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66화 (366/381)

366 화

카심은 묵묵히 건틀릿을 앞으로 뻗 었다.

건틀릿에 냉기 스킬을 부여해 두었 기에 건틀릿 표면에서 드라이아이스 처럼 김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카심이 건틀릿을 뻗을 때마다 뿌연 김이 자욱하게 피어올라 오오라마냥 카심의 어깨너머로 아스라이 퍼졌 다.

그가 입을 연 건 21회 차 몬스터 인 뼈복치와 22회 차 몬스터인 어 린 해룡을 처리한 후였다.

“아이작,어린 해룡이 몇 마리 남 았을 때 23회 차 몬스터가 나왔는지 봤나?”

“네? 아마 한…… 두 마리 남았을 즈음에 나왔을 겁니다.”

“선두를 따라잡았군.”

할 말이 있다고 말을 했으나 카심 은 선두와의 격차를 운운하고 있었 다.

잡담은 나중에.

선두를 따라잡았으니 집중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번이 몇 번째일까?

3단계에 들어선 이후로 계속 카심 의 부하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아이작이 사과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려는데 의외의 말이 이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나? 한

숨 돌릴 겸 들어 주지.”

여유가 생겼으니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달리자는 게 아니라 여유가 있 으니 얘기를 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 었다.

요 이틀간 몇 번이나 고민하는 모 습을 보였었다.

고민이 있다는 걸 눈치 못 채는 게 더 힘들다.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라면서 23 회 차 몬스터를 얼려 놓고 기다려 주는 카심이었다.

아이작은 막상 말을 하려니 긴장된 나머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선 입 을 열었다.

“수령님,이세계인 통합 국가를 세

운 다음 날에 세상이 멸망한다면 어 떻게 하시겠습니까?”

“담론인가. 그런 걸 할 분위기는 아닌데 말이지. 지금 꼭 대답을 들 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묻는 거겠지?”

“죄송합니다,수령님. 하지만 꼭 수 령님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멸망을 논하는 거라면 세븐즈 교 교리 때문인가. 네가 어쩌다 세븐즈 교 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에 대해선 묻지 않으마. 꿈을 이룬 다음 날에 세상이 멸망한다라…….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 나?”

카심은 건틀릿을 뻗어 권풍을 쏘아

보내어 얼어붙은 몬스터들을 정리했 다.

먼 바다에서 빙상이 된 몬스터가 풍비박산 어지러이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시야를 막고 있던 빙상을 분쇄하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건틀릿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이 벨 벳마냥 카심을 두르는가 싶더니 뿌 연 김 속에서 카심의 목소리가 홀러 나왔다.

“정말로 멸망한다면 너희들과 머리 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으면 될 일이 다. 여태까지 그래 왔고,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느냐.”

카심은 말하고 있었다.

커뮤니티는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한 세력이 아니라고.

멸망할 테면 멸망해 보라고 해라. 그리되기 전에 막아 보일 테니. 나와 나의 커뮤니티라면 가뿐하게 할 수 있을 터!

아이작은 카심의 말을 듣곤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야겠지요. 쓸데없는 걸 물어 서 죄송합니다.”

“고민은 해결됐느냐?”

“그럭저럭 해결된 것 같습니다.”

“룬과 교대하고 마나를 회복시켜 둬라. 35회 차부턴 피치를 올려서 선두로 나설 생각이니까 확실하게 쉬어 두도록.”

룬과 자리를 교대한 아이작은 목을 축이기 위해서 수통을 손에 쥐었다.

언제 다 마셨는지 수통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

예비용으로 떠다 둔 물도 다 떨어 지고 없었다.

룬이 쉬면서 거의 다 마셔 버린 듯하다.

물을 보충할 방법으론 식수로 활용 할 수 있는 물 계열 스킬을 쓰거나, 밀림 안에 흐르는 냇가에서 물을 떠 와야 했다.

바쁜 카심에게 물 계열 스킬을 써 달라고 할 수야 있겠는가.

아이작은 물을 뜨러 다녀오겠다고 말하며 밀림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냇가에 수통을 담아 물을 채우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사제복을 입은 장발 사내가 접근해 왔다.

