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행사를 기회 삼아 요인을 암살하는 수법은 과거부터 수차례나 존재했 다.
드래코프도 디벨롭을 통해 몇 번이 나 에르델을 암살하려고 해 봤기에 행사의 위험성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편이었다.
본인이 암살시도를 해 본 만큼 본 인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 는 건 당연한 이치다.
때문에 항상 드래코프는 SS급 방 어 보구를 지니고 다녔다.
화살이 기세 좋게 날아와 드래코프 의 가슴팍에 적중한 순간.
드래코프가 지닌 '기만자의 기회’ 란 브로치 형태 보구가 발동했다.
기만자의 기회는 몸에 날아든 공격 을 1회에 한하여 공격무효화 능력으 로 막아 내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 다.
그야말로 상대를 기만하여 공격을 허용한 자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를 가진 보구였다.
보구가 지닌 공격무효화 능력 덕에 목숨을 부지한 드래코프였다.
“웬 놈이냐! 벌건 대낮에 황족 암 살을 시도하다니 하늘 무서운 줄 모 르는 놈이구나!”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죽을 뻔했다 는 생각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다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겁쟁 이처럼 떨며 체면 구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래코프는 제자리에서 강하게 발 을 구르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힘이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줌과 동시에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는 것 이었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공작파의 암살자를 찾아내라! 놈을 베어 깃대 에 매달아 공작파 놈들에게 본보기 로 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암살할 만 한 세력은 공작파밖에 없었다. 오래전,디벨롭이 직접 드리안 공 작가로 찾아가 드리안 공작과 거래를 했었다.
거래 내용은 크레인 공국의 참전을 막아 주는 대신 공작파가 내전에 승 리하면 드래코프를 꼭두각시 황제로 라도 올려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디벨롭이 죽으면서 거래는 무산됐고,공작파와 드래코프의 관 계는 완전히 쫑났다.
지금에 이르러선 오크와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드래코프가 무진장 성 가실 터.
때문에 공작파에서 암살자를 파견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드래코프의 호위기사들이 허겁지겁 화살이 날아든 방향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저쪽 골목에서 나왔다!”
“2차 저격이 있을 수도 있다! 절반 은 황자님을 지키고 절반은 골목 안 으로 추격해라!”
허나 호위기사들이 범인을 찾을 것 도 없었다. 범인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기에.
화살이 쏘아져 나온 골목에서 로브 를 뒤집어쓴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의 손에는 기다란 장검 한 자 루가 들려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건 장검에 선명한 마나 블레이드가 둘러져 있다는 점 이었다.
마나 블레이드의 존재를 확인한 호 위기사들은 뛰쳐나가려다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씩 물러났다.
“마,마나마스터!”
“추격 금지! 추격 금지! 상대는 마 나마스터다! 진형을 갖춰라!”
“잠깐! 저거 빅터 아냐? 빅터 맞는 것 같은데?”
벤젠 기사단 단원들이 암살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유일하게 잡지 못했 던 자가 빅터였다.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하다 싶었는 데 샹데르 한복판에서 나타날 줄이 야.
더군다나 만인이 보는 앞에서 드래 코프를 암살하려고 했고,지금도 암 살시도는 진행 중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현행범이었다.
체포를 해야 하는데 빅터의 검에 맺힌 마나 블레이드가 거슬렸다. 마나유저 상급이었던 놈이 언제 마 나마스터가 됐지?
근 몇 년간 웨이브 발생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서 이세계인들의 레벨 은 거의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원래라면 카니발에서 웨이브 보석 을 패스해야만 하위차원에 웨이브 보석이 생기는데,근래 들어 죄다 봉인석으로 만들었으니 안 생기는 게 당연했다.
반면 빅터는 카니발에서 던전 테이 스를 하며 레벨을 상승시켰으니 금 세 마나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호위기사들로선 빅터가 마나마스터 가 된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치졸한 놈! 질리지도 않고 또 불 경한 짓을!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 구나!”
호위기사들 중 누군가의 외침에 빅 터가 로브 후드 아래로 눈매를 드러 냈다.
그의 인상은 한눈에 봐도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복수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차갑기 짝이 없었다.
빅터는 호위기사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양 드래코프만을 노려보았 다.
“드래코프!”
억눌러 왔던 분노가 일갈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빅터가 드래코프를 향해 내달렸다.
호위기사들이 그를 막기 위해 겹겹 이 진형을 갖췄다.
드래코프는 빅터의 살기 어린 눈빛 을 받곤 소름이 끼친 나머지 고래고 래 고함을 질렀다.
“막아라! 놈의 목을 치란 말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황족의 목을 노린 자이니 인정사정 봐줄 거 없다! 당장 목을 쳐라!”
