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11화 (311/381)

311화

철썩!

샹데르 수도 방벽 너머에 위치한 중범죄자 감옥.

감옥의 고문실에선 간수가 살벌하 게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철썩!

간수는 본인이 채찍질을 하면서도 혀를 내둘렀다.

고문 중에서도 채찍질은 최상위권 에 속한다.

오죽하면 채찍질을 10번도 채 넘 기지 못하고 쇼크사 하는 경우가 허 다하다.

육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고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이번에 들어온 죄수는 채찍질 속에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있다.

10년의 경력 내내 자백과 거짓자 백을 통틀어 모든 죄수들로부터 자 백을 받아 낸 간수다.

간수는 이번 죄수 때문에 인내심뿐 만 아니라 자신의 경력마저도 부정 당하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악을 쓰며 고문에 박 차를 가했다.

철썩!

“사실대로 말해라! 드래코프 황자 님 암살을 시킨 게 최강현이지?”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 고!”

철썩!

“큭,독한 놈. 끝까지 시치미를 뗄 셈이냐? 쳇,이해가 안 되는군. 나 라 버리고 도망간 비겁자를 왜 감싸 는지 모르겠군.”

“단장님…… 은…… 비겁자가…… 아니다.”

빅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명백히 강현을 모욕하는 발언에 반 응한 것이었다.

채찍질에 물고문,인두로 지져도 입을 열긴커녕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던 사내가 드디어 반응했다.

간수는 최강현에 대한 화제가 빅터 의 아킬레스건임을 눈치챘다.

“비겁자가 아니라면 전쟁을 앞두고 왜 도망갔을까? 그건 놈이 겁쟁이이 기 때문이야. 듣자 하니 크레인 공 국에서 다시 나타났다는데 공적 세 우기 쉬울 것 같으니까 거기로 기어 나온 거 아니냐?”

빅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물을 마시지 못해 허옇게 갈라져 있던 입술이 찢어지면서 피가 왈칵 배어 나왔다.

참다못 폭발한 빅터가 손발을 구속 하고 있는 쇠사슬을 당기며 분을 토 해 냈다.

“닥쳐! 네놈이 함부로 모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단장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 지 마!”

“오호라,대단한 충성심이구만. 그 잘난 최강현이 널 구하러 오는 걸 기대하나 보지?”

간수들이 흔히 사용하는 유도심문 이었다.

빅터가 악에 받쳐 강현이 올 거라 고 얘기하면 배후에 강현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강현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울 구실 만 있으면 된다.

조그마한 구실만 있으면 적당히 해

석을 덮어씌워 기정사실로 밀어붙이 면 될 일이다.

빅터는 찐득한 핏물을 내뱉으며 피 거품이 맺힌 입술을 달싹였다.

“유도하려 해도 소용없다. 그분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까.”

“쳇,끝까지 고집을 부리는군. 오 냐,어디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 보 자.”

철썩! 철썩! 철썩!

간수가 숨을 씩씩 몰아쉬며 마구잡 이로 채찍질을 가했다.

진짜 채찍질은 피부를 때리는 게 아니라 피부를 뜯어낸다.

채찍질이 가해지는 부위마다 살점 이 뜯겨 나오며 시뻘건 혈선이 생겨났다.

뜯겨 나간 자리 위에 또 채찍질이 가해지면 정말…… 끔찍한 몰골이 되어 버린다.

마구잡이식 채찍질이 계속되던 차 에 고문실 문이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서 들어온 자는 다 름 아닌 드래코프였다.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황자님,오셨습니까? 악독한 놈입 니다. 끝까지 배후를 밝히지 않으려 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빅터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드래 코프를 노려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증오와 분노가 담겨 있다는 게 선명하게 전해졌다.

드래코프는 빅터에게 접근하여 장 갑을 낀 손으로 빅터의 상처 부위를 꾸욱 눌렀다.

ㅈ? 그즌I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신음 한 번 내질 않는다.

이 꼴인데도 오기를 부리는군.

이놈에게서 증언을 받아 내야 공식 적으로 최강현에게 역모죄를 적용할 수 있어.

시간 끌어서 좋을 건 없지.

“고문 강도가 약했던 건 아니냐?”

“채찍질과 물고문,인두까지 지졌 습니다. 웬만한 작자들은 벌써 열번은 입을 열고도 남았을 겁니다.”

“충분히 고문을 한 것치곤 꼴이 멀 찡하군.”

“멀쩡하다고 보기엔 좀……

“쇠사슬을 당길 힘이 있을 정도라 면 멀쩡한 편이라 할 수 있겠지.”

드래코프가 손날을 세워 빅터의 팔 과 다리를 번갈아 톡톡 두드렸다. 해당 부위를 자르라는 제스처였다. 지목한 곳은 힘줄을 끊을 수 있는 부위였다.

힘줄 같은 부위는 한 번 잘리면 포션으로 재생되지 않는다.

힘줄을 자르라는 건 검사로서의 생 명을 완전히 끊어 버리라는 것과 같 다.

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녹이 슨 쇠톱을 들고 와서 빅터의 팔에 붙였 다.

