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스트 호더-6화 (6/84)

[6] 신목 (2)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고민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조심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무섭지만 이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 외에 향해야 할 곳을 모르겠으니까. 차라리 소년의 뒤를 쫓는 게 안전할 것 같았으니까.

근데 한주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한주도 만날 수 있을까. 느낌이 안 좋다던 한주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했다.

긴장하며 손을 꼭 마주 잡고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방 하나를 지나치는데, 갑자기 안에서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노크 소리가 들린 문을 바라보았다. 다시 안쪽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났다.

“한주 씨?”

목소리가 떨렸다.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다시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이 방은…… 한주가 수집품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데려갔던 방이었다.

‘보석’들이 즐비한 바로 그 방.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뭐야? 머릿속에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노크 소리는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한두 걸음 뒷걸음치는데, 노크 소리의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다.

고요한 복도에 빠르게 똑똑똑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복도 저 끝에서 타박 하는 소리가 울렸다.

힘없고 가벼운 발소리였다. 늘 힘차고 당당한 느낌이 들었던 한주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그 발소리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멍하니 발소리가 울리는 복도 끝을 바라봤다.

벽 모서리 끝에 하얀 운동화가 튀어나왔다. 발소리가 멎었다.

그 순간 옆에서 울리던 노크 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크고 다급해졌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이 생명줄을 부여잡듯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긴장의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났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한주, 한주는?

하얗게 된 머리론 한주를 떠올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 가운데서도, 저 멀리서 천이 벽에 스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얗고 작은 손이 벽 모서리를 짚었다.

이윽고 검은 머리카락이, 곧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이 나왔다.

그 소년. 신목이었다.

소년이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 순간, 미친 듯이 울리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멎었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에 정신이 멍해졌다. 머릿속이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침을 삼키는데, 갑자기 쾅!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우악스러운 힘이 나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가까스로 바닥을 받친 손바닥이 얼얼거렸다.

다시 쾅! 소리와 함께 등 뒤의 문이 굳게 닫혔다.

어두운 방. 수백의 보석들이 저마다 희미한 빛을 발하며 바닥에 엎드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린 건 뭐였지. 덜덜 떨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보석뿐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반대편 진열대 뒤쪽에 쭉 뻗어 나온 다리가 보였다.

가로로 눕혀져 있는 다리.

귀신이 아니라, 사람 같았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기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주였다. 한주가 그곳에 쓰러져 있었다.

“한, 한주 씨……?”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주의 어깨를 흔들었다. 반응이 없었다.

대신 어떤 냄새가 훅 풍겨왔다. 오늘만 해도 맡았던 냄새. 비릿한 철의 냄새.

한주의 어깨를 만졌던 손이 축축했다.

조심스레 손을 들여다봤다. 보석들의 희미한 빛 아래 탁한 액체가 손에 묻어 있는 게 보였다.

“한주 씨, 한주 씨…….”

나는 울먹이며 한주의 머리를 받쳐 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진정하려 애쓰며 한주의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왔지만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만졌던 어깨 쪽이 제법 찢어진 것 외에 다른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문 건너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줘.”

맑고 높은 소년의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한주를 꽉 끌어안았다. 다시 문 건너편에서 똑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어줘.”

소년이 조금 짜증스럽게 말했다.

평범한 목소리다. 일상생활 속에서 들어도 위화감이 없을 목소리.

꼭 평범한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든다는 사실에, 더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물고 문을 노려봤다.

“아, 진짜.”

나무문 반대편에서 짜증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저 또래의 소년이 짜증을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초부터 사람이 아닌 존재였는데, 지금껏 봐온 귀신 중 누구보다도 사람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야. 한가람. 문 열어.”

소년이 대뜸 내 이름을 불러 화들짝 놀랐다. 그와 동시에 의심이 들었다.

왜 못 열지? 소년은 노크만 했을 뿐이다.

통과할 수 없는 건가? 문고리를 돌리거나 문을 부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건 왜지?

“나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나를 부른 거잖아? 나도 있어. 하고 싶은 얘기.”

심장이 뛰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혹시 결계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한주가 아끼는 방이었으니, 무슨 장치를 해놨대도 이상하진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무슨, 얘기?”

형편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 건너편의 소년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의 마음 따위 고려하지 않는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였다.

“문 열어.”

문에서 콩 하고 무언가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마라도 기댄 걸까.

“얼굴 보고 얘기하자. 응?”

문 건너편에서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순진한 표정을 하고 있을까.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인 척을 하고 있을까.

나는 한주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이대로 얘기해.”

최대한 단호하게 들리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했다.

문 건너편에서 톡톡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라기보다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이대로 얘기하는 건 싫어.”

“왜?”

답변이 없다.

나는 외투로 한주의 어깨를 꽉 누르며 소년이 말하는 걸 기다렸다.

기묘한 정적 속에서 거친 숨소리와 빠른 심장박동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렸다.

손이 축축한 게 땀 때문인지 한주의 피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피 때문이면 안 되는데.

나름 두꺼운 외투를 적실 정도로 피가 나는 거면 위험할 것 같았다.

확인하려 해봐도 희미한 빛들 아래에서 어두운색 외투에 스민 색채를 분간하는 건 어려웠다.

초조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봤자 상태만 더 나빠질 것 같았다.

이곳이 언제까지 안전할지 보장할 수도 없고, 한주의 상태도 신경 쓰였다.

“야. 대답해.”

여전히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문 건너편의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워도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이상하다. 떠나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문 건너편에 소년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얘기하자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혹시?’

