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누추한 집이라 죄송합니다. 그래 도 보기보단 아늑하니까 편히 쉬십 시오.”
죄송하면 권하지 않으면 되는 것 으
편히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편히 가라는 말을 잘못한 것 같다. 가까이서 본 산성 주택은 그야말로 벽부터 바닥,지붕까지 몽땅 산성액 으로 만든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산성늪에서 출렁 이고 있는 산성액보다 훨씬 짙은 녹 색을 띠고 있었다.
‘산성늪에 있는 산성액이랑은 다른
부류의 액체인 건가?’
집 구조에 관심을 보이는 강현을 보았는지 레슬이 손으로 벽을 쓸어 내리며 말을 건넸다.
“집 구조가 참 신기하죠?”
“액체인데도 고체처럼 형체를 유지 하고 있군요.”
“하하,저희가 가진 스킬로 만든 집이랍니다. 저희에겐 산성액에 마 나를 불어넣어 산성 반죽을 만들 수 있는 스킬이 있답니다.”
레슬은 현관 바깥에서 출렁거리는 산성액을 손으로 한 움큼 퍼올렸다. 그러곤 손으로 마나를 뿜어내기 시 작했다.
레슬의 마나는 흘러나오는 족족 산
성액에 스며들었다.
산성액이 물이라면,휴먼 슬라임족 의 마나는 황토랄까.
마나가 산성액에 스며들 때마다 색 이 짙어지며 점토처럼 말랑말랑하게 변했다.
레슬은 반숙마냥 물기가 촉촉하게 흐르는 물기까지 마나를 섞어선 벽 면에 산성 점토를 발랐다.
“이만한 농도로 집을 지으면 항시 산성액이 흘러내리면서 집 안의 산 성 습도가 유지되지요. 매일매일 보 수해 줘야 해서 수고롭긴 해도 덕분 에 쾌적하게 살고 있지요.”
자랑스럽게 말할 부분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이건 뭐 산성 가습기도 아니고 산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집 안 꼴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식기며 가구까지 죄다 산성액으로 만든 것밖에 없었다.
레슬은 산성액으로 만든 의자를 빼 내어 착석을 권했다.
“앉으십시오. 금방 차를 내오겠습 니다.”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산성 컵에 녹색물을 담아서 내왔다.
“정화 장치로 걸러 내서 마실 수 있는 수분만 남긴 것이니 안심하고 드십시오.”
까놓고 말해서 먹는 것만큼은 그래 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게 나오길 바랐다.
수분만 걸러 냈다 해도 본바탕은 산성으로 오염된 물이다.
걸러 내도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먹을 건 안 봐도 알 것 같다.
오염된 물에서 자란 생선 같은 걸 내놓겠지.
안 그래도 집 안 창가 쪽에 건조 시킬 요량으로 물고기를 널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건 물고기의 외형이 병이 든 것처럼 기형적으로 생겼다는 점 이었다.
‘저런 걸 먹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지.’
무적 능력이 몸속까지 보호해 주진 않는다.
오염된 물과 오염된 음식을 7일 동안 먹으면 몸이 버텨 낼 리 없다. 강현은 산성 컵을 검지로 밀면서 사양의 뜻을 내비쳤다.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용해의 늪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대접을 거부했다.
대접 거부의 의사를 표하자 휴먼 슬라임족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녹색 몸이 열이라도 된 것처럼 부 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노란색으로 바 뀌었다.
말 한 마디로 그린라이트가 옐로라 이트로 바뀌는 일이야 허다하다.
그렇다고 휴먼 슬라임족을 상대로 신호등 놀이를 할 건 아니잖은가. 노란색은 보통 두 가지 의미를 띈 다.
조롱 혹은 경고.
이 경우엔 경고의 의미가 강했다.
레슬은 권유가 거절당한 것에 화가 났는지 산성 컵을 도로 강현 앞으로 밀었다.
“당신을 위해 기껏 얼마 안 되는 식수로 차를 끓였습니다. 저희를 부 끄럽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인간이 마시기엔 독해서 말이죠. 마음만 받아 두겠습니다.”
“저희 휴먼 슬라임족에게 있어 대 접을 거부당하는 건 최악의 모욕입니다.”
“그래도 거절한다면?”
“다음 구역으로 가는 길은 저희 휴 먼 슬라임족의 스킬로만 뚫을 수 있 습니다. 우릴 모욕한 자를 위해 길 을 열어 줄 것 같습니까?”
레슬의 말을 요약하자면 3시 방향 에 휴먼 슬라임족의 스킬로만 없앨 수 있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그 바위를 뚫으려면 매일 휴먼 슬 라임족 전원이 달라붙어도 7일은 걸 린다.
결국 1-B구역의 공략법은 대접을 빙자한 인간 죽이기에 순응하면서 7 일을 버티는 것이었다.
