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오밤중에 황궁 제2별궁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빅터를 잡으려는데 최강현이 가로 막았다고? 놈이 돌아왔단 말이냐!”
“죄,죄송합니다. 빅터는 잡지 못했 습니다.”
“머저리 같은 놈들! 이 마당에 빅 터가 문제더냐! 최강현이 돌아왔단 말이다. 그 괴물 자식이 돌아왔어. 으으,이걸 어쩐다.”
드래코프는 침실을 뱅뱅 돌며 손톱 을 깨작깨작 깨물었다.
빨라도 너무 빨라. 예상했던 것보 다 한참 빠르잖아.
그 악마 자식이 돌아오다니.
어쩌지? 어떻게 하지? 무얼 해야 놈을 막을 수 있지?
안절부절못하는 드래코프를 두고 기사들은 말을 꺼내야 할까 말까 고 민했다.
드래코프야 평소부터 망가져 있었 지만 강현과 관련되면 더더욱 망가 져 버린다.
성질이 더럽더라도 주인은 주인.
망가져 있는 모습을 계속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보다 못한 기사 한 명이 총대를 메었다.
“황자님,외람된 말일 수도 있겠지 만 그리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쥐새끼 쳇바퀴 돌 듯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드래코프가 우뚝 멈춰 섰 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에르델 황녀가 빅터를 탈출시키자 마자 마치 보고 있기라도 한 듯 최 강현이 빅터를 구하러 나타났습니 다. 정황상 빅터에게 암살을 시킨 게 최강현이라고 몰아갈 수 있지 않 겠습니까?”
“그걸로 충분할까?”
“충분하다마다요.”
“상대가 최강현인데?”
“빅터가 황자님을 살해하려 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바람은 우릴 향해 불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꿀릴 이유가 하나도 없 었다.
현재 빅터는 역모죄 죄인이다.
빅터를 구해 준 강현도 같은 죄인 으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에르델까지 관련되어 있 지 않은가.
에르델에게 역모죄를 적용하긴 힘 들겠지만,황실의 기강을 흐리고 친 족을 살해하려 한 희대의 악녀로 몰 아 유배를 보낼 수는 있다.
드래코프는 안정을 되찾으며 탐욕 에 찬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네 말이 맞아. 당황할 이
유가 전혀 없었어.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 놈이 무슨 술책을 부리든 현 재 상황을 뒤집긴 힘들 테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 상황 을 톡톡히 이용하여 황제의 위에 오 르십 시오.”
“크하하,에르델과 최강현 둘 다 없으면 날 막을 자는 없도다! 황제 의 자리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 했구나! 크하하하!”
제2별궁이 떠나가라 웃고 있는데 한 병사가 방문을 벌컥 열며 뛰어 들어왔다.
일개 병사가 황자의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무례한 행동이다.
드래코프는 예의도 모르는 병사 때 문에 산통이 깨져 벌컥 화를 내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병사의 보고를 듣 는 순간,무례고 분노고 그딴 건 아 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만큼 병사의 보고는 충격적이었 다.
“황자님! 최강현이 샹데르 북쪽에 진을 친 오크 진영에 단신으로 공격 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지랄 맞은 소리냐! 최 강현이 오크를 왜 쳐!”
“모르겠습니다! 오크 전사 사망자 숫자가 2천을 넘긴 마당입니다! 에르델 황녀님 지시로 긴급회의가 열 릴 예정이니 바로 준비하시랍니다!”
드래코프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친 건가!
황궁에 복귀하려고 돌아온 게 아녔 어?
아군인 오크를 공격하면 본인 입장 만 난처할 거 아니냐!
근데 왜 공격하고 있냐고!
설마 공작파에 넘어갔나?
아냐,그것만은 아닐 거야.
엘딘과 사이런스를 죽였다며.
미쳤다고 공작파에서 최강현과 손 을 잡겠냐고.
젠장,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가 있어야지.
드래코프는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 기 시작했다.
그거 알고 있나?
드래코프의 침실은 제2별궁 꼭대기 층에 있어서 외벽 너머로 샹데르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약간 시선을 멀리 두면 샹데르 성 벽 바깥의 풍경도 보인다.
