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78화 (378/381)

378화

타임로드.

신수이면서도 웨이브 안에 있지 않 고 활동하고 있는 신수.

더불어 빌로스 황제에게 현자의 팀 을 조성하게 하여 히든 시스템을 만 들도록 예견한 자.

사실상 히든 시스템을 계획한 존재 라 할 수 있다.

“강현 씨.”

김혜림이 굳은 얼굴로 강현을 불렀 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다.

저 말이 진짜냐고 묻는 것이었다.

자신을 파르마라 소개한 자의 말

속에 노이즈는 섞이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정말로 타임로드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타임로드가 맞다는 의미에서 고개 를 끄덕이자 김혜림이 화염백조를 소환했다.

“가 보죠. 이쪽에서 찾아내려 했는 데 알아서 찾아와 줬네요.”

“찾는 수고를 덜었군.”

타임로드에게는 묻고 싶은 것이 많 다.

신수이면서 왜 신수 자격을 박탈당 한 건지.

어떤 이유로 히든 시스템을 고안하 게 된 건지.

창조급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한 후

엔 어떻게 되는지.

그 모든 해답을 내줄 자가 부유섬 위에 있다.

강현 일행은 비행 몬스터를 타고 부유섬 위로 날아갔다.

부유섬 위에 있는 거라곤 부드럽게 살랑이고 있는 잔디밭과 무너져 가 는 신전이 전부였다.

강현 일행이 부유섬 위에 착지하자 상반신은 인간,하반신은 말의 모습 을 갖춘 켄타로우스가 정중하게 맞 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여러분.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타임로드 님 을 모시는 파르마라고 합니다. 안으 로 들어가시지요. 타임로드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파르마의 안내를 받아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볼 땐 폐허나 다름없는 건물이었는데 막상 신전 안쪽은 아 늑한 편이었다.

기둥마다 발광이끼를 걸어 놓아서 신전 안이 대낮처럼 밝았고,일정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기둥을 지나 치며 신전 깊숙한 곳에 들어가자, 석제 원탁이 있는 넓은 홀에 다다랐 다.

석제 원탁 안쪽 자리에는 깃털이 꽂힌 모자와 녹색 스톨을 두른 여인 이 앉아 있었다.

여인이 감고 있는 눈을 뜨자 살아

숨 쉬듯 영롱한 황금색 눈동자가 드 러났다.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 숙 여 인사했다.

“반가워요,최강현 군. 그리고 김혜 림 양과 세이아나 양,루나 양. 제6 신화급 웨이브를 맡고 있는 타임로 드라고 합니다. 어렵게 여기지 마시 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너무 숙이지도,너무 뻣뻣하지도 않은 인사 동작이었다.

간단한 인사인데도 형용할 수 없는 기품이 흘러넘쳤다.

신수라는 걸 모른 채로 만났다면 어딘가의 공주나 귀족가 영애로 여 겼을지도 모른다.

강현은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인사 를 하며 타임로드의 맞은편에 앉았 다.

강현을 따라 다른 이들도 각자 자 리를 잡고 귀를 열었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뭐부터 꺼내야 좋을까 싶다.

궁금한 게 너무 많은 나머지 쉽사 리 질문을 꺼내지 못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되었다.

파르마가 차를 내오고 따뜻한 찻잔 을 손으로 잡아 얼어붙은 손을 녹였 다.

찻잔의 온도가 미지근해질 즈음에 강현이 운을 띄웠다.

“방금 제6신화급 웨이브라 들은 것

같은데 제대로 들은 거 맞나?”

타임로드는 차를 홀짝였다.

단순한 동작인데도 보는 이가 푸근 해지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타임로드 주변에만 다른 공기가 흐 르고 있는 것 같달까.

혼자서만 다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를 한 모금 홀짝인 타임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여긴 원래 제6신화급 웨이브 가 있던 곳이었어요.”