불안한 마음속에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다른 길이 있나?

황급히 방 안을 둘러봤다. 보석으로 빽빽한 방 안에 다른 통로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 한주가 말했던 귀도라는 것이 있다면.

이 방에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는 결계에 빈틈이 있는 거라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길이 뚫려 있다면…… 어떡하지?

내게 그런 걸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소년이 방에 들어올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거라면…….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언제 뚫릴지 모를 곳에서 농성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찾아 안전을 도모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년이 방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가능성도 있다.

기척을 죽이고 의심을 불러일으켜 기회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바로 앞에 소년이 있으면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 쪽을 생각하더라도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버텨야 할까, 움직여야 할까. 알 수 없었다.

한주는 꼭 소년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완강하게 거부하는 게 좋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라 해도. 하루라도 더 안녕을 바라는 게 좋았다.

이런 무서운 일,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뤄두는 게 좋았다.

공포에 질린 머리가 시간을 되돌리는 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찾아보면 정말로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법이. 지난 선택을 바꾸는 법이.

그리고 왜 그런 방법은 없는 건지 진심으로 야속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패닉에 빠진 머리가 현실도피를 시작한 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손에 의식을 돌리려 애썼다.

계속 힘을 주고 있던 손마디가 아팠다.

이제 지혈이 다 됐을까. 확인하고 싶어도 손이 굳어 힘이 풀리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진정하려 애썼다.

그러길 한참. 거칠었던 숨소리와 빠른 심장박동이 조금 잦아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여전히 고요한 방 안. 문의 건너편.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한 소리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틱틱틱.

천장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시 긴장이 한순간에 훅 올라왔다.

확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무거운 고개를 억지로 들었다. 천장을 바라봤다.

흠칫 놀랐다. 천장이 거울로 되어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한주와 한주의 어깨를 지혈하는 나를 비추는 거울.

그런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거울에 떠올라있는 희미한 형상을.

거울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얼굴이었다.

파란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 매부리코에 덥수룩한 흰색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이마. 녀석의 이마에 찍힌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내 손목에 있는 것과 똑같은 표식.

그러고 보니 한주가 내게 건네준 계약서를 보며 ‘귀신을 사역할 때’ 주는 계약서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아까 문을 두드렸던 건, 너였구나.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한계까지 달해있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귀신이지만,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자 눈물이 나올 것 같을 정도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녀석이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봤다. 나와 시선이 맞자 입을 뻐끔거렸다.

녀석의 입 모양을 따라 소리를 냈다.

“아…… 직?”

녀석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이……? 써……?”

아직 이써…… 아직 있어.

그 말을 인지한 순간 문 건너편에서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화들짝 놀라 문을 바라봤다. 문을 힘껏 친 건지 문에 금이 가 있었다.

“열어줘.”

문을 친 것 치고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소년이 아직 문 건너편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긴장감이 치솟아 올랐다.

소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 다시 적과 대치하게 된 상황에 심장박동 소리가 빨라졌다.

“얘기하자고 먼저 부른 건 너잖아. 이게 도대체 무슨 태도야? 사이에 문 두고 대화하는 게 손님에 대한 예의야?”

소년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금이 간 걸 보니 문 따위 금방 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수지 않는 건 왜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다. 조급해하지 말자. 차분하게.

“네가 위협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대답하며 손에 힘을 뺐다. 손마디가 저리는 걸 넘어 감각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외투를 걷었다.

“내가 언제?”

소년의 뻔뻔한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한주를 이렇게 만든 원흉이 누군지 뻔한데.

어디서부터 따져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한주의 찢어진 소매를 살짝 걷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처 주위를 더듬었다. 다행히 피가 멎은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문 열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천장 거울을 바라봤다.

“문 하나 여는 게 그렇게 어려워?”

녀석이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안…… 돼.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길어지니 알아듣기 어려웠다. 소년과 이 방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알아들을 방법이 없다.

“야, 듣고 있어?”

적어도 이 방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문을 여네 마네로 실랑이를 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소년이 하는 말을 무시하고 본론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한주 씨가, 너랑 나는 운명공동체랬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너랑은 빨리 담판을 짓는 게 좋댔어.”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또 잠자코 있을 작정인가?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녀석이 여전히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이번엔 단 한 글자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맥락 없이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무슨 소린지 해독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는데, 문 건너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알고 있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무언가 중요한 할 일이 있다는 건 알겠어. 그래서 네 근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겠지.”

우선 소년과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녀석의 입술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

“……그럼 계속 내 곁에서 맴돌고 있었어?”

그런데 시선이 내려가는 찰나의 순간, 어떤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녀석에게 신경 쓰지 않고 거울에 비치는 방 안의 모습에 집중했다.

아까는 녀석의 얼굴 때문에 신경을 못 썼는데, 방 안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아니. 최대한 멀어지려고 애썼어. 잘 안 됐지만.”

소년이 감정의 높낮이가 담기지 않은 평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소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짜증 나 죽겠는데, 여기서 자꾸 나를 부르더라고.”

소년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 쓰며, 열심히 방 안의 풍경을 눈으로 더듬었다.

거울에 비치는 붉은 방 안.

확실히 이상하다. 방 안이 붉을 리가 없는데?

실제 방엔 각양각색의 색채를 가진 보석들이 전시돼있는데, 거울 속 보석들은 죄다 밝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시된 모양도 뭔가 이상했다.

보석이 마치…… 하나의 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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