'약 200명이 7일 동안 달라붙어야
뚫을 수 있다면 상당한 노가다가 필 요한 작업이겠군. 지트로 스킬을 뺏 어도 우리만으론 몇 달이 걸리겠 지.’
어떻게든 휴먼 슬라임족의 협력을 얻는 수밖에 없다.
정상적으로 공략하려면 실드를 끌 어올린 채로 지내며 7일 동안 오염 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 면역력이 약한 자는 병에 걸릴 것이고,건강한 자도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 되어 공략에 지 장이 생길 것이다.
공략자의 몸을 망치기 위해 만들어 진 곳.
그게 바로 용해의 늪의 정체였다.
정보를 더 뽑아내기 위해 레슬을 자극해 보니 세 가지 사실을 더 알 아낼 수 있었다.
1. 한 명이라도 노란색으로 물들면 휴먼 슬라임족 전체가 ‘반항 상태’ 가 되어 작업을 하지 않는다. 반항 상태는 하루가 지나야 풀린다.
2. 대접을 연이어 두 번 거절하면 붉은색으로 물들어 ‘적대 상태’가 되어 영영 작업을 해 주지 않는다.
3. 공략자 전원이 대접을 받아야 작업을 진행해 준다. 한 명이라도 예외가 있으면 거절 횟수와 상관없 이 곧바로 ‘적대 상태’가 된다.
오늘은 벌써 레슬이 반항 상태로 변했으니 작업은 물 건너갔다.
정보와 1일차를 맞바꾼 셈치자.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선 오늘 내로 대책을 세워야 한 다.
강현이 일행에게로 돌아가려 하자 레슬이 노란색으로 물든 상태에서 새로운 권유를 했다.
“이 근처에는 잘 곳이 없으니 저희 집에서 묵으시죠.”
산성액이 줄줄 흐르는 집이긴 해도 단순히 자는 것뿐이라면 버틸 방법 은 많다.
자는 동안엔 실드를 유지할 수 없 으니 김혜림의 하늘 계단을 산성 침 대 위에 깔아 몸을 보호한다든지, 빙백검으로 아예 방 안을 얼려 머릿속에 마인드맵이 펼쳐져 나가 던 중.
얼린다는 선택지가 강현에게 커다 란 힌트로 다가왔다.
강현은 대접을 받되 오염된 음식을 먹지 않을 방법을 떠올려 냈다.
‘단순한 방법이 있었는데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군. 어디 보자,빙백검 의 냉기 능력이랑 내 마나를 합산하 면…… 얼추 가능하긴 하겠어.’ 대책을 세운 강현은 흔쾌히 레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리 권하시니 더 이상 거부하기 죄송해지는군요. 염치 불구하고 여 기서 머물겠습니다.”
드디어 대접다운 대접을 할 수 있 다는 것이 기쁜지 함박 미소를 짓는 레슬이 었다.
“하하하,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 히 쉬십시오. 이제야 저희 휴먼 슬 라임족의 풍습을 제대로 인지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대접을 거부하는 것이 종족 최고의 모욕.
특이한 종족을 만들어 냈군.
본인은 선의라고 생각하는데 남에 겐 민폐행위인 걸 모르는 자가 가장 성가시다.
이와 같은 행위를 가장 잘 드러내 는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아는가? 바로 자식에게 자신의 꿈을 주입하려 하는 부모와 그 자식의 관계다. 한 달에 수백씩 들여가며 평일 주 말 없이 사교육을 시키는 것을 ‘자 식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의 입장에선 고문에 불과한 것 을 모르고,자식이 반항하면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분노하기 일 쑤다.
뭐 휴먼 슬라임과 공략자는 엄연한 남남이지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 라,호의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강현은 하늘에서 대기 중인 일행에 게 돌아가 얻어 낸 정보를 전해 주 었다.
“……그러니까 당분간 산성 주택
안에서 자기로 했어.”
당연히 불같은 반응이 되돌아왔다.
“산성 주택 안에서 자야 된다고 요?”
“야야! 그냥 매혹 걸어 매혹! 여자 휴먼 슬라임족 없어?”
“해일로 쓸어 버리면 안 돼?”
안전,유혹,파괴.
각자 성격대로 대책을 내놓은 여성 진이었다.
휴먼 슬라임족을 상대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전부 나왔다. 매혹이나 협박을 쓰는 작전도 고려 해 보긴 했었다.
안 쓰는 작전에는 다 그만한 이유 가 있기 마련이다.
“휴먼 슬라임족에겐 성별이 없다더 라고. 그리고 무력으로 제압한다고 말을 들을 상대가 아냐. 차라리 계 책을 쓰는 게 빠르고 편해.”
“계책이 있어? 아무리 둘러봐도 답 이 없어 보이는데……
답이 없는 게 당연하다.
딱히 특별한 공략방법이 있는 곳도 아니고,7일 동안 가만히 있으면 되 는 곳이니까.