“지금은 아닌 것처럼 들리는군.”

“맞아요. 룰에 의해 신수 자격을 박탈당하고 제가 주인으로 있던 제6 신화급 웨이브는 기능이 정지된 후에 소멸되었죠.”

“룰?”

“아무래도 처음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네요. 여러분께는 모든 걸 말씀 드려 야겠죠.”

타임로드는 무릎 위에 양손을 올리 고 다소곳한 자세로 테라 시스템이 만들어진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 였다.

*

먼 옛날.

카니발 대륙엔 황량한 적색 대지와 푸른 하늘밖에 없었다.

생명체라곤 하나도 없는 곳.

수천 년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 는 기상현상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 던 카니발 대륙에,7마리의 신수가 태어났다.

그랜드 우드.

어스 메갈로돈.

드링큰 크라운.

하이데 스.

바몬.

타임로드.

룰.

처음에는 웨이브 보석과 테라 시스 템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일곱 신수는 자유롭게 카니발 대륙 을 활보하며 자신의 능력을 한껏 활 용했다.

그랜드 우드는 푸드스톤과 각종 식 물의 씨앗 및 포자를 뿌려 식물이 싹이 트게 하였다.

어스 메갈로돈은 대지를 헤엄쳐 다 니며 단단한 등지느러미로 강을 뚫 고 물이 흐르게 하였다.

드링큰 크라운은 각종 재료를 이용 해 수천,수만 종류의 인형을 만들 어 냈다.

하이데스는 하위 차원에서 죽은 몬 스터들의 영혼을 끌어다가 인형에 불어넣었다.

당시에는 하위 차원의 우거진 산이 나 숲에 몬스터가 살던 때인지라 영 혼을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몬은 하위차원의 각종 기술과 도

구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정보를 끌어다 모았다.

타임로드는 미래를 예지하며 신수 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 주었다. 다만 룰만이 본래의 능력인 규칙을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나날 이 고찰을 거듭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확고한 자아와 사고능력을 지닌 존 재가 자신의 존재의의에 질문을 던 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임로드는 룰에게서 불길한 미래 가 보이기 시작하는 걸 느끼곤 그와 많은 대화를 가졌다.

그러나 타임로드의 노력이 무색하 게도 상황은 불길한 미래를 향해 치달았다.

룰은 존재의의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생물인 인간의 사고방식을 참 고하고자 계속 인간들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하위 차원 한 곳만 관찰 하다가 하위 차원 다섯 곳을 모두 관찰하고,기어이 다른 차원까지 살 펴보기 시작했다.

모든 차원을 둘러본 후에 룰의 사 상은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인간은 쓰레기보다도 못한 종족이 다. 헐뜯고 비난하고 싸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비열한 종족. 그게 바 로 인간이다. 우리의 힘은 넘치도록 불어난 쓰레기를 청소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인간의 몰살에 존재의의를 둔 룰은 그때부터 인간 말살 계획을 짜기 시 작했다.

본인이 지닌 규칙을 만드는 능력으 로 테라 시스템을 만들었고,다른 신수들에게 인간혐오사상을 주입시 켰다.

그리곤 웨이브 보석을 만들어 신수 들로 하여금 신화급 웨이브의 수장 이 되라고 권했다.

그 과정에서 타임로드는 룰의 계획 에 반대하고 나섰다.

‘룰,당신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건 자연의 섭리예요. 당신이 하려는 짓은 인간의 그림자만 보고 인간이 시커먼 종족이라고 판단하는 격이에 요. 누구도 그들을 몰살시킬 권리는 없어요.’

‘쓰레기에 향수를 붓는다고 쓰레기 란 본질이 바뀌던가? 놈들을 옹호하 는 건 그만두고 내 말을 따르도록 해.’

‘거절하겠어요.’

'끝까지 인간 편을 들겠다면 너부 터 제거하겠다.’

