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섬마을 유령저택 (1)
“성인 두 명이요. 차도 한 대 있어요.”
표를 끊는 한주 뒤에 서서 방금 터미널 내 슈퍼에서 산 멀미약을 삼켰다.
매표소 아저씨와 무언가 얘기를 나누던 한주가 뒤를 돌아보더니 내놓으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멀미약 달라는 소린가? 손 위에 멀미약을 올려놓고 생수를 내밀자 한주가 이건 뭐냐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신분증 달라고.”
“아.”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말 안 하고 손만 내밀면 내가 아나? 부랴부랴 지갑을 꺼냈다.
내 신분증과 자기 신분증을 매표소에 내미는 한주를 보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 무사히 앨버트를 찾아주고 동심의 세계에 젖어있는데 한주가 불쑥 말을 꺼냈다.
─ 내일 아침에 배 타야 하니까 신분증 챙겨놔. 며칠 자고 올 거니까 가방도 챙겨놓고.
배? 가방? 무슨 소린가 싶어 세 번은 더 되물었다.
아니, 보통 그걸 전날 밤에 갑자기 통보하나?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한주는 굉장히 당당하고 뻔뻔했다.
열심히 투덜거려봤자 귓등으로도 안 듣고……. 결국 포기하고 지는 건 늘 내 쪽이다.
한주가 내미는 표와 신분증을 받아들었다.
표에는 선박명이나 날짜, 시간 등은 물론이고 내 인적사항까지 적혀 있었다.
승선권은 이렇게 나오는구나……. 배를 타고 섬에 가는 건 난생처음이라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의뢰 때문에 가는 거지만, 이왕 가는 거 놀러 가는 기분 좀 내볼까.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직도 얼떨떨하긴 하지만 며칠 머무른다고 했으니 바다도 보고 한들이 선물도 사다주고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자 점점 섬에 가는 것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승선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한주를 잠시 보고, 고개를 돌려 터미널 슈퍼를 봤다.
“한주 씨.”
“안 돼.”
신난 목소리로 한주를 부르자마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번에도 이런 적 있지 않았나? 데자뷰를 느끼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한주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어차피 새우과자 어쩌고 할 생각이지? 동물한테 사람 음식 주면 탈 날지도 모르잖아.”
아니 그렇게 말하면……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생각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의기소침해지려는데 한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새 몰리는 거 싫어.”
살짝 짜증이 난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저기압인가?
한주를 잠시 쳐다보다 분위기도 풀어볼 겸 물었다.
“한주 씨는 갈매기 싫어하세요?”
“아무튼 안 돼.”
……왜 떼쓰는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그럴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진짜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다. 이럴 땐 그냥 몸 사리는 게 좋겠지?
한주 말대로 새우과자 어쩌고는 가슴속에 고이 접어두고 얌전히 옆에 앉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무슨 의뢰예요?”
아무리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시간만 때우긴 삭막하고. 생각해 보니 의뢰가 들어왔다는 얘기 외에 들은 게 없다.
설마 일 얘기에까지 짜증을 내진 않겠지. 한주가 휴대폰 화면에서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귀신들린 저택. 팔 수도 없고 철거도 안 되는 애물단지라고 의뢰가 들어왔어. 실종된 사람이나 사상자가 꽤 많다고 하더라고.”
저택이 문제라면 확실히 이쪽에서 가는 수밖에 없다. 저택한테 오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 실종된 사람이나 사상자가 많다니. 그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닌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주에게 물었다.
“설마 거기서 묵을 건 아니죠?”
“왜 아니야? 거기서 묵을 거야.”
무슨 소리냐는 듯한 한주의 대답에 멍하니 한주만 쳐다봤다.
실종된 사람이나 사상자가 많이 나온 귀신들린 저택에서 묵겠다고? 무섭지도 않나?
“저 그냥 집에 가면 안 돼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물었다. 그런 곳에서 하룻밤도 아니고 며칠 밤이라니 사양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한주는 단호했다.
“안 돼.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지.”
“얻어가긴 뭘 얻어가요?”
“그 저택, 예전에 유명했던 영능력자가 살던 집이거든. 취미가 워낙 괴팍해서 숨겨진 방 같은 것도 많다던데. 얻어갈 만한 것도 많지 않겠어?”
숨겨진 방이라. 굉장히 불길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괜히 찾아서 열었다가 시체 같은 거라도 나오면 어째? 한주가 마음을 돌리도록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버려진 집이라도 마음대로 가져가면…….”
내 말에 한주가 네 속내쯤은 뻔하다는 표정으로 픽 웃었다.
