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74화 (374/381)

374화

불덩이가 폭발하며 와이번 로드의 옆구리가 깊게 패였다.

불길이 번져 나가며 패인 자리를 맹렬하게 지졌다.

강한 불길이 와이번 로드의 내장을 장작 삼아 더욱 몸집을 불렸다. 내장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감히 누가 상상할 수 있으랴.

와이번 로드가 몸부림을 치며 고통 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쿠오오오오!”

로데오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몸부 림 때문에 위에 올라타 있던 리리가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다행히 잎이 수북하게 자라나 있는 수풀 위에 떨어져서 다친 곳은 없었 다.

최진철은 리리를 일으켜 세우며 불 길에 휩싸인 와이번 로드를 보았다. 벌써 몸 내부가 절반 이상 타들어 갔다.

부상을 치료하지 않고 소환석으로 되돌리면 소환석 내부에서도 계속 고통 받다가 사망하고 만다.

와이번 로드는 이미 늦었다.

하필 와이번 로드가 당할 줄이야. 라파엘라에게서 뺏은 소환수 4마리 가운데 비행 몬스터는 와이번 로드 가 유일하다.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몬스터가 당

한 탓에 해상 루트로 빠져나간다는 계획을 실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있을 수만 은 없었다.

산등성이 아래에서 셀 수 없이 많 은 햇불이 흔들리고 있다.

세븐즈 교의 추격대가 다가오는 게 틀림없다.

멈추면 죽는다는 건 자명한 이치.

최진철은 리리의 팔을 잡아끌며 무 작정 북쪽으로 달렸다.

‘한 번 닿으면 꺼지지 않는 불 꽃…… 데메트리 부교주의 엘레멘탈 파이어였어. 데메트리 부교주가 직 접 추격대를 이끌고 왔나. 제길,성 가시게 됐군.’

원래 계획대로라면 최진철만 탈출 했어야 한다.

최진철 하나 탈출한 것 정도야 교 단에선 신경도 안 쓸 테니,적당히 3급 사제로 구성된 추격대를 파견했 을 터.

3급 사제들쯤은 빼앗은 소환수만으 로도 능히 정리가 가능하니까 원래 라면 와이번 로드가 죽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부교주의 등장은 리리를 데리고 나 온 탓에 사태가 커진 게 원인이었 다.

여전히 리리에게 소멸의 힘이 있다 고 생각하고 있기에 반드시 되찾고 자 데메트리 부교주가 직접 추격대를 꾸린 것이었다.

어두운 산속을 내달리고 있는데 하 늘 위에서 데메트리의 외침이 들려 왔다.

“11시 방향! 놈은 산중턱 소나무 지대를 통과 중이다! 길목을 막을 테니 단숨에 둘러싸서 제압해라!”

하늘에선 데메트리가 스왈로우란 이름의 비행 몬스터를 타고 최진철 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와이번 로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던진 공격으로 리리가 죽을 뻔했기 에,직접 공격하기보다 길목을 막는 데 주력할 모양이었다.

데메트리는 최진철과 리리가 향하 고 있는 길목 앞쪽에 미리 엘레멘탈 파이어를 던지려 하였다.

엘레멘탈 파이어가 떨어진다면 불 길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엔 앞에는 불,뒤에는 추격대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꼴 이 될지도 모른다.

최진철은 데메트리를 응시하며 강 제스킬봉인을 시전했다.

한 번 본 스킬 하나를 봉인하는 스킬.

가이아 대륙 조직원 시절 때부터 사용해 왔던 스킬이다.

엘레멘탈 파이어가 봉인되면서 데 메트리의 손에 맺혀 있던 불덩이가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임시방편으로 헤드 스콜피 온을 소환하였다.

중형차 크기의 몸집에 흑갑을 연상 케 하는 단단하고 검은 껍질,찌른 상대를 석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 침까지.

레벨300짜리 몬스터인 만큼 위력 적인 전투력을 자랑하긴 하는데,안 타깝게도 근접 공격만 가능한 타입 이다.

헤드 스콜피온을 비롯하여 남아 있 는 모든 소환수들이 근접 공격만 가 능한 타입인지라,하늘에 떠 있는 데메트리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고로 할 수 있는 거라곤 헤드 스 콜피온을 탈것 삼아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깊은 계곡이 나 와. 계곡 위를 잇는 흔들다리만 건 넌다면……

흔들다리를 건넌 이후에 다리를 끊 어 버릴 생각이다.

비행 몬스터에 올라탄 데메트리야 어쩔 수 없다만,적어도 지상의 추 격대의 추격만큼은 떼어 낼 수 있을 거다.