대신 페널티로 몸만 망가지면 된 다.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 다.
대접 받는 게 문제라면 대접 자체 를 못하게 해 버리면 된다.
강현은 빙백검을 뽑아 들며 마나를 한껏 부여했다.
“위험하니까 물러나.”
빙백검에 마나를 얼마나 불어 넣은 건지 냉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지근에 있던 여성진은 툰드라를 방 불케 하는 강한 냉기에 화들짝 놀라 그리폰과 니아를 뒤로 물렸다.
있는 마나를 모두 빙백검에 담을 작정인지 멈추지 않고 계속 마나를 불어넣는 강현이었다.
W? 20미터로는 빙백검의 냉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참 먼 곳까지 물러난 여성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강현 씨가 전력을 다하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요.”
“계속 같이 다니면서 재가 얼마나
센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의 반도 모르고 있었네.”
“으으으,손 시려? 발 시려?”
솔직히 강현에 대해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강현이 빙백검의 냉기 방출 능력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걸 보고 나니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었 다는 걸 깨달았다.
이 중에서 최근 1? 2년 동안 강현 이 전력을 다한 걸 본 자가 있긴 하던가?
그랜드 우드를 공략할 때도 김혜림 과 루나는 1층으로 떨어져서 정확히 어떻게 그랜드 우드를 쓰러뜨렸는지 보지 못했었다.
화력만이라면 그래도 강현 못지않 을 거라고 자부하던 세이아나조차 할 말을 잃었다.
이어지는 강현의 행동은 더욱더 당 황스러웠다.
기껏 빙백검에 마나를 불어넣어 놓 곤 검을 놓아 버리는 게 아닌가!
빙백검이 냉기를 한껏 풍기면서 산 성늪에 빠졌다.
산성늪인 만큼 평범한 물과는 어는 점이 다를 터.
하지만 무식하게 마나를 때려 넣은 빙백검 앞에선 냉동실 속 녹차나 마 찬가지 였다.
乂 ㅈ■즈 I ㅈ. ㅈ. ㅈ. 즈 I
- I■- I ; ? ? 一I ?
빙백검이 빠진 곳을 기점으로 산성 늪이 삽시간에 얼기 시작했다.
빙백검이야 비늘로 이루어져 있어 서 검 자체가 부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라앉지 않고 산성늪 수면 부근에 머물렀다.
늪에 빠뜨렸다 해도 빙백검의 위치 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 다.
강현은 자기 손으로 빙백검을 빠뜨 려 놓고 휴먼 슬라임족이 있는 곳으 로 가서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쳤다.
“레슬 씨,제가 실수로 검을 떨어 뜨렸는데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검을 빠뜨리셨어요? 그거 큰일이
군요. 근데 여기 한 번 빠트리면 찾 는 게 쉽지가 않아서…… 허억! 이 게 무슨 난리야!”
저 멀리서부터 산성늪이 차츰차츰 얼어붙는 것을 목격한 레슬이었다.
얼어붙고 있는 기세로 봐선 하룻밤 이면 산성늪 전체가 얼어붙고도 남 을 것 같았다.
냉기가 퍼져 나와 산성 주택가까지 닿았다.
산성 주택이 떠 있는 장소가 얼어 붙은 건 물론이고 산성 주택 외벽에 온통 서리가 꼈다.
휴먼 슬라임족이 빙판 위를 방방 뛰어도 빙판에 균열조차 생기지 않 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빙판을 두고 레슬 이 허둥지둥 소리를 빼액 질렀다.
“대,대,대체 뭘 빠뜨린 겁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어스 메갈로돈 을 공략해야 되다 보니 강력한 검을 가져왔는데 이런 사고가 발생할 줄 은 몰랐습니다. 검을 빨리 빼내면 멈출 수 있을 겁니다.”
“이리 꽁꽁 얼어붙었는데 어떻게 빼내란 겁니까? 당신네들 물건이니 당신네들이 꺼내야죠!”
산성늪이 얼어붙을 수준의 냉기이 다.
휴먼 슬라임족도 얼지 않으리란 보 장은 없다.
레슬을 비롯한 휴먼 슬라임족은 벌
써부터 추워서 오들오들 떨기 시작 했다.
의복 하나 걸치지 않고 물컹물컹한 몸뚱이로 덜렁덜렁 돌아다니던 종족 에게 추위 대책이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 으니…….
“늪이 얼어붙었는데 식수랑 생선은 어떻게 하란 겁니까?”
“아까 보니 집 안에 생선 널어 두 셨던데 그걸로 해결하시지요.”
“우리끼리 먹어도 며칠을 버틸지 모르는 양입니다. 당신네들에게 돌 아갈 양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제 대접하긴 글렀습니다!”
늪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식
량과 식수에 제한이 생기는 건 당연 지사.
대접하긴 글렀다고 말했었나?
그 말을 듣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