발악하듯 외쳐 보았으나 호위기사 의 대부분이 마나유저 초,중급이었 다.
물로 희석한 염료마냥 열은 마나를 띤 무기로 마나 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빅터는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처럼 마음껏 날뛰며 검에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냈다.
서격! 서격! 쩌어억!
성난 검이 호위기사들의 검과 갑옷 을 가르며 그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피가 몸을 덮고,쉴 새 없이 무기 가 날아드는 데도 빅터는 결코 물러 나지 않았다.
오로지 일직선으로 내달리며 드래 코프를 향해 나아갈 뿐.
수적인 차이 때문에 호위기사들의 공격이 이따금씩 빅터에게 날아들어 그의 실드를 두드렸다.
사람인 이상 공격을 당하면 조금은 주춤할 법도 한데 빅터의 움직임에 일시정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으아아아! 드래코프!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처절하게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드래코프를 향한 포효는 그치지 않 았다.
복수에 굶주린 자는 야수가 된다는 걸 반증하는 광경이었다.
드래코프는 수비벽이 한 겹씩 벗겨 지는 걸 보곤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 했다.
“놈은 혼자인데 어째서 막질 못하 느냐! 막아라! 놈이 못 오게 막으란 말이다!”
“황자님! 상대가 마나마스터임을 아셔야 합니다! 혹시 모르니 미리 대피하십시오!”
“스킬을 써서 막아라! 이세계 출신 들은 놀고 있느냐? 스킬을 쓰면 될 거 아니더냐!”
“쓰고 있는데 먹히질 않습니다!”
빅터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욕을 먹 어 가면서도 던전 레이스를 한 건 레벨을 올리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조금씩 CP를 모아다가 방어형 보 구를 사는데 전 재산을 쏟아 부었 다.
가이아 대륙에서의 화력은 마나마 스터급이면 차고도 넘친다.
스킬 봉인,보구 능력 봉인,마나 동결만 당하지 않으면 드래코프를 죽일 수 있다.
그 일념 하나만으로 보구를 모아 복귀했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
면 된다.
빅터는 황급히 황궁으로의 도주길 에 오른 드래코프를 쫓기 위해 악바 리를 썼다.
“도망치게 놔둘까 보냐!”
여기까지 와서 실패할 순 없다.
웨인포드, 음디티, 홀먼, 루스 틴…… 모두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드래코프 저놈을 죽여서 단원들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단 말이다!
드래코프를 쫓으려 하다 보니 무리 한 움직임을 취해야만 했다.
한 걸음을 좁히기 위해선 한 번의 검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선 나아가는 것조차 불 가능했다.
죽어도 좋다.
이 따위 목숨 얼마든지 주마.
대신 드래코프 네놈의 목만큼은 취 하겠다.
반드시!
티잉! 티잉! 티잉! 즈북!
어느새 실드로 공격을 튕겨 내는 소리가 사라졌다.
더불어 빅터의 몸에 검흔이 생겨나 며 피가 튀어 올랐다.
빅터의 몸에 검을 박아 넣은 호위 기사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간신 히 미소를 그렸다.
“박혔어! 어떠냐,이 자식아! 이 이상은 멋대로 날뛰지 못할……
검이 몸을 관통했으니 더 이상 움 직이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호위기사의 생각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빅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억지 로 비틀어 호위기사의 목을 베어 냈 다.
뎅겅!
검이 몸에 박히고도 우격다짐으로 학살을 벌이는 빅터의 광기는 가히 압도적 이었다.
도저히 뒤를 보고 싸우는 자의 방 식이 아니다.
이 자식…… 살고 싶지 않은 건 가?
미쳤어. 완전히 미쳐 있다고!
이 녀석! 드래코프 황자님을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을 작정이야!
빅터의 야성적인 면모에 호위기사 들은 완전히 기가 눌려 움츠려들었 다.
빅터는 기사들이 움츠려들면서 생 겨난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번에 기사들을 밀치며 도망가고 있는 드래코프를 추격했다.
드래코프는 기겁하며 허겁지겁 말 에 을라탔다.
“이랴! 달려라 어서! 막 되먹은 살 인자 놈이 온단 말이다!”
“히 이엉!”
갑자기 복부를 걷어차인 탓에 말이 놀라 앞발을 높이 들었다.
출발이 지연된 틈을 타서 빅터가 말의 목을 내리쳤다.
머리가 떨어진 말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위에 올라타 있던 드래코프도 덩달 아 낙마하여 바닥을 뒹굴었다.
“크억! 제길…… 허억!”
드래코프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 다가 헛숨을 들이켰다.
코앞까지 다가온 빅터의 인상이 너 무나도 괴기스러웠다.
자신의 피와 기사들의 피로 범벅이 된 몰골.