데메트리도 성녀를 구할 생각이라 면 함부로 흔들다리를 끊진 못할 터.

헤드 스콜피온을 타고 무성하게 자 란 나무 사이를 신속하게 빠져나가 자 깊은 계곡 위에 설치된 흔들다리가 나타났다.

흔들다리의 길이는 약 100미터. 폭은 사람 서너 명이 지나갈 너비. 밧줄이 노후되어 헤드 스콜피온을 타고 건널 만한 곳은 못 된다. 최진철은 헤드 스콜피온을 소환석 상태로 되돌리며 리리와 함께 흔들 다리 위를 뛰어서 주파하였다.

한편 데메트리는 추격하는 내내 석 연치 않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성녀를 다룰 수 있는 녀석이 여태 껏 한 번도 성녀에게 전투를 시키지 않고 있어. 무엇 때문이지? 성녀를 시켜서 소멸의 힘을 쓰게 하면 충분 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몇 차례 나 있었잖아.’

리리가 전투를 싫어한다고 해도 목 숨이 걸린 상황에서까지 호불호를 따지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무리하게 출정시켰다가 복귀한 이 후로 리리가 힘을 쓰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출정 전만 하더라도 시키면 억지로 라도 소멸의 힘을 썼었는데 말이다.

전투를 싫어해서 안 한다기보단, 전투를 할 수 없으니까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시험해 봐서 손해 볼 건 없다.

데메트리는 원격조종 능력이 있는 단검 보구를 꺼내어 그랜드 오러를 부여하곤 리리를 향해 날렸다.

쉬익!

단검에 딸려 있는 원격조종 능력을 이용해 일부러 천천히 날아가도록 조종했다.

레벨1 수준의 스렛을 지닌 최진철 로선 대신 막아 줄 수 없는 위력이 었고,흔들다리 위라서 소환수를 소 환하여 막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오로지 리리가 소멸의 기운을 풍겨 야지만 막을 수 있는 일격.

단검이 천천히 나아가고 있던 차에 최진철과 리리가 단검의 존재를 감 지 했다.

알맞은 타이밍에 단검의 존재를 알 아차려 주었다.

자,어떻게 할 거냐?

소멸의 기운을 쓰지 않고선 막을

수 없을 거다.

유도탄처럼 곡선을 그리며 집요하 게 따라붙는 단검.

날아드는 단검을 두고 최진철이 돌 발행동을 벌였다.

리리의 등에 단검이 닿으려 하자 자신의 팔을 뻗어 단검을 대신 맞아 주었다.

푸욱!

단검이 최진철의 팔을 관통하면서 흔들다리 위에 족적을 남기듯 핏방 울이 한껏 튀었다.

끝내 소멸의 기운을 쓰지 않은 것 에서 데메트리는 확신을 얻었다. 소멸의 돌을 잃었구나!

소멸의 돌이 없는 리리는 잡부보다

도 못한 존재다.

그저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에 불과 한 존재.

고로 성녀 대우는 이제 끝이다. 성녀를 되찾는답시고 광역 공격을 삼갔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데메트리는 아공간 브로치에서 활 을 꺼내어 시위를 겨누었다.

“라파엘라를 닦달할 게 아니었군. 최진철 저놈이 원흉이었구나.”

비어 있던 시위에 불의 화살이 소 환되 었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면서 기다란 포 물선을 그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최진철과 리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이제 막 흔들다리 중간 지점을 넘어선 참이었다.

피할 구석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데메트리의 눈에는 수 초 후에 불 길에 휩싸여 흔들다리 아래로 추락 하는 최진철과 리리의 모습이 그려 졌다.

그런데 불의 화살이 적중하기 직전 에 최진철이 재차 돌발행동을 하였 다.

불의 화살을 피할 곳이 없다는 걸 예감한 최진철이 리리를 안고 흔들 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것에 익숙한 양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 었다.

불의 화살이 흔들다리에 불을 지피 면서 나무와 밧줄로 구성된 흔들다 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화르륵!

흔들다리 주변이 훤히 밝아지면서 추락하는 최진철과 리리의 모습이 얼핏 엿보였다.

최진철은 리리를 부둥켜안은 채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시야 바깥으로 벗어난 두 사람을 두고 데메트리가 미간을 좁 혔다.

“끈질긴 놈. 얌전히 죽으면 될 것 을 자꾸 손이 가게 하는구나.”

성녀에게 능력이 남아 있는 척하며 교단을 우롱한 놈을 가만둘 수 있을 쏘냐.

안 그래도 교단 내 분위기가 뒤숭 승한데 능력도 없는 무지렁이에게 농락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이탈자 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리라.

