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통상적으로 강제 입장이 가능한 인 원은 ‘지명된 탱커 1명+탱커가 택한 파티원 4명’으로 최대 5명까지 가능 하다.
헌데도 세븐즈 교 사제들의 숫자는
20명이 넘는다.
밀림 사이로 얼핏 보이는 숫자를 세어 보니 24? 2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드링큰 크라운이 줄리앙만 편애했 나?
그건 너무 얼토당토않은 얘기고 뭔 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첫 입장 때 드링큰
크라운이 누가 보구를 들고 왔다며 한 명을 즉사시켰었다.
보구를 들고 오면 즉사한다고 미리 경고까지 했는데도 보구를 들고 왔 다.
실수로 들고 온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부러 들고 온 거였다면? 강현은 세본즈 교가 제3신화급 웨 이브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많 은 준비를 해 왔음을 직감했다.
‘절박한 만큼 이번 웨이브 공략에 사활을 걸었군. 이번 기회에 나와 카심을 쓰러뜨리려고 작정하고 왔 어.’
강현은 세븐즈 교의 교리를,카심 은 세븐즈 교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있다.
강현에 의해 신앙적 존재인 신수가 벌써 둘이나 당하면서 교리의 근간 이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카심에 의해 교단의 거점이 파괴되 면서 사제들이 이탈 중이다.
카심 세력과 줄리앙 세력을 이용하 려면 그들의 심리 밑바탕에 있는 부 분을 파악해야 한다.
무엇이 두 세력을 분발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그 부분을 먼저 파악해야만 양쪽 세력을 이용할 수 있다.
세븐즈 교가 이번 제3신화급 웨이 브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는 무엇 이 있을까?
강제 입장 규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장했다 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을 터.
세븐즈 교의 목적은 신화급 웨이브 공략을 막는 것.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공략자들을 제거하고 싶을 거다.
'잠깐. 만약에 줄리앙 세력이 이겨 서 나랑 카심 세력이 전멸했다 치 자. 그 뒤에 녀석들은 어떻게 할 속 셈이지?’
제3신화급 웨이브에선 탈출할 수 없다.
드링큰 크라운을 공략하지 않는 이 상.
만약에 목적을 달성하면 줄리앙 세
력은 드링큰 크라운을 공략할까? 그건 교리에 반하는 행위다.
신수를 섬긴다는 그들이 살고 싶어 서 신수를 공략한다면 스스로의 정 체성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목적을 달성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 을지도 모르지.
근데 또 사람이란 게 간사하기 그 지없는지라 교리를 저버리고 공략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줄리앙이 교단 내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만 알아도 추측이 쉬워질 텐데 말이지.’
카심 세력은 어떨까?
녀석들에게 이번 강제 소환은 그리 반가운 상황이 아닐 거다.
표면상으로 보이는 세력의 규모는 커뮤니티가 제일 거대한데다 한창 세븐즈 교를 밀어붙이고 있던 참이 었다.
인원제한,스텟제한,스킬제한 등등 각종 규제로 가득한 웨이브 내에서 나와 맞닥뜨리는 건 달갑지 않을 터.
카심 세력의 목표로 따지면 우선적 으로 카심을 살리는 것,그 뒤에 여 건이 되면 나와 줄리앙 세력을 제거 하는 것일 테지.
나 같은 경우엔 다른 두 세력보다 훨씬 단순한 동기로 움직이고 있다. 달리 뭐가 있겠나.
제3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하는 것.
그를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한다.
‘어쩌면 여기서 내가 제일 속편하 게 활동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 군.’
밀림을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이동 하다 보니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 왔다.
북쪽 해변이 머지않았다.
강현은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곧 있으면 북쪽 해변에서 카심 세 력과 줄리앙 세력이 맞닥뜨리게 될 거다.
두 세력 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정보전의 의미를 담아 혼자 왔다는 걸 숨기면서 카심과 줄리앙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마지막 상자 쟁탈전에 참 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제일 크다.
‘마지막 상자를 여는 게 공략 클리 어 조건이라 했었지. 연 다음에 안 에 있는 물건을 얻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싸움판에 끼어들면서 까지 목 멜 물건은 아냐. 그보다 아 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단 말이 지.’
밀림을 돌아다니면서 간간이 흰색 바위가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북쪽 해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 금에 와서도 또 하나의 흰색 바위를 발견했다.
