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신목 (5)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눈뜨자마자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선가 단단한 쇠의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자 저 앞에 커다란 문이 하나 생겨 있었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무겁고 단단한 문.
보기만 해도 기가 죽을 정도로 굳건한 잠금장치가 달려있었다.
걸쇠에 자물쇠에 쇠사슬. 문을 잠글 수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끌어다 가져와 문을 겹겹이 잠가놓았다.
하지만 그래도 문이 있었다.
절대로 열 수 없을 것 같은 문이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문득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펼쳐보니 손 위에 우윳빛 보석이 쥐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봤다.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앞에 자물쇠의 열쇠 구멍이 보였다. 타원형으로 동그란 모양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을 그곳에 끼워 넣었다. 철커덕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은 여전히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잠금이 풀린 건지 만 건지 모를 아주 미미한 잠금 해제였지만, 분명한 건 문을 열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잠금을 풀어나가다 보면 언젠가 이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까마득하지만 강한 희망이 생겼다.
* * *
따끈한 밥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밥이냐 싶었다.
“아유, 복스럽게도 드시네. 많이 드세요.”
아주머니의 살가운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맛있어요.”
“종종 놀러 오세요.”
동훈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그대로 정신을 잃어 동훈이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는 모양이다. 아주머니 아저씨도 사정을 아는 듯 큰일을 겪었다며 나를 위로해줬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귀신 이야기를 하는 게 왠지 어색했지만, 동훈이 오래전부터 귀신에 휘둘려왔고 또 한주랑 소꿉친구 사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집이면 어떠려나. 엄마한테 귀신 얘기를 하면 미쳤다고 하지 않으려나.
만에 하나 믿어주더라도 걱정할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야 하겠지. 한주 집으로 옮기면서 거처 문제를 얼렁뚱땅 거짓말을 해놨으니.
“한주랑 같이 일하고 있다면서?”
아주머니의 말에 딴생각에서 벗어났다.
“동훈이가 그렇게 방해를 한다던데.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랬다면서. 또 그러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아뇨, 얼마나 많이 도와주시는데요.”
그러고 보니 그때 동훈이 전화를 받으며 한주를 노려봤었다. 아주머니한테 연락했던 거였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처음으로 한주의 집은 어떤 집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도 평범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일까, 아니면 나처럼 집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한주답게 심상치 않은 집안일 수도.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남의 집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것도 좀 껄끄러워 의문은 그냥 담아만 놓았다.
그러는 동안 금세 식사가 끝나버렸다. 동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권했다.
“가람 씨 출근 전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도 순순히 동훈의 권유에 응했다.
동훈의 방에 들어서자, 엄청나게 많은 귀신 관련 서적이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와…….”
감탄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이젠 별 도움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동훈이 그렇게 말하며 내게 두꺼운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드릴게요. 전부터 드릴까 고민했거든요.”
책에는
이라고 적혀 있었다.
“받아도 되나요?”“물론이죠. 자주 발생하거나 유명한 귀신에 대한 정보를 묶어 놓은 책이에요. 어릴 적부터 많이 겪어오다 보니…… 연구를 좀 했거든요.”감사 인사를 하며 동훈이 내민 책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책이 꽤 두꺼운 게 든든하기도 하고 무슨 귀신이 이렇게 많나 싶어 새삼 겁이 나기도 했다.
“혼자서 난감할 때 이게 있으면 좀 도움이 될 거예요. 한주는 능력을 타고난 애라, 가람 씨가 혼자서 대처할 방법은 거의 못 알려줄 거거든요. 그리고 이거요.”그렇게 말한 동훈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우윳빛 보석이었다. 조심스럽게 받아들자 동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갈까요? 출근하는 길에 한주 집에 내려드릴게요.”동훈이 보석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동훈은 어제 그 일에 대해 따로 묻지는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무언가 짐작한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너무 고마워서 염치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 두 사람과 이야기 하고 싶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왔어요.”그렇게 말하며 현관을 둘러보았지만 누군가 나오는 기색은 없다.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가면서 한주가 있을 법한 방들을 둘러보았으나, 한주도 한들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주의 방 앞에 서서 잠시 뜸을 들이다 문을 두드렸다.
“한주 씨.”대답이 없다. 문을 한 번 더 두드렸다.
“한주 씨, 저 왔어요.”역시 대답이 없다.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마음대로 열어볼 수도 없고.
손을 내리고 내가 가본 곳 외에 한주가 있을 만한 곳을 떠올려봤다.
