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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309화 (309/381)

309화

딩리딩딩디?

나라 전체가 오랜 내전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누군가의 방에선 악사 들의 연주 소리가 홀러나왔다.

하루 일과를 마친 드래코프는 자신 이 머무르는 별궁에 들어서며 눈살 을 찌푸렸다.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다.

자중하라고 일렀건만 또 위층에서 놀자판을 벌이고 있다.

계단을 밟아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음악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음악 소리는 3층 복도 끝에서 새 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닌 트라이어의 방이 다.

위풍당당하게 상데르에 병력을 이 끌고 오더니 부하들을 전장에 내보 내고 본인은 황궁에 남아 연일 놀자 판을 벌이고 있다.

복도를 지나쳐 트라이어의 방에 다 가가자 궁녀들의 앙탈 어린 목소리 가 들려왔다.

“족장님,이러시면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되느냐. 내가 바 로 오크 평원의 지배자이거늘. 너도 오크 부락으로 오겠느냐? 내 23번 째 부인으로 맞이해 주겠느니라.”

“아잉,、,

남은 하루 종일 일하다 왔는데 내

별궁에서 내 궁녀들을 데리고 놀자 판을 벌여?

더러운 오크 자식 주제에!

오크 같은 하등종족이 내 별궁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 다.

더럽고,야만적이고,저급하다.

오크족에게서 병력을 지원 받아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놈이다.

디벨롭을 잃고 순식간에 바닥을 찍 게 된 처지를 반전시키려면 이럴 수 밖에 없었다.

연일 밀리는 전황을 반전시켜 귀족 들의 지지율을 높일 방법이 필요했 고,에르델에게 억제력을 가할 군사력이 필요했다.

유일한 방법은 하등한 오크 놈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었 다.

드래코프는 눈썹을 씰룩거리다가 신경질적으로 문을 걷어찼다.

꽝!

방 안 꼴은 가관이었다.

악사들은 나무 칸막이 뒤에서 땀을 뻘뻘 홀리며 연주 중이었고,칸막이 앞엔 기름진 음식과 술이 상다리 휘 어질 정도로 호화롭게 차려져 있었 다.

더불어 헐렁한 벨벳을 두른 궁녀

4명이 트라이어에게 매달려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트라이어는 궁녀의 몸을 주무르며 드래코프를 맞이했다.

“황자 왔나? 자네도 앉아서 한잔 하지그래?”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빌로스 제국의 황자 드래코프다!

오크족은 제국 초대 황제에게 은혜 를 입어 영원히 황가에 충성하기로 맹세했잖느냐!

저희들의 조상이 맺은 맹세조차 기 억하지 못하고 건방지게 구는군.

못 배워 먹은 야만인 자식!

드래코프는 정작 트라이어에겐 하 고 싶은 말을 못하고 애꿎은 궁녀들 에게 윽박을 질렀다.

“내려가지 못할까! 시기가 어느 때 인데 궁녀 따위가 업무 시간에 놀고 있느냐! 네놈들 전원 엄벌을 내릴 테니 단단히 각오하거라!”

놀란 궁녀들이 옷자락을 끌어올리 며 도망치듯 우르르 복도로 빠져나 갔다.

한순간에 옆구리가 비게 된 트라이 어는 탁자에 손을 올리며 어깨에 힘 을 주었다.

“사내란 자고로 마음이 넓어야 하 지. 계집 한둘 뺏겼다고 성질을 내 서야 쓰나.”

드래코프는 악사들마저 쫓아내며 트라이어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트라이어가 잔을 내밀었으나 받지 않고 무시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각 을 잡았다.

“궁녀들이야 내 알 바 아닐세. 그 것보다 조금만 자중해 주게. 시국이 시국인 만큼 행동거지에 주의를 기 울여야 된다고 했잖나. 자꾸 사치를 부리면 책을 잡힐 수도 있어.”

여태껏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말이 다.

황궁 내의 주도권을 되찾기까지 얼 마 남지 않았다.

괜스레 책잡힐 건수를 주어 일을 망칠 순 없었다.

드래코프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트라이어는 술병을 입에 대고 질 척하게 입 안을 적셨다.

“걱정도 태산이군. 이 황궁에서 오 크군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는 없을 텐데?”

“그러니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 다는 거야. 내전이 끝나면 오크군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지지. 그 전에 에르델을 누르고 황제의 자리에 올 라야 해. 내가 황제에 을라야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둬.”

“모름지기 사내란 놈이 그리 조급 하게 굴어서야 되겠나. 가만히 있어 도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다 해 줄 테니 그만 재잘거리게.”

신중을 기하자고 했는데 기껏 한다 는 말이 재잘거리지 말라?

쌓여 있는 빈 술병을 잡아다 트라 이어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충동 이 올라왔다.

참자. 참을 수밖에 없어.

모두 황제가 되기 위해서다.

드래코프와 트라이어가 손을 잡은 데에는 모종의 거래가 존재했다. 트라이어의 지원에 의해 황제가 되 면 오크 부족에게 빌로스 제국 남부 의 땅을 자치령으로 떼어 주기로 했 다.

