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03화 (303/381)

303화

[성녀의 수호령]

등급 : 신화급

타입 : 가호

특성 : 브리튼 교의 성녀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제 힘이 다치지 말라 고 교주가 한숨 쉬며 만들어 준 가 호. 성녀의 수호령을 새긴 자는 공 격 시 물리반동,마나반동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충격에는 반드시 반동이 뒤따른다.

반동을 받는 역할은 지지대가 맡기 따름이다.

무기를 휘두를 경우 사람의 육체가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극한까지 단련한 육체는 공격 스텟 1만 포인트 수준의 공격 반동을 버 틸 수 있다고 한다.

성녀의 수호령을 쓰면 해당 반동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역산하면 최대 10만 포인트 수준

의 공격 반동을 버틸 수 있다는 뜻 이다.

‘괜히 신화급이 아니군.’ 나머지 웨이브 봉인석을 모두 소멸 시키고,성녀의 수호령과 천둥 구름 의 가호를 몸에 새기자 새벽별이 뜰 무렵이 되었다.

강현과 김혜림은 쑥대밭이 된 계곡 을 얼추 정리한 후에야 하산 길에 나섰다.

풀잎에 이슬이 맺히고,바람은 잔 잔하게 불며,풀 속의 곤충 합창단 은 겨울을 맞이해 침묵 중이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발걸음 속도조차 맞지 않던 사람이다.

강현이 성큼성큼 앞서 걸으면 김혜 림이 조금씩 뒤처지다가 후다닥 달 려와 따라붙길 반복했었다.

현재에 이르러선 두 사람의 걸음 속도는 완전히 똑같았다.

강현이 늦춘 건 아니다.

김혜림이 빨라졌을 뿐.

갈 길 바쁜 사람이라 앞만 보고 달리는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옆 에 있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 그녀의 옆에 있게 되었고,그녀는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 내 옆에 있었다.

강현은 동쪽 산 너머에서 어슴푸레 햇빛이 번져 나오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지?”

김혜림은 손가락으로 셈을 해 보았 다.

“처음 만났던 게 발데르 던전 앞에 서였으니까……. 한 4,5년쯤 됐을 걸요?”

“짧은 시간은 아니군.”

“저도 벌써 20대 중반이니까요.”

“이번 달이 지나면 20대 후반이

지.”

“후후,계란 한 판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

“어후,닭살 돋아. 뜬금없이 웬 감 사 인사래요? 어색하게시리.”

너무 익숙해지면 오히려 분위기가 안 잡힌다더니.

너나 나나 분위기 깨는데 일가견이 있는 건 확실하군.

강현은 로브 후드를 뒤로 젖히며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알겠지만 난 이런 거에 익숙 하지 않아.”

“네네,다 알고 있어요. 강현 씨가 말로 표현하는데 약한 거야 하루이 틀 일도 아닌 걸요. 무리해서 안 바 꿔도 돼요.”

“성격 개선 같은 이야기가 아냐.”

“아! 또 놀리려는 거죠! 방심시키 고 놀리는 수법에는 더 이상 안 넘 어가요.”

김혜림이 강현에게서 한 발자국 떨 어지며 익살스럽게 대련 자세를 취 했다.

무뚝뚝한 나에 비해 너무나도 활기 차다.

이 활기찬 모습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강현은 김혜림에게 불쑥 손을 내밀 었다.

강현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목갑 상자가 올려져 있었다.

“받아.”

그제야 김혜림은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로선 처음으로 맞이하는 분위 기라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이걸 주기 위해서 괜스레 익숙하지 않은 말을 늘어놓았던 것이었다. 상자의 생김새가 꼭 액세서리 상자 와 비슷하다.

설마? 정말로?

기다려.

방심하지 마,김혜림.

뭐니뭐니해도 상대는 천하의 최강 현이잖아?

이렇게 해 놓고 또 장난치는 것일

수도 있어.

김혜림은 떨리는 손길로 목갑 상자 를 쥐었다.

상자 뚜껑을 뒤로 젖힌 순간.

상자 안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검 은색 반지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강현 씨,이거……

강현은 쑥스러운 듯 허공을 지그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넌 자꾸 내가 도망갈까 걱정하는 데 수갑 채웠으니까 안심해.”

“약혼만 해 두고 식은 나중에 올리 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듣고 있어?”

“……네. 반지는 언제 준비했어 요?”

