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80화 (380/381)

380화

전달된 공지대로 카니발 대륙 전역 에 전대미문의 대규모 재해가 들이 닥쳤다.

어떤 곳은 쉘터 내에 태풍이 발생 하여 곤혹을 치렀고,어떤 곳은 웬 종일 비가 내려 물난리를 겪었으며, 어떤 곳은 사막처럼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여 가뭄에 시달렸다.

카니발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쉘터 가 커뮤니티 소속이기 때문에,코반 을 주축으로 지역장들이 직접 나서 서 구호 활동에 나섰지만 손이 부족 하여 모든 쉘터를 구제할 순 없었 다.

피해가 속줄하면서 사람들의 심성 은 날로 거칠어져 갔다.

거기다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자극적인 소문이 퍼지기 시 작했다.

‘오늘날 대재앙은 최강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최강현이 신화급 웨 이브를 공략하지만 않았어도 대재앙 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건 최강현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다!’

다들 최강현 때문에 이 난리를 겪 고 있단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싫고 짜증나고 미워 죽겠는데도 다 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에 최강현을 뽑았는데 별거 아 닌 제재를 가하고 끝난다면?

최강현이 카니발 대륙의 이세계인 들에게 앙심을 품게 되면 막을 자가 없다.

그토록 위상 높던 카심마저도 당해 내지 못했는데 감히 누가 최강현을 막겠는가.

뒷감당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것 을,최강현 본인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함으로서 망설임을 지워 주었 다.

본인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면 뽑아도 되겠지.

제재가 별거 아니더라도 잘못을 인 정하고 있으니까 앙갚음 같은 건 하 지 않겠지.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모를 소문

덕에 모두가 망설임을 지울 수 있었 다.

시간이 흘러 대투표 실시 전날.

저녁 6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카 니발 대륙의 모든 이세계인들에게 공지가 전달되었다.

[여러분,내일은 예고한 대로 투표 를 실시하겠습니다. 날이 넘어가는 자정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일인당 1 장씩 투표용지가 지급됩니다. 지급 된 투표용지는 지급 받은 본인만 죽 이고 싶은 자의 이름을 기입할 수 있습니다. 이름 밑에는 해당 인물의 특징을 아는 만큼 기입해 주십시오.

특징을 기입하셔야만 동명이인을 가 려 낼 수 있습니다. 특징을 기입하 지 않은 용지는 무효 처리가 됩니 다.]

그 날 하루.

카니발 전역에서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투표에 참가했다. 투표율이 9할을 넘지 못하면 재투 표를 해야 한다.

투표가 끝나지 않는 한 자연재해가 끝나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곧 무조건 한 번의 투 표로 끝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 모두에게 투표를 강요했다.

자정에 투표가 시작되어 다음 날

자정에 투표가 끝났다.

투표 결과.

투표율은 95퍼센트.

카니발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 들이 투표에 참가한 셈이었다.

그중에서 강현의 득표율은 무려 80퍼센트에 달했다.

투표가 끝난 직후에 카니발 대륙의 거주민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가 거 짓말처럼 그쳤다.

강현 일행과 신 혁명군,언더그라 운드 사람들은 투표 결과를 듣기 위 해 언더그라운드 지하 1층 광장에 모여 있었다.

최강현이 1등을 할지,아니면 의외 의 결과가 나올지.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투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로지 최강현에게만 개인 공지가 날아들었다.

[당신은 카니발 주민 중에서 8할 이상에 해당하는 자들에게 표를 받 았습니다. 대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달성하셨기에 합당한 제재를 가하겠 습니다. 1분 후,당신은 창조급 웨 이브로 강제 소환됩니다.]

“1분 후에 창조급 웨이브로 강제 소환된다는군.”

평범한 선거 같은 것이었다면 환호

성을 지르며 기뻐했을 거다.

그러나 대투표 1등의 경우엔 기뻐 해야 할지,슬퍼해야 할지 애매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1분밖에 없다고 한다. 기껏해야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 끝나는 시간.

사람들은 남은 1분을 김혜림에게 양보하였다.

김혜림은 기합을 불어넣듯 강현의 어깨에 손을 척하니 올리며 산뜻한 투로 말했다.

“금방 끝내고 올 거죠?”

누구 죽으러 가나?

아니 잖은가.

강현이라면 괜찮다.

금방 끝내고 올 거다.

창조급 웨이브를 공략하고 여봐란 듯 돌아올 거라 믿는다.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에서 그녀의 바람이 고스란히 전 해져 왔다.

강현은 김혜림의 허리에 팔을 둘러 살포시 끌어안았다. 그리곤 무뚝뚝 한 목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목소리 로 무사귀환을 약속했다.

“금방 돌아올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 려 굳어 있던 표정이며 목소리가 원 형을 되찾았다.

