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커뮤니티가 세븐즈 교의 신전을 찾 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다.
수색의 중심에는 항상 지역장이 포 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쳐들어올 때도 지역장을 선 두에 내세우지 않을까 싶었다.
허나 예상과 다르게 지역장이 아닌 수령이 직접 나타났다니?
카니발에는 카심과 관련하여 수많 은 일화가 존재했다.
혼자서 전설급 웨이브에 들어가 클 리어 했다는 둥,클로징 포션 없이 필드를 돌아다니다가 10개쯤 되는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를 단번에 처리했다는 둥,전설급 웨이브 공략에 실패하여 생겨난 몬스터홀을 혼자서 막았다는 둥.
하지만 몬스터홀은 한 번 생기면 다시 닫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문 의 절반은 허풍인 것을 알 수 있다. 세간에 떠도는 수많은 일화는 기껏 해야 저희들 수령을 치켜세우기 위 해 조직원들이 만든 헛소문이라는 거다.
세븐즈 교에선 카심의 전력을 지역 장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로 치부하 고 있었다.
고로 지역장과 동급이라 여겨지는
1급 사제가 여기서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세르게이는 상대가 카심이라는 소 식을 듣곤 전의를 불태웠다.
“사제들을 지정된 장소에 배치시켜 라. 명계의 진을 펼치겠다.”
“명계의 진! 그거라면 카심에게 써 도 아깝지 않겠지요. 바로 보구를 배치하겠습니다.”
세본즈 교는 기본적으로 신수를 섬 기면서 신화급 웨이브를 보호하여 세계의 초기화를 막는다는 교리 하 에 움직이고 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세븐즈 교가 얻는 보구의 대부분은 제5신화급 웨 이브에서 얻고 있다.
바몬의 정원에는 특수한 룰이 있어 서 특정조건만 잘 이행하면 SSS급 이상의 보구나 스킬을 얻을 수 있 다.
물론 쉬운 조건은 아닌데다 SSS급 이상의 보상을 받을 확률은 매우 낮 긴 하다.
말하고자 하는 건 세븐즈 교가 종 교인을 자처하는 것치곤 이중성이 짙은 집단이라는 것이다.
신화급을 공략하면 안 된다며 제1 신화급 웨이브 1층 때부터 공략자들 을 방해하던 그들이다.
그런데 보상을 얻기 쉬운 제5신화 급 웨이브에선 ‘신화급에선 중간에 탈출하면 그때까지 공략한 층에 걸 맞은 보상을 얻는다’란 룰을 이용해 계속 보구와 스킬을 취득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불 륜.
이 말을 이토록 충실히 이행하는 집단도 없을 거다.
세르게이는 신전 안의 사제들을 향 해 우렁찬 고함을 외쳤다.
“지금부터 명계의 진을 펼친다! 전 원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라!”
명계의 진.
아이스 에어리어 신전이 소유한 전 설급 보구이다.
일정 간격으로 ‘명계의 기둥’이라 불리는 철 막대 8개를 배치하면 발 동시킬 수 있는 설치형 보구라 보면 된다.
명계의 진을 발동시키려면 기둥마
다 5명의 사람이 철 막대를 붙잡고 있어야 하고,명계의 진 효과가 다 하거나 명계의 진이 부서지기 전까 진 움직일 수 없다.
8개의 기둥에 5명씩이니 총 40명 의 인원이 필요한 대규모 설치형 보 구라 할 수 있다.
명계의 진을 발동시킬 경우,철 막 대를 모서리 삼아 실드가 테두리처 럼 생성된다.
이 실드는 실드 스텟 3만 분량의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며 철 막대를 붙잡고 있는 이는 무적 상태가 된 다.
얼핏 보면 상대를 가두기 위한 용 도로만 쓸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명계의 기둥의 진짜 효과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가둔 이의 스렛을 초 단위로 계속 흡수하는 것이다.
갇힌 이들의 스렛이 초당 100씩 감소하며,감소된 스렛은 철 막대를 붙잡고 있는 자들에게 균등하게 분 배된다.
명계의 진 효과를 요약하자면.
1. 철 막대를 모서리 삼아 실드 스 렛 3만 수치의 팔각형 실드를 생성.
2. 실드에 갇힌 이들의 스렛을 초 당 100 포인트씩 흡수 및 분배.
3. 최대 범위 80평,최대 높이 100 미터까지 적용. 지하에는 적용 안됨.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는 소모성 보구인지라 여태껏 사용하지 않았었 다.
하지만 상대가 카심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커뮤니티 각 지부에서 거두어들이 는 세금을 왕창 흡수하여 모조리 스 텟으로 전환한 자니까.
카심과 그가 끌고 온 부하들의 스 렛을 모두 빨아들였을 때.
