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높은 상공에서 카니발 대륙을 유람 하고 있는 어느 부유섬.
폐허가 된 유적지와 버려진 신전만 으로 이루어진 황량한 섬 위에는 한 여인이 스몰 하프를 켜고 있었다. 깃털이 꽂힌 모자와 녹색 스톨을 두른 황금색 눈동자의 여인.
여인의 손가락이 하프의 현을 뜯을 때마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 다.
곡이 끝나려면 멀었는데 현을 뜯던 손가락이 멈췄다.
여인의 곁을 지키던 켄타로우스가 여인에게 예지가 찾아들었음을 직감하곤 입을 열었다.
“미래가 보이셨습니까?”
여인은 스몰 하프를 켄타로우스에 게 맡기며 스톨을 여몄다.
“마지막 후보자는 리리란 아이였네 요. 하지만 그 아이가 선정될 가능 성은 희미해요.”
“허면 절망자 최종 후보는……
“최강현이 되겠죠.”
“그는 제4신화급 웨이브로 가고 있 습니다. 하이데스가 지키는 곳이지 요.”
“그라면 괜찮아요. 문제없이 처리 해 내겠죠. 근데 제5신화급 웨이브 는 리리란 아이가 공략해 낼 것 같 네요.”
“예언이 또다시 앞당겨졌군요.”
“네.”
예언이 앞당겨졌다는 게 무엇을 의 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타 임로드와 따르마였다.
파르마로선 최강현이 모든 신화급 웨이브를 처리해 주길 바랐었다. 그랬다면 자신의 주인이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고,타임 로드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파르마는 타임로드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스몰 하프를 가슴팍에 끌어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당신을 모실 수 있어서 영
광이었습니다.”
“고생 많았어요,따르마.”
“아닙니다,제가 원해서 따라온 것 이니까요.”
“후후,고마워요.”
“바람이 찹니다. 안으로 들어가시 지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이라도 끝까지 봉사를 하고자 걱정스레 그 녀의 건강을 염려하는 파르마였다. 타임로드는 창백한 안색 위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띄우곤 신 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끝을 예고하듯 부유섬을 이루고 있 는 거대한 바윗덩어리에 조금씩 균 열이 생기고 있었다.
타임로드와 파르마가 신전 안으로 들어간 후.
부유섬은 끝을 맞이하기 위해 천천 히 서쪽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 했다.
*
제3신화급 웨이브 공략이 끝난 지 도 벌써 열홀이 지났다.
전 대륙이 아직도 카심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 는 가운데 제4신화급 웨이브에선 김 혜림,세이아나,루나가 공략을 진행 중이었다.
카심이 세상을 떠남으로 인해 커뮤
니티가 모든 계획을 중단하고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고로 커뮤니티는 제4신화급 웨이브 공략에서 손을 됐고,그 덕분에 경 쟁자 개입 없이 공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제4신화급 웨이브로 말할 것 같으 면 육도윤회를 기반으로 한 던전이 었다.
제4신화급 웨이브를 이루고 있는 방은 총 6개.
지옥도,아귀도,축생도,수라도, 인간도,천상도.
윤회와 해탈을 목적으로 한 기존의 개념과 달리,이름과 특색만 따와서 던전으로 구축한 곳이었다.
첫 번째 구간은 지옥도.
지옥도에선 공략자들의 파멸을 바 라는 악귀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미로를 통과해야 했 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세 여자가 입 발린 말에 넘어가겠는가.
거짓말을 하다가 지친 악귀들이 종 국에선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는 데,되려 세이아나의 찰진 욕을 듣 고 부리나케 줄행랑을 치고 마는 헤 프닝이 벌어졌다.
두 번째 구간은 아귀도.
아귀도는 몬스터들을 잡아다가 아 귀들에게 먹여야만 다음 구간으로 가는 문이 열리는데 아귀들은 몬스터를 먹으면 강해지고,인간을 먹으 면 약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모조리 몬스터만 먹였을 경우에 아 귀들에겐 무적 능력이 생겨서 최소 한 명 이상은 희생해야 했다.
그러나 모조리 몬스터만 먹였다.
김혜림에겐 마롱의 허물로 만든 화 살이 있으니까.
몬스터만 먹여서 길을 연 후,막아 서려고 달려드는 아귀들을 허물 화 살로 줄줄이 꿰어 주었다.
세 번째 구간은 축생도.
축생도에선 공략자의 생일에 따른 십이지 동물로 변하여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해 다음 구간까지 주파해 야 했다.
김혜림은 토끼,세이아나는 돼지가 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역마인 루나는 생일 개념 이 없었기에 테라 시스템에서 생일 을 인식하지 못하여 본래 모습으로 활동할 수 있었고,세 번째 구간인 축생도는 해일 스킬을 몇 번 써 주 자 금방 정리되었다.
여담으로 김혜림은 토끼로 변한 것 에 만족한 반면,십이지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서 살아온 세이아나는 어째서 자기는 돼지로 변한 거냐며 펄펄 열을 냈다.
