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화
강현은 브리니아 공국으로 떠난 김혜림이 돌아올 때까지 황궁에 머물렀다.
황궁에 머무르는 동안 한 일이라 곤 별거 없었다.
형식상 황궁의회에 얼굴을 비추 거나, 세이아나에게 적당히 술을 마시라고 주의를 주거나,루나의 방 앞에 ‘멋대로 단 것을 주지 마 시오’라고 경고장을 써 붙인 정도 였다.
결국 에르델은 아놀드를 베지 않 기고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황제의 죽음은 내전이 끝나면 적당히 각색을 하여 서거를 발표하 기로 했고,내전이 끝날 때까진 병 석에 누워 있다는 거짓을 유지하 기로 하였다.
황제의 처소에서 있었던 일 때문 에 서로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어 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강현이 황궁에 복귀하면서 전선 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오크군이 퇴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었다.
트라이어가 빌로스 제국 남부 지 방을 무단으로 점령하려 했기에 사형에 처해졌다.
트라이어의 죽음이 전방에 알려 지자마자 오크군은 분개했다.
허나 1만의 오크군을 몰살시킨 강현의 소문을 듣곤 차마 반기를 들진 못하고 오크 평원에 복귀하 는 쪽을 택했다.
오크군 덕에 우세를 유지하던 서 부전선에선 큰 타격을 입은 셈이 었다.
오크군이 빠지자마자 서부전선의 공작군이 우세를 띠기 시작했다. 서부전선이 빠르게 밀리기 시작 하면서 공작군이 급격하게 샹데르 로 다가왔다.
하지만 샹데르의 황궁에선 조급
해하지 않았다.
서부전선에서 공작군이 밀고 내 려올 때 즈음.
김혜림이 황궁에 복귀했다.
더불어 강현 일행은 에르델에게 작별을 고하며 서부전선으로 떠났 다.
*
사람 일이란 게 말이야.
안 풀릴 때는 정말 안 풀리더라 고.
내겐 귀여운 손녀가 있어.
근데 이 손녀가 요즘 좀 일이 안 풀려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그래서 내가 한 손 거들어 주려 고 이래저래 도와주고 있었지. 최근에 크레인 공국에 엄청난 실 력자가 나타났다더라고.
그 실력자가 우리 손녀를 도와주 면 한시름을 덜 수 있을 것 같아 서 내가 먼 길 떠나 주기로 했지. 솔직히 환갑 넘어서 먼 길 간다 는 게 쉽지가 않아.
일반 여행길이 아니라 조용히 이 동해야 하면 더더욱 고생이지.
젊을 때야 고생을 사서 한다지만 늙어서 고생길 자처하는 건 민폐 거든.
하지만 어쩌겠어.
민폐 소리 안 들으려면 꾹 참고 해 야지.
우리 귀여운 손녀 위해서라면 이 깟 고생도 못할까.
황천길 걸을 연골 미리 당겨쓴다 고 생각하고 힘내 봐야지.
근데 기껏 고생하면서 서해안까 지 도착했더니 이런 소문이 들리 더라.
'크레인 공국에 최강현이 나타났 다!’
정체불명의 마나마스터라더니 그 놈이었어?
에잉,고얀 놈.
복귀했으면 복귀했다고 언질이나 줄 것이지.
여태까지 뭘 하다 이제 온 건지 원.
근데 왜 크레인 공국에서 나타난 거지?
녀석의 행동패턴은 도무지 파악 이 안 되는구먼.
어쨌든 녀석이 있다니까 좀 더 고생하더라도 빨리 가서 데려오자 싶었지.
조금이라도 편한 선박을 포기하 고 무조건 빠른 배,불편하더라도 빠른 배를 준비해서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
어렵게 배를 준비하고,선원도 구
하고, 사정사정해서 식량도 배에 꽉꽉 실었지.
크레인 공국의 항구도시 쥬리안 에 있다니까 여기서 배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미리 쥬리안에 전서구 띄 워 놓고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또 이런 소식이 들리더라?
‘최강현이 샹데르에서 오크군 1만 을 쓸어버렸다! 트라이어가 벤젠 기사단한테 누명 씌운 게 밝혀졌 고,드래코프 황자는 국적 박탈을 당하고 최강현의 검에 쓰러졌다!’
아니,아무리 잘났다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뭐가 이렇게 빨라?
혼자서만 하루를 3배속으로 돌리 는 거냐?
쥬리안에 있던 녀석이 벌써 샹데 르에 도착한 것도 놀라운데,도착 하자마자 오크군이랑 드래코프를 처치했다고 하네.
에라이,혼자 다 해먹어라.
