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같은 시각,카심 세력의 크리스털 이 있는 동쪽 해변.
카심 세력이라고 해서 줄리앙 세력 과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여유를 두고 차근차근 몬스터를 사 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 차가 8 회 차로 건너뛰었다.
한꺼번에 150마리나 되는 몬스터 가 나타나면서 해변으로 몰려왔다.
“끼룩끼룩! 끼룩!”
퍼영! 퍼영! 퍼영!
하늘에선 두 개의 머리가 달린 펠 리컨이 머리 하나씩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울어 대고,먼 바다에선 껍질 위에 포신을 짊어진 달팽이들이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마나탄을 쏘아 댔다.
조용했던 바다가 전쟁 난리통마냥 소란스러워졌다.
150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은 라 이프 크리스털과 원수라도 진 양 맹 공을 퍼부었다.
여태껏 계속 카심 혼자서 빠르게 저렙 몬스터를 제거하고 있던 터라 아이작과 룬은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던 형국이었다.
뒤에서 대기 중인 아이작과 룬은 간밤에 줄리앙이 남긴 말 때문에 혼 란에 빠져있었다.
‘신화급 웨이브를 모두 공략하면
세상이 멸망합니다.’
'신수들이 저희들만 편애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카심의 포부는 결국 인간 사회에 그치는 작은 일에 불과하지요. 세븐 즈 교는 저희를 사이비 취급하는 당 신들까지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교리를 강요할 생각은 없 습니다. 대신 한 번만이라도 색안경 을 벗고 세븐즈 교를 바라봐 주십시 오.’
웨이브 공략이 절망자를 만들기 위 한 공정에 불과하다는 게 사실일까? 새벽에 카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 져 보았었다.
신화급 웨이브를 모두 공략하면 세
상이 멸망한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 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랬더니 카심은 세븐즈 교 교리에 그딴 말이 있긴 한데 허무맹랑한 가 설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젯밤 줄리 앙과 마주쳤다는 보고를 올리지 않 았다.
본인들조차도 왜 보고를 하지 않았 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긴 했 다.
만약 줄리앙의 말이 사실이라면 카 심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 다.
원래 세계의 문명사회를 재건하려
고 할수록 이세계인들의 수준은 상 향평준화될 것이고,카심은 인공적 인 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끝내 신화급 웨이브를 전부 공략하 고 말 거다.
여태껏 믿어 온 것이 세상의 멸망 을 앞당기는 행위였을 줄이야.
그리 생각하니 모든 게 허무했다. 줄리앙의 화술은 독처럼 두 사람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으며,초기증 상으로 위험이 닥쳤는데도 반응하는 텀이 길어졌다.
퍼영! 퍼영!
캐터펠러 에스카르고가 쏘아올린 작은 마나탄이 아이작과 룬에게 날 아들었다.
두 사람이 한 박자 늦게 실드를 끌어올리려던 찰나.
두 사람의 코앞에 있던 모래가 들 썩이더니 주먹 모양을 띠고 있는 흙 덩이가 솟구쳤다.
직경 2미터짜리 대형 홁주먹이 마 나탄을 걷어 냈다.
카심의 스킬인 ‘샌드 어퍼’였다.
샌드 어퍼가 하늘로 솟아오르다가 폭죽 터지듯 폭발했다.
펑!
모래가 남풍을 타고 어지러이 흩어 진다.
그 아래에서 카심이 묵묵히 몬스터 를 사냥하고 있었다.
질책은 없었다.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 했던가.
해야 할 일을 해라.
카심의 너른 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게 전달되어 왔다. 말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 하게.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라.
상사가 부하를 질책할 때 이보다 자주 쓰이는 말이 있을까.
카심은 같은 말을 하더라도 행동을 통해 전달했다.
윗사람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아 랫사람은 따르지 않는다는 걸 알기 에.
아이작과 룬은 긴장감을 되찾으며 무기에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오오라를 피워 올렸다.
회 차를 거듭하면서 아이작과 룬에 게도 마나 스텟이 지급되었기에 가 능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수령님! 금방 가세하 겠습니다!”
“한눈 팔아서 죄송합니다!”
팡!
카심이 정권을 내지르자 권풍이 뻗 어 나가며 캐터필러 에스카르고를 분쇄했다.
내지른 정권을 옆구리까지 당긴 후 에야 카심의 입이 열렸다.
“공략이 끝나면 처벌을 내리겠다. 감봉 처분을 내릴 것이니 단단히 각 오하도록.”
공략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을 것 을 전제로 한 처벌이었다.
아이작과 룬은 날아드는 트윈헤드 펠리컨을 베어 내며 힘차게 대답했 다.
“네! 수령님!”
카심의 굵직한 언행 덕에 집중력을 되찾은 두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눈빛에 총기가 깃든 듯 하나 두 사람의 심리 아래에선 여전 히 불안감이 머무르고 있었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탑은 언제 든 다시 흔들리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불안감을 아는지 모르는 지 카심은 6회 차,7회 차 몬스터를 정리한 후에 갑자기 몸을 틀었다.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다. 믿고 맡 기마.”
