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12화 (12/84)

[12] 영광의증명 (3)

벌레 귀신에 대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도 될까. 괜히 벌레 귀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밝혔다가 의심을 사게 되는 게 아닐까.

숨을 길게 내쉬었다. 혼자 생각해봤자 소용없다. 모든 게 다 끝장난 것도 아니다.

나도 한번 떠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어지럽게 울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했다.

“네. 압니다.”

교주의 얼굴을 살폈다. 표정 변화가 없다. 교주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왜 나오나요?”

교주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벌레 귀신은 원한에 꼬입니다.”

“흠…….”

교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교주가 나를 찬찬히 살폈다.

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다리를 꽉 억눌렀다.

“교단에 원한이 생길 만한 사건이 있었다는 의미인가요? 그 귀신에 대해 어떻게 알죠?”

흥미로워하면서도 꿰뚫어 보는 듯한 눈. 의심하는 듯한 말투. 나를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다.

이건…… 청신호다. 교주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란 걸 모른다. 알고 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나는 지금 독 안에 든 쥐 상태다. 교주가 나를 잡으려 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교주는 나를 떠보고 경계할 뿐, 다른 태도는 취하지 않고 있다.

그건 즉 교주가 아직 나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원래의 계획은 이제 어렵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윤이다.

슬쩍 가윤을 바라봤다. 가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속으로 동훈에게 절하며 가방을 뒤졌다.

천만다행이도 교주에게 의심받지 않고 벌레 귀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증거물이 있었다.

을 꺼내 교주에게 보이자 교주가 책에 관심을 보였다.

“이건?”나는 벌레 귀신 페이지를 펼치며 말했다.

“귀신이 하도 꼬이다 보니 열심히 공부했어요. 살기 위해서.”책에는 간단한 삽화와 함께 벌레 귀신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교주가 책을 넘겨받아 내용을 훑어봤다.

방 안에 한동안 책 넘기는 소리만 흘렀다.

가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교주를 의식하면서도 가윤을 곁눈질했다.

교주보다 가윤이 문제다. 지금 교주를 무사히 속여넘기더라도, 가윤이 허튼소리를 하면 당장이라도 위험해질 수 있다.

“신기하네요. 이런 책도 있었나요?”책을 대충 훑어본 교주가 내게 책을 되돌려줬다. 그리고 가윤을 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귀신이 나온 걸까요?”뻔뻔하긴.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예린을 죽이고 연주를 납치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지.

교주를 탓하는 목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아직 안 된다. 아직 교주에게 아무것도 들키지 않았으니 참아야 한다.

줄곧 눈을 내리깔고 있던 가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조사해보겠습니다.”사무적이고 모범적인 대답이다. 공범자의 그림자도 목격자의 편린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제삼자 같은 대답.

모두 어떤 원한인지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아까 본 벌레 귀신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장난스러워 보였던 예린을 떠올렸다.

그야 원통했겠지. 믿었던 엄마에게 배신당한 거니까.

예린의 웃는 얼굴을 떠올릴수록 가슴이 아파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가윤이 나를 슬쩍 보며 말을 이었다.

“교주님. 가람 형제님의 보호를 요청해도 될까요?”……보호?

잘못 들었나 싶어 가윤을 돌아봤다. 가윤은 진지한 얼굴로 교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윤의 말에 교주가 다시 날 바라봤다.

“과연. 가람 형제님은 악귀 때문에 위험한 일을 많이 겪죠?”의례적인 질문이다. 아니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게…….”작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어제 사고로 입원하게 된 기숙사생 형제님이 계세요. 그 자리가 임시로 비어있는데, 거기로 가시면 될 것 같아요.”가윤이 그렇게 말하며 날 바라봤다.

갑자기 기숙사에 들어가라니. 안 된다. 한주, 예린과 연락이 이대로 끊겨버리면 곤란하다.

거절하려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저…….”“저런 소동을 일으킬 정도의 귀신이 나왔으면 다른 귀신들도 연달아 나올 거예요. 안전이 파악될 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지내세요.”내 말을 끊은 가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도 그렇다는 듯 가윤의 편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가람 형제님. 혹시 기숙사 입소가 어려우신가요?”교주가 그렇게 말했지만 교주를 볼 수는 없었다. 가윤의 눈 때문이었다.