강현은 줄리앙 세력의 추격을 멈추 고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흰색 바위 를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밀림에 흰색 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긴 한데 이상하게도 눈 에 밟힌다.
항상 판단을 내릴 땐 분석 9할,감 각 1할의 비율로 결정을 내리는데 고작 1할일지라도 사람의 감각이라 는 건 무시할 만한 게 못 된다.
감각 역시 경험에 의해 단련되는 것이니까.
강현은 감각이 시키는 대로 흰색 바위를 관찰해 보았다.
‘굳기는 바위와 같아. 근데 모양이 신경 쓰여. 기다란 것도 있고,뚝뚝끊긴 것처럼 동글동글한 것도 있고, 가끔씩 털도 섞여 있는 게 마치…… 설마 변?’
크기랑 단단함 때문에 바위로 생각 해도 이상할 건 없는데 사이즈를 축 소시키면 모양새가 꼭 배설물 같다. 아니,꼭 배설물이라고 단정 짓긴 이르다.
잘라서 단면을 살피면 더욱 확실해 지지 않을까?
강현은 챙겨 둔 롱소드에 그랜드 오러를 부여하여 흰색 바위에 날을 대었다.
서격!
바위 정도야 그랜드 오러 앞에선 칼만 대면 잘리는 두부나 다름없다.
바위를 자르고 있는데 잘린 단면에 서 녹색 액체가 튀어나왔다.
뿌직!
무언가의 체액인 양 끈적끈적하고 역한 냄새가 난다.
바위를 완전히 자르자 절단면이 벌 어지면서 내용물이 드러났다.
바위 속에 들어 있던 건 굵직한 애벌레 였다.
바위도,배설물도 아니었다.
고치였을 줄이야.
드링큰 크라운은 고치의 존재를 언 급하지 않았었다.
알려 주기 싫어서?
그보단 알려 주지 않아도 조만간 알 게 될 테니까?
후자 쪽이 더 신빙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공략을 개시할 때 드 링큰 크라운이 제3신화급 웨이브의 구조를 애매하게 설명했었다.
‘15개의 상자가 모두 열리면 자동 으로 1단계 공략이 클리어됩니다.’
1층도 아니고,다음 구역도 아니 고,다음 층도 아닌 ‘1단계’라 칭하 였다.
웨이브나 던전에서 ‘1단계’라 칭하 는 구조는 정해져 있다.
1페이즈, 2페이즈…….
즉 무대는 무인도로 고정되어 있고 페이즈 별로 공략방식이 바뀌는 구 조였던 것이다.
무인도에 배치된 벌레 고치는 다음
페이즈에서 부화할 예정인 게 틀림 없다.
‘고치를 미리 제거해둘 수 있도록 만들어 뒀군.’
그렇다면 마지막 상자의 정체도 짐 작이 간다.
공략 시작 당시엔 북쪽 해변에 상 자가 없었을 거다.
14개의 상자가 모두 열리고 난 후 에 상자를 놓아두고 일부러 사람들 이 북쪽 해변에 몰리도록 의도한 게 분명하다.
강현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위로 들어 보았다.
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고 있 다.
밀림에서 태어난 곤충들이 분진 같 은 걸 살포하면 북쪽에 있는 자들은 무조건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안 이상 북쪽으로 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살 길은 남쪽에 있다.
강현은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이동 하면서 보이는 족족 하얀 고치를 베 어 냈다.
그러면서 처음에 드링큰 크라운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최상층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을 땐 노이즈가 섞이지 않았어. 2층이 든,3층이든 다음 층이 존재하긴 존 재한다는 건데......’
강현은 무인도에선 페이즈 방식으
로 진행,대신 다음 층이 존재하긴 존재한다는 걸 염두에 둔 채로 움직 였다.
*
제3신화급 웨이브 2층.
드링큰 크라운은 1층의 상황을 비 춰 주는 거울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거울 안에선 3개의 영상이 동시에 송출되고 있었다.
강현,카심,줄리앙의 상황이 3인 칭 시점에서 비춰지고 있는 가운데, 막 북쪽 해변에서 카심 세력과 줄리 앙 세력이 마주친 참이었다.
공략 개시 4시간 만에 이루어진
이벤트였다.
