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강현은 커뮤니티 제복과 세븐즈 교 제복을 한 벌씩 챙겼다.
전사자의 제복이라 피로 흥건히 젖 어 있다는 점이 껄끄럽긴 했다. 바다의 소금물로 핏자국을 살짝 문 대 보았는데 말라붙은 핏자국이라 지워지지 않고 더욱 번져 나가며 변 색된 사과 같은 꼴이 되었다.
더욱 처참한 꼴이 된 제복을 빤히 바라보던 강현이 입을 열었다.
“검은색이랑 빨간색이니까 괜찮겠 지.”
집에서 이랬다간 등짝 스매싱 맞았 겠지만 집이 아니니까 괜찮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 세탁물만 따 로 분류해서 빨기 시작했었지.
어느 집이나 아저씨들이 받는 대접 은 거기서 거기구나.
아직 가령취 풍길 나이는 아닌데 말이지.
강현은 두 개의 제복 중 세븐즈 교의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해변을 둘러보니 서쪽 방향으론 무 수히 많은 발자국이 남아 있는데 동 쪽 방향으로는 발자국의 거의 없다. 머릿수가 많은 줄리앙 세력은 서쪽 으로 가다가 밀림으로 들어갔고,카 심 세력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헤엄 쳐서 동쪽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강현은 세븐즈 교 사제복에 달린 고깔 마스크를 쓰며 동쪽으로 걸음 을 옮겼다.
*
2단계의 공략 핵심은 단연코 ‘어느 세력에게 그레이트 모스를 많이 잡 게 만들 것인가’였다.
줄리앙 세력은 공략 방해가 목적이 니 절대로 잡지 않으려 들 거다.
카심도 막대한 스렛량 때문에 남들 보다 페널티가 뼈아프게 다가오니 사냥을 최대한 지양하고 싶을 터. 당연히 강현도 페널티를 받고 싶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두 세력에게 그레이트
모스를 잡게 하느냐.
페널티를 감수하더라도 그레이트 모스를 잡게 할 이유를 만들어 주면 된다.
강현은 물의 유희를 쓰고 물웅덩이 상태로 돌아다니며,최대한 눈에 띄 지 않게 움직였다.
얼마쯤 이동하다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레이트 모스 6마리가 움직 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6마리의 그레이트 모스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 다.
사냥감을 노리고 날아가는 것이었 다.
따로 흔적을 더듬을 것도 없이 그
레이트 모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 다.
‘그레이트 모스에게 쫓겨서 도망가 겠군. 그 전에 따라붙어야 해.’ 페널티를 피하기 위해 도망을 갈 거라 여겼다.
그러나 카심 세력은 강현의 예상과
180도 다른 움직임을 취했다.
동쪽 해변을 향해 날아가던 그레이 트 모스들에게 3명의 조직원들이 덤 벼드는 게 아닌가.
조직원들은 바람의 방향을 교묘하 게 이용하여 분진이 닿지 않는 위치 에서 그레이트 모스를 공격했다. 마나 한 점 부여되지 않은 무기였 건만 잘도 그레이트 모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레이트 모스가 약한 것도 있긴 하다.
그걸 감안해도 상당한 움직임이었 다.
마나와 보구에 제한이 있더라도 실 력을 발휘할 수 있는 멤버들을 골라 서 데려온 거겠지.
거기다 저 충성심.
스렛 페널티를 두려워하지 않고 카 심을 위해 싸우고 있다.
강현이 물웅덩이 상태로 접근할 때 즈음엔 그레이트 모스 6마리가 전부 쓰러져 있었다.
사람의 이목구비가 구분될 거리까 지 좁혀졌을 때.
조직원들과 카심의 대화 소리가 들 려왔다.
“처리했습니다,수령님.”
“페널티는 존재했나?”
“네,스텟이 감소했습니다. 각자 2 마리씩 맡긴 했는데 스텟 소모량이 많아서 모든 그레이트 모스를 사냥 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싶습니 다.”
“흐음.”
카심이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했다. 조직원들은 카심의 생각을 방해하 지 않으려는 듯 침묵을 유지했다. 좀처럼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지 고민하던 차에 강현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카심은 동쪽 해변으로 걸어 나오는 자의 존재를 감지하곤 눈을 치켜떴 다.
“종교 권유나 하러 온 걸 아닐 테 고. 제 발로 죽으러 왔느냐?”