“드워프들한테 마룡 허물 맡길 때 같이 부탁했어. 남는 조각이 있다면 반지를 만들어 달라고. 멋은 없지만 효과는 좋아. 무적 능력을 가진 반 지니까 끊어지진 않겠지.”

김혜림에게선 한동안 대답이 없었 다.

그저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을 받은 것처럼 반지를 꼬옥 쥐고 있을 뿐이 었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웃고 있는 걸까,울고 있는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김혜림이 고개를 들었다.

눈송이가 내려앉을 듯 기다란 속눈 썹에 물기가 촉촉하게 맺혀 있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검지로 눈가의 물 기를 훔쳐 내나 싶더니 함박 미소를 피웠다.

“고마워요,강현 씨.”

“당연한 걸 했을 뿐이야.”

“후후.”

“왜 웃어?”

“반지를 수갑이라고 말하다니. 강 현 씨답다 싶어서요.”

“수갑 맞지. 몇 년이 걸리듯 쫓아 와서 붙잡으려 했으니까.”

“정말로 받아도 되죠?”

“너 말고 줄 사람도 없어.”

강현은 목갑 상자에 끼워져 있는

두 개의 반지 중 하나를 빼내어 김 혜림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김혜림도 그에 맞춰 남은 반지를 강현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세상에서 단 한 쌍뿐인 반지다. 무적 능력이 있어 끊어지지 않 는…… 아주 특별한 둘만의 반지. 동녘에서 새어 나온 햇살로 인해 두 사람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림자의 머리 부분이 살포시 겹쳐 졌다.

그 모습을 쑥스럽게 여기기라도 했 는지 오늘 따라 해가 동쪽 산 위로 쉽사리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지며 김혜림이 강현의 가슴팍에 이마를 콩하고 박았다. 그 러곤 그대로 머리를 기대어선 유쾌 하게 농담을 날렸다.

“강현 씨,이 반지 안 끊어진다고 했잖아요.”

“그랬었지.”

“무적 관통 능력이 가해지면 끊어 지지 않아요?”

갸웃갸웃.

강현의 반응을 즐기려는 듯 이마를 댄 채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혜림 이었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가능한 애교이기도 했다.

강현은 김혜림의 이마에 검지를 튕 기며 무심히 한 마디 날렸다.

따악!

“끊어 뜨리면 가만 안 놔둔다.”

*

“어푸! 어푸!”

쥬리안 하구에서 기미가 심한 금발 의 30대 남성이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놀랍게도 그의 정체는 사이런스였 다.

로산에 의해 오른팔이 잘린데다 급

류에 휘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 아 하구까지 도달했다.

살아남은 과정을 살피자면 운이 좋 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급류에 휘말려 정신을 잃기 직전. 로산의 공격에 의해 무너진 바위지 대에서 썩은 나무 한 덩이가 섞여 떨어져선 같이 급류에 휘말렸다. 한쪽 팔로 간신히 나무에 매달려 포션을 마셨기에 출혈을 막을 수 있 었다.

또한 기력 포션을 입가에 철철 흘 리며 처절하게 마신 끝에 저체온증 을 미련에 방지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것까진 좋은데 이다음이 문제다.

‘쥬리안에서 탈출해야 해. 여기 있 다간 꼼짝 없이 잡히고 말 거야. 그 개자식에게 복수하는 것도 살아남았 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최강현의 적을 찾는 수색대로 이용 당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부아가 치 민다.

적으로 인식되는 것도 하나의 자격 이다.

허나 최강현은 사이런스를 적으로 여기지조차 않았다.

적으로 여길 자격도 없는 무지렁이 로 보고 있었다는 거다.

이토록 굴욕적인 일이 또 어디 있 겠는가!

용서할 수 없다.

반드시 복수하고 말 테다.

하지만 그 복수마저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를 중족해야만 가능하 다.

이곳은 바다 위의 명장 리넬슨 자 작의 도시인만큼 혹독하게 훈련된 기사들과 병사들이 포진되어 있다. 사이런스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일 사불란하게 포위 작전을 시행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사이런스도 마찬가지로 숙 련된 기사다.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라지만 임기 응변을 짜낼 깜밥은 된다고 자부한 다.

‘육지로 올라가는 건 위험해. 팔

하나 잃은 놈이 갑자기 올라서면 너 무 눈에 띄어. 과용하면 좋지 않지 만 기력 포션을 하나 더 마셔야겠 어. 마침 썰물 때니까 조각배라도 하나 탈취하면 공작군의 영해까지 갈 수 있을 거야.’

