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할머니의 저주 (2)
다들 오랫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눈이 퀭했다. 일가족이 모인 집안에 숙연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애써 시간을 내 한자리에 모인 가족 구성원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던 한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런 거였군요.”
한주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미 여러 번 ‘전문가’들에게 매달려 본 사람들답게, 커다란 의심과 약간의 기대가 섞인 시선이었다.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아니꼬운 시선이 한주를 평가하듯 훑어내렸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걸 해결 못하는 퇴마사도 있나요?”
한주가 시큰둥하게 답변했다.
해결 못한 퇴마사가 여럿이라 한주한테까지 찾아왔다는 사람에게 저런 대답이라니.
누군가가 크흠, 흠, 하며 헛기침을 했다. 신경질적인 소리였다.
젊은 여자가 시건방진 소릴 하는 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물론 한주가 뻔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불러놓고 이 분위기는 도대체 뭔지.
내가 다 억울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당사자인 한주는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회초리였다.
저걸, 왜?
그렇게 생각하며 한주를 바라보는데, 오른손에 회초리를 쥔 한주가 왼손을 짝! 소리 나게 내리친 뒤 말했다.
“그럼 다들 종아리 한두 대씩만 맞죠.”
한주의 태도를 꼬집는 목소리들로 조금씩 웅성거리던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의뢰인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매를 맞으라고요?”
한주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한주의 손에 들려있는 회초리에 쏠렸다.
정말로…… 회초리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완벽한 회초리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굉장히 어려운 솔루션을 제시하는 사람이 참 뻔뻔하게도 말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어린애와 젊은 사람보다 중장년층 이상의 어른들 비율이 많은 구성원이었다.
그런데 대뜸 새파랗게 젊은 한주에게 매를 맞으라니.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의뢰인의 가족들이 한주를 대하는 태도에 은근히 약이 올랐던 것도 잊게 할 만큼 민망한 상황이었다.
흘끗 한주를 바라봤지만, 한주는 덤덤한 얼굴로 사람들의 황당한 시선을 대하고 있었다.
어떡하면 저렇게 낯짝이 두껍지? 조금 부러울 지경이었다.
“됐어! 그냥 가라 그래!”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가운데, 누군가 대뜸 호통을 쳤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 한 명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주의 태도가 영 못마땅한 듯 역정을 냈다.
“실력도 없는 게 입만 살아선! 나는 저런 사기꾼 못 믿는다! 그냥 꺼지라 그래!”
얼마나 화가 났는지 삑사리가 나고 엉망진창으로 뒤집어진 목소리였다.
그런 목소리가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고, 아버님.”
근처에 앉아있던 중년 여자가 뒤늦게 할아버지를 말리기 시작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이 사람도 한주가 못 미덥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슬쩍 한주를 곁눈질하며 짓는 표정을 보니 그랬다.
의뢰인이 난감한 얼굴로 가족들과 우리들을 돌아봤다.
하지만 다짜고짜 매를 맞으라는 한주의 말이 영 불만스럽고 못 미덥기는 다들 마찬가지였는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도 굉장히 실력이 좋다고 소문이 많이 난 분이에요.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 때문에 멀리서 찾아오셨잖아요.”
의뢰인이 소심하게 가족들을 중재했다. 그러자 아주머니 한 분이 나서 말을 꺼냈다.
“아니, 지금까지 왔던 사람들은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저런 젊은 아가씨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경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너도나도 맞다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아가씨, 차비랑 여기까지 온 수고비는 줄게요. 불러놓고 미안하지만, 직접 보니 도저히 못 믿겠어.”
그 말에 결국 의뢰인이 우리를 돌아봤다. 미안한 감정이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억울함이 재차 솟아올랐다.
아닌데. 한주한테 맡기면 정말 해결될 텐데. 그냥 싸가지가 없을 뿐이지, 실력은 있는데. 정말로.
“저기요!”
“가람아.”
내가 항변하기 위해 입을 열자 한주가 나를 막아섰다.
그리고 차분한 얼굴로 처음 호통을 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영감님.”
할아버지는 벌게진 얼굴로 여전히 씩씩거리며, 한주에게서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한주는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요즘 부쩍 소화도 잘 안 되고, 잠도 잘 못 자겠고 그렇죠? 오늘은 화장실 가시려다 현기증 때문에 벽에 머릴 부딪쳤고요. 늙은 탓에 그러는 거 아니고, 잔병치레하는 것도 아니니 병원 가세요. 방치하면 올해 못 넘기고 돌아가십니다.”