세르게이와 아이스 에어리어 신전 의 사제들이 그들의 위치를 대체하 게 될 것이다.
세르게이가 카심의 이름을 듣고 전 의를 불태운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는 적의 도착예정시간을 감안하며 사제들을 재촉했다.
“신전 중앙에 있는 예배당에 설치 하도록! 3급 사제들은 비전투원을 대피시키고 적들을 예배당으로 유인 해라!”
“예! 세르게이 님의 지시를 들었 지? 지시대로 움직여!”
“말단사제들은 3급 사제들을 도와 비전투원을 신속히 대피시켜라!”
사제들이 개미 떼처럼 어지럽게 움 직이며 전투준비에 나섰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미리 대응 훈련 을 해 뒀지만 막상 실제상황이 되니 마음먹은 대로 척척 움직여지지 않았다.
특히 비전투원 사제들은 커뮤니티 의 폭정에 시달리다가 떠돌이 생활 을 하던 자들이다.
레벨이 낮고,전투에 소극적인 자 들이라 쉘터 내에서도 하위에 속하 던 이들이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지 겠는가.
제가 먼저 대피하겠답시며 질서를 지키지 않고 서로 밀치는 탓에 뒷문 에서 사람들이 마구 뒤엉켰다.
“에이씨! 앞에 좀 빨리 나갑시다!”
“당신 나보다 급 낮잖아! 양보하라 고!”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야? 같은 말 단인 건 똑같은데 어디서 새치기야?
내가 당신보다 교단에 헌금 많이 냈 어!”
“CP 없어서 떠돌이 생활한 주제에 헌금이 뭐 어쩌고 어째?”
“어디서 싸움질이냐! 신속하게 대 피하라는 말 못 들었느냐! 어서 음 직여라!”
말이 종교로 묶인 자들이지 실제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몇 없 다.
세계의 초기화에 대해 알고 있는 고위 사제들이나 열심히 교리를 지 키려고 하지 나머지야 신수를 섬기 고 싶어서 섬기겠는가.
허드렛일을 하거나 생색내듯이 CP 헌금만 조금하면 밥 주지,재워 주지,입혀 주지…… 떠돌이들 입장에 선 이리 가성비 좋은 호텔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작 위기상황이 닥쳤 을 때 협동심이라는 게 있을 리 만 무했다.
한 명이 멋대로 행동하니 두 명이 그를 보고 따라하고,두 명이 멋대 로 행동하니 네 명이 멋대로 행동하 면서 파장 퍼지듯 혼란이 가중되었 다.
급기야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부 류도 발생했다.
세르게이는 삽시간에 통제불능 상 태에 빠진 말단사제들을 보며 두통 을 느꼈다.
“망할 놈들 같으니. 안 그래도 시
간이 빠듯한데 뭣들 하는 거야?”
이제 와서 수습한다고 해결될 상황 이 아니었다.
카심의 부대가 도착할 때가 다 되 어간다.
커뮤니티의 병력이 도착하면 예배 당 쪽보단 대피 중인 말단사제들에 게 먼저 눈이 갈 거다.
그리되면 3급 사제들이 예배당으로 이동할수록 유인한다는 티가 뻔히 드러나게 된다.
말단사제들이 지시대로 따르지 않 은 탓에 유인책마저 무산되게 생겼 다.
유인을 위해 대기 중이던 3급 사 제들이 세르게이에게 달려와 계획변경을 권했다.
“이대로 가다간 유인책을 시도하기 도 전에 신전 안이 피바다가 될 겁 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르게이는 작전을 망친 말단사제 들을 노엽게 노려보며 분 섞인 목소 리를 내었다.
“명계의 기둥을 뒷마당에 설치해 라.”
“아예 말단사제들을 미끼로 쓰자는 뜻입니까?”
적의 시선이 피난 중인 말단사제들 에게 쏠린다면 차라리 그들을 미끼 삼아 명계의 진을 설치하는 게 나았 다.
세르게이는 말단사제들의 안위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신앙심도 없고 생산성도 없는 쓰레기들이다. 이렇게라도 교 단을 위해 희생하는 게 좋지 않겠느 냐?”
말단사제들이 나날이 식충이로 전 락하고 있다는 건 3급 사제들도 심 히 공감하는 바였다.
통제를 무시하고 신앙심마저 모자 란 자들을 애써 지킬 이유가 없었 다.
쓰레기에게 이용가치를 부여했으니 가히 성스러운 희생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3급 사제들은 은밀히 움직여 명계 의 기둥을 뒷마당 쪽으로 옮겨 설치했다.
명계의 진 설치가 끝나갈 무렵.
신전 정문이 부서져라 강하게 열렸 다.
콰앙!
열린 정문을 통해 아이스 에어리어 의 칼바람이 밀려들며 다수의 병력 이 들이닥쳤다.
