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야영지였던 곳에 발을 딛자 숯덩이 가 뭉개졌다.
퍼석!
검댕 가루가 풀풀 날리다 습기를 먹고 가라앉았다.
강현은 군화처럼 딱딱한 요정의 신 발을 물웅덩이에 담가선 검댕을 씻 어 냈다. 그러고 나서 목이 없는 로 산의 시체에서 아공간 브로치를 떼 어 냈다.
“봉인석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 담 겨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다른 물건도 챙기기야 챙기겠지만 우선적으로 웨이브 봉인석부터 회수해야 한다.
웨이브 봉인석이 없으면 커뮤니티 는 두 번 다시 하위차원 정복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커뮤 니티는 웨이브 봉인석을 하위차원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풀려고 했었 다.
그 이후부턴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다.
다수의 웨이브 보석 등장으로 하위 차원이 혼란에 빠졌을 때,커뮤니티 의 공략대가 차례차례 웨이브를 공 략하여 영웅이 된다.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하 위차원의 이세계인과 현지인들을 선동하여 커뮤니티를 신격화시킨다. 마무리로 커뮤니티를 맹신하게 된 사람들을 카니발로 데려가 커뮤니티 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게 한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하위차원을 2 군으로 만들어 필요한 자들만 1군으 로 마음껏 올려다 쓰는 구조를 만들 고자 했었다.
고급인력을 충당하고,커뮤니티를 맹신하는 시민들의 비율을 높여 카 니발에서의 지배력을 높이고자 했건 만.
그러나 이로써 그들의 계획은 강현 에 의해 무너졌다.
더불어 웨이브 봉인석은 수많은 제 물을 소모해서 만들어야 하는지라 수백 개를 한꺼번에 잃어버리면 다 시는 시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로산의 아공간 브로치를 회 수한 거고 말이다.
“어때요? 웨이브 봉인석 찾았어 요?”
“로산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 데 확인할 길이 없군.”
“이건 어떻게 할까요? 로산이 쓰던 낫.”
보통 강현과 싸우면 무기며 보호구 까지 전부 토막 나기 때문에 전리품 이랄 만한 게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러나 로산은 강현에게 베이기 전 에 무기를 놓아 버렸기 때문에 테라 사이드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강현 일행 증에서 장대낫을 쓰는 자는 없다.
설사 쓴다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무기가 훨씬 좋기 때문에 딱히 쓸 이유가 없었다.
무기 자체가 너무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챙겨 뒀다가 나중에 카니발에 돌 아가면 해체하든지 해.”
“강현 씨가 안 챙겨요?”
“내가 왜?”
“전리품은 기본적으로 강현 씨가 가지고 있다가 분배하는 게 우리만 의 규칙이었잖아요.”
“독특하군.”
“독특? 저요?”
“보통 여자 쪽에서 경제권 가지려 고 하지 않나?”
“후후,여자가 아니라 아내겠죠. 그 리고 낭비하지 않는 쪽이 관리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둘 다 낭비를 안 하면?”
“갑자기 왜 이러신데. 경제권 같은 걸로 밀당 해서 뭐하게요. 우리야 하던 대로 하면 되지.”
“하긴 그렇군.”
의미심장한 대화 속에서 강현은 로 산의 품을 뒤적였다.
웨이브 봉인석이 로산의 아공간 브 로치에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분실 등의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디스트로이들과 분산해서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고,아예 다른 루트를 통해 운반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알아내려면 로산의 아공간 브로치 를 뒤져 보아야 하는데 웨이브 봉인 석 실물을 본 적이 없으니 아공간 브로치를 뒤져 볼 수가 없다.
로산의 로브 안주머니를 샅샅이 살 펴보던 중.
두 번 접은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종이 뭉치를 펼치자 종이 가득 빼 곡하게 그려진 보석 그림이 나타났 다.
정성스레 색을 칠해 놓고 명암까지 넣어 놔서 거의 실물에 가까운 그림 체를 띠고 있었다.
보석 그림 밑에는 각각 표식이 남
아 있었다.
[No.l SS랭크 웨이브 봉인석. 남 은 시간 3일.]
[NO.2 SS랭크 웨이브 봉인석. 남 은 시간 6일.]
[NO.3 SSS랭크 웨이브 봉인석. 남 은 시간 4일.]
... 등등.
각 보석의 랭크와 남은 공략 시간 을 상세하게 기록해 둔 것으로 보였 다.
보석은 1번부터 200번까지 존재했 다.
