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목 (3)
다시 녀석의 입을 바라봤다. 계속해서 말하는 하나의 글자.
‘진’이라는 글자와 녀석의 입 모양이 딱 들어맞았다.
이 방에 진이 펼쳐져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녀석이 다른 글자를 말하기 시작했다.
─봉…… 인…….
이번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 봉인.
이 방에 소년을 봉인하는 진이 펼쳐져 있구나.
녀석은 그걸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방에 들어오게 할 수만 있으면 소년을 가둘 수 있다고, 녀석은 내게 필사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이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건 그만두려고.”
소년이 스스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건, 이 방에 봉인의 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는 건, 안에서 직접 문을 열어 소년을 맞아들이면 봉인이 무효가 되기 때문인가.
그럼 어떻게 소년을 끌고 들어와야 하지?
막막한 고민을 하는 순간, 소년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냥 죽여버리게.”
“……누굴?”
그렇게 묻자 웃음소리가 되돌아왔다.
“당연히 너지.”
소년이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문을 열어주면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여버리고 여길 뜨려고 했는데. 문을 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네. 귀찮은 방해꾼까지 있고…….”
즐거운 듯한 목소리에 약간의 신경질이 담겨있었다.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상황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에 대한 짜증이.
“열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철저한 약자로서 소년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
두려움에 손을 꼭 말아 쥐었다. 어쩔 수 없으면, 뭘 어쩌려고?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일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소년이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네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버티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때를 노릴 수도 있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손에 힘이 탁 풀렸다.
널 죽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하는 소년을, 소년이 있을 문 건너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공포에 질렸던 심장박동이 점점 차분해졌다. 오히려 기가 찼다.
소년을 방으로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한 머리 아픈 고민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곱씹었다.
“아, 그렇지. 그 여자도 너랑 같이 죽여 줄게. 너도 혼자면 외로울 것 아냐. 나도 그 여자를 죽이면 힘이 꽤 생길 것 같고.”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공포나 불안 따위가 아니라, 신목이 ‘아직은’ 악령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한주의 말이었다.
소년의 흐느껴 우는 목소리와 도움을 청하는 건데 왜 모르냐는 한주의 말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았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마음이 완전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너,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상대의 한심함을 꾸짖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뭐?”
점점 가학심에 불을 지펴가는 듯했던 소년의 목소리가 당황과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사람이 되고 싶어 했잖아. 오랫동안.”
나는 소년이 무서웠다.
무서웠지만,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소년에 대한 꿈을 꾸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년에게 동화되기도 했다.
소년이 무서웠던 건 소년이 격정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망과 외로움과 혼란이 소년의 눈을 가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성을 잃은 영혼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소년이 무서웠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죽여 족쇄를 풀고 한주를 죽여 힘을 얻겠다고 말하는 소년은, 온전히 제정신이다.
이대로 집과 함께 묻어버린다는 둥 끝까지 저주할 것이라는 둥 그런 말을 내뱉었으면 무서워도 납득은 됐을 텐데.
너도 견딜 수 없이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 눈앞의 상황에 현혹되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하는 것은 격정에 휘둘리는 영혼이 취하는 태도가 아니다.
저 녀석은 지금 탐욕에 젖어있을 뿐이다.
“사람의 본질이 남을 해쳐서 자신의 득을 꾀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소년은 자신의 정신과 의지로 우리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존재야?”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듣고,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고, 한 사람 한 사람 정을 붙였던 신목이었다.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신목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건 뭐지.
나는 소년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믿었다.
얼마 전 할머니 의뢰의 의뢰인이 목격했던 대로, 누군가의 술수에 걸려 공격성을 표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면. 화가 나는 것 같은, 슬픈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일었다.
“정말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야?”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있을 리 없잖아. 나는 태어나길 귀신으로 태어났고, 환생궤도는 내게 열려있지 않아.”
많이 진정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괜히 더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났다.
“그럼 왜 데려다 달라고 했어? 약속 타령은 왜 했냐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는 네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네 감정을 몸소 겪었으니까, 네 외로움이 네 바람이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도 알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하는 짓이 이따위라니.
굳게 닫힌 문 쪽을 보며 호소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왜 그래? 정말로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날 죽일 셈이야? 힘을 얻겠다는 목적 하나 때문에 한주 씨를 죽일 생각이냐고.”
무거운 외로움과 몸이 타들어가는 혼란. 견딜 수 없는 격정.
소년의 감정에 동화되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무책임한 소리 하지 마. 운명을 거스르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소년이 짜증 난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 말을 들으니 분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적어도 제대로 된 노력은 해보고 그런 소릴 해!”
지금껏 처음 소년을 만났던 날을 수도 없이 후회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런 미적지근한 감정은 후회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거였다.
소년에게 쏟아부었던 모든 감정들이 아까웠다.
“나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씩씩거렸다.
나는 은연중에 네가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왔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천천히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드니 열린 문 앞에 소년이 있었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봐준다’는 식의 표정이었다.
소년이 방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눈이 멀 정도의 밝은 빛이 방 안을 감쌌다.
무언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 *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뺨을 가볍게 두드리는 느낌에 정신이 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어렵게 들어올리니 나를 올려다보는 한주가 눈에 들어오고, 곧 병원의 소란스러움이 귓가에 닿았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잠긴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변명했다.
“그래.”
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쭈그려 앉아 구겨진 치마를 펼쳤다. 나도 병원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요?”