조용한 눈동자였지만 정색한 표정에서 분명한 경고가 전해져왔다.

지금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윤이 모든 것을 말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결정된 다음엔 일사천리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수속을 다 밟고 다시 가윤의 상담실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가윤이 막 발급받은 기숙사 카드키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원해드릴 거니까요. 특례로 바로 제자급으로 올려드릴 테니, 활동에 필요한 포인트도 스스로 모을 수 있을 거예요.”나는 카드키를 받지 않고 가윤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이에요?”기숙사의 규칙은 단순하고 억압적이다.

아침 기도 참석, 통금시간 엄수,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개인기기 금지, 허가 없는 영광의증명 부지 이탈 금지.

즉, 부지 안에서 외부와 연락하지 않고 종교 스케줄에만 따를 것.

명목은 보호지만 사실상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가윤이 카드키를 내밀었던 손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아까 말한 그대로예요. 가람 형제님을 보호하고 싶어요.”“내 의견은 무시하고요? 난 왜 여기에 온 거냐는 가윤 씨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가윤 씨가 무슨 생각인지도 전혀 모르겠고요.”가윤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기죽은 얼굴로 속을 삭이는 듯 눈을 감고 있던 가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주님이 내게 가람 형제님의 뒷조사를 부탁하셨어요.”“…….”“교주님께는 가짜 정보를 전할 생각이에요.”“왜요?”가윤이 고개를 들었다. 서글퍼 보이는 얼굴이었다. 왜 저런 얼굴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공범자인지 목격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죄책감이 크면서 왜 지금까지 침묵했는지. 지금은 왜 또 독단적으로 날 잡아두려 하는지.

가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악령석에 대해선 아시겠죠. 한주와 일하고 있으니까.”가윤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 아니었다. 한주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말투였다.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가윤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또 한주가 얼마나 많은 악령석을 가졌는지는 아세요?”‘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나는 어렴풋이 전해 들었을 뿐이니까. 한주도 자세한 건 이 일이 끝나면 알려주겠다며 어물쩍 넘겼었다.

나는 가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한주 씨를 알아요?”가윤이 기운 없이 웃었다.

“알죠. 내 동생이니까요.”“동생이요?”“네. 지금은 남남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지만요.”가윤의 말을 듣고 보니 생김새가 한주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가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한주하고는 악령석 때문에 마찰이 생겼다고만 말씀드릴게요. 나는 한주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한주도 마찬가지였겠지만요.”“악령석이 대체 어떻길래요?”“악령석은 술자가 다루기 나름이에요. 하지만 대부분이 악용되고 남용되죠. 나는 그런 사례들을 많이 봐왔어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지…….”가윤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벗어나는 것만 위험한 게 아니에요. 한주처럼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이 받을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요. 힘을 얻은 사람은 엇나가기 마련이에요.”가윤이 한주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한주는 확실히 욕심 많은 독불장군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나한테 설명하지도 않고 몰래 지하실에 악령석을 꿍쳐두거나 악령석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안다는 느낌은 있지만.

……수상하긴 하지만, 가윤이 말한 건 아니라는 느낌이다.

가윤이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윤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가윤과 눈이 마주쳤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당황해 대답도 못 하고 가윤의 시선만 받았다.

“형제님…… 아니, 가람 씨의 생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한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쨌든 간에 나는 한주가 더 이상 악령석을 모으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한주 주변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가람 씨는 그러다 알게 된 거고요.”연주의 주변을 조사하다 나를 알게 된 게 아니라, 한주 주변을 조사하다 나를 알게 된 것이라면…… 가윤은 날 알고 교주는 날 모르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연주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내 의아한 표정을 봤는지 가윤이 말을 이었다.