장발 사내가 줄리앙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작은 새로 사귄 친구와 마주친 것처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십니까?”

“저희 쪽에 여유가 생겨서 잠시 정 찰이나 하러 왔습니다.”

“줄리앙 교주께서 직접 정찰이라 뇨. 정찰보단 다른 용무가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요?”

“하하,들켰군요. 사실 아이작 씨를 보러 왔습니다. 마주칠 기회가 없을 까 봐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타이멍이 좋게 도착한 것 같군요.”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으르렁대 며 거친 말투를 쓰기 일쑤였는데 어 느샌가 줄리앙에게 경어를 쓰고 있 는 아이작이었다.

호칭에서도 빼도 박도 못할 변화가 발생해 있었다.

언제부턴가 아이작이 줄리앙을 이 르는 호칭이 ‘네놈’에서 ‘줄리앙 교 주’로 변해 있었다.

아이작은 물을 다 채우지도 않았는 데도 수통 마개를 잠그며 몸을 일으 켰다.

경계심은커녕 윗사람을 대하는 것 처럼 공손한 태도였다.

“무슨 용건입니까? 어려워 마시고

편히 말씀하십시오.”

“별건 아니고 어젯밤에 최강현이 저희 쪽에 찾아와서 형제들의 숫자 가 많이 줄었습니다.”

“허어,그런 안타까운 일이…… 뭐 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어쩌겠습니까. 전부 최강현의 마 수를 뻗친 탓이지요. 오늘밤에도 인 간 사냥을 하러 나설 텐데,참 막막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룬 씨와 함 께 밤에만 살짝 나와서 저희 쪽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카심 수령과 협상을 하자니 외골수라 말이 안 통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말이 잠깐 도와주는 거지 줄리앙에 게 손을 빌려주면 카심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의 부하가 멋대로 적대 세력을 도와줬다?

세상 어느 상관이 그걸 잠깐 도와 준 걸로 인식하겠는가. 배신한 걸로 받아들이지.

아이작과 룬으로 하여금 줄리앙 세 력에 오라는 말임을 모를 리가 없었 다.

“당신들 세력에 합류하라고 제안하 는 겁니까?”

“속이려던 건 아닙니다. 그저 진리 를 깨달은 동료가 잘못된 사상을 지 닌 자 밑에 있는 게 안타까워서 말 이죠. 저희와 함께하시지 않겠습니 까?”

“처음부터 그리 말씀하시지 그랬습 니까. 저야 환영이죠.”

“정말입니까? 휴우,제가 멍청했군 요. 아이작 씨가 믿음을 가지기 시 작한 것도 모르고 혼자서 의심하다 니. 제가 바보였습니다.”

“하하,의심하지 않는 게 더 이상 하죠. 이왕 이리된 거 차라리 카심 을 제거하고 가는 건 어떻습니까?”

순간적으로 줄리앙의 어깨가 움찔 거렸다.

아직 부하인 척할 수 있을 때 카 심을 제거해 보자고 제안하려던 참 이었다.

아이작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하리라 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본의 아니게 놀라고 말았다.

‘공들여 포교한 보람이 있군요. 자 진해서 섬기던 사람을 죽이자고 제 안할 줄이야. 한편으로는 카심도 참 인복이 없는 사람이라 느껴지네요. 뭐 정치인을 빙자한 약탈자이니 당 연한 걸지도?’

오랜만에 마음먹고 포교를 했는데 이토록 효과가 좋을 줄 몰랐다.

아이작이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줄리앙도 한결 편하게 계획을 진행 할 수 있었다.

줄리앙은 태연한 척하며 표정관리 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지만 명 색이 커뮤니티 수장인데 쉬이 제거당해 주겠습니까?”

“찌를 틈이 없는 건 아닙니다. 지

금 사냥하고 있는 카심은 아마 실제 카심이 아니고 분신일 테지요. 카심 을 찔렀는데 죽지 않았다는 얘기는 들어 보셨지요?”

“듣기야 들어 보았지요.”

