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할머니의 저주 (1)
한주의 설명을 빠짐없이 듣고 곱씹고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근데…… 왜요?”
내 질문에 한주가 성가셔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용 조건이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이다.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한주가 말한 잡무들도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나쁜 조건을 말해도 당장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조건을 내미니 의심스러웠다.
한주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입을 열었다.
“넌 꽤 괜찮은 수집품이니까.”
“괜찮은 수집…… 뭐요?”
“수집품.”
한주가 아주 당당하게 사람을 물건 취급하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옆구리가 긴 육각형 모양의 보석이었다. 투명한 테두리가 선명한 붉은색 보석을 감싸고 있었다.
굉장히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피나 내장을 보았을 때처럼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무섭고 징그러운 것을 볼 때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그 보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주가 그 보석을 황홀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뭔지 알아?”
알 리가. 나는 보석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아까 그 녀석이야.”
“그 녀석?”
그 녀석이라고 하니, 방금 미안하다며 나간 동훈의 얼굴밖에 안 떠올랐다.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한주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말한 그 빨간 귀신.”
“……네?”
“예쁘지?”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동자에 조용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포식자 앞의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잘게 떨자, 그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번 볼래? 내 수집품.”
너무 놀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 작지도 않은 방 안에 ‘보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깔을 뽐내는 그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귀신이었다.
충격과 경외감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방 가까이 다가가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피하지 않고 위험과 두려움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훈의 말 역시 비로소 확실하게 이해됐다. 한주는 확실히 실력 있는 퇴마사라는 것이. 좀 미친 것 같긴 해도.
방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운에 압도되어 정신이 점점 멍해졌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한주가 나를 응시하며 문에서 팔을 내리고 말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보석은 없을 거야.”
한숨을 내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느긋한 걸음으로 방에 들어간 한주가 빈자리를 찾아 빨간 보석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희귀하고, 비싸기도 엄청 비싸.”
“비싸다고요?”
“그래.”
나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사는 사람이 있어요?”
한주가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당연하지.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어. 별별 마니아들이 다 있다고. 바로 네 앞에도 한 명 있잖아.”
“…….”
“물론 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사기도 해. 마음에 드는 귀신이 나에게만 찾아오리란 법은 없으니까.”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많아요?”
“아니. 거의 없어. 실력이 아주 좋은 퇴마사가 재료가 될 수 있는 귀신을 만날 때만 만들 수 있거든. 퇴마사 대부분은 그럴 실력이 없고, 잡귀 대부분은 재료가 될 만큼 강하지도 악독하지도 않아.”
그런 걸 이만큼이나 모았다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방 안의 보석은 최소 수백은 족히 되어보였다.
한주는 오늘 만난 그 ‘빨간 귀신’ 같은 걸 수백 번은 족히 만나고 또 수집했다는 소리였다.
“동훈이 녀석은 일반인치곤 귀신이 잘 꼬이는 편이긴 했지만, 재료로 쓸 만한 귀신은 거의 없었거든. 근데 넌 쓸 만할 것 같아.”
아쉬울 것 없는 한주가 내게 이렇게도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노골적으로 내보이는 탐욕과 집착에, 나는 그녀가 말한 수집품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깨달았다.
어리숙하고 고분고분하게 ‘쓸 만한’ 귀신을 꾀어내는 존재. 그녀에게 나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줬어. 이제 찍을 거지?”
한주가 계약서와 인주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찍어.”
“……네.”
나는 이번에야말로 군소리 없이 엄지에 인주를 묻혔다. 그리고 한주가 내민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지장을 찍은 순간 손목에 뜨겁고 따끔한 느낌이 들어 화들짝 손을 뗐다.
계약서는 타들어 가더니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손목을 들어 확인해보니 맥박이 뛰는 곳에 원형으로 흉터같이 우둘투둘한 모양이 생겨나 있었다.
꼭 도장이라도 찍힌 것처럼.
“……이게 뭐예요?”
“나랑 계약했다는 표식.”
내가 한주의 수집품으로 전락해버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 *
한주가 내준 방은 내 원래 자취방보다 말끔했다.
나는 침대에 풀썩 누워 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예쁘고 낯선 방에 안절부절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반대편 벽에 걸린 인테리어용 장식을 응시하며, 피곤함에 절어 멍해진 머리로 미래에 대한 것을 생각했다.
앞으로 적응할 수 있을지, 또 이 한 몸 안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멀리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꺼질 듯 말듯 작고 연약한 울음소리였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을 몇 번이나 비벼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설마 눈이 멀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불안에 떨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에 작은 빛덩이가 보였다.
