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 화
상공으로 날아오르니 너른 밀림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높이 날아올랐는데도 눈에 들 어오는 건 남쪽 일대가 고작이었다. 무인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1단계,2단계에선 다른 세력을 살 려 둬야 페널티를 받지 않을 수 있 기에 최소한의 교전만 했었고,혹시 나 3단계에서도 페널티가 존재하지 않을까 싶어 다른 세력의 인원들을 남겨 두었다.
그러나 3단계에선 페널티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3단계가 끝나면 드링큰 크라운과 조우할 수 있다.
타 세력들은 보스 몬스터 공략에 방해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몬스터 사냥에 이은 타 공략자 사 냥.
강현은 드림 윙을 세차게 퍼덕이며 서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순서를 따진다면 세븐즈 교부터 처리하는 게 맞아. 녀석들의 사상은 위험해. 잘못된 사실을 맹신하는 집 단치고 정상적인 놈들은 없지.’ 공략을 하라고 만들어 둔 웨이브 안에서 공략을 막는 행동을 하는 것 부터가 제정신이 아니다.
신화급 웨이브에 제한시간이 있다
고 말해 줘도 자기네들 교리가 옳다 며 바득바득 우기는 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
또 한 가지 세븐즈 교부터 치고자 하는 이유가 더 있다.
줄리앙에게 타임로드를 거론했을 때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었다. 타임로드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히든 시스템 개발의 시발점이자, 스킬북 용지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존재이자,테라 시스템 등장 초기 때에 이미 절망자의 존재에 대해 알 고 있던 자.
뭐 하는 작자일까.
줄리앙을 잡아다가 족치면 알겠지. 강현은 남풍을 비스듬히 받아 내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얼마쯤 날아서 서쪽 해변에 도착하 긴 했는데 세븐즈 교는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해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줄리앙의 라이프 크리스털에 착지해 보았다. 흔적을 찾기 위해 모래사장을 살폈 건만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 다.
강현은 모래 한 줌을 손에 쥐었다 가 사르르 흘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급하게 흔 적을 지우고 몸을 숨겼군. 30분 사 이에 몸을 숨겼다면 그리 먼 곳에 있진 않을 텐데.’
서쪽 해변 북쪽에 대나무로 삼각
프레임을 세워 야자수잎으로 벽을 만든 간이 쉘터가 여럿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간이 쉘터 안을 살 피니 아무도 없었다.
간이 쉘터 앞마다 불을 피운 흔적 이 남아 있었는데,목탄이 바스라진 정도로 짐작컨대 하루 전에 한 번 불을 피우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불 을 피우지 않은 듯하다.
‘어제 하루만 사용하고 그대로 방 치해 둔 것 같은데 말이지. 간이 쉘 터 주변에는 발자국이 남아 있어. 오늘 공략이 끝나고 도망칠 때 이쪽 으론 오지 않았다는 거군. 남쪽으로 이동했겠군.’
남아 있는 흔적을 최대한 긁어모아
줄리앙 세력의 이동경로를 최대한 읽어 내었다.
각 세력의 우두머리 중에서 가장 약한 게 줄리앙이다.
명색이 세븐즈 교 교주인데 강현과 카심이 상대라는 이유만으로 최약자 라니.
기가 찰 일이다.
웨이브 바깥에서의 명성과 지위는 둘째치고 가장 약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본인부터 사 냥하러 오는 게 아닐까 싶어 허겁지 겁 몸을 숨긴 듯하다.
강현이 휴식 시간이 된 직후에 이 곳으로 날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분.
그사이에 십수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몸을 숨겼다 치면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터.
‘흡기 스텟을 켜고 주변을 돌아다 녀 봐야겠군.’
서쪽 해안의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밀림으로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강현은 섬의 남서쪽에 해당하는 밀 림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30분 동안 이동할 수 있는 범위를 산정하여 수 색 범위를 최대한 좁혔다.
산출된 수색 범위는 곧 투영검으로 쓸어버려야 하는 너비를 뜻하는 거 나 마찬가지였다.
수색 방법은 간단했다.
밀림으로 내려가 흡기 스텟의 효과 를 켜고 걸어 다니기만 하면 된다. 흡기 스렛은 효과를 발동하고 있는 동안 주변에 있는 존재들로부터 조 금씩 마나를 흡수하는 효과를 지니 고 있다.