궁녀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던 드 래코프는 문득 샹데르 성벽 바깥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곤 샹데르 북쪽 평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 고 있음을 목격하곤 괴성을 내질렀 다.
“우악! 여긴 내륙이잖아! 어째서
해일이 발생한 거냐!”
상데르 북쪽 평야에선 거대한 해일 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해일이 덮친 지역에는 오크 진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오크는 몸이 무겁고 물 에 익숙하지 않아서 맥주병이 많다. 오크 진영에 해일이 닥쳤다는 건 오크 전사의 대부분이 익사를 예약 했다는 게 된다.
멀리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에 드래코프의 안색이 바닷물처럼 새파 랗게 질렸다.
*
황궁 대회의장에 촛불이 커졌다.
황궁의원들이 속속들이 황궁에 도 착하며 대회의장의 빈자리를 채웠 다.
이윽고 드래코프와 에르델까지 대 회의장에 도착하면서 긴급회의가 시 작되 었다.
에르델은 방금 막 도착한 따끈따끈 한 소식을 전달했다.
“강현 경이 오크 진영을 습격했다 네요.”
누군가 운을 띄우길 기다렸다는 듯 드래코프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노발 대발했다.
“기껏 돌아왔나 싶더니 이 무슨 해 괴망측한 짓입니까!”
“절대로 그냥 넘어가선 안 됩니다! 오크는 황제파 소속이잖습니까! 황 제파의 병력을 공격했으니 적으로 간주해야 됩니다!”
“죄를 물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 사형입니다,사형!”
에르델과 그녀의 지지파가 말을 붙 일 틈도 없이 사형을 외쳐 대고 있 었다.
솔직히 에르델도 현 상황이 이해가 안 가긴 했다.
크레인 공국에서 엘딘과 사이런스 를 처치했다고 알려진 지 며칠도 되 지 않은 참이다.
이동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내니까 특이
한 이동수단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 하지 않긴 하다.
한데 그와는 별개로 오크 진영을 공격한 이유가 뭘까?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아냐. 오크 진영을 공격해서 얻을 게 있으니까 공격했겠지. 이번 일로 오크군은 내전에서 발을 뱉 거야. 그걸 노리는 건가? 오크군이 빠지면 드래코프 오라버니는 영향력을 잃 어. 아니,드래코프 오라버니의 지지 기반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면 득보 다 실이 많아. 애당초 오크군을 공 격하면 역모죄가 성립되어 버리잖 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손해는
보지 않는 사람이다.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공격을 한 것이리라.
여기서 멍 때리고 있으면 강현을 지원할 수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중요한 분기 점이야. 실수해선 안 돼.
재잘거리는 드래코프 지지파를 어 떻게 입 다물게 할까 고민하던 와중 에 바깥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최,최강현이 황궁에 들어왔습니 다!”
사형을 외쳐 대던 황궁의원들이 어 깨를 들썩이며 목청껏 고함을 질렀 다.
“정문을 걸어 잠가라! 어디 대역죄 인이 황궁에 들어오려 하느냐! 황궁 기사와 마법사를 외벽 위에 배치시 켜 놈을 사실해라!”
“제대로 들으신 겁니까? 이미 황궁 에 들어왔단 말입니다!”
“뭣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황궁에 소리 소문도 없이 들어왔다고?
이미 그 괴물 자식이 황궁에 들어 와 버렸단 말이야?
대체 이를 어쩐단 말이냐!
드래코프를 비롯한 그의 지지자들 은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렸다. 재잘대던 소리와 교차하듯 대회의 장 문밖에서 세찬 바람 소리가 들려 왔다.
퍼덕! 퍼덕! 퍼덕!
바람 소리가 가까워지나 싶더니 문 밖에 웬 몬스터 한 마리가 착지했 다.
섬세한 조각마냥 아름다움을 자랑 하는 검은 비늘의 드래곤 몬스터였 다.
드래곤의 등 위에는 드래코프와 그 의 지지자들이 절대로 마주하고 싶 지 않았던 자가 올라타 있었다.
“최,최강현! 여,여,여,여기가 어 디라고 생각하느냐! 무례한 것!”
강현은 니아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 다. 그러곤 니아에게 고갯짓을 했다.
“회의장 안으로 던져.”