“걱정 붙들어 매고 다녀오십시오!”
아이작과 룬은 기운 찬 대답과 함 께 검으로 트윈헤드 펠리컨을 베어 냈다.
힘찬 동작 속에서 라이프 크리스털 에 손끝 하나 못 대게 하겠다는 의 지가 엿보였다.
구드르슨과 마찬가지로 지부장 출 신들이니 12회 차까진 무리 없이 버텨 낼 거다.
카심은 어젯밤을 기점으로 멍한 모 습이 많이 보이는 두 사람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카심이 가진 스킬 가운데 ‘신의 도 예’라는 전설급 스킬이 있다.
마나를 소모하여 자신과 똑같은 모 습,똑같은 스킬,똑같은 스렛을 가 진 분신을 만들어 내는 스킬이다.
카심 정도 되는 인물이 신의 도예 를 시전하면 괴물 한 명이 더 생겨 나게 된다.
가히 사기적인 스킬이나,그에 준 하는 단점이 존재한다.
생성된 분신을 움직이려면 분신에 카심의 의식을 담아야 한다는 점. 분신에 의식이 담겨 있는 동안엔 카심 본인이 무방비가 된다는 점. 분신을 제 몸처럼 다룰 수 있는 대신,본체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게 크나큰 리스크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신의 도예가 가진 리스크를 알려 주지 않았다.
3단계 공략을 진행하다 보면 30회 차 이상부턴 레벨 300짜리 몬스터 50마리를 상대해야 한다.
그게 어디 보통 일이던가.
카심의 실드 스텟이면 어지간해선 공격당할 일이 없겠지만서도,만약 을 대비해 미리 분신을 대역으로 세 워 둘 생각이었다.
카심은 밀림 속을 달리다가 방향을 꺾어서 해안 절벽 위로 올라가는 길 로 빠졌다.
해안 절벽 위로 올라가자 고둥 부 는 소리마냥 웅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응!
해안 절벽 위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 아래에 해안 동굴과 이어지는 작은 통로가 존재했다.
카심이 하룻밤을 보낸 해안 동굴은 비스듬한 L자형 형태를 띠고 있는 데,해풍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면 통로를 통해 공기가 위로 빠져나오 면서 바람 소리가 메아리치는 현상 이 발생하고 있었다.
카심은 구멍 안에 몸을 들이고 스 킬로 바위를 옮겨 구멍을 완전히 닫 았다.
드드드드! 턱!
바위가 퍼즐이 알맞은 자리에 들어
차듯 딱 맞게 구멍에 끼였다.
구멍이 막히면서 세차게 귀를 때리 던 바람 소리가 멎었다.
비스듬한 통로 속에서 카심이 관 속에 눕듯 양팔을 교차하곤 몸을 뉘 였다.
더불어 카심이 누워 있는 발치 아 래에서 진흙덩어리가 뭉글뭉글 솟아 나더니 카심의 모습을 갖췄다.
분신이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때. 분신이 곧 카심이 된 것마냥 입에 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위업을 달성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이런 곳에서 끝나선 안 돼. 절대로.”
*
바다 위를 누비는 투영검 한 자루.
터영! 터영! 터어영!
투영검이 몬스터 소환 지점을 들쑤 실 때마다 바닷물이 호쾌하게 튀어 올랐다.
분수처럼 치솟는 물기둥 속에서 몬 스터 시체가 섞여 나왔다.
벌써 강현 혼자서 단독선두를 달린 지 꽤 됐다.
6회 차부터 단독선두를 달렸고 현 재에 이르러선 15회 차를 달리는 중이었다.
7 i , ”
[최강현 님의 라이프 크리스털]
-15 회 차 : 블랙 크라켄(레벨
150)/남은 숫자 50마리
15회 차에선 검은 살결을 지닌 크 라켄이 소환되었다.
일반 크라켄보다 레벨이 1.5배나 높았다.
레벨이 높은 만큼 외견 또한 달랐 다.
일반 크라켄보다 몸집이 2배나 크 고,피부는 먹물처럼 새까맸으며,문 어 타입이었다.
이전에 벨런을 섭외하러 쉬프섬으 로 갈 때 크라켄과 조우한 적이 있 었다.
그때도 언급했었지만 크라켄은 문 어 타입과 오징어 타입 두 가지 형 태가 존재한다.
문어 타입은 일정 데미지를 입으면 먹물을 내뱉는데 그 먹물이 눈에 들 어가면 실명을,오징어 타입은 먹물 을 내뱉지 않는 대신 다리의 힘이 훨씬 강하다.
막 소환된 블랙 크라켄은 문어 타 입으로 먹물을 이용한 공격을 해 을 게 분명했다.
“구우우우우!”
블랙 크라켄이 철전지 원수라도 만 난 것처럼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 다.