홉수되는 마나량은 홉기 스텟의 수 치에 비례하며 만약 사용자의 마나 가 꽉 차 있다면 흡수는 계속할 수 있지만,허용량 이상의 마나는 저절 로 흩어진다.
근처에 마나를 가진 이가 있다면 흡기 스렛을 통해 마나가 들어을 테 니,걷기만 해도 세본즈 교 사제들 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마나를 채우라고 만들어진
스렛을 사람 수색에 응용하고 있는 강현이 었다.
*
줄리앙 세력은 선두를 빼앗겨 몬스 터 사냥에 급급한 와중에도 밤을 대 비한 은신처를 만들어 두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강현이 오는 것만은 괜찮지 않다.
카심을 찍어 누르는 괴물 같은 전 투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참이다. 그런 자가 회 차를 거듭하며 마나 까지 갖췄으니 이길 턱이 있나. 때문에 인원을 반씩 나누어 밀림 곳곳에 총 8개의 토굴을 파 두었다.
혹시나 강현에게 발견되어도 피해 를 최대한 적게 받기 위해서 16명 의 사제를 2인 1조로 나누었고,토 굴의 위치를 듬성듬성 넓게 배치하 여 쉽게 찾을 수 없게 하였다.
8개의 토굴 중 한 곳.
줄리앙과 같은 토굴을 쓰기로 한 렌타드란 이름의 3급 사제가 홀로 토굴 안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렌타드는 홀로 토굴 안에 있었다.
왜냐하면 줄리앙이 오늘도 카심 세 력의 부하들을 흔들러 간다며 자리 를 비웠기 때문이다.
일교차에 의해 급격히 떨어진 기온 과 땅속으로 비스듬하게 판 토굴 안 의 서늘함.
두 가지 요소 때문에 모포를 몸에 둘둘 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 때문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으으,지랄 맞게 춥네. 들킬까 봐 불도 못 피우고 돌아 버리겠네. 열 기 뿜는 보구라도 있으면 한결 나을 텐데……. 에휴,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마당에 배부른 생각해서 뭐하 겠냐. 참자,참아.’
다른 건 몰라도 토굴 바닥과 벽에 닿아 있는 엉덩이와 등,발이 시려 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발열 스킬이 있 는 사제들과 짝을 지을 걸 그랬다. 아,이래서 친하지도 않으면서 다 른 사제들한테 친한 척하던 자들이 있었구나.
약삭빠른 것들.
춥다 춥다 하면서도 렌타드의 눈꺼 풀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나름 체력에 자신 있는 편인데도 고작 이틀 만에 진이 빠져 버렸다. 그만큼 삼파전의 중압감이 엄청나 다는 거다.
카심과 최강현이란 이름이 주는 압 박감이 보통이 아닌지라 고작 이틀 차만에 심신이 너덜너덜해졌다.
렌타드가 어렵게 눈을 붙였다.
얼마쯤 잤을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발생했다.
쿠응!
바위라도 떨어진 것 같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렌타드는 가위에 눌린 듯 끙끙 앓 으면서 자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경 기를 일으켰다.
“허어어으어! 뭔 일이야? 뭔 일이 래?”
잠이 덜 깨서 혀 꼬인 소리를 연 발하며 토굴에 납작 엎드렸다. 새우잠을 자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 고 있는데 아까와 똑같은 굉음이 들 려왔다.
쿠응!
밀림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만 한 소리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발생한 굉음이라면 공
격에 의해 파생된 소리밖에 없잖은 가.
바깥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기다려 봐.
전투가 맞긴 한가?
카심 세력이 쳐들어왔다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줄리앙이 먼저 돌아 와서 전투 준비를 하라고 알려 줬을 테니까 적어도 카심 세력은 아니다. 그렇다면 백 퍼센트 강현이 쳐들어 왔다는 건데…….
사제들 중에서 강현과 전투를 벌일 만한 자가 있긴 하던가?
이건 전투가 아니다.
학살이 지.
렌타드는 토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서 입구를 가린 수풀을 슬쩍 들췄 다.