직접 놈의 목을 떨어뜨리지 않고서 야 직성이 안 풀릴 것 같다.

데메트리는 반드시 확인사실을 하 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계곡 아래 를 향해 스왈로우를 몰았다.

*

계곡 아래에는 거센 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최진철은 추락하기 직전에 들개 모 습의 몬스터인 데스 오드를 소환했 다.

데스 오드의 푹신한 등 위에 떨어 짐으로서 최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긴 했는데,워낙에 물살이 세서 데스 오드가 급류에 휘말리고 말았다.

등 위에 올라타 있던 최진철과 리 리도 같이 물살에 휘말린 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푸하! 푸하! 끄르륵!”

물에 잠겼다가 다시 떠오르길 몇 번이나 반복하며 정신없이 떠내려가 던 중.

서서히 물살이 약해져 갔다.

간신히 개헤엄을 칠 수 있게 된

데스 오드가 최진철과 리리의 몸을 입에 물고선 물가로 옮겨다 주었다. 최진철은 물가에 벌을 받듯 엎드려 선 힘겹게 물을 토해 냈다.

“쿨럭쿨력!”

한 움큼 물을 쏟아 내고 나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또 살아남았나.

나도 참 살아남는 능력 하나는 바 퀴 벌레급이 구만.

근데 바퀴벌레같이 질긴 목숨도 여 기까진 것 같네.

어느덧 최진철의 팔이 돌로 변해 있었다.

단검이 박혀 있는 팔이 돌로 변했 다는 걸 방금 알아차렸다.

단검에 석화 능력이 포함되어 있었 나 보다.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계속 석화가 진행되었는지 한쪽 팔 전체와 어깨, 목 근처까지 석화가 진행되어 있었 다.

한쪽 팔은 클로이랑 싸울 때 힘줄 이 끊겨 반병신이 되었고,남은 한 쪽 팔마저 돌로 변했다.

석화를 막기 위해선 사전에 단검을 뽑아내거나 팔을 절단했어야 하는 데,벌써 목까지 진행되었으니 늦은 셈이다.

최진철은 물가의 바위에 등을 기대 어 앉았다.

‘녀석은…… 괜찮…… 은 것 같네.’

리리도 물을 토해 내며 정신을 차 리는 걸로 봐선 다친 곳 없이 멀쩡 한 것 같았다.

진즉에 버렸으면 데메트리가 추격 해 오는 일은 없었을 텐데.

풋,안 하던 짓을 하면 험한 꼴 당 한다더니 딱 그 꼴이군.

죽을 때가 다가와서 초연해진 걸 까.

이상하게도 후회보단 후련함이 앞 선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결국 어 머니를 뵙지 못한다는 죄책감일 따 름이 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최강현.

녀석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냐,됐어. 이제 와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떠올려서 뭐하겠어. 촌스러운 짓은 하지 말자.

그냥 녀석이 옳았고,내가 틀렸을 뿐이야.

최진철은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끝까지 관철하다가 이 꼴이 되었고, 강현은 주변 관계를 적절히 넓혀 가 면서 더욱 큰 그릇이 되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 관계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너 무 오래 걸렸다.

석화가 목을 넘어 턱까지 번져 나 고 있던 차에 리리가 일어났다.

리리는 돌로 변하고 있는 최진철을 보고 화들짝 놀라,돌로 변하고 있 는 부분을 더듬었다.

“어으어어. 어흐으으.”

말 더듬는 소리가 흐느끼는 것처럼 들리는 건 착각일까.

정말이지 너무나도 빼닮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을 무렵. 어머니에게마저 버려지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항상 어머니께 짐이 되 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때의 나. 그때의 나와 너무나도 빼닮았다.

볼 때마다 느낀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나 약했구나. 어머니의 눈에 나는 이렇게 비췄겠 구나.

이제야 어째서 리리를 버릴 수 없 었는지 알 것 같다.

리리를 버린다는 것.

그것은 곧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 신을 버린 경우를 실현하는 셈이다. 그저…… 가족과 만나고 싶었을 뿐 이고,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을 뿐 인데.

세상 모든 평범한 가정에선 일상적 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어쩌겠나.

동정은 필요 없다.

업보가 있으니 벌을 받을 수밖에.

죄가 누적되어 명부에서조차 빨간

줄이 그어져 있을 정도인 내게 사람 다운 죽음은 사치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리리만큼은 살리고자 한다.

속죄? 풋,그럴 리가 있나.

가는 길에 불쌍한 계집애 하나 살 리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최진철은 실소를 홀리며 데스 오드 에게 명령을 내렸다.

“데스 오드. 리리를 입에 물어.”