줄리앙도 아닌 일반 사제로 보이는 자가 홀로 왔으니 무언가 용무가 있 다 여겨 바로 공격하진 않고 추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제라 여기게 만드는 데엔 성공한 듯하다.
강현은 줄리앙의 직위를 모르기에 뭉뚱그려 줄리앙 세력을 칭했다.
“우리 쪽 의사를 전하러 왔다. 일 시 휴전하지 않겠나?”
“일시 휴전? 입은 헛소리나 하라고
달려 있는 게 아닐 텐데?”
“최강현 세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임시 동맹 체제로 최강현부터 치 자고 제안하러 온 건가? 재미없는 얘기를 들려준 보답을 해 줘야겠 군.”
“놈들이 그레이트 모스 위에 올라 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그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레이트 모 스의 눈길을 피하고,우리의 눈길도 피하기에 안성맞춤인 방법을 사용하 고 있어.
서로 그레이트 모스 사냥 을 꺼리고 있으니까 우리끼리 치고 받으며 싸우는 동안 저희들끼리 안전하게 있겠다는 속셈이지.
그래서 우리 측에서 먼저 제안을 하마. 그 레이트 모스 절반을 맡아라.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맡지. 그리고 최강현 세력이 그레이트 모스에서 내려오면 협공한다. 거기까지만 임시 동맹. 대 답은 1시간 내로 그레이트 모스를 사냥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찬성인 지 반대인지 판단토록 하지.”
공공의 적을 만들어 공평하게 반반 씩 맡는다.
양측에게 번갈아 접근하여 똑같은 제안을 할 생각이었다.
양측이 약속을 지킬지 안 지킬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래이트 모스 위에 최 강현 세력이 있다고 인지시키는 것 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레이트 모스로부터 도망칠 때마다 최강현 세력에게 농 락당한다는 기분 때문에 억지로라도 사냥할 마음이 들 테니까.
특히 카심은 커뮤니티의 수장이다. 스텟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프라이드.
커뮤니티의 수장이 마음대로 농락 당한다?
정점의 프라이드는 바위와도 같아 서 어지간해선 부서지지 않지만 한 번 부서지면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다.
스텟보다도 더 귀중히 여겨 할 것 이 있는 한 그레이트 모스를 잡을 수밖에 없으리라.
줄리안의 직위가 어느 정도일진 몰 라도 세븐즈 교에서 상층부에 속하 는 자일 테니 카심과 다를 바 없을 거다.
할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찰나.
카심이 아다만티음 건틀릿에 마나 건틀릿을 부여하며 달려들었다.
“시건방진 놈. 한껏 나불거리고 곱 게 돌아갈 수 있을 성싶더냐?”
강현은 수정 스렛의 효과로 카심의 건틀릿 궤도를 수정하며 뒤로 크게 뛰었다.
카심의 주먹이 강현이 서 있던 자 리에 떨어지며 모래가 움푹 파였다. 물러나서 거리를 두면서 카심의 행 동에서 그의 대답을 읽어 냈다.
“지금 건 거절이라도 받아들여도 되겠지?”
“절반? 얕보지 마라,사이비 교도. 그리 안달내지 않아도 모두 죽여 주 마. 너희도,최강현도,그레이트 모 스란 것도.”
공략을 위해선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카심은 어디까지나 정면 돌 파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움푹 파인 모래 구덩이에서 그의 깊은 프라이드가 전해져 왔다.
휘둘릴 바엔 리스크를 감수하겠 다…… 인가.
긍지를 바탕에 깔아 두고 행동하는 자들은 말로 다루기가 힘들다.
기껏 제복까지 준비하며 계책을 짜 왔건만 이래선 시작부터 실패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수확을 얻었 다.
카심이란 인간의 심층에 깔린 편린 을 엿본 느낌이다.
이런 자는 힘으로 꺾지 않으면 절 대로 꺾이지 않는다.
세금이란 명목으로 착취한 CP로 인공적인 신이 되겠다고 하길래 좀 더 권위적일 줄 알았는데,권위라기 보단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 같다.
‘작전의 방향을 수정해야겠군. 이 득 우선이 아니라 긍지를 자극하는 쪽으로 가야겠어.’
강현은 두어 걸음 더 물러나면서 한 마디 날렸다.