생각나는 곳이 딱히 없다.
“집에 없나?”아침부터 어딜 간 건지 생각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불쑥 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방에 있어.”“우왓!”갑자기 끼어든 소리에 놀라 옆을 보니 어느새 한들이 있었다. 한들은 내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나 본데. 잠귀가 어두운가.”그러고 보니 이제 막 여덟 시가 되는 이른 아침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생활패턴이면 지금은 한참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겠지.
당연히 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주랑 셋이 있을 땐 괜찮았는데, 둘만 있으려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차라리 사건 직후에 이야기했으면 흥분한 채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화목한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제의 일이 벌써 꿈 같이 아득해진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다 무난한 화제를 골라 물었다.
“음……. 너 어디 있었어? 안 보이던데.”내 질문에 한들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지하에.”“지하?”“응.”그렇게 말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한들과 잠시 시선을 마주하다가 물었다.
“……이 집에 지하가 있었어?”“역시 몰랐구나.”한들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이는데, 한들이 그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화제를 바꿨다.
“어제 일 말인데.”갑자기 단도직입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지만 한들의 눈동자가 차분해서 나도 침착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응.”한들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꿈이라고 생각해?”이 질문에 한들도 내가 꾼 꿈을 함께 꾸었다는 걸 알았다.
머릿속에 어젯밤 꿈속의 크고 엄중한 문이 떠올랐다. 어지간해선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 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문.
아득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난…… 그 문이 네 환생 궤도로 가는 문이라고 생각해.”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니 정말로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심으로?”“응. 진심으로.”한들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무언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한들이 입을 열었다.
“어제 나는 이 집에 있었는데, 네 곁에 있기도 했어.”나는 잠자코 어제 일을 떠올렸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고 한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한주가 날 보더니, 신내림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신내림?”“그래. 정상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그렇대. 이제부턴 네가 내 업을 닦아줘야만 한댔어.”갑작스러운 단어의 출현에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이어짐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어쩐지 그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 남의 집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물었다.
“어……. 그럼 내가 무당이 된 거야?”한들이 대답하려고 입을 연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시끄러워.”한주가 잔뜩 짜증 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술을 들이켜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대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번엔 진짜 고마웠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니까. 근데 너도 고민 있는 거 아니냐? 말해봐. 들어줄게.”“됐어. 고민은 무슨.”내가 대답을 피하자 과대가 잠시 날 쳐다보다 물었다.
“……고기 더 시켜줄까?”“그럼 고맙고.”어제 나를 위험천만하게 만들었던 벨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과대였다. 자기 딴엔 고맙다고 전화하려던 모양인데, 덕분에 난 죽을 뻔했다.
살아나긴 했지만, 난데없이 신내림이라니…….
추가 주문을 하는 과대를 보며 나는 등교 전 한주와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그게 환생 궤도가 맞는지 아닌진 모르는 거고.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면 나쁜 건 아닐 거야. 이렇게 돼버렸으니 한번 열어보는 게 좋겠지.신내림을 받아버렸으니 한들의 업을 닦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해야만 한단다.
물론 문을 열 마음은 만만이긴 했지만, 신내림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와 박혔다.
인생이 정말로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럼 난 이제 무당이 된 거냐, 굿 같은 것도 해야 하냐 하며 한주를 귀찮게 하자 한주가 짜증 난 표정으로 대꾸한 것도 기억이 났다.
─ 굿할 능력은 있니?없지. 응, 없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얌전히 등교할 수 있었던 건 한주의 신경질 덕분이었다.
혼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주문을 마친 과대가 다시 내게 물었다.
“근데 너 진짜 고민 있는 거 아냐? 해결은 못 해줄지 몰라도 들어는 줄게. 말해봐.”나는 눈을 떠 과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왜.”“됐어. 고민 같은 거 없다.”“누가 그 얼굴 보고 고민 없다고 생각하겠냐?”나는 과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말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르며 질문했다.
“있잖아. 생각지도 못한 일에 휘말리면 어떻게 할 거야? 내키지 않아도 해야만 하게 되면?”“그냥 하면 되는 거 아냐?”과대의 단순명료한 대답에 고개를 휘저으며 반박했다.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 뭔가 좀 더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야.”“뭔 소린지 모르겠는데.”“아니, 인생이 완전히 꼬이게 될 수도 있게 됐다니까.”“알아듣게 말해라. 알아듣게.”이걸 곧이곧대로 설명하는 것도 좀 그렇고.
