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3단계 2일차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
강현의 라이프 크리스털에 문구가 추가되었다.
[최강현 님의 라이프 크리스털]
-36 회 차 : 다크 에이지(레벨
360)/남은 숫자 50마리
-줄리앙 세력의 라이프 크리스털 이 파괴되었습니다.
36회 차를 맞이하고 있던 차에 줄 리앙의 라이프 크리스털이 파괴되었 다는 문구가 나타났다.
몰려드는 몬스터 떼를 감당하지 못 하고 자멸했나.
혹시 모른다.
카심이 수를 부려 줄리앙 세력을 격파한 걸지도.
어디서부터 스노우볼이 굴렀는지는 몰라도 당장 중요한 건 3개의 세력 중 일각이 무너졌다는 거다.
지금부턴 강현과 카심의 정면대결 만 남았다.
‘줄리앙을 찾아다닐 수고를 덜었 군. 오늘밤엔 카심을 치면 되는 건 가. 원래 오늘밤에 동쪽 해변으로 가기로 했었잖아. 뭐야,예정대로 움 직이면 되는 거였네. 내일이면 3단 계 50회 차까지 주파할 테니까…….
여기 들어온 지 며칠 째였지?’ 첫 날에 1단계,2단계를 모두 처리 했다.
둘째 날은 3단계 15회 차.
셋째 날은 3단계 36회 차.
내일 50회 차까지 마무리하면 입 장 나흘 만에 드링큰 크라운과 조우 하게 된다.
진행속도가 빠르다.
어스 메갈로돈 때처럼 놓친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첫날에 밀림 수색은 다 해 봤고, 둘째 날에 바닷속까지 샅샅이 살펴 봤어. 그레이트 모스 건 외에는 함 정이랄 만한 게 없었단 말이지. 하 긴 제3신화급 웨이브 테마를 감안하면 여기서 함정을 더 설치해 둘 순 없겠지.’
제3신화급 웨이브는 ‘상위 랭커끼 리 경쟁’을 테마로 하고 있다.
과하게 농락 요소를 넣어 버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게 된다. 안 그래도 상위 탱커 3명끼리 서 로 견제하기도 벅찬데,거기다가 농 락 요소까지 넣어 버리면 공략도 아 니고 경쟁도 아닌 아수라장으로 변 해 버린다.
때문에 자잘하게 공략자의 열을 돋 우는 농락 요소 정돈 넣을 수 있을 지 몰라도,그 이상의 함정은 없을 거라는 게 강현의 판단이다.
‘드링큰 크라운도 명색이 신수인데
무적 능력이랑 무적 관통 능력 정도 는 기본사양으로 갖추고 있을 거고. 무적 능력이 있는 몬스터를 상대할 땐 항상 무적 관통 능력 부여 장치 가 있기 마련인데……
무인도에서 무적 관통 능력 부여 장치가 없는 걸로 봐선 2층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태껏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하면 공짜로 무적 관통 능력을 주는 꼴을 못 봤다.
항상 성가신 과정을 겪게 하거나, 그에 준하는 대가를 요구했었다. 이번에도 성가신 요소가 준비되어 있을 터.
그래도 강현에겐 허물검이 있으니
문제없다.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었다.
강현은 36회 차 몬스터를 5마리 남겨 둔 시점에서 휴식 시간을 맞이 하게 되었다.
몬스터 사냥 뒤에는 뭐다?
밤 사냥을 할 시간이다.
강현은 드림 윙을 펼쳐서 동쪽 해 변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럴 땐 남쪽인 게 다행이란 말이 지. 순풍을 받을 수 있으니.’ 무인도의 바람은 남쪽에서 북쪽으 로 분다.
강현에게 있어선 순풍에 해당하는 바람이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빨리 가
서 정리하라는 듯 강현의 날개를 떠 밀어 주었다.
*
수 천의 마나 스텟을 소유한 카심 이라면 이전처럼 최강현에게 당하진 않으리라.
이제는 아이작과 룬도 마나를 갖추 었으니 협공할 수 있다.
이전에 맥없이 도주했던 상황을 반 복할까 보냐!
그리 판단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저녁이 되어 철수하기도 전에 최강현이 찾 아왔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최강현.
줄리앙을 쓰러뜨려서 자신만만했던 카심,아이작,룬이다.
그러나 교전 개시 5분 만에 자신 들이 얼마나 낙관적인 생각을 했는 지 깨닫게 되었다.
서격!
최강현의 움직임을 속박하겠노라며 당차게 속박 스킬을 시전하던 룬은 투영검의 궤적에 걸려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파파파팟!
투영검이 마나로 이루어진 검임을 알고 마나번 스킬로 불태우던 아이 작은 이어서 날아드는 마나폭검을 피하지 못하고 치즈처럼 구멍이 뚫린 채로 고꾸라졌다.
지부장급의 전력 두 명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지역장급도 아닌 지부장급이니 그 리 놀랄 일은 아니다.