*
네 번째 구간은 수라도.
유체화 상태인 유령들이 득실득실 한 곳이며 유령들이 적아 구분 없이 광기 어린 난투를 벌이는 광란의 전 투지대 였다.
수라도 구간을 통과하려면 구간 내 에 존재하는 모든 유령 전사를 처리 해야 했다.
챙! 채앵! 차앙!
너른 벌판에서 수백 명의 유령 전 사가 서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유령 전사에 한정하여 서로 전투를 벌이다가 상대방을 죽이면 죽인 유 령의 스텟을 흡수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무법지대마냥 서로 싸우 느라 바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싸울 상대가 적어져서 공략자들 에게 덤빌 예정이었다.
유령들의 기본사양으로 따지자면 무기는 각각 다양하게 들고 있는 편 이며,마나 능력은 그랜드 마스터급, 들고 있는 무기를 달인 수준으로 구 사할 수준은 된다.
유체화 상태의 유령들은 ‘햇불’을 감은 무기로만 공격할 수 있다. 횃불을 감은 무기는 오로지 수라도 구간에 존재하는 토템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이거 완전히 뽑기 시스템이네요.”
수라도 구간 버프 토템에 적혀 있 는 문구를 살피던 중 김혜림이 한 말이었다.
토템에 이리 적혀 있다.
[수라도 구간의 유령 전사들은 햇 불을 두른 무기로 직접 가격해야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스킬에는 햇불 무기의 유체화 공격 능력이 적용되 지 않습니다. s급 이상의 보구를 토 템에 넣으면 랜덤하게 햇불을 두른 무기 1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S급 이상의 보구를 제물 삼아 무 기를 얻을 수 있긴 한데 나오는 무 기의 타입이 랜덤이란다.
듣도 보도 못한 부류의 생소한 무 기만 아니면 된다.
김혜림이야 궁술 외에도 단검을 이
용한 검술이나 근접 능력까지 전부 익혀 두었다.
활이 아니라도 좋으니 단검이나 레 이피어 등의 가벼운 검,혹은 클로 나 건틀릿 등의 권법 보조 무기만 나와도 즉시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 다.
세이아나는 오랫동안 마법 기반의 스킬만 주구장창 활용해 온 터라 그 나마 쓸 줄 아는 무기라곤 초보자도 쉽게 다룰 수 있는 메이스나 곤봉 등의 둔기류가 전부였다.
루나는 스킬 이외에는 배운 적이 없으니 이번 구간에선 전력 외로 쳐 야 한다.
활,가벼운 검,클로나 건틀릿,둔
기류.
활용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 데 설마 하나도 안 나오겠어?
세이아나는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자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언급했 다.
“지트도 무기 쓸 수 있잖아. 바스 타드 소드 같은 거 나오면 지트 쓰 라고 하면 되겠네.”
“그쵸? 하나는 나오겠죠?”
“하나는 나온다니까. 솔직히 안 나 오는 게 이상하지.”
“그렇죠?”
“그렇다니까.”
지르기 전의 과금 유저마냥 좋은 게 나을 거란 희망을 무럭무럭 키우는 두 사람이었다.
S급 이상의 보구 중에서 여유분은
3개.
대부분의 여유분을 어스 메갈로돈 을 사냥할 때 써 버린지라 남아 있 는 건 고작 3개였다.
3회의 기회로 최소 卜2개 이상의 유효 무기를 뽑아야 한다.
김혜림은 첫 번째 보구를 토템에 넣었다.
또르르르! 턱!
토템 안에서 동전이 굴러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구멍을 통해 불 길에 휩싸인 무기가 튀어나왔다. 몸에 닿아도 전혀 뜨겁지 않은 것 이,오직 유령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불꽃인 모양이었다.
중요한 건 무기의 타입이다.
첫 번째로 나온 무기는…… 뭔지 알 수 없었다.
바나나처럼 기다란 곡선 형태의 날 붙이 두 개를 마주 보듯 겹친 무기 였다.
길이는 50cm 정도?
겹쳐진 곡선 가운데에 렬 수 있도 록 공간이 벌어져 있었다.
사실 무기의 이름은 원앙월인데, 보구로선 거의 나타나지 않는 타입 이었다.
고로 김혜림과 세이아나가 원앙월 의 사용법을 알 리 없었다.
김혜림은 원앙월을 쥐며 가로로 한
번 스윽 보곤,이어서 세로로도 한 번 스윽 훑어보았다.
“이런 생김새의 무기도 있었나. 언 니,이거 무슨 무기인지 알아요?”
“나도 처음 봐. 근데 모양만 보면 어딘가의 로고 같지 않아?”
“글쎄요. 브랜드의 가치도 무기는 무기라고 말하는 거라면 공감은 못 해 드리겠네요.”
“됐고. 다음 가자,다음. 적어도 이 름은 아는 무기가 나와야 쓰든가, 말든가 하지.”
세이아나의 재촉 속에서 토템에 두 번째 보구를 넣었다.