이미 꺼내버린 얘기 없던 거로 퉁치는 것도 성가실 것 같아, 그냥 질문을 다르게 바꿨다.
“아니, 그러니까…… 후우…… 그냥 인생이 자꾸 꼬이는 것 같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어렵고 힘든 일들만 자꾸 일어나고 하면 어떡할 거냐?”내 말에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지은 과대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땐.”“그럴 땐?”잠시 뜸을 들인 과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야지.”이놈을 믿은 내가 바보지.
“찌질한 새끼.”“너는.”피식 웃음이 나왔다. 별 도움은 안 돼도 이렇게 얘기를 나누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 까짓 거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 뭐.
그 후로 과대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고기를 집어 먹던 과대가 내 호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전화 온 것 같은데?”듣고 보니 뭔가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꺼내보자 한주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막 끊긴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왠지 불안해 부재중 통화 알림창만 노려보고 있는데 바로 메시지창이 떴다.
─ 그만 놀고 들어와.솔직히 말하면 무시하고 더 놀고 싶은데.
하지만 귀신같은 이한주가 또 무슨 소릴 할지도 무섭고, 무엇보다 그대로 메신저에 들어가 읽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답장을 보내는데, 술이 들어간 상태라 그런지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 무슨 일인디ㅣ요?바로 답장이 왔다.
─ 손님.이 시간에? 느린 손으로 타자를 치는데 내가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한주에게서 다른 문자가 더 도착했다.
─ 빨리 와.─ 밥 거의 다 믝읬는데 이긧미ㅡㄴ 먹고 갈게요.내가 답장을 보낸 것과 거의 동시에 한주의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 당장.
“안녕하세요.”단발머리 소녀가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갈색 교복에 빨간색 넥타이. 몇 번 본 기억이 있는 교복이었다.
“안녕. 그 교복, 오월 고등학교인가?”“네. 거기 다녔어요.”“다녔다니, 교복 입고 있는데?”내 물음에 소녀는 그냥 웃기만 했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 소녀를 자세히 보자, 풍경과 맞물리지 않는 듯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애가 손님이야.”가만히 있던 한주가 끼어들어 그렇게 말했다.
“손님이요?”“응.”소녀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딱히 절실해 보이지도 않았고 한주에게 의뢰할 만한 돈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소녀가 내 의아한 표정을 알아챘는지 물었다.
“왜요?”“아니, 음……. 무슨 일인가 해서.”“귀신이 퇴마사한테 의뢰하는 게 신기해요?”“……귀신이라고?”내가 놀란 얼굴로 묻자 소녀가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자가 없다. 산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미세한 흔들림도 없었다.
“뭐야, 너 몰랐어?”한들이 황당해하는 투로 핀잔을 줬다. 한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귀신이 대체 무슨 의뢰를 해? 비용은 어떻게 낼 건데?”한주는 돈 못 받으면 일 안 해주는데.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묻자 소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의뢰는 사이비 교단 퇴치고, 비용은 정보로 지불할 거예요!”“사이비? 정보?”“네!”얘기를 들어도 이해가 안 됐다.
사이비랑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리고 정보는 무슨 정보?
뭐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 눈만 깜빡이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아니, 오밤중에 전화해대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도대체 매너란 게 없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 위에 ‘이모’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용건 있으면 전화할 수도 있지. 응.
“잠깐 전화 좀 받아도 돼요?”“그래.”한주의 허락을 받고 전화 받기 버튼을 눌렀다.
─ 가람아, 이몬데. 지금 통화 괜찮아?통화를 연결하자마자 조급해보이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모. 괜찮아요.”─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혹시 술 마셨니?“네. 친구랑요.”─ 그럼 연주도 같이 있었어?“아니요? 왜요?”─ 연주랑 연락이 안 돼서.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하는데, 오늘은 연락도 없고.“연주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 혹시 연주 친구 아는 애 있니?“네, 몇 명 알아요.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응. 고마워. 부탁 좀 할게.통화를 끊고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연주가 무슨 일이지? 연주는 평소 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이다. 이런 시간에 밖에 있는 건 드물었다.
일단 연주의 단짝에게 연락해보기 위해 메신저 화면을 띄우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연주 언니라면 내가 알 것 같아요. 어디 있는지.”“뭐?”“연갈색 중간 머리에 강아지상으로 귀엽게 생긴 언니 맞죠?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을걸요?”소녀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한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