사람이 어지간히 능력이 좋아야 지 남들 다 뛰어다니는데 혼자 유 유히 날아다니는구먼.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어쩌긴 어째.
찾을 사람 벌써 돌아왔다는데 혼 자 쥬리안 가서 뭐하게.
그냥 배에 실은 거 다 내렸지. 황궁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서 부전선을 지휘하는 그란데 백작이 흥미로운 소식을 들고 오더군.
“임모벨 백작,적에게 심어 둔 밀 정에게서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 네.”
*
쥬리안 행 항해를 중단한 임모벨 백작은 그란데 백작이 이끄는 서 부전선 최전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임모벨 백작과 그란데 백작은 막 역한 사이로 50년 세월을 알고 지 낸 죽마고우였다.
강공의 임모벨과 인덕의 그란데 로 불리며 상데르를 지켰었는데 평화로운 시절에 묻혀 장수의 기 량을 뽐내지 못한 노장들이기도 했다.
그란데 백작은 항상 인자한 할아 버지처럼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 는데,그를 두고 임모벨 백작은 매 번 가면을 쓴 백작이라 놀려 대곤 했다.
강현이 샹데르에서 출발하여 서 부전선으로 온다기에 대기 중이었 건만,그란데 백작이 찾아와선 흥 미로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임모벨 백작, 적에게 심어 둔 밀 정에게서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네.”
“드리안 공작이 체해서 쓰러지기 라도 했다던? 최강현 그놈이 돌아 왔으니 체할 만도 하지.”
“이 사람이 농담 수준하고는. 그 게 아니라 드리안 공작이 예전부 터 최강현 대비책을 준비해 왔다 더군.”
전쟁 중에 밀정이 가져오는 정보 중에서 9할은 적이 일부러 던진 가짜 정보가 많았다.
그래서 밀정이 물어오는 정보를 일일이 믿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 강현 대비책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흘려들을 순 없었다.
적들도 강현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 정도는 지긋지긋하게 겪었을 터.
미리 대비책을 준비해 놓아도 이 상하지 않았다.
임모벨 백작은 거짓 정보로 여길 일이 아니라 여겨 진지하게 논의 에 임했다.
“믿을 만한 정보인가? 신빙성은 어느 정도나 되나?”
“거의 확신해도 좋을 정보일세.”
“정보의 출처를 묻는 거였네. 그 냥 신방성이 높다고 말하는 건 아 무나 말할 수 있어.”
“오랫동안 공을 들여 회유하던 인 물이 전해 준 정보라고 해 두지. 약속한 게 있어서 정보의 출처는 밝힐 수 없다네.”
크레인 공국에 리넬슨이 있다면 빌로스 제국엔 그란데가 있다.
그리 일컬어질 정도로 그란데 또 한 뛰어난 책략가라 할 수 있었다. 괜히 동발리 후작을 제치고 총사 령관으로 부임한 게 아니다.
마나마스터급인 카슈아딘을 상대 로 마나마스터 한 명 없이 지금껏 서부전선을 지켜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란데 백작이 오랫동안 공을 들 여 회유한 인물이라면 공작파의 핵심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임모벨 백작은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정보의 신빙성은 높다고 해 두 지. 근데 대비책이라고만 해 두면 애매모호한데 좀 더 자세한 정보 는 없나? 내 경험상 어지간한 방 법으론 최강현을 막을 순 없다고 장담할 수 있네. 머릿속에 뭐가 들 었는지 모르는 녀석이라서 말일 세.”
“나도 최강현에 대한 소문이라면 질리도록 들었지. 소문만 듣던 나 도 그가 대단하다는 걸 아는데 드 리안 공작은 오죽하겠나. 드리안 공작이 오래전부터 최강현을 경계 해서 여러 가지 보구를 모았다더 군.”
“모은 보구 중에서 대비책이라고
부를 법한 물건이 있다는 소리군.”
“그 말대로일세.”
그란데 백작이 말하는 ‘100퍼센 트 믿을 만한 정보원’이 전달해 준 정보에 따르면 드리안 공작에게 강현을 제압할 A급 보구가 있다고 한다.
보구의 이름은 ‘물귀신 부적’.
자신을 죽인 자를 즉사시켜 저승 길동무로 삼는 효과를 지키고 있 다.
이름 그대로 물귀신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보구다.
드리안 공작은 막대한 자금을 풀 어 물귀신 부적을 10장가량 손에 넣는데 성공하였고,언젠가 강현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여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드리안 공작에게 물귀신 부적이 있다는 것까지 말했을 무렵.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 했단 보고가 전해져 왔다.
