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인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게 뭔지 알아?
사람,카레, 닭고기야.
사람은 정말 어디 가든 있어.
인적 드문 곳이라는 단어가 인도에 는 없다고.
어딜 가든 있어.
사람이 너무 많아.
그다음이 카레.
모든 요리에 카레를 써.
정확하게 짚자면 통칭 카레라 불리 는 수많은 향신료가 있다고 봐야지. 강황만 카레냐?
커리라고 해서 온갖 향신료를 모든
요리에 처넣고 있지.
그리고 닭고기.
소랑 돼지를 거의 안 먹거든.
인도 맥도날드에선 빅맥을 안 팔 아. 대신 치킨 마하라자 맥을 팔지. 치킨 마하라자 맥 하나 어떠세요? 포인트 쿠폰 있으세요? 빅맥요? 폴 리스! 여기 빅맥 찾는 사람 있아요! 잡아가세요!
그리 살았던 사람이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식도락 즐길 수 있는 곳에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여태까지 못 먹은 거 원 없이 먹 었지.
근데 사람이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순 없잖아.
일을 해야 뭘 먹어도 먹지.
힘들게 일하고,식도락 즐기고,힘 들게 일하고,식도락 즐기고.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새 지역장 자 리까지 꿰차게 되더라고.
지역장 자리 하나 받은 것까진 좋 은데 하필 내가 배정 받은 쉘터에선 소를 기를 수가 없다더라.
그러던 차에 하위차원 정복계획이 라면서 가이아 대륙에 갈 지역장을 뽑더라.
막 부임해서 지역장 업무 익히기도 바쁜데 누가 먼 길 가려 하겠어. 귀찮아서라도 안 가지.
근데 난 본부에서 연락 받자마자 횡재했다는 생각부터 들더라.
가이아 대륙에 소고기 보급이 그리 잘되어 있다며?
식도락 여행 좀 할 수 있겠다 싶 어서 바로 지원했지.
내가 지원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뭐라고 하더라.
중요한 계획이니까 여행 기분 내지 말라느니,그깟 식도락 여행 때문에 먼 길 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느 ㅚ??????.
이제 좀 알겠어?
나한테 있어서 식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그런데 오늘 저녁 식사 중에 어떤 미친놈들이 갑자기 야습을 해 오더 라?
“신성한 식사를 방해하다니 간덩이 가 부었나 보구나. 상대를 잘못 골 탔다는 걸 알려 주어라!”
계곡 바위 위에서 얼굴에 진흙을 바른 작자들이 무기를 쳐들고 뛰어 내리고 있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신성한 식사 시간을 방해해?
로산의 이마에 핏줄이 툭 불거졌 다.
식사에 대한 그의 집착은 광신에 가깝다.
따라서 식사 시간을 방해한 자들은 단순 습격자가 아니라 거의 철천지 원수에 가까운 대상이었다.
로산은 아공간 브로치에서 커다란
장대낫을 꺼내선 마나를 부여했다.
“흐음!”
한편 사이런스는 마치 계단을 타는 것처럼 계곡 바위를 건너뛰고 있었 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들켜 버렸다.
생각 이상으로 감이 좋은 놈이네~ 하지만 이만큼 거리를 좁혀 놨으면 충분했다.
현재 거리라면 쿠크리 칼의 사정거 리 안이니까.
사이런스는 쿠크리 칼을 매단 밧줄 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마나 블레 이드를 부여했다.
‘검이 아니라 낫을 쓰네? 듣기로는 비늘이 다닥다닥 붙은 푸른 검을 쓴 다고 들었는데……. 아 몰랑,일단 죽이고 보자.’
쿠크리 칼을 강현으로 추정되는 사 내에게 던지려던 찰나.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사내가 들고 있던 장대낫에 금빛 마나가 맺히는 게 아닌가!
들은 적 있다.
마나마스터를 넘은 경지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
가이아 대륙에선 오랜 옛날 현지인 들 중에서 몇몇만이 이르렸으며, 이 세계인 중에서는 한 명도 도달한 적 이 없는 전설의 경지라 들었다.
“그랜드 마스터라고? 아냐,속임수 일 거야. 그깟 눈속임에 속아서 움 츠릴 줄 알아?”
하위차원의 이세계인들은 그랜드 마스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세계인은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사이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선제압을 위해 속임수로 색을 바 꿔 놓았을 뿐이라 여겼다.
그래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쿠크 리 칼을 힘껏 옆으로 내던졌다.
쉬리리릭!
마나 블레이드가 덧씌워진 쿠크리 칼은 아무도 없는 측면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이런스가 절묘하게 힘 조절을 하며 밧줄을 당겼다. 밧줄의 움직임을 따라 쿠크리 칼이 넓게 호를 그리며 야영지를 덮쳤다. S급 보구인 ‘써전 쿠크리’.
상대방의 실드에 닿으면 순간적으 로 공격 스렛이 3배까지 올라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실드를 끌어올리면 3배로 강화된 공격을 받게 되고,실드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마나 블레이드에 맨몸으로 노출된다.
상대로 하여금 보구로만 방어하도 록 강요하는 보구였다.
더불어 사이런스에겐 ‘제로 휘프’ 란 SSS급 스킬이 있다.