본인들에겐 고역일지 몰라도 드렁 큰 크라운에겐 드디어 볼거리가 생 겼다.
드링큰 크라운은 큰 공 위에 걸터 앉아선 두 발을 흔들며 촐싹거렸다.
“싸우나? 싸우겠지? 싸워. 싸우라 고.”
철창 매치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두 세력이 싸우기만을 기다렸다.
거울의 윗부분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던 차에 강현을 비추는 부분이 눈 에 들어왔다.
북쪽 해변으로 가던 강현이 돌연 방향을 돌려 남쪽으로 이동 중이었 다.
교묘하게 바위로 위장하고 있는 벌 레 고치를 베면서.
드렁큰 크라운은 여전히 웃고 있었 다.
같은 웃음이라도 촐싹거리는 웃음 이 아닌 진심으로 홍미를 느끼면서 피어오르는 웃음이었다.
“호오? 1페이즈의 함정을 알아차 리다니 보통이 아닌걸?”
웨이브 안에서만 생활했기에 인간 들의 사정 같은 건 잘 모른다.
누가 어느 정도 강하느니,누가 어 떤 세력의 수장이니,누가 어떤 가 치관을 가치고 있으니.
단지 공략을 제시하면서 인간들끼 리 허우적거리는 걸 구경하는 것이 즐거울 뿐.
그래도 최강현이란 이름은 알고 있 다.
녀석이 신화급 웨이브를 2군데나 공략하면서 제3신화급 웨이브가 구 현되 었으니까.
폼으로 그랜드 우드와 어스 메갈로 돈을 공략한 게 아니었다.
상당한 관찰력과 판단력이다. 드링큰 크라운은 1페이즈의 하이라 이트인 북쪽 해변보다 강현의 행동 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거 방심하고 있다간 큰일 나겠 는데?”
큰일 나겠다고 말하는 것치곤 목소 리 속에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 봤자 인간은 인간.
날 상대로 얼마나 발버둥 칠 수 있을지 기대되는 걸?
*
공지대로 북쪽 해변의 모래사장 한 가운데에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무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카심 세 력과 줄리앙 세력이 대치했다.
카심은 하위차원에서 공수해 온 아 다만티음 건틀릿을 장착하며 호기롭 게 말했다.
“종교란 참 역겨워. 있지도 않는 신으로 장사를 하는 장사치들이면서 교리 따위로 자신들의 인간성을 세탁하지. 네놈들이 성서라고 부르는 낙서를 읽어 봤는데 역겨워서 휴지 로도 못 쓰겠더군.”
줄리앙 세력에 포함되어 있는 사제 들이 발끈하듯 무기를 들어 올렸다. 대놓고 신성 모독을 당했음에도 불 구하고 어느 하나 무기에 마나를 부 여하지 않았다.
않았다기보단 못한다가 정확한 표 현일 거다.
줄리앙 세력도 줄리앙에게 마나 환 약을 몰아주었다는 증거였다.
줄리앙은 미스릴로 만든 레이피어 두 자루를 역수로 쥐며 태연하게 맞 받아쳤다.
“저도 정치인을 빙자한 약탈꾼은
혐오스럽더군요. 약탈을 정책으로 정당화한 합법적인 사기꾼이지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민폐천만입니 다.”
“혀 놀리는 꼴을 보니 네놈이 교주 로구나.”
“제 직위를 알려드릴 의무는 없다 고 생각합니다만?”
“딱히 관심도 없다. 곧 죽을 놈의 직위를 일일이 따져 봤자 의미 없 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으면 서도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카심 세력으로선 줄리앙 세력의 인 원수가 신경 쓰였고,줄리앙 세력으 로선 교단 차원에서 카심의 무력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섣불리 선공을 취하지 못했다.
최대 5명까지였을 텐데 어떻게 20 명이 넘는 인원이 입장한 걸까? 무엇보다 두 세력에게 있어 부담스 러운 건 최강현 세력의 존재였다.
최강현 세력도 공지를 전해 들었을 텐데 아직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 다.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일 터.
그렇다고 마냥 눈치만 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눈치전 끝에 먼저 움직인 건 카심 측이었다.
카심은 그랜드 오러를 부여한 건틀 릿을 말아 쥐며 모래를 박찼다.
“사이비 놈들은 내가 맡겠다! 너희 들은 상자를 확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