부두 위엔 리넬슨 자작의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어서 배를 탈취하기 란 쉽지 않았다.

병사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있 는 배 중에서 사이런스 혼자 몰 수 있는 크기의 배를 탈취해야 했다. 하늘이 도우신 걸까.

가까운 곳에 낡은 소형선 한 척이 있었다.

다른 배와 다소 거리가 떨어진 장

소에 매여 있는데다 순찰병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배였다.

보아하니 낡은 소형선만 리넬슨 자 작가의 문양이 아닌,다른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군용치곤 정비를 너무 대충 했는 걸? 아항? ,어느 멍청한 귀족가에 서 오락용으로 구매한 선박이구만. 작긴 해도 공작군 영해까지 가기엔 충분할 것 같네. 경비도 허술하겠다 지금이 기회야.’

사이런스는 빈 포션병을 버리며 필 사적으로 헤엄을 쳤다.

파도도 그를 돕는지 소형선 쪽으로 몸을 밀어주었다.

나무토막의 부력에 기대어 나아간

끝에 소형선에 닿을 수 있었다.

제로 휘프를 소환하여 소형선 난간 에 매달곤 힘겹게 한쪽 팔로 밧줄을 잡고 난간에 몸을 걸쳤다.

“허억,허억.”

기력 포션을 마셨다지만 한계치에 이른 근육이 마디마디 비명을 지르 기 시작했다.

게다가 물에 젖은 옷이 피로에 찌 든 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최소한 두 팔이 모두 있었으면 이 토록 힘들진 않았을 텐데.

‘결국 내가 상대했던 건 누구지? 내 팔을 앗아간 놈은 그랜드 마스터 였어. 최강현은 그랜드 마스터를 사 냥하려 했었고.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할 놈은 아냐. 혹시 최강현도 그랜 드 마스터란 건가?’

가이아 대륙에 무려 두 명이나 그 랜드 마스터가 존재하건만 여태껏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싸구려 주점의 한량들조차 믿지 않 을 이야기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직접 공격을 몸 으로 받아 냈기에 확신할 수 있다. 장대낫 사내는 그랜드 마스터임이 확실하다.

더불어 최강현도 그랜드 마스터일 가능성이 높다.

복수는 하고 싶으나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라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드리안 공작님께 이 사실을 알리 는 게 급선무야. 복수는 그다음. 그 랜드 마스터라 해도 무적은 아니지.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사이런스는 자세를 낮춰 갑판 난간 을 엄폐물 삼아 몸을 감췄다.

써전 쿠크리를 잃어버린 탓에 예비 용 단검으로 닻줄을 잘랐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마당이다.

덕분에 돛을 펼치지 않아도 배가 알아서 바다로 둥둥 떠내려가기 시 작했다.

‘순풍이 불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가서 돛을 펼치면 금방 아군 영해까지 갈 수 있겠지. 후우,어찌어찌 숨은 붙은 채로 돌아갈 수 있겠군.’ 젖은 상의를 힘겹게 벗으며 갑판 위를 차례차례 내딛고 있는데 별안 간 발밑에서 특이한 문양이 생겨났 다.

“응? 이게 뭐지? 아까까진 없었는 데?”

직후 문양에서 붉은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더니 굵직한 넝쿨이 뿜어 져 나왔다.

좌악!

넝쿨이 옭아매듯 사이런스의 몸을 휘감아 전신을 포박했다.

기력 포션으로 겨우 버티던 사이런 스에게 넝쿨을 끊어 낼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사이런스는 꽁꽁 묶인 채로 바둥거 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함정형 보구! 빌어먹을 리넬슨 자 작! 왜 자기들 배에 함정형 보구를 설치하고 지랄이냐고!”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것 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함정형 보구가 사이런스의 발길질에 반응하여 발동했다.

새로이 생성된 문양에서 점성이 강 한 액체가 뿜어져 나와선 사이런스 의 몸을 뒤덮었다.

되약볕이 쌩쨍 내리쬐는 갑판 위. 사이런스는 끈적한 액체와 넝쿨에 뒤엉켜선 밑도 끝도 없는 표류행을 하게 되었다.

“크아! 젠장! 사람 살려! 차라리 체포당할 테니까 나 좀 살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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