강현을 알고 있는 자라면 그의 목

소리가 풀린 것이 얼마나 커다란 변 화인지 모를 리 없다.

인간의 심성이란 건 땅과도 같아서 황무지가 되기는 쉽지만,한 번 황 무지가 된 곳을 녹지로 만들기 위해 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사람 과의 관계를 재구축하고,많은 적과 아군을 거쳤으며,즐거운 일과 불쾌 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좀 더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다.

고로 창조급 웨이브에서 죽을 생각 은 없다.

강현과 김혜림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와 동시에 김혜림이 눈을 떴을

때.

그 자리에 강현은 없었다.

*

창조급 웨이브는 한없이 하얀 공간 이었다.

온통 하얀데다 지면,천장,벽면 구분이 존재하지 않아 원근감을 잡 기 힘들었다.

또 하나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면 광활한 공간 안에 형형색색의 웨이 브 보석이 널려 있다는 점이었다.

C랭크부터 전설급 웨이브 보석까 지.

눈대중으로 세어도 수백 개의 웨이

브 보석이 지면에 닿아 있거나 공중 에 떠 있는 등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러던 차에 몇몇 웨이브 보석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웨이브 보 석이 있던 자리에,새로운 웨이브 보석이 밑동부터 천천히 생성되기 시작했다.

웨이브 보석이 사라지고 다시 생성 되는 곳.

창조급 웨이브에서 어떤 작업이 진 행되고 있었는지 대충 감이 온다.

‘모든 웨이브 보석은 여기서 생성 되서 카니발로 공급되고 있었군.’ 창조급 웨이브만 없으면 더 이상 세간에 웨이브 보석이 나타날 일은 없다.

창조급 웨이브 내부를 관찰하고 있 는데 공중에 있는 웨이브 보석 중 한 곳에 거대한 인간형 타입의 신수 가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신장은 5미터쯤 될까.

손에는 3미터짜리 장검을 들고 있 고 은빛 비늘 갑옷을 입은 자였다.

인간의 몸에 호랑이의 머리가 달린 반인반수.

그가 바로 최초의 신수 ‘룰’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인상이다.

오래전,강현이 1년간 갇혀 지냈던 현자의 인공 던전.

거기서 보스 몬스터로 군림하고 있 었던 석상 호걸과 흡사한 외견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석상 호걸은 돌로 된 석상이었던 반면,룰은 생생한 피부를 지닌 육체라는 점이었다. 강현은 빙백검을 뽑아 그랜드 오러 를 부여하며 룰의 심기를 자극했다.

“자신의 모습을 닮은 석상 몬스터 를 만들어 내다니 악취미로군.”

석상 호걸은 곧 룰이 자신의 모습 을 본떠서 만든 몬스터였던 것이다. 위에 을라서면 우상화를 꾀하게 된 다더니 과시욕에 있어선 룰도 여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룰이란 신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룰은 웨이브 보석에서 뛰어내려 바 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착지하면서 굽힌 한쪽 무릎을 천천히 펴면서 위 세 좋게 두 다리 곧게 뻗어 우뚝 섰다.

그의 입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홀러 나왔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 는군,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룰의 장대한 계획에 타임로드가 간 섭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쪽은 룰에 대해 알고 있는데 저 쪽은 히든 시스템에 대해 모른다. 파고들 여지는 충분했다.

강현은 능수능란하게 모른 척 시침 을 떼었다.

“사냥해야 할 대상의 이름을 일일 이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듣던 대로 대찬 성격이구나. 나는 룰,테라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이다. 최강현이여,애석하게도 투표 결과 에 따라 네게 제재를 가하게 되었구 나.”

따악!

룰이 손가락을 튕기자 빙백검이 가 루가 되어 흩날렸다.

각종 보구를 넣어 둔 아공간 주머 니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주먹 을 휘어 맨손에라도 마나를 부여했 는데 이번에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 다.

어찌 된 조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룰은 옴짝달싹못하는 강현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며 말했다.

“네가 무엇을 준비해 왔든 테라 시 스템의 창시자인 내겐 무의할 따름 이지. 이제야 네 처지가 실감되느 냐?”

룰의 손에 짙은 황금빛 마나가 깃 들며 검의 형태를 이루더니 최강현 의 복부를 찔렀다.

룰은 손을 비틀어 최강현의 몸속을 휘저으며 고통을 가중시켰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기세등등하게 굴던 강현의 표정이 비굴하게 일그 러 졌다.

“크으으옥! 자,잘못 생각했어. 서,

설마 이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있 을 줄은…… 크으옥!”

“날 원망하지 마라. 널 죽음으로 인도한 것은 너와 똑같은 인간들이 다. 세상 모든 인간들은 네가 죽는 걸 원하고 있지. 인간이 얼마나 추 악한 생물인지 알겠느냐?”

