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목 (1)
돌아가는 길, 한주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신목은 수령이 팔백 살 정도로 추정되는 나무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세상 유일무이한 나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아주 옛날부터 신목으로 기려 기도를 올리고, 제사를 지내곤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나무가 불탔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이 몰랐을까.
내 의문을 눈치챈 듯 한주가 설명을 덧붙였다.
사람들은 원래 나무니 역사니 하는 고리타분한 것에 관심 없다고. 신령한 것 중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잘 벗어나도록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고.
그 신목도 그런 게 아니었겠느냐며.
자신을 데려다 달라며 새카만 어둠을 가리키던 소년. ‘아직은’ 악령이 아닐지도 모르는 소년.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지금으로선 하나도 알 수 없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빛들이 보였다.
“졸리면 자.”
그렇게 말하는 한주의 목소리가 나긋해서 정신이 점점 멀어져갔다.
감긴 눈 속에 웅장한 장관을 자랑하는 신목의 모습이 선명하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위로 호통 같은 벼락이 꽂혀 들었다.
푸르게 올라오던 어린 잎새들이 허무하게 불에 타 사라지고, 우지직 뚜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팔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도 귀신도 아우성이었지만, 그 잡음들은 몸이 타들어 가는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타닥거리는 소리만 들려오길 한참, 내 몸이 조금씩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불타오르는 나무는 쩌적 갈라져 갔다.
점점 작아지는 내 몸과 점점 더 크게 갈라지는 틈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밖으로. 한 자리에 못박혀있어야만 했던 운명을 거스르고.
거처를 잃은 혼란과 족쇄가 끊긴 자유에 정신없이 내달렸다.
산으로, 강으로, 콘크리트 더미의 위로.
정신없이, 정신없이. 기뻐하고, 저주하면서. 가슴을 찌르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면서.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방적인 소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청해왔다.
내 대답을 요구했다. 도와주겠다고. 비가 오니, 우산을 씌워주겠다면서.
등 뒤의 사람을 돌아보는 순간,
“도착했어.”
하는 목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한주는 나무 조각을 창문 위에 걸어두었다.
꿈에서 봤던 색색의 리본이 나무를 단단히 동여매고 있었다.
한주는 내게, 창문이 닫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나무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아침 밤으로 잘 확인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초대장이라고, 나무가 떨어졌으면 신목이 집에 들어온 것이란 설명도 덧붙이며.
나는 겁이 났지만, 몸 사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왜 그래?”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인 친구들에게 물었다.
내게 아는 체를 한 녀석이 턱짓으로 강의실 안쪽을 가리켰다.
“저기 쟤.”
동기가 가리킨 쪽엔 우리 과 과대가 앉아있었다.
“과대? 쟤가 왜?”
“딱 봐도 이상해 보이지 않아?”
그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확실히 안색이 나빠 보였다.
“어디 아픈가?”
내 말에 맞은편에 있던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아니, 쟤 이 근처에서 자취하잖아. 알지?”
“알지.”
통학하기 힘들다고 내내 징징거리던 과대가 얼마 전 드디어 자취방을 얻었다.
그래서 얼마나 자랑을 들었던지.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었다.
“거기서 귀신 나온다잖아.”
“뭐?”
“귀신 말야, 귀신. 어쩐지 학기 중에 뜬금없이 조건 좋은 자취방이 나왔다 했어.”
다시 과대 쪽을 쳐다봤다. 얼굴이 퀭한 게 참 안돼 보였다.
“쟤 저러는 거 보면, 세상에 귀신이 진짜 있긴 한가 봐.”
누군가 별생각 없는 투로 속닥거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친구들은 걱정 반 재미 반인 기색이었다.
자기들끼리 친구니 친척이니 아는 사람을 총동원한 괴담을 시작한 친구들을 뒤로하고 과대를 쳐다봤다.
진짜 곧 죽을상이다. 잠시 고민하다 과대하고 얘기해보기로 했다.
과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새벽마다 쿵쿵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
처음에는 윗집이나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인 줄 알았더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집안 곳곳에 핏자국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피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고.
매일 지속되는 기현상에 참을 수 없어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가…… 봐버렸단다.
양손에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 여자를.
그 여자가 바닥에 머리를 찧고 있었다고.
다행히 과대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그런 존재가 집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운 일이다.
