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18화 (18/84)

[18] 악령석 (2)

연주와 나는 동시에 몸을 경직시켰다.

내가 심각한 얼굴로 소리가 들려온 벽 쪽을 응시하고 있자, 연주도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아, 아까 두 사람이 들어갔어. 여자랑 남자……. 저 방은 날 납치한 아줌마가 있는 곳인데…….”

가윤과 세훈이 교주에게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 비명의 주인은 거의 백 퍼센트 교주일 테지.

나는 고개를 내려 연주를 바라봤다. 연주도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한가람, 우리 빨리 나가자……. 빨리.”

연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팔뚝을 꽉 잡았다.

나 역시 연주를 데리고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대로 아예 밖으로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연주와 함께 안전한 장소로 가고 싶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내 팔뚝을 꽉 움켜쥔 연주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미안해. 조금만…… 잠깐만 기다려줘. 저대로 둘 수는 없어.”

눈물 콧물로 엉망진창인 얼굴이라 하나도 안 멋있겠지만 표정만은, 결의만은 단단히 다진 표정이었을 거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야 절실했지만 이대로 나가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예린의 얼굴을 다시 볼 면목도 없고.

엄마 이야기를 하며 울던 예린의 얼굴이, 그리고 연주 생각을 하느라 예린의 고통에 공감해주지 못했던 당시의 자신이 이 자리에 발을 붙이게 했다.

“잠깐만!”

내가 비밀 방의 더 안쪽 문을 열려고 하자 연주가 다급하게 날 붙잡았다.

“진짜 위험해. 아까부터 계속 깨지는 소리랑 싸우는 소리랑…… 비명 소리가 들린다고. 한가람, 우리 그냥 나가자. 빨리.”

나는 코를 훌쩍이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갈 순 없어. 괜찮을 거야. 다 아는 사람들이야.”

“한가람!”

연주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섭고 마음이 급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다니까. 너 전에 우리 사장님 봤지? 그 머리 짧은 여자 사장님. 우리 사장님이 구하러 오기로 했어. 금방 오실 거야. 우리 사장님 엄청나게 세거든. 진짜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한주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연주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리고 잽싸게 문을 열어 방 안쪽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야! 한가람!”

닫힌 문 건너편에서 연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쪽 방엔 악령석이 가득했다.

몸싸움이라도 있었는지 악령석과 선반, 유리 파편 등이 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나는 소란의 중심으로 눈을 돌렸다.

예상 이상으로 끔찍한 광경에 헉하고 숨을 삼켰다.

교주가 깨진 유리 파편 위를 고통스러운 듯 뒹굴고 있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쳐댔는지 자잘한 핏자국이 멀리까지 튀어 있었다.

그렇게 카리스마 있고 당차 보였던 여자가 이토록 가엾은 모습으로 볼품없이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가윤이 가만히 교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셨네요?”

교주와 가윤에게서 떨어져 문 근처에 앉아있던 세훈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눈물 콧물로 엉망인 채 새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본 세훈이 푸하하 웃었다.

“뭐 하는 짓이에요?”

목소리가 덜덜 떨려 나왔다.

“음…….”

세훈이 뜸을 들이며 교주와 가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악령석 만드는 중이죠.”

“당장 그만둬요.”

세훈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직접 그만두게 하면 되잖아요?”

그 말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세훈을 노려봤다.

“무섭게 왜 그러세요.”

세훈이 살살 약을 올렸다.

나도 당장이라도 달려가 가윤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순간 발이 묶인 듯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놈의 결계가 또 나를 막아서고 있었다.

“우리도 시간이랑 정성을 엄청나게 들였거든요. 인제 와서 방해받을 순 없잖아요. 안 그래요?”

“내 알 바 아니죠. 당장 이거 풀어요.”

“그렇겠죠. 나도 풀기 싫어요. 가윤 님한테 무슨 말을 들으라고. 오늘 결계를 하도 쳐댔더니 너무 힘든데, 그냥 좀 가만히 있어 주세요.”

심장이 빠르게 쿵쿵 뛰었다. 오늘만 해도 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보니 감정의 격양이 심했다.

나는 이성을 잃고 소리치지 않으려 애쓰며 호주머니를 뒤졌다. 손끝에 둥글고 차가운 표면이 만져졌다.

다시 한번 보석을 움켜쥐었다. 세훈의 결계가 순식간에 깨져 내렸다.

세훈이 순간 놀란 목소리를 내고는, 무언가 타격을 받았는지 컥컥거리며 괴로운 듯한 신음을 냈다.

그런 세훈을 무시하고 재빠르게 가윤에게 돌진했다.

가윤이 살짝 뒤돌아보는 모습이 보이고…….

정신을 차려보니 벽에 처박혀 있었다.

머리가 징징 울리고 세게 부딪힌 등이 얼얼거렸다. 가윤이 교주를 등지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가람 씨. 신성한 의식 중이에요.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뻔뻔하고 정신 나간 것 같은 말.