그제야 내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덩그러니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빛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려 했지만 다리가 땅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끈적끈적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내 다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갔다.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한참을 걸어도 빛덩이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몸은 점점 힘이 빠져갔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빛덩이를 응시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뒤늦게 저 빛덩이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산도 외투도 없이 빗속을 거닐던 그 소년. 그 소년이 어둠 속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꼬마야.”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꼬마야!”
역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답은 커녕 내 목소리조차 닿지 않는 것 같다.
어둠에 얽매인 발은 더 이상 나아갈 것 같지가 않았다.
“꼬마야, 도대체 왜 우는 거야.”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중얼거려도 소년에게는 조금도 닿지 않았다.
꺼질듯 말듯 연약한 흐느낌만이 계속 계속 이어졌다.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머리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불도 덮지 않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몇 시지…….”
멍한 머리로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솨아아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그날처럼 궂은 날씨인 것 같다.
그날…….
다시 눈을 감고 양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멀쩡한 사람 붙들고 패악을 끼친 악귀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인지. 울고 싶은 건 난데.
한숨이 나왔다.
“그랬어?”
한주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예상외로 내 꿈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모양이다.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던 한주가 등을 의자에 기대고 팔짱을 꼈다.
“어쩌면…….”
그렇게 중얼거린 한주는 긴가민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요?”
내가 묻자 한주가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그 신목, 아직 악귀가 된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
뜻밖의 말에 나는 “네에?” 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를 공격했단 말이에요. 아니면 뭐, 그게 악귀였으면 넌 벌써 죽었어. 이런 소리 하려는 거예요?”
“아니. 단번에 죽일지 서서히 죽일지 그건 취향 문제라.”
“취향 문제…….”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한주가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벌써 악귀가 되어버렸다면 너에게 그렇게 도움을 청하진 않았겠지.”
“도움을 청했다고요?”
한주가 넌 왜 그런 것도 눈치 못 채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네가 꿨다는 그 꿈, 다시 생각해봐. 널 저주하고 괴롭히려는 것 같았어?”
그 말에 내가 꾼 꿈을 다시 떠올렸다.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까맣고 찐득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지만 나를 괴롭히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주의 말대로 내게 도움을 청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구슬프게 울었으니까. 외롭고 외로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나중에 또 나오면 한번 잡아보자.”
한주의 조용한 목소리에 말했다.
“네.”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잡을 수 있어요?”
그래도 그 꼬마, 신목이었다면 나름대로 신령한 존재였을 텐데.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한들 일개 퇴마사가 잡을 수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내 질문에 한주가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힘들지.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정말 무책임한 대답이었다.
* * *
“우리 할머니를 퇴마해주세요.”
유약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마르고 작고 연한 인상을 주는 젊은 여자. 그런 여자가 내가 자리를 안내하기도 전에 한주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요.”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내가 맞게 들은 건지 깜짝 놀라 여자를 쳐다보는데, 한주가 차분하게 되물었다.
한주는 이런 의뢰에 꽤 익숙해 보였다.
여자는 다급하게 “네!” 하고 외치더니 한주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우리 할머니를 퇴마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제발…….”
절실해 보였다. 하긴, 절실하지 않았다면 이런 곳엔 찾아오지 않았겠지.
저렇게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저런 부탁을 할 수도 없었겠지.
어지간히 뻔뻔하지 않은 이상에야.
“얘기를 먼저 듣고 싶은데요.”
한주가 그렇게 말하며 여자를 안내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커피나 내오라는 사인이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눈물만 훔치던 여자는, 한참 뒤에야 드디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행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한주가 곧 짜증을 낼 것 같았으니까.
“할머니는…… 살아생전에 참 무서운 분이었어요. 말버릇도 손버릇도 나빠서, 저도 몇 번이나 얻어맞고 욕을 들어먹었어요. 제게는 트라우마였어요. 할머니가요.”
여자는 땅을 보며 손톱을 긁고 있었다. 손톱을 긁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부모님도 친척 어르신들도…… 참 많이 참으셨는데, 어느 날을 계기로 완전히 척을 져버렸어요. 이후로 할머니가 어떻게 됐는지도 몰랐는데…… 작년에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더라고요.”
거기까지 말한 여자가 숨을 내쉬었다. 다시 뚝뚝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찍어 누르며 말을 이었다.