“뀨우.”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확인을 못했 는데 이제 보니 니아가 입으로 누군 가를 물고 있었다.
니아가 고개를 획 흔들다가 입을 벌렸다.
그 탓에 입에 물려 있던 누군가가 대회의장 안으로 날아들며 바닥을 굴렀다.
쿵! 쿵! 데구르르.
드래코프는 하마터면 고음의 비명 을 지를 뻔했다.
굴러들어 온 것이 다름 아닌 트라 이어였던 것이다.
트라이어의 몸은 물방울무늬 커튼 마냥 푸른 멍이 파다했다.
검으로 베지 않고 검집으로 두드려 팬 건가.
말린 북어도 이리 차지게 얻어맞진 않을 거다.
강현은 세이아나,루나와 함께 대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며 에르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황녀님. 요란하게 인사드리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리 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요. 전보다 몸이 불어난 것 같은데 제 착각일까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지 요.”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이 사달을 벌인 이유에 대해 들어 볼까요?”
황궁이 발칵 뒤집어질 사태가 발생 했건만 이 무슨 여유란 말인가. 강현과 에르델 사이에만 다른 공기 가 흐르는 듯했다.
드래코프는 알레르기라도 발생한 듯 경기를 일으키며 고함을 질렀다.
“이유고 뭐고 아군을 공격했잖느 냐! 적이 황궁에 들어왔거늘 기사들 과 마법사들은 뭣들 하고 있느냐!”
다급한 드래코프와 달리 강현은 차 분하기만 했다.
“황자님께도 인사드리도록 하지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닥쳐라! 이 뻔뻔한 것!”
“왜 그리 홀대하시는지 알 수가 없 군요.”
“방금 말했지 않느냐! 아군을 공격 해 놓고 어찌 그리 당당한 것이냐! 그리고 빅터 건은 어떻게 설명할 것 이냐? 빅터가 탈옥했고 네놈이 구해 줬다고 들었다! 황족을 살해하려고 한 대역죄인을 구해 준 걸 보니 역 시 네놈이 뒤에서 암살 지시를 내린 것이구나!”
“그런 일이 있었다지요.”
“크옥,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에 르델! 이렇듯 놈의 죄가 명명백백한 데 발뺌할 셈이냐! 여봐라! 놈을 잡 아라! 놈을 잡으라고!”
기세 좋게 외쳐 보지만 현실은 생 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강현을 체포하려면 바깥에 있는 황
궁 기사와 마법사들이 들어와야 하 는데 입구는 니아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해출링이라지만 명색이 드래곤이 입구 앞에 자리 잡고 있는데 누가 함부로 자극하고 싶겠나.
니아가 없었다 한들 체포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마나마스터인데다 방금 막 오크들 을 상대로 무쌍을 찍고 온 괴물을 체포하라니.
한창 끓기 시작한 기름에 몸을 던 지라는 명령과 다를 게 뭐가 있나. 체포는 고사하고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마당이었다.
강현은 드래코프의 발악을 찬찬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드래코프 황자님. 빅터가 무엇 때 문에 황자님을 습격한 것 같습니 까?”
“역모죄에 정당성 같은 건 없다! 이유 따윌 거론할 가치도 없는 일인 것을!”
“법률상으로는 그렇겠지만 모든 건 사정을 뜯어 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일이지요.”
차분히 한 마디 을은 강현은 굳어 있는 황궁의원들을 지나치며 트라이 어에게 접근했다. 그러곤 트라이어 의 등을 발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퍼억!
피떡이 되어 반 시체가 되어 있던
트라이어가 거친 신음을 토해 냈다.
“으억! 컥컥!”
갈비뼈라도 분질러졌는지 숨을 제 대로 쉬지 못하는 트라이어였다. 강현은 용서 없이 그의 등을 자근 자근 밟으며 명령조로 말했다.
“네가 꾸민 짓을 하나하나 내뱉도 록. 벤젠 기사단 사건부터 이번에 부른 오크군의 진의까지 전부.”
벤젠 기사단 사건이라면 트라이어 가 꾸미고,드래코프가 시행한 작전 아니던가.
트라이어의 입이 달싹이는 것을 본 드래코프가 절규하듯 고함을 질렀 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