“그것이 분신 스킬로 만든 분신입

니다. 저도 자세한 부분까지는 모르 는데 분신이 움직이는 동안엔 본체 는 못 움직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 태까지 분신이랑 카심이 함께 움직 이는 걸 한 번도 못 봐서 말이죠.”

천금 같은 정보였다.

무적에 준하는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을 줄이야.

분신을 다루는 동안 본체가 움직일 수 없다면 지금 카심의 본체는 완전 히 무방비에 놓여 있단 소리 아닌 가.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혹시 본체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 까?”

“거기까진 잘…… 근데 카심 수령 님이 저희 시야에서 잠깐 벗어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본인은 숨으시고 분신을 대리로 내세운 게 아닐까 싶 습니다. 기억하기로 10분 정도 자리 를 비웠으니까 그리 먼 곳에 숨진 않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찾아보지

요.”

“혼자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죠. 무슨 문제라도?”

“본체의 위치가 발각당하면 금세 눈치채고 본체로 의식을 옮길 게 분 명합니다. 무례하게 들리실지도 모 르지만 교주님 혼자 카심에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기분 나쁜 발언이긴 한데 한편으로 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 팔을 잃은 줄리앙이 카심과 일 대일 대결을 벌인다?

이길 수 있을까?

두 팔이 멀쩡할 때도 카심에게 밀 렸었는데?

줄리앙이 말을 아끼자 아이작이 묘

안을 내놓았다.

“차라리 이렇게 하시죠. 제가 룬을 데리고 곧장 서쪽 해변으로 가겠습 니다. 카심의 분신은 라이프 크리스 털을 지켜야 하니까 저희가 사라져 도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죠. 그때 교주님이 카심의 본체를 찾아낸다 면?”

“본체를 지키려면 의식을 옮겨야 하니까 분신을 운용할 수 없겠군 요.”

“본체에 의식을 옮기면 라이프 크 리스털을 지킬 수 없고,분신에 의 식을 남겨 주면 본체의 목이 떨어지 겠죠. 어느 쪽이든 카심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밖에 없지요.”

체면 따져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면 손바닥으로 본인 이마를 탁하고 쳤 을 거다.

아무나 지부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묘안 중 묘안.

아이작의 작전대로라면 백발백중 카심을 죽일 수 있다.

줄리앙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 이작의 작전을 받아들였다.

“그걸로 가죠. 두 사람이 서쪽 해 변으로 출발하면 저도 카심을 찾겠 습니다. 먼저 움직여 주십시오.”

작전의 핵심은 아이작과 룬이 카심 을 배신하고 동쪽 해변을 떠나는 것 이다.

두 사람이 약속을 어기고 떠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하여,먼저 행동 으로 보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줄리앙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흔쾌히 작전의 시발점 역할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중요한 작전이니까 서로 의심의 여지가 있어선 안 되겠 죠. 뭣하면 저희가 서쪽 해변에 도 착한 걸 보고 나서 움직이셔도 됩니 다. 그럼 시간도 얼마 없고 하니 바 로 시작하시죠.”

*

몇 분 후.

아이작과 룬은 정말로 카심을 버리 고 서쪽 해변으로 도망갔다.

줄리앙은 아이작과 룬의 배신을 확 인한 후에야 움직였다.

동쪽 해변에선 카심의 분신이 배신 당한 걸 알면서도 묵묵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사냥을 하지 않으면 라이프 크리스 털이 부서지니까.

본체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토굴을 파서 숨거나,스킬을 이용 해 지형지물을 바꾸어 몸을 감추거 나,우연히 특별한 지형을 찾아내어 숨는 등 숨을 방법을 무궁무진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거라면 수색 범위가 좁다는 점일까.

카심이 숨어 있는 곳은 동쪽 해변 에서 10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지 점.

줄리앙은 소유하고 있는 정찰 스킬 과 투시 스킬을 총동원하여 수색에 나섰다.

모래에서 바늘을 찾듯 밑도 끝도 없이 카심의 본체를 찾아다닌지 수 시간 째.

끈질김이 낳은 결과일까.

해안절벽 위에서 줄리앙이 악의 가 득한 미소를 지었다.

“다소곳이 주무시고 계시군요. 이 제 영원히 주무실 시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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