카심도 지역장급이라는 1급 사제들 을 벌레 다루듯 숱하게 쓰러뜨렸는 데 강현이라고 못할까.
문제가 있다면 카심이 있는데도 아 이작과 룬이 단숨에 당했다는 점이 다.
투영검을 태우려고 스킬을 사용하 면 그 뒤엔 마나폭검이라는 광역기 가 날아들고,투영검과 마나폭검을 전부 피하자니 반격할 틈이 없고.
카심은 아이작과 룬의 시신을 보며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충분한 마나 스렛을 갖췄는데도 여 전히 가늠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 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 카심의 모습에 서 초연함이 배어 나왔다.
“보구가 없기 때문에…… 라고 말 하면 변명처럼 들릴 테지.”
드림 윙을 펼치며 하늘에서 카심을 내려다보던 강현이 대답하길.
“그 말을 입에 담은 것 자체가 변 명이다만.”
“네놈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느 냐? 무엇이 너를 그토록 강하게 만 든 거냐?”
“등산가가 산을 오르는데 이유가
있던가? 뭐 오르다 보니까 멸망을 막으니 마느니 하는 짐까지 짊어지 긴 했지.”
“네놈도 멸망을 운운하는군.”
“세븐즈 교와 한데 묶지 마시지. 놈들처럼 몬스터를 섬기진 않거든.”
“허어,현대 문명 재건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거늘.”
그간 카심 세력이 태도를 통해 뭔 가 포부를 짊어지고 있다고 느끼긴 했다.
원래 세계의 사회를 재현한다는 꿈 이었나.
좀 더 그럴 듯한 포부인 줄 알았 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강현은 신랄하게 카심의 꿈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네 향수병 치료에 어울려 줄 생각 은 없어.”
“함부로 평하지 마라. 원하지도 않 았는데 억지로 끌려와서 개 같은 삶 을 살고 있는 자들의 기분을 생각해 본 적이 있긴 하느냐? 네놈도 이세 계인이라면 그 기분을 모를 리 없을 거다.”
“그래서 신에 준하는 힘을 얻어서 하위차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 오만하군.”
“이세계인을 위한 세계를 건설하는 대업이다. 잃어버린 삶을 되찾는 일 의 어디가 오만하단 말이냐.”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거지?”
“무엇이라니.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풍요롭고 현대적인 삶을 잊었 나?”
“능력 있으면 우대 받고,가진 것 이 없으면 비참하게 살아간다. 우린 원래 세계에서도 똑같았어.”
이세계인들이 하위차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카니발로 이주하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있나?
한낱 곤충 집단에도 계급이란 게 존재 하거늘.
사람이 모이면 계급이 생기고 차별 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 카심이 하려는 건 하위차원에 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자들 을,카니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하려고 데려오는 것에 불과하다.
현대 문명을 재건한다고 했나?
높은 건물,발전된 이동수단,네트 워크…… 현대 문물을 가지고 있어 서 우린 행복했던가?
어렸을 때가 행복했다고 해서 어릴 때의 삶을 재현하는 사람은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없으면 없는 대 로 행복을 찾아가는 게 인간이란 생 물이다.
“네 녀석만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부터가 차별의 시작 아닌가? 시작 부터 모순투성이군.”
자신은 대업을 꾀하고 있다는 긍
지.
긍지를 원동력 삼아 지금의 자리에 오른 카심에겐 강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 다.
그렇다고 해서 줄곧 품어 왔던 목 표를 부정할 순 없다.
부정했다간 자신의 모든 과거를 부 정하는 셈이니까.
여기서 수긍해 버리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
카심은 끗끗하게 신념을 관철하며 건틀릿을 말아 쥐었다.
“네 녀석과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 을 것 같군. 산이 있으니까 오른다 고 했나? 성공 스토리를 팔아서 제 잘난 맛에 찌들어 사는 놈치고 제대 로 된 놈을 못 봤지.”
“최초로 창조급을 공략한 자의 자 서전이라. 생각지도 못했군. 참고하 지.”
“비꼬는 투하고는. 말을 섞을수록 네놈과는 맞지 않다는 것만 확인하 게 되는군.”
“피차일반이야.”
강현이 겨누었던 투영검을 앞으로 뻗었다.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단순한 찌르 기조차도 광역기에 준하는 공격이 되었다.
카심에겐 이동 스킬이 여러 개 있 다 보니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동 스킬을 한 싸이클 돌리면 처 음에 썼던 이동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와 있으니까.
단지 반격의 기회를 잡기가 어려울 뿐이다.
공격,회피,공격,회피.
장기에서 한 수를 둘 때마다 장군 을 외치듯,절묘한 공격이 이어지면 서 카심으로 하여금 수비만 하게 만 들고 있다.
피하기만 해선 승산이 없다.