침입자의 가슴팍에 C문양이 새겨 진 배지에서 그들이 커뮤니티의 병 력임을 알 수 있었다.
침입자들 중에서 범상치 않은 기세 를 내뿜는 자가 있었으니.
사자의 모습을 닮은 레벨 200짜리 소환수인 레온 위에 타고 있는 40 대 중년 사내.
신장 190센티미터가 넘어가는 거 구의 몸집과 갈기처럼 뻗어 있는 위 암적인 주홍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이 었다.
그가 바로 카심이었다.
그의 시선이 신전 뒷문에 꽂혔다.
엎치락뒤치락 요란스럽게 도주 길 에 오르고 있는 말단사제들이다. 눈길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카심은 손을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내렸다.
단순한 동작인데도 위압감이 고스 란히 쏟아져 나왔다.
“고깔을 쓴 놈들 중 서 있는 자가 없도록 해라.”
커뮤니티의 조직원들이 뒷문을 향
해 진격하면서 학살극이 시작되었 다.
도망에 급급하던 사제들에게 등 뒤 에서 날아드는 날붙이와 스킬 세례 를 막아 낼 재간은 없었다.
날붙이가 잔상을 남길 때마다 피와 살점이 튀었고,스킬이 발동할 때마 다 스킬의 효과에 걸맞은 갖가지 형 태로 목숨을 잃었다.
신전 뒷문을 경계로 지옥을 방불케 하는 참상이 벌어졌다.
먼저 도망치던 사제들은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다른 이들이 죽어 나가 는 광경을 목격했다. 더하여 자신에 게도 죽음의 물결이 다가오는 것에 기겁하였다.
“히익! 세르게이 님! 세르게이 님! 도와주십시오!”
“예배당으로 유인하는 거 아니었습 니까? 아씨! 세븐즈 교에 괜히 들어 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커뮤니티 지부에 남아 있을 걸!”
“도와줘! 도와 달라고! 사람 말 안 들려! 씨팔, 필요할 때 도와주지도 않는 신 따위 믿을까 보냐!”
신은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도망치며 신을 찾는 자 들 중 구원 받은 자는 없다. 아비규환 속에서 말단사제들이 사 정없이 죽어 나갔다.
카심과 그의 병력 일부가 뒷마당으
로 완전히 빠져나온 순간.
신전 뒷마당 담벼락 바깥에서 세르 게이가 우렁차게 신호를 보냈다.
“명계의 진 개시!”
더불어 사방팔방에서 차례차례 신 호에 응하는 대답이 울려 퍼졌다.
“개시!”
마침내 명계의 진이 발동하면서 신 전 뒷마당과 신전 뒷문 일부분이 3 만 포인트짜리 실드에 휩싸였다.
카심과 조직원들은 보이지 않는 벽 에 부딪치며 으르렁거리듯 이빨을 드러냈다.
“시시한 짓거리를 하는군. 유리벽 으로 뭘 어쩌자는 거냐?”
세르게이는 대답하지 않고 카심과
조직원들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심과 조직원들 의 스텟은 순식간에 감소하고 있었 다.
5초,6초,7초…… 18초,19초,20 초.
벌써 1인당 총스렛 2, 000은 빼앗 았다.
결계에 갇힌 조직원만 하더라도
30명에 달하니 순식간에 6만 포인 트는 뺏은 셈이다.
철 막대를 잡고 있는 자는 총 40 명.
한 사람당 1,500포인트씩 돌아갔 다.
적이 보구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할 수록 세븐즈 교 사제들의 스렛은 올 라간다.
세르게이는 최대한 정보를 주지 않 는 것이 곧 승리를 향한 지름길이라 여겼다.
'카심의 끝없는 스텟을 모두 흡수 하면 녀석들은 수령의 힘을 잃고, 우리 세븐즈 교엔 40명의 지역장급 전력이 추가되는 거야. 이 전쟁,시 작부터 우리가 승기를 잡았어!’
큰 공을 세웠다 생각하던 차에 실 드 안에서 카심이 움직이기 시작했 다.
카심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그랜드 건틀릿을 부여하며 강하게 휘둘렀다.
어이,3만 포인트짜리 실드라고.
부수려면 한참 걸릴걸?
그리 생각하던 찰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카심의 주먹 한 방에 스렛 3만짜 리 실드가 단박에 박살나는 게 아닌 가!
실드 스텟 3만이면 실질적으로 공 격력 9만의 데미지를 버려 낼 수 있다.
놈의 공격력이 9만을 넘는다고?
와장창!
카심은 주먹 한 방으로 실드를 부 수고 나오며 손가락의 뼈마디를 풀 었다.
뚜두둑! 뚜두둑!
“시시한 짓을 해 주었으니 답례를 해 줘야겠구나. 어떻게 죽고 싶으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