수많은 검상을 입은데다 몸에 검까 지 꽂고도 전의가 사그라들긴커녕 더더욱 흉흉한 살기를 발하고 있다. 빅터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검을 거꾸로 쥐었다.
“하아,하아,하아. 단원들의 억울 함. 목숨으로 사죄해라.”
빅터의 검이 아래를 향해 가차 없 이 떨어졌다.
카앙!
불행하게도 떨어진 검은 드래코프 의 머리가 아닌,드래코프의 머리 옆을 지나 땅에 떨어졌다.
실수로 잘못 내리친 게 아니었다.
불의의 일격에 당하여 몸에 힘이 풀린 것이었다.
어느새 손도끼 한 자루가 빅터의 어깨에 꽂혀 있었다.
뒤를 보지 않는 무모한 전투로 한 계에 이른 빅터에겐 너무나도 뼈아 픈 일격이었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허탈감 과 함께 빅터의 눈동자가 흰자위를 드러냈다.
털썩!
한 끗.
아주 조금이면 됐거늘.
단 한 끗이 모자라 복수를 하지 못하다니.
단원들의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시
도했던 복수극은 간발의 차로 실패 하고 말았다.
이내 곧 트라이어가 터벅터벅 걸어 와선 빅터의 어깨에 박혀 있는 도끼 를 뽑아냈다.
푸확!
트라이어는 빅터의 코에 검지를 대 며 그의 생사를 확인했다.
“목숨 하난 질긴 녀석이군. 빅터라 했던가? 벤젠 기사단 소속이었던 놈 맞나?”
“허억허억,트라이어 네놈! 나설 거면 진작 나섰어야 하는 거 아니 냐!”
“황자의 기사란 것들이 저리 약할 줄은 몰라서 말이지.”
“당장 놈의 숨통을 끊어! 확실하게 처리해!”
“쯧쯧,어지간히도 무서웠나 보군. 이런 작자들은 유용하게 써먹고 버 려야 하는 법일세.”
“유용하게?”
그러고 보니 벤젠 기사단에 누명을 씌우는 계책은 트라이어가 떠올렸었 지. 이번에도 쓸 만한 계책이 떠오 른 건가.
트라이어는 누런 송곳니가 도드라 지도록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최강현이 시킨 일이라고 자백하게 만들게. 고문을 해서라도 말일세.”
*
샹데르에서 북서쪽으로 얼마간 떨 어져 있는 곳.
영지의 7할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 다는 그란데 백작령에 마룡 한 마리 와 그리폰 한 마리가 도착했다.
두 소환수는 공중에서 교차하면서 유유히 나선 모양을 그리며 같은 지 점에 착륙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 중 한 곳 에서 강현 일행과 세이아나 일행이 합류했다.
겨울 비행의 폐해로 강현과 김혜 림,세이아나,루나의 옷에는 얼음조 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세이아나는 로브를 벗어 빨래 널
때처럼 강하게 털며 강현을 불렀다.
“현이? 오랜만? 응? 너 얼굴이
왜 이리 수척해?”
“그럴 만한 일이 있었지.”
“그래? 로산 잡는데 엄청 힘들었나
보네. 근데 혜림이는 괜찮아 보인 다?”
“뭐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요.”
둘 다 그럴 만한 일로 치부하는데 수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이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수상 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훑었다.
“흐응? 뭔가 수상한걸?”
“후후,언니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래? 뭔가 있긴 있었나 보네. 그
럼 일 얘기나 하자고. 혈영구슬 필 담으로 미리 얘기했지만 제2신화급 웨이브의 위치를 알아냈어.”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제2신화급 웨이브의 위치가 밝혀졌다. 타임로드라는,본명일지 가명일지 도 모르는 자가 남긴 단서인 만큼 무조건 신용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강현의 전력강화를 위해 스 킬북 용지 2장을 선뜻 내놓았다는 점에서 지금 당장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강현은 제2신화급 웨이브 공략 일 정과 관련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밝 혔다.
“카니발에 돌아가면 제2신화급 웨
이브부터 공략해야겠군.”
“돌아갈 땐 크레인 공국에 있는 기 존 차원의 경계로 가야 하는 거 알 지?”
“물론.”
“황궁에 볼일 있다며? 바로 황궁으 로 가?”
황궁에서 죽은 황제가 어째서 살아 있는 듯 꾸며 놓은 건지,현자의 계 승자에게 남긴 건 없는지만 확인하 고 돌아갈 참이었다.
기다랗게 이어진 산줄기.
그란데 백작령의 험난한 산줄기만 넘으면 곧바로 샹데르가 나타난다. 강현은 상데르로 이어지는 남동쪽 산간지대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바로 황궁으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