“썩어 빠진 착취 세력을 운영하는 주제에 입만 살았군. 우리 세븐즈 교의 힘을 얕보지 마라. 너희가 모 르는 숨겨진 힘을 발휘하면 커뮤니 티 정도야 쉽게 압살할 수 있지.”
“그거 기대되는군. 가서 네놈들의 교주에게 전해라. 아까는 시시해서 하품을 할 뻔했다고.”
그런가.
북쪽 해변에서 충돌하면서 줄리앙
의 직위를 알아냈었나.
세븐즈 교에서 보통 위치는 아닐 거라 여겼다만 교주였을 줄이야. 강현은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를 얻 어 내며 밀림으로 되돌아갔다.
불청객이 떠난 후에 카심은 제복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일이야. 참으로 이상한 일 이야.”
이상한 일이다.
거리나 속도로 보건데 무조건 건틀 릿이 적중해야 정상이었다. 적중했다고 생각한 찰나에 건틀릿 이 멋대로 궤적이 틀어졌다.
마치 상대가 조종한 것처럼.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착각인 것 같은데 찜찜해서 떨칠 수 없는 감각이 있었다.
방금 찾아온 사이비 놈.
이상하게도 줄리앙보다 강하다고 느껴졌었다.
착각인가?
*
숨을 곳을 찾던 줄리앙 세력은 드 디어 몸을 들일 곳을 찾아냈다.
보구를 사용할 수 없는 처지에 놓 이게 되어서야 보구의 편리함을 느 끼고 있는 참이다.
보구를 쓸 수 있었다면 거주형 보
구를 사용해서 들키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거점을 만들었을 거다. 그게 불가능한 이상 밀림 속에서 토굴을 만들어 몸을 밀어 넣을 수밖 에 없었다.
그마저도 한곳에 모든 인원이 들어 갈 수 없어서 3인 1조로 인원을 쪼 개어 토굴을 만들고,입구를 식물로 가려서 위장하는 게 고작이었다.
줄리앙과 함께 비좁은 토굴에 들어 간 이들에겐 고역이 따로 없었다. 세본즈 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옆에서 쪼그려 앉아 있 다.
같이 입장한 사제들이라 해서 결코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경우란 게 있잖은가.
다이아 옆에 별이 앉아 있는 격이 다.
신경 쓰일 수밖에.
사제들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끌어 안고 저희들끼리 바짝 붙어서 줄리 앙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줄리앙은 저 역시 무릎을 끌어안으 며 공간을 넓혀 주었다.
“편하게 있으십시오. 대접이나 받 자고 여러분을 고른 게 아니람니 다.”
“하지만 교주님. 교주님께서 편하 게 계시는 게 저희로서도 마음이 편 합니다. 부디 편하게 계십시오.”
“교주 명령입니다. 편하게 앉으십 시오. 나중에 다리 저려서 못 움직 이는 것도 우스우니까요.”
“아,뭐,명령이라면야. 근데 숨어 있는 걸로 충분할까요? 카심 세력이 상상했던 것보다 매섭게 움직이던데 다 최강현 세력은 아직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이거면 됩니다. 생각이 있다면 함 부로 그레이트 모스를 잡지 못하겠 지요.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토굴 입구에 세워 둔 수풀 너머로 그레이트 모스의 날갯짓 소리가 들 려온다.
계속 이 주변을 맴도는 게,아무래 도 사람이 많은 구역에 몰려드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불에 꾀이는 게 아니라 사람에 꾀 이는 나방인가.
다른 세력이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제 스스로 위치를 알려 주는 꼴이 된다.
그래도 함부로 그레이트 모스가 모 여 있는 구역에 발을 들이고 싶진 않을 거다.
졸지에 그레이트 모스가 줄리앙 세 력을 지켜 주는 울타리가 되었다. 그리 생각한 찰나.
수풀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가 전해 져 왔다.
쿠구궁!
요란한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레이
트 모스의 날갯짓 소리가 줄어들었 다.
누군가가 그레이트 모스를 사냥하 고 있다!
페널티가 두렵지 않은 건가!
줄리앙은 황당한 나머지 저도 모르 게 수풀을 들췄다.
저 멀리서 사람 인영이 아른거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카심이었다.
카심은 도망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거침없이 그레이트 모스를 주먹으로 으깨며 외쳤다.
“내려와라,최강현! 네놈의 머리를 으쩔 수 있다면 이깟 페널티 얼마든지 받아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