 반대편 벽, 즉 침대의 왼쪽 벽에 커다란 창문이 있는 구조였다.
아무도 침대에서 자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없어 결국 다들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침대를 사이에 두고 창문이 있는 쪽 벽 밑에서 마가, 문이 있는 쪽 벽 밑에선 차현이.
그리고 그들의 발밑, 머리맡에 창문을 두고 발밑에 방문을 둔 위치에서 내가 자기로 정했다.
대충 짐이 정리되고 일단은 각자 탐색하고 방으로 돌아오기로 얘기가 됐다.
수화가 혼자라 나나 차현이 각자 자기 팀과 움직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으나, 수화는 우리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괜찮아요. 혼자 다닐 능력 정도는 있으니까 혼자 여기 온 거고요. 협업이라고 해도 좋은 거 찾아서 나눠 먹기는 좀 싫잖아요. 그렇죠?”
나는 뭐 아는 것도 별로 없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흑심이 있다 보니 수화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 첫날. 집안 곳곳에서 확실히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고 한주 역시 집안에 영기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따로 일어나진 않았다. 다만 집 구조가 굉장히 특이하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집이지만 문을 열면 겨우 오십 센티 남짓한 공간을 두고 다시 문이 있거나, 문을 열었는데 벽이 있거나, 혹은 창문 너머 다시 방이 있거나 했다.
숨겨진 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는데 막상 내려가 보니 막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길 잃기 딱 좋은 희한한 집이었다.
결국 모든 팀이 별 수확 없이 밤을 맞이했다.
가라앉았던 의식이 쑥 부상했다. 거슬리는 소리가 꾸준히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흐릿한 초점을 맞췄다. 커튼이 없는 창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와 방 안의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액새액 하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차현과 마는 깊게 잠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차분한 새벽 공기를 뚫고 다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 방음이 나쁜 벽을 넘어 옆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주랑 수화가 아직도 안 자고 떠드는 중인가?
분위기가 한참 달아올랐는지 즐겁게도 웃는다.
보니까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 같지는 않던데.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할 얘기가 많았나 보다.
“그럼 그 사람은?”
“괜찮긴 한데. 나이가 좀 많지 않아? 이왕이면 젊은 사람이 좋은데.”
“그건 그렇지.”
다시 까르르 웃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재미있는 건 알겠지만 이제 그만 얘기하고 좀 자줬으면 한다. 나도 잘 수가 없잖아.
눈을 꾹 감고 무시하려 애쓰지만 이야기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고민되네.”
“못 정하겠어.”
그럼 내일 내가 정해줄 테니 지금은 좀 잡시다.
옆방으로 따지러 가고 싶은 걸 참으며 잠든 사람처럼 숨을 편하게 내쉬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 노력도 모르고 옆방에서 계속 수다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옆방에 물어보고 올까?”
“그렇게까지? 자고 있을 것 같은데.”
“일어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요. 다들 자는 중입니다. 내일 물어보세요, 내일.
속으로 혼자 대답해봐야 들릴 리도 없고 기어이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맡에서 누군가 똑똑똑 하고 문을 두드렸다.
“한가람, 일어나 있으면 문 열어봐.”
이 사람들이 진짜! 지금이 몇 시인 줄 알고 저러는 거지.
시시콜콜한 얘기는 내일 해도 될 걸 이 시간에 굳이 문까지 두드려야 하나.
대답하기 싫어 그냥 그대로 누워있었다. 한주는 끈질기게 또 문을 두드려댔다.
“야, 문 좀 열어보라니까.”
싫어요, 싫어. 피곤하단 말이에요.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재촉에도 굴하지 않고 나도 끈질기게 자는 척을 했다.
조금도 뒤척이지 않고 몸에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평소엔 좀 시끄러워도 잘 자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잠귀가 밝아졌는지. 방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리고…… 귀찮다.
머리맡엔 창문이 있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안 자는 걸 들킬 것 같기도 하고.
“한가람. 일어나 보라니까.”
잠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틀림없는 한주의 목소리인데, 한주일 리가 없다. 그래, 아무리 방음이 나쁘기로서니 말소리가 이렇게까지 잘 들릴 리가 없잖아.
심지어 방문은 머리맡이 아니라 발밑에 있었다.
그럼 지금 나한테 말을 거는 건…….
“뭐야, 들켰네.”
그 목소리와 함께 머리맡에 있던 창문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헉!”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는 나를 마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
마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멍한 얼굴로 마를 쳐다봤다. 흡사 우박이 내리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앉은 채로 뒤를 돌아보니 멀쩡한 창문 밖으로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 아니, 창문이…….”
“창문……? 창문이 왜……?”
마가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마의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꿈이었구나. 비가 내려 어둡긴 하지만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악몽을 꿔서.”
그렇게 말하며 마의 얼굴을 봤다. 마가 싱겁다는 표정으로 정리하다 만 침낭을 다시금 정리하기 시작했다.
“차현 씨는요?”