데스 오드가 적절한 세기로 리리를 입에 물고선 그녀를 운반한 태세를 취하였다.

리리는 최진철의 의도를 알아차렸 는지 혼자 가긴 싫다고 발버둥을 쳤 다.

“으어어어! 흐어어어!”

떨어지기 싫어하는 가엾은 아이를 두고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어 주었 다.

그러자 리리가 어렵사리 팔을 뻗으 며 또박또박 말했다.

“괜. 잖. 아.”

리리가 폭주할 때마다 최진철이 그 녀의 등을 토닥여 주며 했던 말이 다.

너에게서 괜찮다고,다 괜찮아질 거라고 듣게 되는 때가 올 줄은 몰 탔다.

최진철은 피식 웃고는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팔을 어렵게 움직여 주머니에서 남은 소환석으 모두 꺼냈다. 그리곤 손을 뻗으려고 애를 쓰는 리리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남은 소환석을 쥐여 주었다. 괜찮다고 위로하려는 말에 응답해 버리면 구원 받게 되어 버린다.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평안을 얻으며 떠나난 말인가.

남은 소환석을 넘긴 최진철이 데스 오드에게 고갯짓을 했다.

주인의 명령을 알아들은 데스 오드 가 리리를 데리고 계곡 하류를 향해 달렸다.

소환석에 찍어 둔 내 바코드는 내 가 죽으면 사라질 거야.

레벨300짜리 소환석 3개가 있으면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겠지.

리리가 떠나고 석화가 턱을 지나 입에 닿을 무렵.

허공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스왈로우가 물가에 착지했다.

스왈로우의 등 위에서 데메트리가 내리더니 멸시를 담은 눈빛을 띠며 최진철의 팔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와드득!

단검이 거칠게 뽑혀 나오며 돌로 변했던 팔이 와르르 부서졌다.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는 게 꼭 한 번 놓친 모기를 발견한 꼬락서니와 비슷했다.

놓치지 않고 한번에 죽이겠다는 살 의가 전해져 온다.

“불구자 놈이 여자를 탐하다니 지 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구나.”

“완전히 잘못 짚었어. 그냥 내 잘 못을 되짚는 지표 같은 거였지.”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도통 못 알 아먹겠군.”

“사실은 나도 그래.”

단검으로 가슴을 찌르려는지 검 손 잡이를 정방향으로 쥐는 데메트리였 다.

그를 본 최진철이 고꾸라지듯 상체 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이왕이면 등 뒤를 찔러 주지 않겠 어? 앞에서 찔리는 건 내겐 너무 과분한 마지막이라서 말이지.”

죽은 자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주기

위함일까.

아니면 최진철의 마지막 모습이 처 량한 나머지 최후에 와서야 측은함 이 들었기 때문일까.

데메트리는 요청을 받아들여 단검 을 역수로 쥐고 최진철의 등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푸욱!

고꾸라져 있던 몸이 크게 한 번 들썩이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 다.

꼭 사과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 인 채로.

결국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생을 마감하였다.

*

데메트리가 떠난 자리에 데스 오드 를 탄 여인이 되돌아왔다.

최진철이 죽어서 바코드가 지워진 소환수에 재차 자신의 바코드를 찍 어서 되돌아온 참이었다.

돌아온 자리에는 원래 사람의 형태 를 띠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 조각이 파다했다.

떨리는 손으로 돌조각을 하나하나 손에 쥐며 쌓아 보았다.

아직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짜 맞춰 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 번 부서진 돌이 원래대

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

1? [:

? 기

쌓여 가던 돌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여인은 절규하였다.

또 잃고 말았다.

항상 곁에 있을 거라 여겼던 것들 은 항상 잔혹하게 자신의 곁을 떠나 간다.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말을 잃은 그녀에겐 이번 이별은 너무나도 가 혹한 일이었다.

여인은 결심했다.

세본즈 교를 말살하기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세븐즈 교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가,세븐즈 교에 의해 구출되고, 세븐즈 교 내에서 추앙받다가,세븐 즈 교에 의해 다시금 절망을 맛보았 다.

철이 녹이고 식혀지는 것을 반복하 며 담금질을 하듯.

세븐즈 교는 저희들 스스로를 찌를 비수를 만들어 버렸다.

리리라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더불어 지금으로선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건 예전에 자신의 몸에 심었던 소멸의 돌이 제 5신화급 웨이브에서 나온 물건이라 는 것과 그 물건을 이식 받을 수 있는 체질을 지닌 건 자신뿐이라는 것.

리리는 넘겨받은 레벨300짜리 소 환석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으며 제5신화급 웨이브가 있는 곳으로 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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