두 번째 무기로는 두꺼운 철침이 돌기처럼 박혀 있는 원형 방패가 나왔다.
아니 아니,잠깐만.
분명히 예전에는 방패로 공격하는 방식을 줄곧 사용했다고 들은 적이 있긴 해.
오죽하면 방밀 전사란 말까지 있겠 어?
근데 방패는 방어구지,무기가 아 니잖아.
돌기를 달았다고 무기로 치는 거 야?
방패와 원앙월.
제대로 무기로 쓸 수 있을지 의문 인 물건들을 바닥에 두고 김혜림과 세이아나 둘 다 말이 멎었다.
참다못한 세이아나가 혼자 끙끙거 리다가 결심을 내린 둣 아공간 브로 치에 손을 댔다.
“안 되겠다,그걸 써야지.”
아공간 브로치에서 스킬북이 빠져 나왔다.
이름을 적으면 죽는 사람이 발생할 것 같은 느낌의 새까만 표지를 지닌 책이었다.
김혜림은 검은색 표지에서 불길한 기분이 전해지는 것 같아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저…… 언니? 처음 보는 스킬북인 데 웬 거예요?”
“그 왜 가이아 대륙에선 흑마법 계
열의 스킬북이 금서로 지정되어 있 잖아. 이건 커뮤니티에서 지정한 금 서야.”
“처음 듣는 얘기네요. 그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에요?”
“엄청 위험하지. 근데 이번 경우엔 괜찮지 않을까 싶어.”
예전에 세이아나가 커뮤니티의 지 하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했을 무렵.
김윤중 일행과 함께 보관소에서 하 위차원 정복계획의 회의록을 빼내 온 적이 있다.
그때 금지된 스킬북도 함께 가져왔 었는데,그게 바로 지금 꺼내 든 검 은색 표지의 스킬북이었다.
스킬북 이름은 ‘도박꾼의 부적’.
발동시 일시적으로 행운이 대폭 증 가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도박,내기,전리품 획득 등.
운과 관련된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 를 얻어 낼 수 있는 스킬이다.
대신 스킬 발동 시간이 끝나면 발 동 시간 동안 사용한 행운만큼 불행 이 몰려온다.
행운이라는 게 실제로 측정할 수 있는 요소도 아니고,쓸 수 있는 상 황이 한정적이라서 일부러 습득해서 쓸 만한 스킬은 아니었다.
특히 신화급 웨이브에선 공략자에 게 필요한 물건을 보상으로 주니 더 더욱 필요 없고 말이다.
커뮤니티가 도박꾼의 부적 스킬을
금서로 지정한 건,적아 구분 없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스킬이기 때문이 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커뮤니티의 지부장 한 명이 도박꾼 의 부적을 익히곤 그 사실을 숨긴 채 다른 지부장들과 내기 포커를 치 러 다녔다.
처음에는 100만 CP 언저리나 벌고 마는 수준이었는데,어느 순간부터 욕심을 생겼는지 지부장들에게 바람 을 넣어서 도박판을 키우기 시작했 다.
욕심을 부린 탓에 소모한 행운이 그대로 불행으로 되돌아와선 자던 중에 원인불명의 화재에 휩쓸려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에 피어난 화재가 쉘터 전역으 로 퍼져서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었 다.
이게 본인 한 명만 죽으면 모르겠 는데,불행의 정도에 따라 주변까지 휘말리게 되어 버린다.
때문에 커뮤니티에선 도박꾼의 부 적 스킬북을 금서로 지정하고 발견 하는 족족 압수,해체하였다.
만약을 대비해 한 권 정도는 소장 본으로 보관해 둔 것을 세이아나가 빼 와서 여태껏 소장한 것이다. 세이아나는 충혈된 눈으로 스킬북 을 보면서 사악한 웃음을 홀렸다.
“난 딱 한 번만 사용할 거니까 괜
잖아. 딱 한 번만 쓰자. 후후후.”
“어,언니. 그,그냥 참는 게 어떨 까요?”
“괜찮다니까. 무기 하나 뽑는 건데 불행이 되돌아오면 얼마나 돌아오겠 어, 딱 한 번만 하고 손 씻을 거 야.”
“일부러 불길하게 말하는 거죠? 자 꾸 그리 말하니까 정말로 쓰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후후,농담이야 농담. 앞으로도 절 제하면서 쓰면 문제없어.”
“방금 한 번만 쓰고 끝낸다 하지 않았어요?”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어도 스킬북 을 쓰긴 써야 했다.
S급 보구 여유분이 하나만 남아 있기에 남은 1회의 기회에서 유효 무기를 뽑아야 했다.
세이아나가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 스킬북을 펼치려던 순간.
세이아나와 김혜림 사이에 흑발 사 내가 검은 로브를 펄럭이며 나타났 다.
흑발 사내,강현은 무심한 표정으 로 김혜림과 세이아나를 번갈아 쳐 다보다가 굳은살 박힌 손으로 김혜 림의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헝클며 말했다.
“별일 없었나 보군.”
현
퓨
M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