지급될 땅은 엘프의 숲과 이어져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트라이어는 자신 의 오랜 염원인 엘프의 숲 점령을 위한 거점이 필요했고,오크 평원에서 엘프의 숲으로 이어지는 교통로 를 확보하기 위해 드래코프를 지원 하고 있는 셈이었다.

모든 건 드래코프가 황제가 되느냐 마느냐에 달렸는데도 트라이어는 계 속 제멋대로 행동 중이다.

드래코프로선 달가울 리 없었다.

“크옥,적어도 술판을 벌이는 것만 은 자제해 줬으면 하는군. 최강현이 나타났으니 여태까지처럼 느긋하게 구는 건 금물이야.”

“그 사내가 그리도 대단한 작자던 가? 자네가 나를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쳐다볼 만큼?”

“이참에 확실히 말해 두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이 황궁에 들어오게 해선 안 돼. 놈이 오는 순간 그 동안 쌓아 왔던 모든 게 무너질 수 도 있어.”

“하하하,과장이 심하군.”

“무력만 놓고 말하는 게 아냐. 설 사 놈이 마나 한 방울 없는 약골 나부랭이라도 들여선 안 돼. 놈이 에르델에게 머리만 빌려줘도 우리 숨통을 틀어막기엔 충분하다고.”

트라이어는 쟁반에 담겨 있는 사과 를 집어다가 와작와작 씹으며 호기 롭게 웃었다.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 지. 여차하면 적당한 죄라도 뒤집어 씌워서 죽여 버리면 될 일이잖나? 벤젠 기사단이라 불렸던 것들처럼.”

강현에게 수작을 걸었다가 몇 번이 나 역효과를 경험해야 했던 드래코 프다.

경험을 바탕으로 강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으나 트라이어에겐 전달 되지 않은 것 같다.

강현의 행동을 봐서 대응한다고 했 나?

절대 안 될 일이다.

이쪽이 한 수 앞을 읽으면 녀석은 세 수 앞을 읽는다고 봐야 한다.

최선의 대책은 아예 수 싸움 자체 를 벌이지 않는 것.

그게 최상이다.

그 괴물에겐 움직일 기회조차 줘선 안 된다.

놈의 행동을 틀어막으려면 처음부 터 아예 황궁에 못 오게 하는 수밖 에 없다.

문제는 놈이 강행돌파를 해 올 경 우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르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 시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두 사람 이 접촉하게 될 터.

에르델이 공식적으로 강현을 옆에 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공식적으 로 도움을 받게 되면 상황은 금방 역전될 거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온 것이건만 이놈에겐 말이 통하지 않으니…… 드래코프는 디벨롭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젠장,그래도 디벨롭은 말이라도 통했건만.’

“꺼억,더 할 말 없나? 흥이 깨지 니까 술맛이 별로구먼.”

품위 없이 트림을 하는데 썩은 냄 새가 풀풀 풍긴다.

마주 앉아 있던 드래코프는 썩은 표정을 지으며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앉아 있으면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 것 같았다.

‘참자. 모든 게 황제가 되기 위함 이니. 황제의 자리에만 오르면 네놈 따위 거들떠볼 것 같으냐?’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내전만 끝

나면 오크족에겐 볼일 없다.

더러운 야만족에게 귀중한 땅을 내

줄 성싶으냐.

치일피일 미루다가 국력이 회복되 면 나 몰라라 하면 그만이다. 트라이어가 약속을 지키라며 병력 을 일으키면 그를 빌미로 오크족을 섬멸해 버리면 된다.

처음부터 약속 따윌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드래코프는 손으로 코 주위를 휘휘 저으며 내일 일정을 미리 상기시켜 두었다.

“여기서 마무리하고 쉬어 둬. 내일 은 오크 평원에서 새로 도착할 오크 족 환영 행사가 있으니까.”

내일은 오크 평원에서 추가로 오크 전사들이 올 예정이었다.

황궁 안에만 머무르던 드래코프가 오랜만에 시내로 나가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날이기도 했다.

오크 대족장인 트라이어가 얼굴을 안 비출 순 없기에 당연 그도 참가 해야만 했다.

트라이어는 드래코프의 말을 잔소 리로 치부하듯 손을 휘휘 저어 나가 라는 제스처를 취할 뿐이었다.

*

이튿날,상데르에 1만의 병력이 도 착했다.

갑옷 한 점 걸치지 않고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을 겉으로 당당히 드 러내 놓았으며,오크 평원에서만 자 라는 바위조릿대의 줄기로 만든 굵 은 투창을 들고 있었다.

성인 오크의 힘으로 힘껏 던지면 철제 갑옷도 뚫는다 하니,전투력만 따지면 일반 병사보다는 강하고 마 나유저 초급에는 조금 못 미치는 셈 이었다.

그런 자들이 이미 전장에 수만 명 이나 투입된 마당에 오늘 추가로 1 만이 도착했다.