나는 한주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과대에게 이실직고할까 하다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괜한 말이 돌게 되는 것이 싫어 참고 이렇게 둘러댔다.
─ 아는 사람 중에 무속인이 있는데, 내가 한 번 물어봐 줄게.
네가 사람 하나 살렸다느니 평생의 은인이라느니, 오버스러운 과대의 호들갑을 등에 업고 한주 앞에 섰다.
한주는 ‘뭐야 이건?’ 하는 얼굴로 나를 슥 올려다보더니, 내 각오가 담긴 얼굴을 무시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한주 씨.”
“…….”
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책이 팔랑 소리를 내며 한 장 넘어갔을 뿐이다.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내리깔려고 노력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부탁이 있어요.”
“싫어.”
이번엔 즉답이었다. 나는 재빨리 한주의 앞에 앉아 다시 부탁했다.
“좀 들어봐요.”
“싫다고.”
단호하다. 이렇게 단호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잖아요!”
“친구네 집에 귀신이 나왔는데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라면 사양이야.”
“…….”
“…….”
“내 몸에 도청장치 달아놨어요?”
내가 한주를 의심스럽게 흘겨보자, 한주가 나를 한심한 놈 보듯 쳐다봤다.
“평소에 피해 다닐 궁리만 하던 놈이 이상한 표정으로 앞에 서서 알짱거리면 뻔하지, 뻔해.”
뜨끔 하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한주가 쯧,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쓸데없는 일거리 늘리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처럼 냉랭했다. 한주가 원래 그런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주도 사람인데 끈질기게 졸라대면 귓등으로라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꾸 무어라 말이 새어 나왔다.
“그치만…… 사람의 도리라는 게…….”
우정이니 뭐니, 측은지심이니 뭐니 계속 앞에서 꿍얼거리는 내가 귀찮았는지, 한참을 무시하고 책만 읽던 한주가 ‘탁’ 하고 책을 덮었다.
“야.”
내가 기대하는 얼굴로 한주를 바라보자, 한주가 조용히 팔을 들어 손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냈다.
‘돈.’
“……진짜 그러기예요?”
“어.”
국물도 없었다.
* * *
나는 지금 과대의 자취방 안에 혼자 앉아있다.
과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걸 보면 의외로 말이 통하는 귀신일지도 모른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한주가 구해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한주의 인간적인 면모는 믿을 수 없지만, 한주의 수집벽은 믿어도 괜찮으니까.
위험한 귀신이면 보석이 될지도 모르니까 구해줄 거다. 응. 아마도.
……구해주겠지?
휴대폰 시간을 확인하자 오전 두 시 오십구 분에서 막 오전 세 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딱 세 시 정각으로 넘어간 순간 화장실 쪽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하게 땅이 울리는 소리.
전후 사정을 모르면 이웃집에서 나는 소음이라고 생각할 만도 한 소리였다.
하지만 질질 끄는 소리,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이 소리는 집 안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과대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땅바닥에 머리를 찧고 다니는 여자 귀신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내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존재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런 소리를 들어가며 정체까지 파악하고도 여기서 지내던 과대가 새삼스레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과대의 오두방정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제 와 관둔다고 해도 현관까지 가려면 화장실을 지나쳐야만 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나는 결국 용기를 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화장실을 들여다보니 어두운 화장실 구석에 여자가 있었다.
다른 귀신들처럼 어둠 속에서 혼자 색채를 띠고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연노란색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고 있는 귀신이었다.
온종일 바닥에 찧고 다니는 이마도 찢어진 것인지 갈색 앞머리가 피로 엉겨 붙어있었다.
벽 뒤에 살짝 숨어 가만히 지켜보는데, 기는 모습이 좀 이상했다.
오른손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거의 왼손으로 기고 있었다.
그 왼손으로 바닥을 더듬듯이 두드려댔다. 꼭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피에 젖은 손이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차가운 화장실 바닥을 두드려댔다.
그때마다 누런 타일 위로 빨간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화장실 밖에까지 은근한 비린내가 풍겨왔다.
기이한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콩닥거렸지만,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용기를 냈다.
“저…… 뭐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귀신이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힉!”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귀신의 부릅뜬 눈알 위로 이마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렸다.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피가 볼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파랗게 질린 피부 위에서 검붉은 피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귀신이 고개를 기이하게 꺾었다.
나는 양손을 꽉 쥐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 귀신이 보랏빛 입술을 열었다.