“발견한 건 죄다 가져가도 된다던데. 그걸 목적으로 가는 건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그 말은 즉, 귀신들린 저택에서 묵는 것도 모자라서 구석구석 탐색까지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기대되던 마음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팍 가라앉았다.
기분은 착잡하고 우울한데 그래도 바다를 보는 건 좋았다.
들어가 앉겠다는 한주를 보내고 배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갈매기 떼와 하얗게 이는 파도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이 물에 뛰어들면 죽겠지?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바다를 내려다보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로 뛰어들 생각은 요만큼도 없지만, 자꾸 물에 빠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빠지면 진짜 장난 아니겠지? 춥고, 짜고…… 어둡겠지?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화들짝 놀라 뒤를 보니 의외의 얼굴이 있었다.
“어! 어…… 그러니까…….”
이름이 뭐더라? 작은 키에 곱슬거리는 단발머리. 영광의증명에서 만난 적 있는 한주의 지인이었다.
악령석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함수화예요. 난 가람 씨 기억하는데, 가람 씨는 나 까먹으셨구나?”
“죄, 죄송…….”
수화의 말에 왠지 양심이 찔려 사과하는데 수화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 바다 그렇게 오래 보지 마세요. 평범한 사람이면 몰라도 영능력자한텐 별로 안 좋아요.”
“그래요?”
그 말에 수화가 오기 전까지 했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이상한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다.
다시 떠올려보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내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수화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귀신을 보게 되니까 불편한 게 많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려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래도 좋은 일도 있던걸요.”
물론 나쁜 일이 훨씬 더 많았었지만. 그래도 당장 수화랑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귀신을 볼 수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수화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과 알고 지낼 가능성을 열어 준 일을 무조건 불편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자, 이거요.”
수화가 내민 건 내 승선권이었다.
“어? 이거…….”
“계단에서 주웠어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찾아봤는데 역시 가람 씨였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개인정보도 적혀 있고, 건네주는데 안 받기도 뭐해 얌전히 받아들었다.
승선권을 괜히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수화가 내 옆 난간에 기대며 물었다.
“가람 씨가 있으니, 한주도 여기 있겠네요? 설마 저택 의뢰받고 가는 거예요?”
수화도 이 의뢰를 알고 있나? 하긴 유명한 영능력자의 집이었다니까 업계 사람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하자 수화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본인이 물어놓고 이런 반응이라니. 한주가 의뢰받고 가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물론 섬은 좀 멀긴 하지만 보수도 많은 것 같고 저택에서 얻을 것도 많은 모양이던데.
그럼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의뢰 아닌가? 수화의 반응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수화만 쳐다보고 있자, 수화가 말을 이었다.
“한주는 안 할 줄 알았어요.”
“왜요?”
“그야, 한주는 단체 의뢰도 별로 안 좋아하고…….”
“단체 의뢰요?”
단체 의뢰라니? 처음 듣는 말에 되묻자 수화가 “응?” 하며 설명했다.
“퇴마사 여러 팀이 의뢰를 받고 저택에 갈 거예요.”
“저랑 한주 씨만 가는 게 아니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수화가 픽 웃었다.
“한주가 아무 설명도 안 해줬구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수화가 뭔가 복잡미묘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뜸을 들이던 수화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가람 씬 가윤 언니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겠네요?”
“가윤 언니? 이가윤이요?”
“네. 한주는 가윤 언니 보기 껄끄러워서라도 안 올 줄 알았어요. 모임에서 얘기 나왔을 때도 별 관심 없어 보였고……. 근데 의외네요.”
나는 그런 수화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이가윤이 온다고? 나를 속이고 이용했고, 또 내가 다치게 했던…….
정신이 점점 멍해지는데 수화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나도 가요. 며칠간 잘 부탁해요.”
한주는 어젯밤까지도 이 의뢰를 받을지 말지 고민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나한테 가방을 챙기라고 말했을 때, 그 사이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거였을 수도 있고.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면 좋았을 텐데.
그냥 귀신들린 저택도 싫은데, 가윤이 있는 귀신들린 저택이라니까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운전하는 한주를 흘끗 쳐다봤지만 한주는 보기엔 평온해 보였다.
평온해 보여도 아주 신경을 끄지는 못했을 거다. 터미널에서 조금 예민해 보였던 건 가윤 때문이었을 수도.
그래도 우리와 가윤, 수화 외에도 다른 팀이 더 저택에 머물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팀 중에는 안면이 거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모양이다.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랐다. 나, 한주, 수화, 가윤, 세훈. 이렇게 다섯 사람뿐이었다면 엄청나게 불편하고 껄끄러웠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완충재라도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섬마을 저택에 모인 여러 사람……. 이거 뭔가 어디서 많이 본 구도 아닌가?