수가 너무 많아 시가지에 다 들어 오지도 못하고 각 부락의 족장급 인 물들을 포함한 이천 명만 시가지 행사에 참가했다.

샹데르의 평민들은 거리로 나와 꽃 잎을 뿌리며 오크족을 맞이해 주었 다.

“오크 여러분 환영합니다?!”

“부디 이 전쟁을 끝내 주십시오! 믿을 건 당신들밖에 없습니다!”

“오크 분들만 믿고 있습니다! 전장 에 나가 공작군 놈들에게 본때를 보 여 주십시오!”

강현과 김혜림이 사라지며 절망적 으로 밀리고 있던 전황이 오크족 덕 분에 바뀌었다.

황제파 영역에 속한 평민들에게 있 어 오크족은 내전을 승리로 이끌어 줄 구원자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열띤 환영을 받는 것치곤 오 크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오크들은 시민들의 시선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둣 대놓고 하품을 해 댔다.

“흐아암? 지겹구만. 우리가 뭣 때 문에 인간들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대족장의 명령이니까 따라야지. 윗선의 명령은 절대적. 거부하면 추 방이야.”

“뭐 어때? 부족 전쟁 후로 싸울 일이 없어 지루했잖아? 난 오히려 이번 원정을 기대했다고.”

“그보다 아까부터 골목마다 쥐가 돌아다니던데 생각보다 지저분하게 사나 보군. 인간들은 청결하게 산다 고 들은 것 같은데 말이지.”

“전쟁 중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니겠어?”

“저기 대족장님이 보이는군. 슬슬 잡담 삼가고 대족장님께 인사 올릴 준비해라.”

오크 사회에서 윗선의 명령은 절대 적이다.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자신에 게 이득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 목숨을 잃 게 되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종족 이기에 그들에게 있어 명령을 어긴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오크 병력이 시가지를 거쳐 샹데르 중앙 광장에 다다랐다.

중앙 광장에선 트라이어와 드래코 프가 귀족 및 기사들을 대동하여 기 다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에르델이 참석하는 게 정 상이지만 드래코프 쪽이 오크와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명분 하에 드래코프가 참석한 것이었다. 오크 병력은 광장에 차곡차곡 들어 서다가 트라이어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곤 이천 명에 달하는 오크들이 일제히 트라이어를 향해 합장을 하 며 오크식 인사를 올렸다.

“대족장님께 평원의 은총이 있기

롤!”

트라이어는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탕탕 치며 오크식으로 화답 해 주었다.

“그대들에게 평원의 은총이 있기

르 ”

■큰、

오크식 인사가 끝나면서 트라이어 와 각 부락의 족장들 사이에 안부의 말이 오고 갔다.

“대족장님의 명을 받아 각 부락에 서 전사들을 모아 왔습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네.”

“수고랄 것까지도 없지요. 평원의 거친 길에 비하면 인간들이 닦아 놓 은 길은 가죽 위를 걷듯이 편안하더 군요.”

“평원에선 눈이 내리고 있겠군.”

“예년보다 수확해 둔 바위조릿대 열매의 수량이 많으니 눈이 오더라 도 끄떡없을 겁니다.”

“검은바위부족의 족장. 자네도 왔 나?”

“하하,전쟁이 있다는데 검은바위 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트라이어와 족장들은 저희들만의 대화에 빠져선 드래코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크들에겐 대족장이 우선이라지만 그래도 황가의 인물에게 인사 정도 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대화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이질감 과 짜증은 드래코프의 신경을 건드렸다.

더욱이 광장 사이사이에 만들어 둔 배수로에서 자꾸 쥐가 들락날락거리 는 게 눈에 거슬린다.

쥐새끼들마저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사람 성질을 건드리고 있다. 드래코프는 언짢은 표정으로 호위 기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행사 중에 쥐새끼가 웬 말이더냐. 가서 쫓아내라. 젠장,불결해서 봐줄 수가 없군.”

분풀이 삼아 쥐새끼들을 쫓아내라 고 한 것도 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 다.

왠지 모르게 아까부터 쥐들이 자신 을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꺼림척하기 짝이 없었다.

호위기사들이 드래코프에게서 떨어 져 검 끝으로 쥐들을 쫓아내기 시작 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쥐 한 마리가 반응이 늦어 검 끝에 닿았다.

한데 쥐에게 검날이 닿자 이상한 현상이 발발했다. 쥐가 기운을 잃은 것마냥 바닥으로 푸쉬식 가라앉는 게 아닌가.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생물체였던 것처럼 말이다.

멀리서 쥐가 가라앉은 것을 본 드 래코프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응? 내가 잘못 봤나? 방금 쥐새끼 한 마리가 갑자기 땅으로 꺼져 버린 것 같았는데……

드래코프의 시선이 쥐가 가라앉은 자리로 향한 순간.

멀리 떨어졌던 호위기사들이 당황 에 찬 목소리로 드래코프에게 위험 을 알렸다.

“황자님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드래코프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화 살이 날아들어선 그의 가슴팍에 적 중했다.

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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