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14화 (14/84)

[14] 귀신 소동 (2)

일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저것이 예사 것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아…… 너무 작은 낙서라 잘 안 보이나 보네요. 그럼 괜찮아요.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우선 대충 얼버무리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마 목각 귀신의 행동반경인 삼 층 내에 저 별 모양 다섯 개가 있을 거다.

기숙사 안을 살펴보기는 어려우니 층계와 복도부터 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삼십 분 동안 복도와 층계를 돌아봤지만 찾은 별 모양은 고작 두 개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방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방 안을 조사해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목각 귀신 건으로 찾을 게 있다고 하면 이해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찾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지금으로선 모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형제님? 뭐 잃어버린 거라도 있으신가요?”

복도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고민하는데, 기숙사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아뇨, 잃어버린 건 없는데…….”

“아…… 계속 뭔가를 찾는 것 같길래…….”

……찾기는 했지만. 확실히 삼십 분이나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건 이상해 보이겠지.

어떻게 설명해야 최대한 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혹시 목각 귀신을 찾고 계신 겁니까?”

지태였다.

“목각 귀신이요? 그걸 왜?”

남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지태가 사람 좋게 웃으며 내 어깨를 한 번 더 팡팡 쳤다.

“여기 계신 형제님이 특례로 올라오신 분 아닙니까. 이런 문제에 관해 아주 잘 안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목각 귀신 좀 퇴치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참 든든하지 않습니까?”

든든은 무슨! 잘 안다고 한 적 없다. 조금 익숙하다고 했다. 조금.

터무니없는 오해를 정정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나보다 남자가 더 빨랐다.

“와! 과연 괜히 특례로 올라오는 게 아니죠! 귀신 때문에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이젠 좀 안심할 수 있겠네요!”

“그쵸!”

“…….”

이거 정정할 분위기가 아니다. 복도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댔으니 소문까지 퍼질 것 같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결심을 다졌다. 귀신 퇴마하겠다고 나대는 루트로 가자.

몸을 사리며 조사한다는 선택지는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남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맡겨주세요.”

* * *

목적 따윈 딱히 없다. 바람 따라 길 따라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할 뿐.

그런데 갑자기 몸이 튕겨 넘어졌다. 앞엔 아무것도 없는데.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었다. 또 한 번 몸이 튕겨 나갔다.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줘야겠어.”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벽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이 그린 것을 봤다. 별 다섯 개였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람은 기분 좋게 웃는 얼굴로 이 그림이 무엇인지 설명해줬다.

“널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결계야. 이걸 지워야 나갈 수 있어.”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세상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 이걸 지우고 밖에 나가자.

사람이 그린 별 모양에 손을 뻗었다. 별에 손이 닿은 순간 온몸에 격통이 느껴졌다.

자리에 엎어져 고통에 뒹굴거리자 다시 사람이 웃었다.

“안 돼, 건들면. 위험하니까.”

너무 아파서 몸이 덜덜 떨렸다. 내 손으론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또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을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지…… 지워줘…….”

사람이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안 돼.”

요란한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방금 그 꿈은 목각 귀신의 꿈인가. 목각 귀신을 이곳에 가둔 사람이 있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무언가 장난질을 쳐놓은 건지, 그 사람에 대한 단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준비를 하고 아침기도를 위해 지태와 세훈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 사람은 별을 같은 곳에 다섯 개 연달아 그렸었다. 그런데 어제 발견된 곳은 층계 천장.

혹시 위치가 계속 바뀌는 걸까.

층계에 들어서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제는 멀쩡히 있던 별 모양이 오늘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세훈은 이 개월 전쯤부터 귀신이 많이 출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각 귀신을 보면 그쯤부터 누군가가 고의로 귀신들을 잡아두고 다녔을 확률이 높다.

교주나 가윤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이 있나?

목각 귀신의 꿈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신경이 쓰이니 무슨 목적인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다른 귀신들과도 접촉해서 한 번 정보를 모아봐야겠다.

삼 층 기숙사는 어차피 자주 드나들어야 하니 모양이 보이는 대로 지워두고, 지금은 일단 부지 안을 돌아다녀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지태가 고개를 들었다.

“퇴마하러 가시는 겁니까?”

“네. 목각 귀신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겸사겸사 다른 곳도 봐두려고요.”

“입교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도들에게 헌신적으로 공헌하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배워야 할 텐데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야……. 아,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곳을 좀 아시나요?”

지태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몇 곳을 아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기숙사 뒤쪽에 있는 연못이랑 운동장 가장 안쪽에 있는 벤치를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여기도 말이 많아서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가볼게요.”

연못과 벤치. 일단 가까운 연못부터 가봐야겠다.