서로 반목하던 타임로드와 룰은 사 흘 밤낮 동안 전투를 벌였으며,결 과는 룰의 승리로 끝났다. 타임로드는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 하여 룰이 타임로드를 가두려고 만 든 제6신화급 웨이브 보석을 부수고 부유섬을 탈취하여 카니발 대륙을 떠돌아다녔다.

반대하는 자가 없어지면서 인간 말 살 계획 진행 속도에 탄력이 붙었 다.

룰은 원래 책정해 두었던 6개의 신화급 웨이브를 5개로 줄였고,본 인은 창조급 웨이브에 들어갔다. 기본적인 틀은 완성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절망자 후보로 누굴 뽑느냐 가 문제였다.

룰은 카니발 대륙과 이어진 다섯 하위차원보다,다른 차원의 인간들 이 후보자로 적격이라 여겼다.

테라 시스템과 유사한 시스템을 오

락으로 삼던 차원의 인간들. 그들이라면 테라 시스템에 금방 익 숙해질 수 있는데다,공략을 통해 얻은 보상을 폭넓게 이용할 수 있을 터.

그래서 이세계인들을 소환하여 이 세계인들에게만 테라 시스템을 부여 하였고,최종적으로 모든 인간을 멸 망시키고도 남을 능력자가 탄생하길 기다렸다.

*

테라 시스템 탄생 비화를 들은 강 현은 히든 시스템을 택한 이유를 알 게 되었다.

히든 시스템을 만드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거다.

“테라 시스템을 정면에서 부수긴 힘드니까 허점을 파고들어서 히든 시스템을 만든 거였군.”

“테라 시스템은 철저하게 룰에게 유리한 쪽으로 짜여져 있어요. 룰을 쓰러뜨리려면 룰의 손이 닿지 않는 변수를 만들어 내야 했죠.”

“결국 절망자란 뭐지? 창조급 웨이 브에 들어가면 무조건 절망자가 되 어 버리나?”

“그 부분은 저도 알아내지 못했어 요. 창조급 웨이브가 나타나면 절망 자가 탄생한다는 것만 말해 줬었 죠

“정보가 없다는 거군.”

“네,절망자가 되지 않고 그를 쓰 러뜨려야만 테라 시스템의 악순환에 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자가 필 요했고요. 이건 주관적인 판단이지 만 당신 이상 가는 자는 없다고 생 각해요.”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군. 근데 인간을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았지? 신수의 힘이라면 테라 시스템을 만들 것도 없이 직접 인간을 몰살시킬 수 있었 을 텐데 말이야.”

“정론이네요. 인간을 제거 대상으 로 삼은 이상 스스로 웨이브 보석에 갇히는 꼴이 된다는 건 우스운 일이 죠.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가 있어요.

신수들의 수명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죠. 당신이 상대해 온 신수들은 가짜 육신에 사념체가 깃 든 것에 불과하죠. 그들의 사념체는 웨이브 보석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 어요. 저도 제게 부여된 시간의 축 을 비틀어 하루하루 수명을 연장하 고 있긴 했는데 그것마저도 더 이상 은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래서 대신 세상을 멸할 절망자 가 필요한 거였군. 한 가지만 더 묻 지. 예전부터 궁금했어. 창조급 웨이 브 공략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 지?”

창조급 웨이브를 공략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껏 수도 없이 생각해 본 주제 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테라 시스 템은 그대로 있을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타임로드라면 예지 능력이 있으니 뭐라도 알고 있을 터.

헌데 타임로드는 고개를 가로저으 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죄송해요. 거기까진 보이지 않네 요. 룰과 전투를 벌이고 나서부터 조금씩 예지의 힘이 약해지고 있어 서요. 최근에는 예언이 변경되는 경 우가 잦아지고 있어요. 뭐라도 확답을 드릴 수 없네요. 정말 죄송해요.”