로산이라고 200개나 되는 웨이브
봉인석의 모양새를 모두 기억하긴 힘들다.
그래서 이처럼 상세한 그림으로 웨 이브 봉인석을 기록한 문서를 준비 한 모양이다.
강현은 시험 삼아 번호를 택하여 웨이브 봉인석을 꺼내 보았다.
‘1 번.’
1번 웨이브 봉인석의 이미지를 그 리며 아공간 브로치에 손을 대자 1 번 웨이브 봉인석이 튀어나왔다. 같은 방식으로 200번 웨이브 봉인 석 또한 꺼낼 수 있었다.
1번과 200번이 있는 걸로 보아 로 산의 아공간 브로치에 모든 웨이브 봉인석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더불어 종이 뒷면을 보니 또 다른 보구의 그림과 설명,커뮤니티 본부 에서 작성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로산 지역장. 이 계획의 기간 단 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준비 한 웨이브 소멸석 40개를 동봉하네. 계획에 도움이 될 테니 적절하게 사 용하게나.]
[웨이브 소멸석]
등급 : SSS
타입 : 소모품
특성 : SSS급 보구인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에서 거역 선택지를 택하 고 SSS급 보구를 지불하면 나오는 소모품. SSS랭크 이하의 웨이브 보 석에 대고 사용하면 웨이브 보석을 소멸시킬 수 있다.
사용횟수는 1개 당 총 5번. 사용하여 웨이브 보석을 소멸시키면 웨이브를 공략한 것으로 치지만 경험치와 보상을 얻을 수 없 다.
급하게 쉘터 주변에 있는 SSS랭 크 이하의 웨이브 보석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 사용하도록 제작된 보 구이나 하위차원에서도 사용가능하 다. (남은 사용횟수 : 5번) 지역장이라고 해서 여러 군데에 퍼 뜨려 놓은 웨이브 보석을 단시간에 모두 공략할 순 없다.
그래서 웨이브 소멸석이라는 보구
를 준비한 것이다.
웨이브 소멸석이 있으면 굳이 시간 들여 공략하지 않아도 공략한 것처 럼 꾸밀 수 있다.
언뜻 보기엔 SSS랭크 웨이브를 공 들이지 않고 클리어할 수 있으니 사 기적인 보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니발의 특성상 SSS랭크 이하의 웨이브는 거의 공략하지 않 는다.
쉘터 안에서 발생된 SS랭크 이하 의 웨이브는 스깁시켜 버리면 그만 이고,그나마 SSS랭크 웨이브만이 죄수들을 끌고 가서 바로 공략해 버 리는 일명 용돈벌이 장소로 쓰이고 있다.
웨이브 소멸석 자체가 SSS급 보구 를 지불하면서까지 만들 물건은 아 니라는 거다.
헌데 SSS급 보구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을 40개나 준비해 놓 았다.
이번 계획을 위해서.
‘아무리 커뮤니티라도 SSS급 보구 를 한꺼번에 40개나 모으는 게 쉽 진 않을 텐데? 글자 그대로 상당한 CP를 때려 부었나 보군.’ 그리 고생하며 준비한 웨이브 봉인 석과 웨이브 소멸석이 강현의 손에 들어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무엇보다 ‘웨이브 보석을 소멸시키 면 웨이브를 공략한 것으로 친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왜냐고?
강현에겐 업적의 서가 있다.
[업적의 서(등급 : ?)]
[웨이브를 10번,30번,50번,100 번,300번 공략할 때마다 업적이 달 성되며 업적에 합당한 보구가 생성 된다. 나타나는 보구는 SS급,SSS급, 전설급,신화급,창조급이다.]
현재 강현의 웨이브 공략 횟수는 대략 20회에 이른다.
불칸의 전설급 웨이브에서 10회 공략 조건을 달성하여 SS급 보구인 ‘거울 숲의 정기’를 얻었었다.
여기서 웨아브 봉인석을 웨이브 소 멸석으로 없애서 공략 횟수 200회 가 더해진다면?
SSS급,전설급,신화급 보구를 얻 을 수 있다.
‘아주 큰 선물을 남기고 가 줬군.’
로산의 목 없는 시체는 힘을 잃고 나자빠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불러 잠을 청 하는 것마냥.
강현은 로산을 뒤로하며 김혜림을 불렀다.
“혜림아,뒤로 물러나.”
“네?”
“뒤로 물러나라고.”
“아뇨,그 전에 뭐라고 불렀어요?”