연못 근처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아니어도, 나무나 주변 건물 때문에 낮인데도 어두컴컴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니 사람이 없을 것 같긴 했다.

연못도 물이 탁하고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게, 구경하러 올 만한 연못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 주변은 햇빛이 들지 않아 쌀쌀하니 춥기까지 했다.

이제부터 어떡하면 되려나. 연못 근처로 다가가볼까? 괜히 잡혀서 연못에 빠지는 건 질색인데…….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연못 귀신도 그 꿈속의 사람 짓이라면 여기 어딘가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모른다.

나는 연못 쪽을 의식하면서 우선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그림이 계속 움직일 테니 시설물에만 그려져 있진 않겠지만, 맨땅을 샅샅이 뒤지는 것보단 시설물부터 확인하는 게 빠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벤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벤치 표면을 꼼꼼히 살펴봤다. 모든 벤치를 샅샅이 뒤졌지만 벤치에서는 그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림을 찾으려면 다른 시설물이나 이 공터 전부를 뒤져봐야 할 텐데.

그림이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으니, 뭔가 굉장히 무식하게 조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렇게라도 단서를 얻는 것밖엔.

목각 귀신을 묶어놓은 사람의 정체와 목적도 파악해두고 싶고, 교주의 개인 주택에 가까이 다가갔다 걸리더라도 귀신 핑계를 대면 큰 의심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탁탁 터는데 연못 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연못을 보니 연못 중앙에 작게 파문이 일고 있었다.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 연못 쪽을 바라봤다.

작았던 파문이 점점 큰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있었다.

물 밑에 무언가가 있다. 나는 파문의 중심을 응시했다.

수면 아래로 검은 덩어리가 떠올랐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무섭지만 늘 그랬듯 어떻게든 헤쳐나갈 자신이 조금은 붙었으니까.

검은 털 뭉치가 연못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다.

얼굴이 절반 정도 나온 시점에서 귀신이 고개 내밀기를 멈췄다.

그 상태에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살짝 흘러내려 입가가 보였다.

“허억…… 헉…….”

귀신이 숨이 막힌 듯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나는 긴장한 채 귀신을 바라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귀신은 물결을 따라 작게 흔들릴 뿐 내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떡하지……. 다가가볼까? 침을 꿀꺽 삼켰다.

물귀신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작아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서 다가가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유명한 귀신이다.

그런 녀석이니 도무지 다가가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는 시간 낭비만 할 뿐이다.

숨을 크게 내쉬고 살금살금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연못 귀신 근처로 다가갔다.

귀신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도 없이 여전히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저기…….”

마침내 가까이 다가가 연못 귀신에게 말을 걸었다.

녀석은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요지부동인 상태다. 나는 경계를 풀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너 말야, 혹시 여기에…… 헉!”

조심조심 결계에 대해 물으려는데 갑자기 발목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니 어느새 연못 귀신이 팔을 뻗어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자, 잠깐! 잠깐만!”

귀신이 내 발을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설마, 아니지?

나는 식겁하며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귀신이 엄청난 힘으로 내 발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시야가 빙글 돌았다.

분명히 칙칙한 색깔의 땅과 연못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질질 끌리고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몸에 부유감이 들었다.

소름 끼치게 차가운 감각에 당황해 기침하듯 숨을 터트렸으나 숨은 쉬어지지 않고 공기 방울만 위로 올라갔다.

귀신에게 잡힌 다리를 빼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물속이라 힘도 잘 들어가지 않고 귀신의 힘은 더 강해졌다.

아니, 교주랑 가윤은 사람을 잡아 빠트리는 위험한 귀신이 나왔는데도 해결 안 하고 뭐 한 거람?

역시 가까이 오는 게 아니었는데. 계속 발버둥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동훈의 책엔 이럴 땐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진정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놀라고 무서워할수록 귀신의 힘이 더 강해진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 갔다.

아니 이런 데 파놓은 연못이 뭐 이리 깊어!

불평하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는데, 바닥에 도착한 건지 귀신이 움직임을 멈췄다.

일단 상황을 확인하려고 눈을 뜨려 노력하는데 발을 잡고 있던 힘이 풀렸다.

응? 하며 눈이 확 떠진 순간 눈앞에 무언가가 들이밀어졌다.

얼결에 그걸 받아들자 힘을 빼려 노력한 몸이 다시 위로 떠올랐다.

“컥! 헉, 헉…….”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물 밖으로 피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귀신한테 받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손에 들린 건 작은 돌이었다.

흐릿한 초점을 바로잡으며 돌을 노려보자 돌에 작게 그려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삼각형 두 개를 합쳐 만든 별 모양……. 그 그림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이걸 보여주려고 날 끌고 들어간 건가. 말로 하지 말로.