이어서 블랙 크라켄이 몸체를 드러
내며 시커먼 먹물을 뿜었다.
첫 사출은 위협용인 건지 강현이 있는 곳까진 닿지 않고 바닷물 위에 떨어졌다.
50마리나 되는 블랙 크라켄이 먹 물을 뿜다 보니 바다 위에 유조선이 난파당한 것마냥 시커먼 액체가 한 가득 퍼졌다.
문어 먹물 같은 경우엔 기본적으로 점성을 지니고 있어서 끈적거리기 마련인데,블랙 크라켄의 먹물은 유 독 점성이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래서 쉬이 물에 풀어지지 않고 정말 기름이 유출된 것처럼 해변 앞 바다에 머물렀다.
먹물이 바닷물에 남아 있는 것을
강현의 뇌리에 번갯불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거 쓸 만하겠군.’
현재까지 살펴본 결과 5번 중 1번 은 비행 몬스터가 나온다.
뒤집어서 말하면 5번 중 4번은 수 면 위를 떠다니거나 헤엄치는 몬스 터가 나온다는 소리다.
그 점을 이용하여 좀 더 수월하게 3단계 개인 디펜스를 공략할 수 있 을 것 같다.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렸고,계획 을 실행할 능력이 있는데 뭘 망설이 라.
강현은 드림 윙을 펼쳐서 바다 위
로 날아갔다.
블랙 크라켄이 강현을 무시하고 라 이프 크리스털이 있는 곳으로 가려 하길래 블랙 크라켄 선두 집단에 투 영검을 날려 보냈다.
현재 강현의 마나 스텟으로 말할 것 같으면 1단계에서 얻은 마나 스 텟 300에 1회 차? 14회 차를 거치 며 얻은 마나 스텟이 1050이다.
도합 1350.
정제마나 스텟의 효과로 효율이 2 배로 증가하여 실질적으론 2, 700에 달하는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
2700의 마나를 모두 투자한 투영 검의 크기는 일당백이 우스울 정도 로 커져 있었다.
투영검을 한 번 휘두르자 선두에 있던 블랙 크라켄 20마리가 단 일 수만에 쓸려 나갔다.
후응!
이쯤 되면 검이 아니라 재앙 수준 이다.
한 마리만 있으면 중형 선박 정도 는 손쉽게 휘감을 수 있는 괴물. 그걸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2? 마 리나 썰어 냈다.
게다가 절단면은 또 얼마나 깔끔한 가!
산오징어를 무 썰듯 반듯하게 썰어 내니 그 손맛 또한 각별하다.
블랙 크라켄 떼는 단번에 동족이 수십 마리가 죽어 나가는 걸 목격하곤 기겁하며 타깃을 강현으로 바꾸 었다.
강현을 제압하게 위해 먹물을 쏘아 올렸는데,그 모양새가 마치 유전을 파낸 것마냥 검은 액체가 힘차게 솟 구치는 것 같았다.
강현은 유유히 공중을 날아다니며 먹물을 피했다.
쏴아아아!
쏘아 올리는 먹물의 양이 많아질수 록 바닷물은 시커떻게 물들었다.
블랙 크라켄의 먹물만이 가지고 있 는 특유의 끈적함은 제3신화급 웨이 브의 잔잔한 파도만으론 쉬이 흐트 러뜨릴 수 없었다.
육안으로도 바닷물이 끈적거리는
게 보일 정도이니 바닷물 속은 오죽 하겠는가.
대략 30분가량 먹물 사출을 유도 하며 돌아다녔는데도 16회 차 몬스 터가 나타날 기미가 안 보였다. 강현이 몰아치듯 선두 질주를 함으 로 인해 다른 세력에선 아직도 몰려 드는 몬스터를 잡느라 허덕이고 있 는 모양이었다.
블랙 크라켄들에게서 양껏 먹물을 뽑아내고 있는데 하늘에서 드링큰 크라운의 공지가 전달되어 왔다.
“여러분 저녁 6시입니다. 휴식 시 간이니까 내일 오전 9시까지 푹 쉬 십시오. 첫 날 시작 전부터 매우 흥 미진진한 장면이 많아서 저 드링큰크라운은 드르렁댈 틈도 없이 열심 히 관전하고 있답니다. 깔깔깔.”
드링큰 크라운의 징그러운 웃음소 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블랙 크라 켄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바다 위를 날던 강현은 드림 윙을 접지 않고 곧장 서쪽으로 활로를 잡 았다.
“낮 사냥은 끝났고. 이제부턴 밤 사냥 시간이군.”
어제 푹 쉬어 둔 것도 있고,예상 했던 것과 달리 3단계 공략 첫 날 에는 체력 소모가 거의 없었다.
남는 체력 썩혀 둬서 뭐하겠나.
3단계 공략을 수월하게 진행할 준
비는 마쳐 두었으니 오늘 밤은 타 세력 사냥에 나서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