“나는 퇴마사들이 악령석을 쓰지 않았으면 해요. 이 교단에 들어온 것도 교주님이 악령석에게 잡아먹히는 걸 막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얼마 전 악령석의 봉인이 갑자기 강해졌더군요.”가윤이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교주님이 악령석에 먹히는 것도 싫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이 희생되는 것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고 싶어서 교주님의 행적을 몰래 조사하다 연주 씨에 대한 걸 알게 됐어요. 가람 씨와 사촌이란 것도 금방 알 수 있었죠.”가윤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연주 씨를 구하고, 가람 씨가 한주 곁에 가지 못하게 만들 거예요. 당분간은 그냥 종교 활동에 전념하세요. 빠져나갈 기회는 제가 만들어드릴 테니까요.”“……물론 연주는 구할 거예요. 하지만 난…….”“가람 씨. 한주가 악령석을 모으는 데 나쁜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위험한 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난 한주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게 싫어요. 그러니까 가람 씨를 한주에게서 떨어뜨려 놓을 거예요.”가윤은 단호했다. 연을 끊고 남남처럼 살고 있대도 가윤은 한주를 모른 척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그렇게 말한 가윤이 날 굉장히 걱정스럽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가람 씨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예요.”위험하다니, 어떤 게?

내가 영매체질인 것이?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가윤은 그냥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 * *

304호 앞에 서서 망설였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야 하니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만 기분이 착잡했다.

대학교에서도 안 하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제자급 이상만 입소할 수 있는 기숙사에 낙하산으로 제자급이 돼 들어가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눈총받진 않으려나. 따돌림 같은 거 당하면 어쩐담.

한숨을 크게 내쉬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방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며 문이 내 얼굴을 가격했다.

“으…….”나는 문에 맞아 얼얼한 얼굴을 감싸고 비틀거렸다.

“헉!”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앞에 누가 있는지 몰랐어요.”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울상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갑자기 얼굴을 맞아서 황당하고 짜증 나긴 하지만, 저런 얼굴을 할 정도의 실수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얼굴이었다.

일단 의례적으로 괜찮다고 답변하려는데 방 안쪽에서 또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비명이었다.

깜짝 놀라 남자의 등 너머를 쳐다봤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훌쩍훌쩍 울며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뭐야, 이 상황은?

황당한 심정으로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나 싶어 방 안쪽을 들여다봤다.

이 층 침대 뒤쪽에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검은 털 뭉치가 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 털퍼덕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곧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검은 머리털을 발끝까지 늘어뜨린 사람 크기의 목각 인형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으악! 저게 뭐야!”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방 안에서 나온 남자 둘도 또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끼야아악!”“으아아악!”그러며 내 뒤로 숨어버렸다.

왜 이래!

뒤에 들러붙은 감각이 성가셔 떼어내고 싶지만, 둘한테 관심을 줄 여유가 없다. 일어나는 데 성공한 목각 인형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한 번 더 “으악! 으아악!” 하는 요란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소란에 반응한 듯 주변이 웅성거리며 근처 방의 문들이 벌컥벌컥 열렸다.

문밖으로 나온 남자들의 시선이 우리 세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우리의 비명으로 예삿일이 아닌 걸 알았는지, 누구는 식겁한 얼굴을 하고 있고 누구는 덜덜 떨면서도 태세를 잡고 있었다.

사람 수가 많아지자 안심이 되는 한편으로 당황스러웠다.

괜히 이렇게 몰려 있다가 아까처럼 여러 사람 다쳐나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됐다.

주변을 둘러보다 아차 싶어 다시 정면을 바라보니, 목각 인형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방 안에 무언가 있다는 듯 충격적인 얼굴로 방을 바라보던 셋. 둘은 내 뒤에 숨어있다.

이 상황에서 방 안엔 아무것도 없다.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 하지?

사람에게 피해가 없는 건 다행이지만, 온갖 소란은 다 떨어놓고 아무것도 없는 현 상황에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벌레가 나왔다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음…… 그게…….”“또 나왔나요?”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하려는데,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나온 남자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 뭐가요?”혹시 벌레가 많이 나오는 기숙산가? 순간적으로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빗자루를 든 남자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외쳤다.

“목각 귀신이요!”뭐야, 다들 아는 거였어? 남자들의 태도를 보니 유명한 귀신인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하려는데, 내 뒤에 숨은 다부진 남자가 꺼이꺼이 울며 대답했다.

“네, 네! 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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