“……돌아가시면서 그랬대요. 귀신이 돼서 저승길 동무로 삼을 테니 두고 보라고……. 외롭고 병을 얻어 힘들고 해서 그렇게라도 울분을 푸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젖은 휴지를 꽉 움켜쥔 여자의 눈가가 불그스름했다.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한주가 입을 열었다.
“재미없는 가정사네요.”
“한주 씨!”
한주의 직설적인 말에 내가 다 민망해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한주가 나를 흘깃 쳐다보며 반문했다.
“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다툼을 말렸다.
“소문으로 들었거든요. 해결만 해주실 수 있다면, 괜찮아요. ……얘길 계속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한주가 선심 쓰는 투로 대답하자 여자가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고마워요. 반년쯤 전부터 집안사람들이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했어요. 누구는 병을 얻고, 누구는 사고를 당하고……. 하나둘 차례대로 큰 봉변을 당하고 있어요.”
여자가 떨리는 손을 꽉 움켜잡았다.
“어느 날 무당이 대뜸 찾아오더니 그러더라고요. 집안이 저주받았다고. 모두 죽을 거라고. 그런데…… 아무도 해결을 못 해줬어요. 용하다는 사람은 죄다 찾아가 봤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여자가 손이라도 붙잡고 애걸할 것 같은 기세로 말했다.
한주는 영 시큰둥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 여자에겐 집안의 중대사가 달린 일이어도 한주에게는 잡귀 처리라서 그런 걸까.
한주가 일단은 물어본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아래쪽 지방에서요.”
여자가 말한 지명을 듣더니 한주가 조금 흥미가 동한 얼굴을 했다.
“분명히…… 그쪽 부근에서 큰 화재사건이 있었죠?”
“화재요? 아아……. 네. 얼마 전에요.”
여자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쩐지 영문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또 뭐 얻을 게 있는 모양이다.
한주가 씩 웃더니 말했다.
“좋아요. 가죠.”
내일 내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 * *
도대체 타이밍이라는 건 왜 늘 이 모양인 걸까. 한주가 학교로 마중 나온 타이밍에 연주와 맞닥뜨렸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연주가, 한주를 보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방긋방긋 웃으며 사람 좋은 얼굴로 다가온 연주가 쾌활하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연주의 붙임성 좋은 인사에 한주도 살짝 묵례하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둘은 한동안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먼저 입을 연 건 연주였다.
“혹시 가람이 여자친구분이세요?”
하지만 한주는 대충,
“아니요.”
하고 답하며 여전히 연주를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실례했네요.”
연주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슬며시 바라봤다. 새로운 가십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반짝반짝 신난 표정이었다.
“……사장님, 이쪽은 김연주라고 제 사촌이에요.”
“사촌?”
한주가 생각보다 흥미를 보였다.
“네.”
한주에게 답한 다음 연주를 보며 말했다.
“이분은 나 알바 하는 곳 사장님이야.”
“아…… 알바. 그렇구나.”
연주가 어쩐지 실망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나는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물을까 봐 조마조마한 기분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뭐라고 둘러댈지 생각을 해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주가 한주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젊은데 사장님이라니 대단하세요!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돼요?”
역시 물어본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일단 뭐라도 말하려 나선 나를 대충 뒤로 밀친 한주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개인적으로 외주 받아서 일하고 있어요. 혼자 잡무처리까지 하기 힘들었는데, 가람이가 도와줘서 덕분에 좀 편해졌죠.”
한주가 연주에게 명함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하는 일을 둘러댔다.
“잘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하시네요. 우리 가람이가 좀 어리바리할 텐데 실수 좀 해도 예쁘게 봐주세요.”
“네. 어리바리한 것 정돈 제가 감수해야죠.”
둘이서 나를 까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잠시 하하호호 웃는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연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저도요. 반가웠어요.”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는 연주를 한주가 계속 응시했다.
연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한주 씨, 왜 그래요? 연주한테 뭐 문제 있어요?”
한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라……. 문제라면 문제고, 아니라면 아니지.”
애매한 대답을 내뱉은 한주가 더 할 말은 없는 듯 훽 몸을 틀어 차에 탔다.
나도 따라 옆자리에 앉으려다, 그 자리에서 의뢰인이 잠들어 있는 걸 보고 뒷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저 여자애. 연주인가 뭔가 하는 애.”
내가 뒷좌석에 올라타 차 문을 닫자 한주가 말을 이었다.
“특이체질이네. 너랑 정반대인.”
“무슨 소리예요?”
“귀신을 쫓는 체질이야.”
나는 문제라면 문제라는 말이 이해가 안 돼 되물었다.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애매하게 답한 한주는, 더는 말할 생각이 없는지 조용히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