“거울…….”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였다.
“네?”
내가 되묻자, 귀신이 다시 말했다.
“내 거울…….”
“아…… 거울을 찾고 계신 거예요?”
“거울…… 거울…….”
귀신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좁은 자취방 안에 다시 쿵, 쿵,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거울은 왜 찾는 거예요?”
내 질문에 귀신이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곧 무언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조금씩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뭐를?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엔 굳이 묻지 않았다.
귀신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면서 다시 머리를 박고,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내 마음이 심란해진 만큼, 집안에 울리는 소리가 더 기괴해졌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은 아닌 것 같다. 대화가 아예 불가능한 귀신도 아닌 것 같고.
주먹을 움켜쥔 오른손에는 거울 조각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거울을 다 찾으면 방에서 나가려나?
과대의 부탁을 받은 것도 있고 귀신이 안쓰럽기도 해, 나도 바닥을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책장 뒤를 샅샅이 뒤지고 원상복구 시킨 뒤,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이 넘어있었다.
장장 세 시간 사십 분 이상을 좁은 방 안을 뒤지고 다니는 데 썼지만, 거울 같은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귀신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땀을 닦아냈다.
“어디 있는 거야, 진짜.”
답답해서 귀신처럼 바닥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주라면 금방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보자마자 그냥 퇴마해버릴 수도. 내 불만도 무시하고, 그래 버릴 수도.
하지만 주도권을 잡은 것도 실제로 일하는 것도 한주니, 한주의 뜻대로 처리하는 게 맞기는 했다.
사람 입장에서야 귀신만 없어지면 아무래도 좋을 테니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이제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한주의 방식에 불만이 있다면 직접 해야 할 텐데.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게 서글펐다.
그때 갑자기 손목에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깜짝 놀라 손목을 들여다보니 전에 한주와 계약하며 찍혔던 도장 같은 표식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조용한 방 안에 경쾌한 벨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주가 이 시간에 전화는 왜 걸었지?
“여보세요.”
─ …….
“여보세요?”
─ …….
“한주 씨?”
전화에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파가 잘 통하지 않는 것처럼.
통신장애인가 하며 휴대폰 화면을 의아하게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한가람.
“네. 들려요?”
─ 들려.
한주의 목소리가 기운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
기분 탓인가?
─ 어디야?
“과대네 집이요.”
─ 그게 어딘데.
“학교 근처예요.”
전화 건너편에서 숨을 내쉬는 소리가 났다.
─ 그럼 택시 타고 집에 와.
“안 돼요. 아직 거울 못 찾았단 말이에요. 네 시간이나 찾았는데.”
─ 거울?
나는 한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한주가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왠지 이마를 짚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 네 뒤에 책장 치워.
“와, 어디 CCTV 달아놨어요?”
─ …….
“치울게요. 근데 책장은 왜요? 저 뒤에도 거울은 없었는데.”
말이 없는 전화 건너편 한주의 눈치를 살피며 책장을 치워냈다.
잠시 침묵하던 한주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 너도 귀신도 못 찾은 거면, 그 방엔 거울이 없을 확률이 커. 그런데 그 방에서 나가는 유일한 귀신의 길을 그 책장이 막고 있으니, 귀신도 나가지 못하고 사람도 고통 받는 거지.
“그럼 내가 고생한 네 시간은?”
─ 그 방엔 거울이 없다는 거 하난 확실히 알았잖아.
“그래도 헛고생한 기분인데요…….”
─ 애초에 우정이니 뭐니 하면서 사서 고생하러 들어간 건 너였어. 아무튼 이제 해결됐으니까 집에 와.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전화해서 빨리 집에 오라고 보채는 게 이상했다.
“근데…… 왜 그러세요?”
─ 그놈의 근데랑 왜는 좀 안 할 수 없어?
“…….”
하아, 하는 한숨 소리가 들리고 이어 차분한 한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느낌이 안 좋아.
집안의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아까 통화했으니 깨어있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조용했다. 집안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불길한 기운이 집안에 감돌았다. 살금살금 걸으며 한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지, 상황파악을 먼저 해야 할지 망설였다.
우선 나무 조각을 묶어두었던 방에 다가갔다. 문이 열려있었다.
슬쩍 들여다보자 엉망이 된 방 안이 보였다.
나무 조각과 여러 물건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그 위로 작은 흙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잘 보니 복도에도 그런 흙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소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