“예? 아, 화장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여덟 시가 조금 지나있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침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괜히 정리에 몰두하며 어색함을 견디고 있는데, 마가 더듬더듬 말을 걸어왔다.
“어제 그, 안 시끄러웠어요……?”
시끄러워 잠을 설치긴 했다. 그런데 그건 꿈 아니었나?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달싹거렸다.
그런 나를 보며 눈을 천천히 깜빡인 마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때문에 방 전체가 흔들리고 엄청 시끄러웠는데, 잘 주무시길래…….”
“……그랬어요?”
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옆방은 어땠는지…… 정보교환을 좀 했으면 하는데…….”
그건 나도 궁금하다.
방에 밤새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있었다니. 혹시 내가 꾼 꿈도 예사 꿈이 아닌가?
밤새 한주와 수화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옆방 상황도 너무 궁금했다.
“제가 한번 가서 물어볼게요. 모여서 아침 먹으면서 얘기 좀 해봐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적막한 복도에 빗소리만이 요란했다.
왠지 긴장돼 크게 심호흡하고 한주와 수화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이렇다 할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조용하다.
“한주 씨? 수화 씨?”
이번엔 여러 번 노크했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게 불안해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려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방금 일어난 듯한 한주가 잔뜩 짜증 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한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었지.
아니, 그래도 폐허인데……. 잠자리가 불편해서라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눈을 깜빡이며 한주를 내려다봤다. 왜 이렇게 꿀잠 잔 것 같아 보이지?
“뭐냐고.”
“아, 아침 먹으면서 정보공유나 할까 하고요……. 수화 씨는요?”
한주가 한숨을 내쉬며 방 안을 돌아봤다.
“없는데?”
“네? ……봐도 돼요?”
한주가 순순히 문 앞에서 비켜줬다.
우리가 잔 방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방 안은 한주의 침낭 외엔 텅 비어 있었다.
“어디 갔는지 몰라요?”
한주가 빈방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 갔지? 보아하니 한주는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푹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차 한주에게 물었다.
“혹시 어제 수화 씨랑 밤새 떠들고 저 찾아왔었어요?”
“내가 왜?”
“역시 그렇죠…….”
역시 그건 꿈이었나. 아니면 홀리기라도 했던 건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 수화의 행방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혼자서도 괜찮다고 호언장담했었고,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 나간 걸지도 모르니까.
수화에 대한 건 일단 보류하고 한주와 함께 다시 오른쪽 방으로 넘어왔다.
“김차현 씬?”
“왜 이한주 씨만……?”
한주는 방에 없는 차현을 찾고 마는 오지 않은 수화를 찾는다.
양쪽 상황을 아는 내가 간단히 설명하자, 마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한주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무슨 화장실이 이렇게 오래 걸려?”
그러고 보니. 내가 일어났을 때부터 없었으니 지금쯤이면 돌아올 만도 한데.
“혹시 담배 피우고 오시나?”
내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자 마가 고개를 들었다.
“형 담배 안 피우는데……?”
그 말에 나는 잠시 마를 바라보다 물었다.
“김차현 씨 혹시 언제쯤 나가셨는지 아세요?”
마가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삼십 분쯤 지난 것 같은…….”
“화장실 간단 사람이 삼십 분이나 안 돌아오는데 그냥 앉아 있었어요?”
한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인다.
근데 한주가 남 말 할 처진가? 같은 방 쓴 사람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기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마를 보다 하는 수 없이 중재에 나섰다.
“일단 우리끼리 정리 좀 해봐요. 김차현 씨는 화장실 다녀온단 사람 치고는 늦고, 함수화 씨는 아침부터 안 보이는 거죠? 어쩔까요. 찾으러 갈까요? 아니면 기다려볼까요?”
한주와 마를 차례로 쳐다봤다.
마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고 있다. 한주를 쳐다보자 한주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다리자.”
“아까 그냥 앉아있었냐고 짜증 낸 사람은 어디 갔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하여튼.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침대 위에 털썩 앉는데, 다급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나와 한주 그리고 마의 시선이 문밖으로 쏠렸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차현이 방 안쪽으로 뛰어들어왔다.
“허억, 허억…….”
“김차현 씨?”
숨을 고르는 차현의 바짓단과 팔이 젖어 있었다. 비가 하도 많이 오니까 우산을 써도 별 소용이 없었나 보다.
한주와 마의 시선 역시 갑자기 뛰어들어온 차현에게 꽂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젖은 바짓단보다 더 아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영문을 모른 채 겁에 질려 보이는 차현의 발아래를 봤다.
차현이 지나온 자리를 따라 물에 젖은 운동화 밑창 모양이 그대로 찍혀 있었는데…… 그 물기가 묘하게 붉었다.
꼭 피가 섞인 것처럼…….
차현이 곧 쓰러질 사람처럼 새하얀 얼굴로 덜덜 떨며 말했다.
“미, 밑에…… 밑에 함수화 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