수풀 아래로 약간의 틈이 벌어지며 어렴풋하게나마 바깥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자란 나무 위로 거대한 투영 검이 움직이고 있다.
‘마나로 이루어진 검이면 최강현! 정말로 밤 사냥을 하러 나왔어! 젠 장 미치겠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니.’
강현이 올 때를 대비하여 사전에 줄리앙의 지시가 있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강 현을 상대하지 말 것!
3단계에 들어서면서 파티원 지명
썰을 붙인 자들에게 마나 스텟이 주 어졌다지만 최강현에게 이기는 건 무리다.
토굴이 발각되어 2명씩 죽어 나가 도,줄리앙이 위험하다며 지원 요청 을 해도 모두 무시하라고 했었다. 강현이 다른 토굴에 정신을 팔린 사이에 도망치는 것도 금지되어 있 다.
강현에겐 비행 스킬이 있으니 위에 서 내려다보면 도망치고 있는 게 훤 히 보이니까.
참 불공평한 세상이다.
3급 Ap제면 세간에선 상위 한 자 릿수에 속하는 실력자다.
그런데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존재하다니.
솔직히 반칙 아닌가?
나도 노력했어.
개같이 노력했다고.
근데 이 격차는 뭐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주인공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란 말이 있다.
토굴에 쭈그려 앉아서 벌벌 떠는 게 주역?
개뿔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소리다.
쿠응! 쿠응!
연이어 들려오는 둔탁한 파공음.
파공음이 울릴 때마다 사제들이 2 명씩 죽어 나가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교주님을 따라
나서겠다고 지원했는가.
머릿수나 늘리기 위해서?
토굴에 쭈그려 앉아 벌벌 떨기 위 해서?
진실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신화 급 웨이브를 공략하려는 걸 막기 위 해서 왔다!
목숨을 아낄 거면 지원하지 않았을 거다.
강자에게 도전하다가 일찍 생을 마 감하는 배드 엔딩 단편 소설의 주인 공일지라도 주인공은 주인공.
배드 엔딩이라도 좋다 이거다. 보잘것없이 죽느니 가치 있게 죽겠 다.
나는…… 우리는…… 죽기 위해 오
지 않았던가!
렌타드는 수풀을 걷어 내며 바깥으 로 뛰쳐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최강현이 렌타드 가 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강현이 다가오는 동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선 사기를 북돋 둣 굵고 짧은 일갈을 내질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온 거 냐!”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리는 한 마 디.
렌타드에게 접근하던 강현이 띔박 질을 하다가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그리곤 너무 멀지도,너무 가깝지도 않은 지점에서 롱소드를 늘어뜨리며 제자리에 섰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에서 무 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숨어 있으면 살 수도 있었을 텐 데,자포자기인가 보지?”
“마음대로 지껄여라! 목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네 녀석을 저지해 보 이겠다!”
“생존가능성이 0퍼센트에서 0.1 퍼 센트로 올라갔군. 방심할 수 없겠 어.”
“빌어먹을! 사람 놀리는 것이냐!”
방심하지 않겠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조금은 방심해 주면 좋으련만.
그래도 좋다.
적어도 사냥감에서 싸움 상대로 승 격한 셈이니.
숨어 있기 보다 싸우는 쪽을 택한 건 렌타드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사제들이 모습을 드러 내며 전투에 가담했다.
“네 말이 맞다,렌타드. 우린 죽기 위해 온 것이지 살려고 온 게 아 냐.”
“어째서 우리가 진다는 전제로 싸 워야 하는지 모르겠군. 안 그래?”
“졸 거 없어. 녀석이 혼자 입장했 다는 걸 잊지 말라고. 혼자서 모든 공략을 감당하면 아무리 네놈이라도 지쳐 있겠지. 이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어?”
강현은 롱소드를 쥐지 않은 손을 들어 검지를 까딱였다.
“남자끼리 파자마 파티만큼 징그러 운 것도 없지. 그만 재잘거리고 와 라.”
도발이 도화선에 불을 불인 격이 되어 사제들이 일제히 강현에게 덤 벼들었다.
달빛이 날붙이에 부딪쳐 빛을 반사 하는 꼴이 왠지 날개가 떨어지기 전 의 반딧불처럼 은은하기 그지없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