“뭐야?”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한주를 마주 봤다. 한주는 여전히 덤덤하고, 또 당당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귀신이 들러붙었으니, 이대로라면 치료를 받아도 별 소용은 없겠네요.”
“…….”
할아버지의 기가 조금 죽은 것을 확인한 한주가 의뢰인의 말에 반박했던 아주머니를 돌아봤다.
“아주머니.”
“뭐, 뭐예요?”
“오늘 차 몰고 오다가 사고 날 뻔했죠? 여덟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서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요. 하지만 돌아가는 길엔 아닐 거예요. 커다란 그림자가 아주머니를 덮치는 영상이 보이네요.”
“…….”
한주가 집 안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며 무언가를 꼬집어줬다.
한주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나도 한주가 점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한주가 모든 이야기를 마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나는 오늘 돌아가면 이 의뢰는 다시 받지 않을 거예요.”
오늘 해결 못하면 죽는 사람 꽤 나오겠지만, 더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말이었다.
의뢰인은 초조하게 손톱을 뜯으며 한주와 가족들을 돌아봤다.
어떡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 같았다.
애초부터 의뢰인은 총대를 메거나 중재를 하는 역할로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긴 했다.
가족들은 불안하긴 해도 자존심이 있어 선뜻 한주를 못 붙잡는 모양이고.
아슬아슬 줄을 타는 듯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한주가 자리에서 슥 일어섰다. 그리고 나를 보며 턱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챙기라는 신호였다.
나도 한주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섰다. 한주가 의뢰인을 보며 말했다.
“차비는 제 계좌로 넣어주세요. 아, 복채도.”
점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혼자 봐놓고 복채까지 챙기다니.
수완이라 해야 할지, 뻔뻔함이라 해야 할지…….
하여튼 한주의 두꺼운 낯에 감탄하는데,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오십 대 정도의 아저씨가 흠흠, 헛기침 소리를 내어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점잖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매를 맞으라고 하시니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설명을 먼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퇴마도 부탁드릴 거예요. 선생님도 헛걸음하시는 건 싫지 않습니까.”
아가씨에서 갑자기 선생님이다.
이제와 말을 바꾸는 건 괘씸하지만,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꾸니 그나마 기분이 풀렸다.
정작 당사자는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것 같긴 하지만.
총대를 멘 아저씨의 말에,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의뢰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 불만을 내뱉었던 할아버지와 아주머니도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한주가 가족들을 한 번 훑어보고, 이야기를 꺼낸 아저씨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못살게 구는 건 달래서 쫓아야 할 귀신이 아니에요. 때려서 쫓아야 할 귀신이죠. 이 회초리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로 만든 회초리예요. 마를 쫓는 능력이 있어요.”
한주의 말에 아저씨가 난감한 얼굴로 대꾸했다.
“물론 우리가 지금 힘든 상황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불효했는데 때려 쫓아내는 건…….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제사라든지…….”
이제 와서 불효 운운이다. 퇴마해달라고 찾아온 것 치곤 이해가 안 되는 변명이었다.
때리든 내치든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에 찾아온 거면서.
그 얄팍한 체면치레에 한주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할머니라고 하던가요?”
“예?”
한주가 회초리로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편견이라는 게 참 무섭죠.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니까요. 이 사달을 낸 것이 할머니라고 말한 건 누가 먼저였나요? 가족들? 무당들?”
그건 지금 가족들을 못살게 만들고 있는 귀신이 할머니가 아니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의뢰인이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무는 모습이 보였다.
한주의 말에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한 아저씨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가족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겠죠.”
“어머니가 아닌 겁니까?”
“네.”
싱긋 웃은 한주가 설명을 계속했다.
“잘못 발들인 장소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그냥 운 나쁘게 새어 들어온 귀신일 수도 있어요. 발생 원인은 모르겠지만, 이런 역귀를 쫓는 방법은 간단하고 뻔해요. 첫 단추를 잘만 끼웠다면 이렇게 질질 끌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한주의 말에 의뢰인이 머뭇거리며 질문했다.
“……그럼 혹시 제가 봤던 거랑 관련이 있을까요?”
“봤던 거?”
의뢰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났는데 작년 늦여름쯤에 사촌들이랑 산책하다 이상한 걸 봤어요. 꼭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은…….”
“자세히 설명해주실래요?”
“저번에 물어보셨죠, 근처에 있었던 화재 사건이요. 바로 거기서 봤어요. 어떤 여자가 엄청나게 많은 동전을 쏟아내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요.”
그 말에 한주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신목 앞에서요?”
“네. 분위기가 무서워서 저희는 그냥 바로 다른 길로 가버렸지만요.”
