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22화 (22/84)

[22] 종이 상자 (2)

처음으로 본 녀석의 머리는 다이아몬드 모양 두 개가 크게 새겨진 헝겊 주머니로 덮여 있었다.

끼이이익─ 녹슨 쇠문을 여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이어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히힛.”

명랑한 웃음소리였다.

뒤에는 키 큰 괴물, 앞에는 인형 귀신. 총체적 난국이다.

앞에서 도자기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불길한 소리에 다시 앞을 바라보자 인형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기어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눈앞의 벽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인형이 지나간 벽에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 빨리 들어가!

한들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힘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기듯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뒤통수에 차가운 손길이 스쳤다. 등 뒤에서 꽈아악 하고 있는 힘껏 주먹을 쥐는 소리가 났다.

주먹을 쥐는 소리 같은 거 들어본 적 없지만, 손에 굉장한 힘이 들어간 소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등 뒤의 괴물이 내 머리를 움켜쥐려고 했다. 잡혔다면 분명히 머리가 터졌을 거다. 무서워서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함정인지 뭔지 의심해볼 겨를도 없이 인형이 사라진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쾅! 등 뒤에서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흥분한 채로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아까까지 내가 있었던 감옥의 모습은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탁 트인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수많은 빈 좌석 사이에 서 있었다. 눈앞에는 작은 무대가 두껍고 빨간 커튼에 감춰져 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돼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밝은 빛줄기가 무대를 집중적으로 비췄다.

도트게임을 하는 것 같은 경쾌한 8비트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빨간 커튼이 걷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무대 위엔 새파란 정장을 입고 광대분장을 한 비쩍 마른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가 파란 신사 모자를 벗고 나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더니 밝게 웃는 얼굴로 외쳤다.

“쇼를 시작합니다!”

내 주변 빈 좌석들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펑! 하는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뒤에 알파벳이 적힌 세 개의 문이 나타났다.

남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깡마른 몸집에서 나온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울림 좋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의 게스트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게스트? 이번엔 또 뭐야? 내가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이번엔 빈 좌석에서 야유 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런, 긴장하셨나요?”

남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처음엔 다들 그런 법이죠. 그럼 제가 용기를 불어 넣어드려야겠군요!”

남자가 활짝 웃으며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듯 크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다시 한번 박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남자가 지휘자처럼 유려한 동작으로 허공에 대고 선을 긋자 박수 소리가 멎었다.

남자는 내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하며 몸동작을 시작했다.

꼭…… 줄에 묶인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마임이었다.

─ 쟤 뭐 하는 거야?

한들의 황당해하는 목소리에 ‘글쎄’ 라는 대답을 돌려줄 틈도 없이 내 몸이 줄에 묶인 듯 억지로 무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버텨보려고 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줄은 내 힘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나를 무대로 끌어당겼다.

“읏!”

이윽고 엎어지듯 무대 위에 올라서게 돼버렸다.

남자가 무대에 끌려온 나를 흡족하게 바라보고는, 쇼맨십이 넘치는 MC처럼 빈 좌석을 향해 게임의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 세 개의 문이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두 개의 문 뒤편엔 염소가 들어있고, 하나의 문 뒤편엔 무려 자동차가 들어있답니다! 과연 오늘의 게스트는 자동차를 고를 수 있을까요? 염소냐, 자동차냐! 운명의 선택을 시작해 볼까요?”

─ 염소? 자동차를 고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한들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이 게임을 알고 있었다.

분명 시작은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느새 수학 문제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프로그램이었다.

‘예전에 외국에서 했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야.’

─ 근데 그걸 왜 여기서 해? 자동차를 골라서 뭐 어쩌라고?

‘그러게.’

진짜 그러게. 이번엔 도대체 뭐지? 남자를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 남자는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자동차를 고르든 염소를 고르든 이곳은 환상일 뿐인데. 한들의 말대로 자동차를 고르면 뭐 어쩌라고? 혹시 함정이 있나?

내 생각을 알아챈 것인지 남자가 은밀한 목소리로,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크기로 이야기했다.

“이 무대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자동차를 타고 빠져나갈지 염소를 타고 빠져나갈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답니다.”

“…….”

결국 죽기 싫으면 정답을 고르란 소리다.

세 개의 문에는 각각 < A > < J > < K >라는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왜 ABC 같은 순서 배열도 아니고 AJK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눈앞의 문을 노려보는 사이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빈 좌석들이 빠르게 심연에 삼켜지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습니다!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어서 골라야 해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랍니다.”

단 한 번이라니? 게스트가 문을 고르면 고르지 않은 문 중 염소가 있는 문을 열어 보여주고 바꿀 찬스를 주잖아?

그래서 바꾸는 게 더 확률이 높다든가 바꾸지 않는 게 확률이 더 높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나온 거고.

“한 번 고르면 끝이야?”

“네! 미적지근한 것보단 화끈한 게 좋잖아요! 그 누구도 이 쇼가 오래 지속되길 원하지 않는답니다. 기회는 단 한 번이에요.”

“…….”