“김혜림.”
“에이,그렇게 안 불렀던 것 같은 데.”
“또 까분다.”
“알았어요. 근데 뭐 하게요?”
강현은 아공간 브로치에서 웨이브 봉인석과 웨이브 소멸석을 동시에 꺼내며 말했다.
“보구나 얻고 가려고.”
웨이브 봉인석의 봉인을 풀어 웨이 브 보석 소환.
웨이브 소멸석으로 웨이브 보석 소 멸.
한 번 소멸을 행할 때마다 업적의 서 조건이 채워졌다.
공략 횟수가 30번에 이르자 SSS급 보구가 나왔다.
[천둥구름의 가히
등급 : SSS
타입 : 가호
특성 : 천둥의 신이 타고 다녔다는 구름에 새겨져 있던 가호. 가호를 새긴 자는 전격 계열의 공격에 면역 을 띤다. 단,전격 계열의 공격에 의해 파생된 화염 공격에는 피해를 입게 되니 주의할 것.
가호 타입이며 전격 계열에 면역을 띤다고 한다.
강현의 경우 화염 계열의 공격에
면역을 띠는 ‘업화의 불꽃반지’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격 계열의 공 격에서 파생된 화염에도 면역을 띤 다.
강현을 상대하는 적들이 종종 물 계열 면역 보구나 스킬을 준비해서 오듯,강현도 전격 계열과 화염 계 열을 상대할 땐 절대적 우위를 띠게 된 셈이다.
강현은 지치지 않고 계속 웨이브 소멸 작업을 이어 갔다.
공략 횟수가 50번에 이르자 전설 급 보구가 나왔다.
[퇴마사의 영혼석]
등급 : 전설
타입 : 마법석
특성 : 교단에서 파문당하고 나서 악령퇴치로 밥벌이를 하던 퇴마사의 영혼석. 소켓이 달린 보구에 장착하 면 해당 보구로 ‘유체화 상태’의 적 을 벨 수 있다. 모든 보구에 장착할 수 있으나 웬만하면 무기에 장착하 는 걸 추천한다. 냄비 모양의 보구 에 달면 냄비로 유체화 상태의 적을 때리게 되는 희극이 발생할 테니까. 판단은 너의 몫이다.
전설급 보구로는 퇴마사의 영혼석 이 나왔다.
유체화 상태의 적을 공격할 수 있 다고 한다.
유체화 상태라곤 ‘리빙 고스트’를 사용한 자밖에 보지 못했건만.
어쩌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유령 타입의 몬스터를 공격할 때 필 요한 걸지도.
그렇다면 전설급으로 책정된 이유 도 납득할 만하다.
‘소켓 생성기를 얻으면 빙백검에 소켓을 뚫고 박아야겠군.’ 무적 관통 능력이 있는 마룡 허물 검,일명 ‘쉘 블레이드’는 내구도가 너무 안 좋아서 달았다간 얼마 못 쓰고 마법석까지 통째로 날려 버리 는 수가 있다.
빙백검에 박는 게 최고다.
이로써 남은 웨이브 봉인석은 170
개.
공략 횟수는 50번이니 모두 소멸 시키면 공략 횟수가 220회에 이르 게 된다.
300회를 달성하면 창조급 보구를 얻을 수 있는데 거기까진 못 이를 것 같다.
‘소멸석 없이 80회를 채우는 건 쉽 지 않은 일이지. 웨이브 공략에만 전념해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 이고 하니,지금은 신화급 보구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겠군.’
웨이브라는 게 생각보다 자주 나오 는 게 아닌데다,언제 어디서 나타 날지 모르는 만큼 발로 뛰며 80회 를 채우기란 쉽지 않다.
창조급 보구가 급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혹시 모른다.
커뮤니티 본부에서 하위차원 계획 을 포기하지 않고 또 웨이브 봉인석 과 웨이브 소멸석을 준비할지도 모 르지 않은가.
그때 가서 또 가로채기를 하든,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간 손에 넣 을 수 있을 거다.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발목을 붙잡을 만큼 어리석진 않다. 강현은 불필요한 욕망을 떨쳐 내며 웨이브 소멸 작업을 이어갔다.
공략 횟수 60회.
공략 횟수 70회.
공략 횟수 80회.
공략 횟수 90회.
공략 횟수 100회!
공략 횟수가 100회에 달하자 업적 의 서 효과가 발동하며 신화급 보구 가 생겨났다.
[성녀의 수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