탐정 만화 같은 데서 보면 꼭 밖에 연락할 수단이나 길이 끊기고 사람이 하나씩 죽던데.
……재수 없는 생각하지 말자. 고개를 붕붕 젓는데 한주가 입을 열었다.
“저기야.”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창문 밖으로 절벽 바로 근처에 음산하게 서 있는 오래된 저택이 보였다.
정말이지, 재수 없어 보이는 풍경이었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총 일곱 사람이 앉아있다.
테이블 끝에 나와 한주, 수화가 나란히 앉아있고 맞은편에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깡마른 중년 남자와 거만해 보이는 뚱뚱한 중년 남자가 있다.
그 옆으로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체격이 좋고 성격 좋아 보이는 남자, 내 또래로 보이는 평균적인 체형의 소심해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다.
가윤과 세훈은 보이지 않는다.
일행들끼리조차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막연하게 시간이 흘렀다.
꾸벅꾸벅 졸음이 오려고 할 때쯤 체격 좋은 삼십 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에게 시선이 쏠린 것을 확인한 남자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를 포함해 총 아홉 명이 온다고 들었는데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우리끼리라도 먼저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나를 포함해 다들 대답이 없다. 나도 서로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뭐랄까 분위기도 그렇고 왠지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분위기가 되면 하겠지만 굳이 나서서 좋다고 동의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싫으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재촉하듯 한 번 더 말을 꺼냈다.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소심해 보이는 남자는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눈치를 보아하니 한주나 맞은편의 중년 남자들은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수화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고는 앞에 선 남자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어차피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 일. 수화가 총대를 멨다.
수화가 그렇게 대답하자 남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도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그 말에 나도 짧게 동의를 표했다.
한주는 그냥 남자를 흘끗 보고 말았고 중년 남자들은 “그러시든가.” 하며 다소 거만한 태도로 남자의 요청을 승낙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자 남자는 성격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김차현입니다. 이래 봬도 퇴마 경력은 올해로 이십 년이 됩니다. 여기 이 친구는 제 일행이고 이름은 장마. 이름 참 특이하죠? 그럼 아가씨들부터 소개해주세요.”
차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는 차현이 자신을 소개할 때 잠깐 고개를 꾸벅했을 뿐, 다시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을 노려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제 이름은 함수화고 악령석을 제작하고 있어요. 잘 부탁드려요.”
수화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한주 쪽을 쳐다봤다.
한주는 딱히 자기소개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이분은 이한주 씨예요. 한주 씨도 악령석을 만드시고요. 저는 한가람이라고 합니다. 한주 씨 조수예요.”
소개는 이 정도면 되겠지. 이제 맞은편 중년남자들의 차례다.
뚱뚱한 중년 남자가 한주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한주? 들어본 적 있는데. 악령석을 어마어마하게 모아댄다지? 실제로 보니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거기 있는 아가씨도 그렇고.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그러다 큰코다치지.”
……뭐야 이건?
픽픽 코웃음을 쳐대며 초면인 한주와 수화한테 대뜸 이런 태도다.
황당함에 표정 수습도 못 하고 남자를 쳐다보는데, 옆에 앉은 깡마른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리바리해 보이는 조수나 데리고 다니고. 이게 어린애 장난인 줄 아나.”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찬다. 뚱뚱한 남자 역시 “이래서 요즘 애들은.” 하며 깡마른 남자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저기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이 무례한 태도는 뭐란 말인가.
한마디 쏘아주려고 입을 여는데 차현이 재빨리 우리들 사이를 제지했다.
“아이고, 왜들 그러십니까. 당분간은 협업할 사이잖아요. 사이좋게 지냅시다. 네?”
차현이 난감한 얼굴로 내게 눈짓했다. 네가 참으라는 사인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저 남자들은 말이 안 통할 것 같고, 그나마 내가 만만해 보이니 내게 부탁하는 거다. 괜한 트러블 일으키지 말라고.
물론 차현의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주먹구구식 분위기가 너무 맘에 안 들었다.
시비는 저쪽이 걸었는데 참아야 하는 건 이쪽이라니.
“우린 그냥 인생 선배로서 충고해준 것뿐이야.”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데,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뚱뚱한 남자가 헛소리를 한다.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 이런 사람들하고 며칠을 함께 지내야 한다니. 당장 가윤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주도 기분이 나쁜지 깡마른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노려봐?”
깡마른 남자가 한주를 마주 노려보며 말했다. 잠시 신경전이 이어진 뒤, 한주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얼굴이 안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