“사과할 일은 아냐. 혹시 알고 있 나 싶어서 물어본 거니까. 네 말대 로라면 히든 시스템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창조급 웨이브에 입장해야겠 군. 마지막 남은 제5신화급 웨이브 로 향하겠어.”

타임로드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깊게 감고 침묵을 고 수하더니 한참 뒤에야 말을 꺼냈다. 그녀의 입을 통해서 달갑지 않은 소식이 전달되었다.

“리리란 아이가 방금 막 제5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했네요.”

“리리? 니케의 동생인 그 리리?”

“네,처음에는 카심이란 사내가 공 략한다는 예언이 보였었고,그 뒤에 는 최강현 씨로 바뀌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리리란 아이가 공략해 냈군 요. 이걸로 모든 신화급 웨이브가 공략되었어요.”

“곤란하게 됐군. 가장 중요한 공격 스텟이 4차 각성을 이루지 못했는데 말이지.”

허물검마저 부서진 터라 공격 스렛 4차 각성이 절실한 때였다.

리리가 변수로 작용할 줄 누가 알 았겠는가.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서 무 적 관통 능력이 가미된 무기를 갖춰 야 한다.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 고 있는데 별안간 타임로드가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강현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 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리로 오세요.”

줄 거라도 있는 모양이다.

공격 스텟 4차 각성과 관련된 무 언가를 주지 않을까 싶다.

강현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 나 타임로드 앞까지 걸어갔다.

두 사람의 간격이 팔 하나 뻗으면 닿을 공간까지 좁혀졌다.

빠져들 것같이 깊은 눈동자로 강현 을 응시하던 타임로드가 빙백검의 손잡이를 가리켰다.

“검을 뽑아 보시겠어요?”

요구대로 빙백검을 뽑자 검날이 검 집 안쪽 면을 스치며 청명한 마찰음 을 내었다.

스릉!

“이러면 되나?”

“네. 몸에 힘을 빼셔야 해요.”

타임로드는 자세를 교정해 주듯 자 신의 손으로 강현의 양쪽 손목을 잡 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돌발행동을 취 했다.

강현의 팔을 잡아당겨 빙백검으로 자기 자신을 찌른 것이다.

푸욱!

날카롭게 벼린 검날이 여린 피부를

가르면서 타임로드의 왼쪽 가슴 깊 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워낙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사전예고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던 지는 행동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 했다.

안 그래도 무뚝뚝한 강현의 표정이 타임로드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더욱 딱딱해졌다.

타임로드는 입가에 선혈을 홀리면 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잊으…… 셨나요? 저도 신수람니 다.”

초월의 서 각성 조건은 신수를 사 냥하는 것.

타임로드도 신수이니 조건을 충족

시킬 자격은 충분하다.

공격 스렛 4차 각성을 위해 스스 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마지막 제5신화급 웨 이브를 공략하리란 걸 예지한 순간 부터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닐까 싶다.

빙백검을 통해 묵직한 무게가 전해 져 왔다.

그 어떤 대형 몬스터를 벤다 하더 라도 이처럼 묵직하진 않으리라. 타임로드의 피가 검신을 타고 뚝뚝 흐르는 가운데 강현이 입을 달싹였 다.

“그쪽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받기만 했군.”

조그맣게 읊조리는 목소리.

히든 시스템의 창안자가 타임로드 라면,히든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는 강현이 다.

강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모 든 것을 마련해 주고서도 마지막에 가선 목숨까지 주고 가는 타임로드 였다.

타임로드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점점 눈이 감기는지 눈꺼풀이 내려 앉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모든 건 신수의 잘못이기 때문에 신수가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는 것 처럼 눈을 감은 타임로드의 얼굴에 는 후회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잘못을 되돌리는 데엔 항상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타임로드는 겸허히 희생역을 받아 들였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윽고 타임로드의 숨이 몇으면서 속죄의 뜻이 담긴 마지막 선물이 도 착했다.

[무적 관통(공격 스텟 4차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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