그 말에 얼굴이 홧홧하고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올랐다.

“제정신이에요? 미쳤어, 당신.”

가윤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좀 미치면 어때요? 이렇게 좋은걸.”

그렇게 말하는 가윤의 눈동자 속에는 가늠할 수 없는 광기가 들어있었다.

소름이 돋다 못해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가윤이 날 빤히 바라보며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였다. 악령석들이었다.

굉장히 많은 가공을 거친 듯한 모양들.

심플한 모양새였던 여타의 악령석과는 다른 굉장히 화려한 모양이었다.

“교주가 딱 열 번째예요.”

손 위에 있는 악령석은 총 아홉 개. 교주가 열 번째라는 것은, 저 악령석이 전부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그 사실을 직시하자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 반응해야 할지도 몰라 가만히 가윤을 바라봤다.

가윤이 잔잔하게 웃는 얼굴로 보석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게 내 첫 번째 수집품.”

불길한 검붉은 색을 띤 구형의 보석 주위를 나뭇잎 꼴의 굵은 은테가 감싸고 있었다. 옛 이집트벽화가 생각나는 눈 모양.

보기만 해도 역겹고 소름이 돋았다.

“나와 한주의 친한 친구였죠.”

뭐였다고? 친구?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며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뛰었다. 가윤이 내게서 눈을 돌려 다시 교주를 내려다봤다.

“타락한 인간은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교주는 내 수집품 중에서도 특별해요. 시간을 들인 게 아깝지 않아.”

환희가 담긴 목소리.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거친 숨이 산발적으로 내쉬어졌다.

괴성을 지르며 고통에 발작하는 교주의 몸이 어느 순간부턴가 불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거의 다 됐어요. 이것만 있으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염원과 세상의 온갖 어지러운 소리들과 그 위에 솟아나는 외로움, 혼란.

피비린내가 나던 방 안에 시원한 나무 냄새가 맴돌고, 교주의 비명을 덮을 정도로 큰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방 안을 메꿨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셀 수도 없이 많고 절실한 갈망이 염원이 나를 짓눌렀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신성하고도 불길한 기운에 질식할 것 같았다.

바라는 것은 이 감정을 풀어내는 것. 오직 그것뿐.

이성을 잃은 눈이 가윤을 꿰뚫어 봤다. 가윤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말도 안 돼.”

가윤의 망연한 중얼거림도 들려오지 않았다.

저 여잘, 죽여야 해. 죽어야 해.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어서 빨리 죽여야 해.

머릿속을 지배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 끊임없이 속삭여댔다.

죽여야 한다고. 지금 당장 저 여잘 죽여야 한다고.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세뇌하듯 모든 어지러운 소리들이 전부 저 여잘 죽여야만 한다고 나를 뒤흔들었다.

몸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윤이 한 걸음 뒤로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더 다가가자 가윤 역시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던 가윤의 발이 교주에게 걸려 엉덩방아를 찌었다.

순간 교주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 절정에 달하며 교주가 몸을 경직시켰다.

교주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쪼그라들어 한 줌의 보석이 되어 방 안에 떨어졌다.

가윤이 재빨리 그 보석을 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둘 줄 알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강한 파동이 퍼져나가 가윤의 몸이 뒤로 밀렸다.

쿵! 소리를 내며 가윤이 진열장에 처박혔다.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쉴 새 없이 기침하는 가윤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나를 올려다보는 가윤의 눈에 확실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그만둬!”

뒤에서 세훈이 필사적인 목소리를 냈다. 내게 달려드는 세훈을 날파리를 쫓듯 가볍게 튕겨냈다.

가윤의 코앞까지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손을 뻗어 가윤의 목을 잡았다. 가늘지만 따듯하고 맥박이 뛰는 목. 살아있는 목. 목을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을 가했다.

가윤이 내 손을 잡고 떼어내려 발버둥 쳤다.

“너…… 너어…….”

가윤이 씹어뱉듯 말하며 날 노려봤다.

손톱이 내 손을 파고들었다. 살이 찢기는 느낌이 났지만 아프지 않았다.

가윤이 가진 악령석을 동원해 나를 떨쳐내려는 듯했지만, 신목의 힘을 입은 내게 악령석 몇 개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컥!”

정말로 끝장을 볼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진정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들린다. 가볍지만 당당한 걸음 소리. 어깨 위에 손이 살포시 놓였다.

한주가 내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주의 시선은 가윤에게 꽂혀 있었다.

“한심한 꼴이잖아, 이가윤.”

살짝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가윤이 한주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재회한 자매 사이에 끼어 한주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격양된 감정과 신목의 혼란에 먹혀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조금씩 맑아졌다.