“조금 꿰맸어.”
나는 한주의 가방을 대신 들었다.
한주는 상처를 봉합한 직후라 그런지 조금 창백해 보이긴 했지만 그 외엔 평소랑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무서웠던 일도 자존심 상할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것을 알고 늘 우위에 있는 듯했던 한주도 사실은 이런 일들을 많이 겪어봤던 걸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셋이 함께 모인 건 해가 저물고 나서였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듯했지만, 한주도 소년도 뻔뻔한 성격이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가볍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 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진은 보석들의 힘을 한주의 힘으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힘은 강하지만 다룰 수는 없는 진이라고.
하지만 소년이 스스로 그곳에 들어왔으니 소년은 이제 이 집에 묶인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쟤가 거기 순순히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장치를 한 거예요?”
정말 그렇게까지 안일했던 거였냐고 황당해하며 한주에게 묻자, 한주도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설마 그랬겠어?”
“그럼요?”
한주가 소년을 흘끗 쳐다보며 대답했다.
“일단 우리한테도 안전한 장소가 있기는 해야 할 것 아니야. 그래서 만들어 둔 거였는데, 진짜 들어올 줄은 몰랐네.”
한주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으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소년은 이 대화가 지루한 듯 하품을 하고 있었다.
소년과 달리 나는 아까의 일을 생각하니 몸이 떨려왔다.
방에 틀어박혀 소년과 대치했던 일, 소년과 나눴던 대화, 그리고 소년이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내 생각까지.
전부 다 한주에게 이야기했다.
집중해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한주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간이 될 수 있게 해주겠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무슨 소릴 하냐는 투였다. 딴짓만 해대던 소년도 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진하다니까.”
“그러니까 말야.”
둘이 죽이 척척 맞았다.
그 모습을 보자 분해서 말이 퉁명스럽게 나왔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그런 소리 할 거면 일단 해보고 해요.”
나는 소년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염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고 있었다.
결국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소년의 염원을 이루어주고 싶어졌다.
그런 염원을 담아 두 사람을 열렬하게 바라봤다.
날 보던 둘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나를 빼고 앞으로의 일을 논하기 시작했다.
내 주장이 씨알도 안 먹혔다는 증거였다.
“너는 어떡하고 싶은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으니까, 악귀가 되기 전에 성불하고 싶어.”
“뭐…… 그게 서로한테 좋겠지. 근데 좀 궁금한 게 있는데.”
“우연이네. 나도 있는데. 너 언제 나랑 만났던 적 없어?”
소년이 옛날 작업 멘트 같은 말을 한주에게 던졌다. 한주가 소년을 빤히 쳐다봤다.
“없어.”
소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아님 말고. 근데 넌 궁금한 게 뭔데?”
“불타기 전에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신목에 역귀가 꼬여?”
“응?”
소년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 역귀가 꼬였다고?”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소년의 반응에 한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 역시 불길한 느낌에 소년을 응시했다.
“몰랐어?”
한주의 재촉에 소년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기억 안 나…….”
한주가 소년을 빤히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면 됐어. 성불할 방법이나 찾자. 괜히 시간 끌었다가 귀찮아지는 것도 싫고.”
그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책상을 치며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만요!”
한주와 소년이 나를 돌아봤다. 귀찮음이 서려 있는 얼굴에 울컥하며 힘차게 내 의견을 역설했다.
“그러지 말고 사람이 될 방법을 찾기라도 해봐요!”
내 말에 한주가 한숨을 내쉬고 떼쓰는 어린애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불가능하다니까.”
도돌이표였다.
결국,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에 화가 나 집을 뛰쳐나와버렸다.
그런데 갈 곳은 없고, 한주 욕은 하고 싶고.
방황하던 중 진지한 얼굴로 한주가 ‘못돼 처먹었다’고 일러줬던 동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가게로 찾아가자, 동훈은 당황한 얼굴을 하면서도 나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가람 씨. 무슨 일 있어요?”
정상적인 사람의,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지당한 품성을 갖춘 반응이었다.
나도 모르게 투정 부리듯 말이 나와버렸다.
“이한주랑은 말이 안 통해요! 하나도!”
내 말에 동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귀찮아 보이기도 했고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느낌도 풍기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이해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리를 돕고 가게 문을 닫은 채 마주 앉아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는 내가 스스로도 뻔뻔했지만, 동훈은 난감한 얼굴을 하면서도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시도라도 해보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게요……. 한주가 좀 독불장군 같은 면이 있죠.”
동훈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마음이 좀 풀리고 동시에 입도 점점 가벼워졌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동안 한주에게 서운했던 일들을 줄줄 쏟아놓기 시작했다.
얼마나 얘기했을까,
“그래도 어쩌겠어요.”
하며 동훈이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나도 시계를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바깥은 벌써 깜깜해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동훈을 붙잡고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피곤하실 텐데, 괜히 저 때문에…….”
내 말에 동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녜요, 얘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만 일어날까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동훈도 미안한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시간이 이런데 이젠 어쩌지, 그런 막막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동훈이 조금 망설이며 나를 불렀다.
그런데 그 순간, 가게의 모든 불이 한꺼번에 나가버렸다.
“정전인가?”
당황하며 휴대폰 불빛을 비추기 위해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동훈이 갑자기 내 손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는데, 동훈이 작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숨어야 해요. 빨리.”
그때 사람이 없을 가게 안쪽에서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