“단 한 번! 무너지기 전에 어서요! 어서요! 어서어서어서! 빨리!”

남자가 손뼉을 짝짝 치며 ‘빨리’라든가 ‘어서’ 같은 말을 고장 난 축음기처럼 반복해대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인간의 목소리라는 범주를 넘어 이 배속 삼 배속을 한 듯 빨라지기 시작했다.

명백하게 나를 부추기며 판단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뒤는 점점 더 무너져내리고 있다.

감옥을 겨우 넘어왔더니 또다시 이런 상황에 부닥쳐 스트레스가 잔뜩 오른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을 하는 것은 무리다. 침착하자는 마음의 소리조차 덜덜 떨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 눈에 들어왔던 < J >라는 알파벳에 자꾸 시선이 갔다.

직감이라기보다는 처음 눈에 들어왔으니 다른 알파벳보다 더 선명하게 뇌리에 남은 것뿐이었다.

심연이 무대를 덮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골라야 한다. 빨리. 남자의 부추김대로 빨리, 어서.

마음은 급하고 이성적인 판단은 안 되고. 알량한 희망, 마음이 가는 것이 운명이라든가 하는 미신 같은 게 자꾸만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그 사이에도 심연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어서어서어서어서! 빨리빨리빨리빨리!”

점점 빨라지는 목소리와 박수 소리에 이끌리듯 입에서

“제…….”

하는 말이 새어 나간 순간 한들이 어쩐지 태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AJK면 트럼프 카드에 나오는 알파벳이네. Q가 없긴 하지만. 예린이랑 재미있게 했었는데. ……상관있으려나?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 한들과 예린이 함께 카드놀이를 하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나고, 머릿속에 몇 가지 트럼프 카드로 할 수 있는 게임이 떠올랐다.

트럼프 카드 게임…….

두 줄 이상으로 일렬로 늘어선 감옥.

감옥 저편에 있던 5 괴물이 지나간 다음 4.

그리고 감옥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봤던 다이아몬드 모양 두 개.

여러모로 옛날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려 있던 이름 모를 트럼프 카드 게임이랑 맞아떨어졌다.

분명히 아무렇게나 놓인 카드를 K, Q, J, 10, 9, 8, 7, 6, 5, 4, 3, 2, A 순서를 맞춰 놓아야 하는 게임이었다.

그게 맞다면 정답은…….

“에이가 적힌 문!”

등 뒤가 무너져내리기 직전에 외친 내 말에 남자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 A > 문 뒤편에서 빨간 오픈카가 나타났다.

재빨리 달려 자동차에 탔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가 혼자서 빠르게 출발했다.

떨어지지 않게 자동차를 꽉 잡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불쌍한 염소가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심연에 잡아먹혀 버리는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심연을 멀리하고 바로 앞의 빛에 뛰어든 순간 눈앞이 암전했다.

* * *

─ 야!!

고함 같은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선물 상자 같은 것이 잔뜩 놓여 있고 아기자기한 장식이 잔뜩 있는 파스텔톤으로 된 방 한가운데였다.

엉망이 된 선물상자들 가운데 처박혀있는 빨간 오픈카 장난감이 눈에 띄었다.

……저거 혹시 내가 타고 온 건가?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나는 둥근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인형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있었다.

우측에는 사람만큼 큰 곰돌이 인형, 좌측에는 곰돌이 인형보다 약간 작은 토끼 인형.

그리고 정면엔…… 감옥에서 만났던 비스크 인형이 앉아 있었다.

─ 이제 정신 차렸냐.

한들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멍하니 물었다.

‘지금 몇 시야?’

─ 오후 한 시.

‘뭐라고?’

─ 오후 한 시라고. 아무리 불러도 안 일어나서 죽은 건가 했어.

오후 한 시라니. 탈출 마지노선은 오후 여섯 시인데. 갑자기 확 줄어든 제한시간에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비스크 인형이 대뜸 고개를 쳐들더니 외쳤다.

“게임 할 시간이야!”

비스크 인형이 명랑한 목소리로 외치자, 인형답게 늘어져 있던 곰돌이와 토끼가 살아난 듯 자세를 바로 했다.

“어떤 게임 할 거야?”

곰돌이가 곰돌이다운 귀여운 목소리로 묻자 비스크 인형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카드 게임 할 거야!”

비스크 인형의 말이 끝난 순간 세 인형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며 밝게 외쳤다.

“카드 게임!”

“카드 게임!”

“카드 게임!”

이제 인형들이 떠드는 정도론 새삼스럽게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초조하고 지겨운 마음을 꾹 억누르며 물었다.

“어떤 카드 게임?”

사실 이딴 장난에 장단 맞춰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팔 한쪽과 다리가 의자에 단단히 묶여있었으므로.

다리는 각각 의자 다리에 딱 붙어 단단히 묶여 있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팔 한쪽은 나름의 배려인지 의자와 팔 사이에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내 물음에 비스크 인형이 꺅꺅 신나는 비명을 질러대며 외쳤다.

“솔리테어!”

솔리테어? 솔리테어가 뭐야? 내가 게임 이름을 이해하지 못해 멍해 있는 사이 곰돌이와 토끼가 소녀를 타박했다.