차분해진 머리로 처음 생각한 것은, 내가 가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가윤의 목에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한껏 힘을 주었던 터라 손이 굳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주의 손이 내 팔뚝을 잡고 들어 올렸다. 손이 조금씩 가윤의 목에서 떨어졌다.

가윤이 목을 잡고 콜록거렸다. 그제야 가윤의 손톱이 파고들었던 손등이 따끔따끔 아파지기 시작했다.

“한주 씨…….”

어떡해야 할지 몰라 망연히 한주를 바라봤다. 한주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살짝 한숨을 쉬고 말했다.

“연주는 동훈이 편에 들려 먼저 내보냈어. 너도 그만 나가자. 보니까 내가…… 좀 늦은 것 같네.”

그렇게 말하는 한주의 손엔 교주가 변한 악령석이 들려 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에 온몸의 핏기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극도로 이어져 온 긴장이 한순간에 탁 풀린 느낌. 온몸이 차갑고 기분이 나빴다.

이런 와중에도 온갖 소리들이 수많은 감정들이 계속 내게로 흘러들고 있었다.

컨디션이 나쁜 상태로 신목과 동화돼 이대로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옆에 선 한주의 존재만이 선명해서 한주를 등대삼아 겨우 제정신을 유지했다.

“컥, 커헉, 이한주…….”

가윤이 한주에게로 팔을 뻗었다. 한주는 악령석을 쥔 손을 뒤로 물렸다.

별것 아닌 몸싸움이었지만, 한주에게 초집중한 상태인 예민한 내 신경을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가윤의 몸이 다시 한번 땅바닥에 처박혔다. 유리 조각에 얼굴이 잘못 긁혔는지 바닥이 피로 젖어 들었다.

“우와.”

작게 감탄사를 내뱉은 한주가 가윤을 보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흉터 남는 거 아니야?”

딱히 걱정하는 투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동정심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진짜 꼴사납네.”

가윤에게는 한주의 말들이 굉장히 치욕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한주 역시 그걸 알 텐데 개의치 않고 생각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가윤이 얼굴을 부여잡고 한주를 차갑게 노려봤다.

“그거 내놔. 그게 어떤 건 줄 알고…….”

무섭도록 침착한 목소리였다. 한주 역시 뻔뻔하게 대꾸했다.

“싫어.”

한동안 말없이 두 사람 사이에 신경전이 이어졌다.

가윤은 시리도록 차가운 눈으로 한주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주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가윤이 얼굴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하얗고 말끔했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한주.”

가윤이 싱긋 웃었다. 상냥하고 따스한 미소였다. 극에서 극으로 변하는 표정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네가 그걸 감당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니?”

가윤의 말에 한주가 코웃음 쳤다.

“감당할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나 악령석 안 쓰는 거.”

가윤의 얼굴이 다시 무표정해졌다.

“가치도 모르는 게. 그걸…… 하필이면 네년이.”

한주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팩 돌렸다.

한주가 바라보는 쪽에 잠시 기절했다 막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모양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려 비틀거리는 세훈이 있었다.

“너.”

한주가 세훈을 바라보며 말하자 세훈이 안색이 나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년 데리고 그만 꺼져.”

한주가 턱으로 가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내 등을 툭툭 치며 나를 내려다봤다.

“너도 그만 일어나. 가자.”

나는 이대로 상황을 정리하고 자리를 뜨려는 한주의 손목을 있는 힘껏 붙들었다.

갑자기 손목을 잡힌 한주가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보고 황급히 손에 힘을 뺐지만 여전히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이대론 못 가요.”

한주가 성가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왜. 뭐 놓고 가는 거라도 있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한주의 조금 짜증스럽고 의아한 듯한 얼굴을 올려다본 뒤, 나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가라앉은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가윤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 살인범들이잖아요. 이대로 그냥 풀어줄 거예요?”

“……가람아.”

“예린이 엄마도 이 사람들이 죽였잖아요. 한주 씨 친구도 이 사람이 죽였다면서요.”

“한가람.”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그냥 놔둬요? 어떻게 못 본 척해요?”

가윤이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한주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말대로 얘네들을 잡는다고 치자.”

나를 내려다보는 한주의 눈이 조금 지쳐 보였다.

“경찰서에 데려가서, 뭐라고 할 건데? 뭘 어쩔 거냐고. 아니면 네가 직접 단죄할래? 영웅 놀이라도 하면서?”

“…….”

“방법이 없잖아.”

자신의 무능함을 당당히 고하는 눈.

한주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가윤의 단죄를 바라왔을지도 모르겠다.

한껏 고민하고 고민 한 끝에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랬다면 자신의 무능함을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아파했겠지.

누가 자신이 무능한 걸 인정하고 싶을까. 특히 한주 같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인정하기까지 아주 많은 실패를 겪었을 것이다.

한주의 손목을 놓고 한주가 내미는 손을 얌전히 맞잡았다. 방을 나가는 내내 가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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