“팔을 완전히 절단해 버릴까요?”

“그랬다간 죽을 테니 힘줄만 절단 하도록.”

스걱스걱스격!

녹슨 쇠톱으로 사람의 근육을 자른 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에 잘리지 않으니 몇 번이나 톱날이 살 속에서 무차별 횡단을 일 삼았다.

그렇게 빅터의 오른팔은 영영 검을 렬 수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빅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고 참다가 결국엔 열은 신음을 흘렸다.

“크으으으 ”

“빅터,주절주절 지껄이라는 소리 는 하지 않지. 한마디만 해라. 모든 건 최강현이 시킨 일이라고. 황궁 성벽에 올라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목숨을 살려 주마.”

“엿이나…… 드시지.”

“어리석긴. 너희를 버린 최강현을 그리 두둔하는 이유가 뭐냐? 놈을 버려라. 놈을 배신하면 목숨만은 건 질 수 있다.”

갈등을 하듯 한참 동안 말이 없는 빅 터였다.

사지불구가 되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할 수도 있었다.

강현을 버릴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바라던 대답을 내놓지 않을 까 싶었다.

빅터는 힘이 남아 있는 왼손을 움 직여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헛소리를 들어 주는 것도 지겹군. 나머지 힘줄은 언제 자를 거지?”

빠직!

빅터의 도발 어린 한마디에 드래코 프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

결국 양쪽 팔다리의 힘줄이 모두 잘렸다.

어떻게 해서든 강현이 시킨 일이라 고 말하게 하고 싶은 건지 목숨만은 살려 주었다.

심지어 다시 고문하겠답시고 포션 을 부어 주기까지 했다.

재갈을 물려 놓아 마음대로 자결도 못하는 처지였다.

치욕스럽다.

억울하게 죽어 간 단원들의 복수를 하려고 칼을 갈아 왔건만.

결국엔 복수를 하지 못하고 적에게 도구 취급을 당하고 있다.

강현을 팔아넘기라고?

가능할 리가 없지.

무슨 낯으로 강현을 팔아넘긴단 말 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매몰차게 강현을 쏘아붙였는데 이제 와서 팔아넘길 순 없다.

빅터는 차디찬 감옥 바닥에 몸을 뉘여선 하염없이 곰팡이 핀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벅저벅.

바닥을 통해 발소리가 전해져 와선 귓가에서 응응 맴돌았다.

1시간 뒤에 다시 고문을 시작한다 고 했었지.

벌써 1시간이 지났나?

몇 초 지나지 않아 발소리의 주인 이 철창 앞에 섰다.

고문을 하러 온 간수일 줄 알았는 데 의외의 인물이 찾아왔다.

에르델이 었다.

“읍음? 읍?”

에르델은 주위를 살피다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러곤 철창 안에 들 어와선 재빨리 빅터의 재갈을 풀어 주었다.

“화,황녀님?”

“쉿,조용히 하세요. 저도 몰래 들 어온 거예요.”

“저……

“무리해서 인사할 거 없어요. 급하 니까 용건부터 말할게요. 드래코프 오라버니가 꼭두각시 스킬을 가진 자를 수배하기 시작했어요. 빅터 경 을 조종해서 강제로 강현 경이 시켰 다고 말하게 하려는 속셈인 것 같아요.”

고문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드래 코프가 스킬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 는 자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확실히 빅터를 협박하는 것보다 훨 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에르델로선 도와주고 싶어도 표면 상으로는 손을 쓸 수 없었다.

빅터가 백주대낮에 대놓고 암살시 도를 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니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몰래 찾아온 것이었다.

빅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습니다. 죽으

면 조종하지도 못하겠지요.”

“허락하지 않겠어요. 반드시 살아

남으세요. 이건 명령이에요.”

“이러시면 황녀님까지 곤란해집니

다. 그것만큼은 할 수 없습니다.”

“제게 두 번이나 명령을 하게 할

생각이신가요? 바깥에 마수레를 준 비해 뒀으니까 짚더미에 몸을 숨기 고 샹데르를 빠져나가세요. 전방의 네베르 백작에겐 미리 언질을 넣어 뒀어요. 전선에 도착하면 부상자로 처리해서 브리니아 공국으로 송환해 줄 거예요.”

“황녀님.”

“빅터 경,벤젠 기사단은 제게도 의미가 컸어요. 단원들이 죽을 때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황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빅터 경을 살릴 수 있는데 도 살리지 못한다면 제 잘못이겠죠. 살아남으세요. 강현 경도 빅터 경의 죽음을 원치 않을 거예요.”

벤젠 기사단…… 정확히는 강현이 이끄는 벤젠 기사단 덕에 나락공주 신세를 면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에 르델이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벤젠 기사단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누명을 썼다는 걸 알면서도 죽게 놔둘 순 없었다.

빅터는 명령을 빙자한 에르델의 진 심 어린 부탁에 고집을 꺾었다.

“외람되지만 마수레까지만 부축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소식 듣고 운반할 수단 을 준비해 왔어요.”

에르델이 열려 있는 창문으로 손짓 을 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궁녀가 식사 운 반용 손수레를 끌고 철창 안으로 들 어왔다.