“솔리테어는 했잖아!”

“솔리테어는 여럿이 같이 못 하잖아!”

여러 명이 못하고 이미 한 게임. 혹시 문 고르기 때 활용됐던 게임 이름이 솔리테어인가.

아무렇게나 놓인 카드를 K부터 A까지 순서를 맞춰 놓아야 하는 게임.

그거라면 확실히 여러 명이 하긴 어렵다. 할 수야 있지만 그럼 협동이지 경쟁이 되진 못할 테니까.

“이잉…….”

비스크 인형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토끼 인형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과장된 동작으로 두 손을 짝하고 쳤다.

짝하고 쳤다곤 했지만 솜인형이라 별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럼 원 카드 하자!”

토끼의 말에 비스크가 고개를 다시 들어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원 카드 해!”

그러자 곰돌이가 반론하려는 듯 과장된 동작으로 탕 하고 책상을 쳤다.

탕 하고 쳤다곤 했지만 솜인형이라 별소리가 나진 않았다.

“난 싫어!”

곰돌이의 반대에 토끼와 비스크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럼 뭐 해?”

“그럼 뭐 해?”

“도둑 잡기 해!”

곰돌이의 주장에 비스크가 다시 한번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도둑 잡기 해!”

그러자 토끼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며 드러눕는 아이처럼 몸부림을 쳐댔다.

“싫어! 싫어! 원 카드 해! 원 카드 해!”

비스크 인형이 눈치 없이 외쳤다.

“좋아! 원 카드 해!”

토끼의 주장과 비스크의 동의에 곰돌이 역시 괜한 고집을 부리며 발을 구르는 아이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책상을 탕탕 쳐댔다.

물론 딱히 위협적인 소리가 나진 않았다.

“싫어! 도둑 잡기 해! 싫어! 도둑 잡기 해!”

비스크 인형이 또 눈치 없이 동의했다.

“좋아! 도둑 잡기 해!”

나는 이 멍청한 대화를 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거지. 시간도 한정되어 있는데.

내 생각에 동의하듯 한들이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 쟤네 왜 저래? 어디 모자란가?

‘내 말이.’

다행히 원 카드와 도둑 잡기 둘 다 룰은 알고 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시간이 적게 걸리는 걸 골라야겠지.

원 카드는 공격 카드도 있고 운만 좋으면 빨리 끝날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한 판에 들어가는 시간이 굉장히 길어진다.

도둑 잡기는 무조건 카드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해야 하니 빨리 끝낼 수는 없지만, 카드가 추가될 일도 없으니 길어지지도 않는다.

안전한 걸 고르려면 도둑 잡기가 낫겠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인형들의 멍청한 말다툼을 중재했다.

“나는 도둑 잡기 하고 싶어. 이 대 일이야. 도둑 잡기 해.”

뭐든 좋다고 하는 비스크 인형 의견은 없는 거로 쳐도 되겠지.

내 말에 비스크와 곰돌이가 두 팔을 쳐들고 신나게 목소리를 높였다.

“예에!”

“야호!”

토끼는 실망한 듯

“잉…….”

하며 두 귀를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였다.

……내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

게임이 결정되자 각자의 앞에 카드가 배분됐다.

내가 열네 장. 인형들이 열세 장씩. 내 카드에 조커는 없다.

우선 중복되는 카드를 찾아 하나둘 버리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인형들도 신중하게 자신의 카드를 살피며 중복 카드를 버리고 있었다.

도둑 잡기는 우선 모든 카드를 나눠 가지고서, 짝이 맞는 카드를 모두 버린 다음에 시작하는 게임이다.

순서대로 옆 사람 카드를 하나씩 가져오다가 짝이 맞는 카드가 들어오면 카드를 버리면서 수를 줄이는 게임.

카드가 모두 없어지면 게임에서 빠지는 거고.

마지막에 조커가 있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나는 하트 7 두 개를 버리며 인형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근데 그냥 카드 게임만 하는 거야?”

그러자 비스크 인형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말 안 했다! 벌칙 받기도 할 거야! 네가 지면 오른팔 줘!”

오른팔은 의자에 묶여 있는 팔이었다.

그럼 혹시 다리도? 그렇게 생각하는 즉시 토끼와 곰돌이가 각각 외쳤다.

“나는 왼 다리!”

“나는 오른 다리!”

……즉, 팔다리를 온전히 달고 있고 싶으면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소리였다.

져서 전부 잃으면 결박에서 벗어날 순 있겠지만, 환상 속이라도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은 쓰고 싶지 않다.

환상이라도 감각은 모두 선명하고 또 현실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럼 너희가 지면?”

내 물음에 인형들이 서로를 마주 봤다. 서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어?”

재촉하듯 묻자 비스크 인형이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카드 게임 또 해! 또 놀아!”

곰돌이와 토끼 역시

“또 해!”

“또 놀아!”

하며 비스크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싫어. 나도 얻는 게 있어야지. 내가 지지 않으면 풀어줘.”

그러자 인형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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