“주,죽고 싶지 않아! 내가 왜 얼 굴로 모르는 사람들의 원망을 받으 면서 죽어야 하냐고! 공략을 한 것 뿐인데!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한 게 전부인데!”

“그래,인간을 원망해라. 그리고 절 망해라. 세상이 널 죽이려 한다. 널 죽이려 한 세상에 복수를 하고 싶지 않느냐?”

“크으으,복수를…… 원해. 날 보내 놓고 저희들만 평화롭게 산다고? 그 딴 걸 용납할 수 있겠냐고!”

원통함을 호소하는 강현.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서 억울함이 배어 나온다.

그의 모습에서 다른 감정을 배제한 채 원망과 복수심만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 전해져 왔다.

룰은 복수를 부르짖고 있는 강현에 게 검은색 환약을 내밀었다.

“복수하고 싶다면 이걸 받아들여 라. 너를 절망케 한 인간들에게 절 망을 안겨 줄 수 있는 물건이다.”

사념체와 가짜 육신만 남아 있는 룰은 웨이브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대신 절대적인 강자를 부릴 수 있 게 된다면 세계를 멸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강현에게 내민 환약은 룰이 긴긴 세월을 바쳐서 만든 영약으로,한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육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까지 지배할 수 있다.

한 번 먹이면 평생 주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게 되며,제정신을 되 찾을 일은 절대로 없는 악마적인 영 약.

다만 효과를 보려면 상대방의 동의 를 얻어야 한다.

강현은 악에 받쳐선 한 치의 고민 도 없이 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겠어.”

강현이 검은색 환약을 입에 물며 단번에 삼켰다.

절망자의 탄생과 함께 룰의 쾌감이 극에 달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절망자의 탄생이다!

인간을 멸하고,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재창조하겠다!

욕망이 달성되었을 때.

갑자기 룰의 시야가 비틀렸다. 비틀린 시야가 정상적으로 되돌아 왔을 땐 강현이 룰을 내려다보고 있 었다.

더불어 룰의 몸은 검에 베인 것처 럼 조각조각 나 있었고,룰의 머리 는 육신을 잃고 덩그러니 바닥을 구 르는 중이었다.

조각난 육신의 단면마다 빙백검에 베인 것처럼 얼어붙은 흔적이 남아 있다.

마치 빙백검에 베인 것처럼 말이 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최강현을 완 전히 굴복시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돌변했다.

마치 환각에 빠졌던 것처럼.

룰이 혼란스러워서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가운데.

강현은 빙백검을 유려하게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 내곤 룰의 머리에 검 끝을 들이댔다.

“좋은 꿈 꿨나?”

룰은 그제야 강현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차렸다.

강현을 굴복시킨 상황 모두가 허 구.

환각이었던 것이다.

창조급 웨이브에 대해 파악하기도 전에 환각부터 걸었단 말인가. 모름지기 웨이브에 들어서면 공략 법부터 알아본 후에 행동에 나서는 게 보통이거늘!

강현으로선 룰에게 시간을 줄 생각 이 없었다.

테라 시스템 창시자인 만큼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알지 못 하기에.

강현과 룰의 처지는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뀔 수 있다.

승기를 잡았을 때 끝내겠다.

강현은 룰이 움직임을 취할 틈을 주지 않고 빙백검으로 룰의 머리를 찔렀다.

푸욱!

빙백검에 맺힌 그랜드 오러가 룰의 머리를 찌르면서 룰의 숨통을 끊었 다.

속전속결.

상대를 말살할 한 방을 가지고 있 는 자들끼리 부딪쳤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었다. 이제 무사히 창조급 웨이브 바깥으 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헌데 출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강현은 금방 이유를 알아차렸다.

“처음부터 출구 같은 건 만들어 두 지 않았나 보군.”

테라 시스템의 창시자인 룰은 출구 를 만들어 두지 않아도 즉석에서 출 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혹시나 절망자 후보가 저항하며 탈 출하려 할 경우를 대비해 아예 출구 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룰이 죽어 버린 현재.

완전히 창조급 웨이브에 갇혀 버렸 다.

아직 방법은 있다.

따르마가 전해 준 타임로드의 전언 을 믿어 보자.

‘최후의 최후에 곤란한 일이 생기 면 업적의 서 효과가 당신의 힘이 되어 줄 거예요.’

웨이브 보석 300회 공략 업적 달 성 시 창초급 보구가 지급된다. 다행히 카니발에 출시하지 않은 웨 이브 보석이 넘쳐 나는 곳이다.

300회를 채우는 건 어렵지 않을 터.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

강현은 빙백검을 늘어뜨린 채로 가 까운 곳에 있는 웨이브 보석부터 공 략하러 들어갔다.

“금방 돌아가겠다는 약속. 못 지키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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