“그란데 백작님! 지금 막 최강현 경이 도착했습니다!”
그란데 백작과 임모벨 백작은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나 막사 바깥으 로 나갔다.
전선의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그 치지 않고 내전 자체를 종결시킬 수 있는 자다.
어찌 그를 앉아서 맞이하리오.
막사 바깥에선 강현 일행이 2인
1조로 각각 니아와 그리폰에 타서 착지하는 중이었다.
강현은 착지와 동시에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반가운 얼굴이 있음을 확인했다.
“간만에 뵙는군요. 그간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허허허,요 녀석 안색 좋아진 것 보게. 잘 먹고 잘 지냈나 보구나.”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았지 요.”
“그 징글징글한 말솜씨도 오랜만 에 들으니 반갑군. 여러모로 할 말 이 많았다만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다. 더 이상 말해 봤자 늙은이 잔소리밖에 안 될 테니 아무 말않으마.”
“어쩌다 여기 계시게 됐습니까? 황녀님이 말씀하시길 절 찾으러 크레인 공국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만.”
“다 네 녀석이 하도 빨리 움직여 서 이리된 거 아니겠느냐. 기껏 출 발하려고 준비 다 해 놨더니 쥬리 안에서 번쩍,샹데르에서 번쩍. 네 녀석이 여기로 온다길래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적한 동안 신출귀몰 라이센스 를 따 둬서 말이죠.”
“에잉,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 지. 여자들은 또 왜 이리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거냐?”
강현과 에르델 사이에 벌어진 일 을 모르는 임모벨 백작으로선 강 현의 옆에 여자가 늘어나는 게 마 냥 유쾌하진 않았다.
김혜림이야 전부터 알던 사이이 니 둘째치고,은발 꼬맹이도 꼬맹 이니 제쳐 두고,은발의 성숙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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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너 세이아나 아니더냐?”
임모벨 백작도 세이아나를 알아 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카니발에서 활동했는 데 정작 가이아 대륙 쪽에 지인이 더 많았다.
임모벨 백작과는 사이가 좋았는 지 만나자마자 서로 부등켜안고 친근한 포옹을 나눴다.
“안녕하세요,백작님. 여전히 정 정하시네요.”
“정정하다마다. 네가 내 저택 마 당에 묻어 둔 매실주는 아직 그대 로 남겨 뒀단다.”
“와, 그게 지금까지도 있어요? 푹 익다 못해 화석 됐겠네.”
“그립구먼. 어린 너한테 술을 가 르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 야.”
세이아나를 주당으로 만든 범인 이 누군가 했는데 임모벨 백작이 었나 보다.
임모벨 백작과 세이아나가 오랜 만에 재회한 친구마냥 재잘거렸다.
한참을 떠들던 중 그란데 백작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 다.
“이제 그만들 하고 안으로 들어가 지. 먼 길 온 사람 오래 세워 두는 거 아닐세.”
“이거 참 나도 모르게 푼수짓을 해 버렸군. 안으로 들어가세. 마침 중요한 정보가 들어와서 논의하던 참이었네.”
임모벨 백작과 그란데 백작은 강 현 일행을 막사 안으로 들였다. 더하여 강현 일행에게 물귀신 부 적이란 보구에 대해 말해 줬다. 드리안 공작이 카슈아딘에게 다 량의 물귀신 부적을 전해 주었고,적군 중에서 누가 물귀신 부적을 붙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 다.
함부로 대량 살상 기술을 썼다간 물귀신 부적의 효과에 의해 같이 죽을 가능성이 높았고,그렇다고 강현이 안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 라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고 전했 다.
물귀신 부적에 대해 설명한 그란 데 백작은 곤란함을 표명하듯 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골치 아픈 전략으로 나온 셈일세. 물귀신 부적을 붙인 자를 색출하지 않는 이상 자네가 전선 에 서 있는 건 위험하네.”
강현이 투영을 쓰든,루나가 해일 을 쓰든 직접 나서기만 하면 적군 을 쉬이 물리칠 수 있다.
허나 그 속에 물귀신 부적을 사 용한 적이 섞여 있다는 게 문제다. 내전을 종결시키러 온 강현이 조 무래기와 함께 등귀어진하면 그보 다 우스꽝스러운 일도 없다.
강현 본인도 바라지 않는 바이고 말이다.
모든 사정을 이해한 강현이 생각 에 잠기며 턱을 매만졌다.
“굳이 이쪽에서 손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좀처럼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
는 그란데 백작에게 강현은 매우 쉽게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제거해선 안 되는 물건이 라면 적들 스스로 제거하게 만들 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