신목. 그 단어에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의뢰인은 우연히 신목 앞에서 벌어진 이상한 의식을 목격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별건 아니었는데, 그땐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뒤 얼마 전에 그 나무에 불이 났고요.”
의뢰인이 겁먹은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걸 본 게 문제였을까요?”
집 밖으로 나오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불편하고 민망한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 한주에게 매 맞는 일가족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시방석이었다.
한주는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역귀 퇴마는 이미 안중에서 떠났고, 신목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뭐였을까요?”
내가 묻자 한주가 나를 쳐다보았다.
“글쎄.”
굉장히 찝찝해하는 표정이었다. 한주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정말로 의식이 있었다면 신목이 혼자서 변질된 건 아니겠지. 지금으로선 정보가 너무 없네. 직접 가 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는 분위기를 전환할 겸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까요?”
“다른 사람들?”
“먼저 왔던 전문가들이요.”
잠시 말이 없던 한주가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까지 보였어? 너도 보이긴 보였을 거 아냐.”
“자세히 보니 검은 연기가 나는 게 보이긴 했어요. 가족들이 맞을 때서야 알았지만.”
“할머니인지 다른 귀신인지 구분할 수 있었겠어?”
“못하죠.”
앞서가는 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영감이나 경험 하나만 부족해도 구분하기 어렵거든. 잡귀는 다 비슷비슷해서.”
“하지만 할머니였으면 할머니 모습이 보였을 수도 있잖아요.”
“모습이 흐릿한 귀신이니 이 사달이 난 거 아냐. 뭐, 전문가랍시고 불러온 게 죄다 어중이떠중이인 것도 문제였을 테고. 잘못 짚었어도 퇴마 능력이 좋았으면 쫓아낼 수 있었을 거야.”
“그렇구나.”
한주를 따라 차에 올라타며 귀신의 세계란 참 심오하다고 생각했다.
* * *
차에서 내리자 익숙한 냄새가 확 풍겼다. 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소년에게서 풍겨져 나오던 향이었다.
어디라는 안내가 따로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저쪽이구나. 저쪽에 있구나.
한주를 뒤로한 채 이끌리듯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냄새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위대한 것을 마주할 때,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 웅장함을 몸소 체감하게 되면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것이 경험했을 아주 오랜 시간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내게 물밀듯 밀고 들어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가지를 사방으로 넓게 뻗어 살아있는 존재도, 죽은 존재도 모두 감싸 안았을 거대한 나무.
사람에게 정을 붙여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나무.
소년의 본체였을 그 나무가 내 눈앞에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잊고 까만 잿더미가 된 채로.
“어때?”
뒤를 쫓아온 한주가 한참을 가만히 나무만 들여다보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틀림없어요.”
“그래.”
잠시 나란히 서서 불타버린 나무를 올려다봤다.
누구였을까. 무슨 목적이었을까.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주가 울타리를 넘어 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불에 타 문드러진 나무의 피부를 몇 차례 손으로 훑던 한주가, 손수건 하나를 꺼내 나무 조각 몇 개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건 왜 챙기는 거예요? 그걸로 나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아니. 그건 몰라. 잡기로 했으니까, 이걸로 불러낼 거야.”
가만히 한주가 하는 것을 지켜보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응.”
“꼭 잡아야만 하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겁이 났다.
정말로 소년을 불러 잡으려 하는 한주의 모습을 확인하니 잡아보자고 했던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꿈속의 소년이 안타까웠고, 신목에게도 호감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래도 소년과 다시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주가 나를 돌아봤다.
“잡아야 해.”
당연한 것을 말하는 듯한 투였다.
“왜요?”
한주가 눈을 깜빡이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무서워?”
“……당연하죠.”
한주가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더 잡아야 해. 잡아서 담판 짓는 수밖에 없어.”
“무슨 소리예요?”
“사실은 방금까지 긴가민가했는데. 네가 이 나무가 그 신목이 맞다고 확신하는 걸 보고 나도 확신이 섰어.”
“확신?”
“그래. 둘은 지금 운명공동체가 된 상태일 거야. 일종의 계약 상태인 거지. 이대로 어영부영 모른 척만 하고 있다간 같이 무너져버릴걸.”
더더욱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뚱한 얼굴로 한주를 바라봤다. 한주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약속 같은 건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한주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선을 마주하다가, 나는 반박하는 대신 그냥 이렇게 투덜거렸다.
“못 잡는다면서요.”
한주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자신이 신목을 잡을 그릇이 아니란 걸 알지만, 정말로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주의 당당함이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왔는데, 혹시 자신감보다는 무책임하고 무계획한 성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 안일함이 부러울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