카심은 현재 움직이고 있는 게 분 신이라는 점을 이용해 공격을 맞교 환하고자 했다.
‘분신을 내주고 놈을 친다. 한 방. 단 한 방이면 전세를 역전할 수 있어.’
부유술을 써서 위로 날아오르자 투 영검이 따라 올라와 횡을 그었다. 뒤로 물러서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심은 비스듬 히 몸을 기울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날아들던 투영검이 아슬아슬하게 카심의 두 다리에 스쳤다.
퍼석!
카심의 두 다리가 잘려 나가며 흙 처럼 부서졌다.
분신이었다는 게 들통 나긴 했어도 그 덕에 강현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강현이 투영검을 거두는 속도보다
카심의 공격이 먼저 이루어졌다.
카심은 가진 마나를 모두 쏟아 부 어 윈드스톰 건틀릿을 발현했다.
후우우응!
건틀릿을 앞으로 뻗자 전방위에 폭 풍이 몰아치며 강현에게 날아들었 다.
해변 전체를 아우르는 광역 공격이 다.
날고 기는 최강현이라 할지라도 피 할 구석은 없을 터.
강현도 피할 공간이 없다는 걸 인 지했는지 도망치지 않고 투영검으로 카심의 분신을 베어 냈다.
카심의 분신이 먼저 투영검에 베여 나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분신 자체에 상처 재생 능력이 있 긴 한데,재생도 재생 나름이지 가 루가 되어 버리면 재생도 못한다.
카심은 분신이 부서지기 전에 똑똑 히 목격했다.
뿜어낸 윈드스톰이 최강현을 덮치 는 것을.
“이겼나?”
분신이 부서지면서 카심의 의식이 본체로 옮겨졌다.
카심의 본래 몸은 격전지에서 다소 떨어진 해안동굴 안에 놓여 있었다. 카심은 본래 몸을 움직여 해안동굴 입구로 달려갔다.
입구에 서서 방금까지 격전을 벌이
던 장소를 응시했다.
윈드스톰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모 래사장 중앙에 강현이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심했구나,최강현. 내게 분신 스 킬이 있다는 걸 잊었나 보군.”
수비 일변도로 움직이던 차에 갑자 기 몸을 내주고 기습을 한 게 정통 으로 먹혀들었다.
공격하는 흐름에 익숙해져 있던 강 현에겐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일격 이었을 거다.
카심은 만일을 대비해서 재차 본래 몸을 동굴 안에 뉘이고 분신을 해변 에 보냈다.
카심의 의식이 담긴 분신은 강현이
쓰러져 있는 곳에 도착했다.
실드 관통 능력을 가미한 윈드스톰 이었으니 몸이 걸레짝이 되었을 터. 헌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강현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상처 하나 없다고?”
공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깨끗하기 그지없다.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쓰러졌다 고?
설마 일부러 쓰러진 건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분신이 다가온 것을 감지했는지 쓰 러져 있던 강현이 눈을 뜨며 일어났 다.
“해안 동굴에 숨어 있었군.”
2단계 공략 때 카심에게 분신 스 킬이 있다는 걸 확인했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분신과 본체를 따 로 둘 것을 예상하여 본체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공격에 당하는 척을 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분신과 함께 등귀 어진 하는 척을 해 주니 새로운 분 신이 나타났다.
분신이 나타난 곳이 해안 동굴이었 다는 점을 착안하여 카심의 본래 위 치를 알아낸 것이었다.
강현은 드림 윙으로 날아오르며 분 신을 무시하고 해안 동굴로 날아갔 다.
탁!
해안 동굴 입구에 착지하자 분신으 로부터 의식을 옮긴 카심 본인이 걸 어 나왔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지 자조 섞인 웃음을 홀렸다.
“훗,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시원하게 당했군. 이봐,내 공격이 안 들어갔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멀 찡한 것이냐?”
죽기 전에 패인이라도 알고자 던진 질문이었다.
가더라도 납득은 하고 가야 그나마 덜 억울하지 않겠나.
강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길.
“무적 능력이라고 알지 모르겠군.”
무적 능력이라니.
맞아도 다치지도 않는 주제에 여태 껏 일부러 공격을 피한 거였나. 공격을 맞추면 이길 수 있는 것처 럼 유도하기 위해서?
참나,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놈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군.
카심은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 며 아다만티음 건틀릿을 벗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괜찮겠나?”
“해 보시지.”
“신은 상징이지 계급의 일부가 아 냐. 처음부터 모순이었다는 말은 틀 렸어.”
카심의 포부에 강현이 일침을 가했
던 걸 이제 와서 반박하고 있었다. 끝까지 자신은 틀리지 않았음을 관 철하는 카심이었다.
여기서 반박에 반박을 더하는 건 촌스러운 짓이다.
강현 역시 강현다운 마무리로 카심 을 보내 주었다.
조용하고 깔끔하게.
롱소드를 휘둘러 카심의 목을 베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