손수레 위에 천을 덮어 두었고,천 아래에 공간이 있어 사람 하나 운반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급하게 움직인 것치곤 철저하게 준 비해 온 것 같다.

빅터는 궁녀와 에르델의 부축을 받 아 손수레에 숨겨진 빈 공간으로 몸을 우겨넣었다.

*

샹데르에서 탈출하는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쟁에 쓰이는 말들에게 먹일 여물 을 운반한다는 명목을 대니 금방 샹 데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빅터는 짚더미 아래에 숨어선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힘줄이 끊긴 손과 발은 굳 어 버린 양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기사 생활도 끝났군. 구차하게 부 지한 목숨으로 할 일이 있을는 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니 막막 할 따름이었다.

아마 재활을 해도 일상생활을 겨우 소화할 수준까지밖에 회복되지 않을 거다.

답답한 나머지 짚 속에서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TZ 1= 1= I

ㄱ~I~I~「!

한숨 소리는 금방 말발굽 소리에 묻혔다.

처음에는 짚더미를 실은 마수레의 말발굽 소리겠거니 했는데,시간이 흐를수록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 다.

말 한 마리가 달리는 것치곤 발굽 소리가 너무 부산스럽게 들린다.

뿐만 아니라 부산스러운 소리가 점 차 가까워지고 있다.

빅터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짚더미 를 살짝 들췄다.

후방 저 멀리서 말에 탄 기사들이 일직선으로 마수레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추격대? 벌써 들킬 리가 없는데?’

다른 곳으로 출동하는 중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벌써부터 무기 를 뽑아 들고 있었다.

샹데르에서 탈출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벌써 추격을?

설마 누군가가 중간에 밀고를 한 건가?

그 순간 빅터의 뇌리 속에 불현듯

고문당할 때의 광경이 스쳐 지나갔 다.

고문당할 때,드래코프가 빅터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었다!

‘상처를 자극하는 척하면서 뭔가를 심었던 건가!’

상처를 들쑤시는 척하며 위치를 파 악할 수 있는 보구를 심어 둔 것 같다.

힘줄까지 잘라 놓고 탈옥을 예상해 서 추적 보구까지 심어 뒀다고?

빅터 스스로는 탈옥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황궁에서 빅터를 탈옥시킬 만한 인 물은 에르델밖에 없다.

‘처음부터 에르델 황녀님을 노리고 날 생포했던 거였어!’

강현이 암살을 시켰다고 거짓 자백 을 종용한 것 자체가 연막작전이었 다.

이대로 빅터가 잡히면 에르델이 탈 옥시켰다는 게 들통 난다.

공공연하게 황족 암살시도를 한 자 를 탈옥시켰으니 에르델이라도 무사 히 넘어가긴 힘들 터.

최소 유배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 른다.

그리되면 황궁에 드래코프만 남게 되는데 누가 강현의 복귀를 허락하 겠는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작전이다.

돌대가리 드래코프의 머리에서 나 올 수 있는 작전이 아니다.

트라이어가 계책을 내준 게 틀림없 다.

‘쳐야 할 건 드래코프가 아니라 트 라이어였어. 망할,이걸 이제야 깨닫 다니.’

드래코프의 기사들은 벌써 지척까 지 다가와 있었다.

“이랴! 속도를 높여라! 다운타운 수정은 저 수레 안을 지목하고 있 다!”

자결이란 수단도 이미 늦었다.

드래코프 측에서 벌써 탈옥시킨 흔 적을 잡아 두었을 테니까.

기사들이 추격해 오는 건 이용가치

가 없어진 빅터를 마저 정리하려고 오는 것에 불과했다.

숨 막히는 추격전 속에서 마나오오 라를 가미한 화살이 날아와선 수레 바퀴를 아작냈다.

과직! 와장창!

수레바퀴가 부서진 쪽으로 수레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짚이 사방으 로 풀풀 날리며 빅터가 수레에서 튕 겨 나왔다.

만신창이가 된 빅터의 몸이 바닥을 사정없이 굴렀다.

“커헉!”

간신히 아물었던 입술이 갈라지며 피가 터졌다.

기사들은 덫에 걸린 토끼를 회수하 러 온 것마냥 실실 웃으며 다가왔 다.

“잠깐이나마 탈옥에 성공한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 좋았겠군. 함정인 것 도 모르고.”

“드래코프 황자님이 이리 말하시더 군. 충실히 미끼 역할을 해 줬으니 고통 없이 보내 주라고 말이지.”

이대로 놈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기 만 하다가 끝나는 건가.

빅터는 모든 걸 체념하며 고개를 떨꿨다.

기사들의 검이 위로 올라가며 빅터 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그런데 별안간 기사들과 빅터 사이

에 육중한 생물체가 착지했다.

투응!

착지의 여파로 인해 먼지구름이 뭉 게뭉게 피어올랐다.

짙은 먼지구름 사이에 용을 닮은 생물체와 사람의 실루엣이 아른거렸 다.

용에 올라타 있던 사람이 먼지구름 사이에서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정은 조금 있다가 듣도록 하지. 물러나 있어라,빅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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