연못 귀신이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눈앞에 다시 나타난 귀신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지만, 귀신은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내게 돌을 건네며 잠깐 만졌던 게 탈이 났는지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잠시 시간이 흘러 연못 귀신이 진정된 것 같아 겨우 귀신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너도 누가 여기 가둬 둔 거야?”

귀신이 몸을 덜덜 떨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림이 전부 물속에 있어?”

귀신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이렇게 탁하고 냄새나는 연못엔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데…….

근데 이거 내가 지운다고 지워지는 건가? 반대쪽 손을 들어 돌 위에 그려진 그림을 엄지로 문질렀다.

다행히 그림은 쉽게 지워졌지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에 경기하며 들고 있던 돌을 놓쳤다.

퐁당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돌이 저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림은 지웠으니 떨어져도 상관없겠지만…… 닭살이 난 양팔을 문지르며 돌이 떨어진 곳을 응시했다.

결계를 풀 수 있는 건 다행인데, 이 느낌을 네 번은 더 견뎌야 결계를 풀 수 있는 건가?

불길한 예감에 귀신을 보며 물었다.

“저 그림이 네 개 더 있는 거야?”

귀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 개 더 있는 게 아니라고? 설마 더 많아?

“……그럼 더 많아?”

귀신이 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살짝 기대하며 물었다.

“그럼 이제 없어?”

귀신이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물장구를 한 번 쳤다.

“혹시 한 개 더?”

귀신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목각 귀신은 별 그림이 다섯 개 있다고 말했는데, 여긴 두 개? 귀신의 힘에 따라 개수가 다른 건가?

의아했지만 앞으로 한 개만 더 찾으면 끝이라니 다행이었다.

……물속에 있는 게 문제긴 하지만.

물속을 내려다보며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왕 들어온 거 빨리 찾고 나가자 싶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물 안쪽으로 잠수했다. 물이 탁하고 눈이 따가워 오래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잠수하고 바닥을 헤집고 숨을 쉬고 다시 잠수하기를 한참이나 반복했다.

연못 귀신도 함께 찾아주는지 내 주위를 알짱거리며 움직였다.

몇 번째 잠수일까, 손가락으로도 다 못 셀 횟수가 되었을 때 귀신이 내 팔을 툭툭 쳤다.

귀신 쪽을 바라보니 귀신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깊은 바닥이 아닌 호숫가의 얕은 부분 쪽에 무언가가 그려진 돌이 보였다.

잠수하지 않고 팔을 뻗어도 닿을 만한 위치였다. 그걸 보자 여러 번 잠수한 게 허무해졌다.

……생각보다 빨리 찾은 걸 다행으로 여기자.

좋게 생각하려 애쓰며 돌 근처로 다가갔다. 돌을 잡고 물 밖으로 나가 확인하니 확실하게 별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쉽사리 그림을 지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까 느꼈던 불쾌한 감각이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만히 돌만 노려보고 있자 귀신이 초조했는지 내 주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귀신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런 좁은 연못에 혼자 억지로 갇혀 있으려니 답답했겠지.

다시 별 그림을 노려봤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지만 하는 수밖에.

다시 엄지로 그림을 문질렀다. 그러자 온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으…….”

몸을 잘게 떨고 있는데 주변의 공기가 확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내려보니 귀신이 양손으로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고…… 마, 워…….”

숨을 들이켜며 말하는 듯 꺽꺽거리는 작은 소리였지만, 귀신의 마음이 확실하게 전달됐다.

그렇게 말한 귀신이 내 손을 놓고 물 안쪽으로 잠수해 사라졌다.

연못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잠수해 들어간 귀신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것이 느껴졌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기숙사로 들어가려니 상당히 쪽팔렸다.

신도들의 시선이 팍팍 와 박혔다. 연못 귀신을 빨리 풀어줄 수 있었던 건 좋지만, 날도 추운데 물에 한참이나 들어가 있었더니 몸이 절로 덜덜 떨려왔다.

이거 분명히 감기 걸린다.

춥고 쪽팔린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에 지태랑 세훈이 없으면 좋을 텐데. 이런 꼴로 들어갔다가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됐다.

그 둘이니까 싫은 소린 안 하겠지만, 그냥 이런 꼴로 방에 들어가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기숙사 안이니까 이런 꼴로 들어갔다간 결국 누가 지태나 세훈한테 물어볼 확률이 높겠지만…….

걱정하며 304호 문 앞에 섰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또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창백한 얼굴을 한 지태가 뛰어나오고 있었다.

이번엔 다행히 부딪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좀 위험하지 않나?

불만스러운 얼굴로 지태를 올려다보는데 날 발견한 지태가 울상으로 외쳤다.

“한가람 형제님! 박세훈 형제님이 다치셨답니다! 가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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