제로 휘프를 사용하면 공격무효화 능력을 지닌 밧줄을 소환할 수 있 다.
써전 쿠크리에 매단 밧줄이 바로 제로 휘프로 소환한 밧줄이다.
공격무효화 능력이 있어서 끊어질 일이 없고,활용하기에 따라 구속용 이나 방어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로 휘프 끝에 달린 써전 쿠크리 가 장대낫을 들고 있는 사내에게 접 근했다.
장대낫을 든 사내는 이제 막 공격 자세를 취한 참이었다.
그를 본 사이런스는 승리를 예감했 다.
‘장대낫같이 긴 무기는 자세를 잡
기까지 오래 걸려. 그걸 어떻게든 커버해 보려고 속임수를 쓴 거겠지 만 내 눈을 못 속이지.’
써전 쿠크리는 정확히 장대낫 사내 의 목에 적중했다.
카앙!
장대낫 사내의 실드에 써전 쿠크리 가 부딪치면서 마찰을 일으켰다. 청명한 마찰음이 울리며 경합지점 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써전 쿠크리의 효과에 의해 기존 공격력의 3배에 해당하는 데미지가 들어갔으리라.
실드는 부서지고 예리하게 벼린 칼 날이 장대낫 사내의 목을 가를 거라 여겼다.
허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써전 쿠크리가 장대낫 사내의 실드 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게 아닌가!
사이런스는 맥없이 튕겨 나오는 써 전 쿠크리를 보곤 입을 떠억 벌렸 다.
위장용으로 바른 진흙이 말라 그 조각이 입에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럽럽함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써전 쿠크리가 막힌 건 충 격 그 자체였다.
“우,웃기지 마. 써전 쿠크리가 밀 려났다고? 그게 가능해?”
사이런스의 공격 스텟은 400.
써전 쿠크리의 효과에 의해 3배로 증가하여 1,200에 달하는 데미지가 가해졌다.
빌로스 제국에서 실드 스렛이 높기 로 유명한 자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목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
장대낫 사내가 잡초를 베어 내듯 장대낫을 낮고 빠르게 그었다.
후우응!
몇 미터가량 떨어진 거리에서도 바 람 이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바람 소리와 더불어 장대낫의 날붙 이에서 기다란 참격이 뿜어져 나왔 다.
아직도 그랜드 오러가 속임수에 의
한 것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사이런스의 본능이 그 스스로 에게 경고를 보냈다.
이번 공격을 맞으면 위험하다!
사이런스는 황급히 실드를 끌어올 리며 제로 휘프를 당겨서 리듬 체조 를 하듯 빙글빙글 돌렸다.
사이런스가 부여한 마나가 그의 의 지에 따라 밧줄의 움직임을 조절하 며 삽시간에 밧줄이 뱀처럼 좌리를 틀게 만들었다.
사이런스는 밧줄을 둘러쳐서 만든 넓적한 원형 방패 뒤로 몸을 감췄 다.
그런데 정작 날아든 참격은 사이런 스가 아닌 그가 딛고 있던 바위에 적중했다.
과과콱!
단단한 바위가 삶은 감자에 칼 댄 것 마냥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참격은 바위 하나를 자르는데 그치 지 않고 가파른 절벽에 기다란 흔적 까지 남겼다.
이어서 절벽이 무너지면서 바위지 대 전체가 작은 산사태라도 맞이한 양 와르르 무너졌다.
과르르르!
성처럼 쌓여 있던 바위가 명절날 조카들 손에 들어간 조립식 장난감 처럼 무너진 마당에 바위 위에 서 있던 사이런스가 무사할 리 없었다. 사이런스의 몸이 한순간에 허공에 붕 뜨더니 계곡물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붕괴된 발판으로 균형을 잃은 탓에 제로 휘프로 만든 원형 방패가 약간 기울었다.
장대낫 사내는 그 틈을 놓치지 않 았다.
휘이엉!
용서 없이 날아든 두 번째 참격이 원형 방패 옆으로 빠져나온 사이런 스의 오른팔을 앗아 갔다.
서격!
“크아아악!”
언제나처럼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굵직한 목소리가 육성으로 터 져 나왔다.
참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점점 뿜어져 나오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 며 얼기설기 겹쳤다.
정신이 새하얗게 날아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부관들의 비명 소리가 사이런스의 정신을 일깨웠다.
“사,살려……. 으아아!”
“사,사람 살……. 끄어억!”
“사,사이 런스 다,단장님……. 끄 악!”
사이런스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끝까지 제로 휘프로 만든 원형 방패 를 부여잡고 계곡물에 떨어졌다.
풍덩!
출혈이 발생한 몸에 찬물이 정신없 이 들러붙으며 체온을 앗아 갔다.
제길! 물이 깊어! 바닥에 발이 닿 지 않아!
급속도로 체온이 낮아지면서 몸에 힘이 빠졌고 정신이 흐릿해졌다. 의식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숨을 쉬기 위해 억지로 몸에 힘을 뻤다. 폐부에 남아 있는 공기를 최대한 활용하며 어깨를 늘어뜨리자 몸이 떠오르며 눈과 코만이 겨우겨우 수 면 바깥에 드러났다.
동시에 사이런스는 보았다.
반대편 계곡 절벽 위에 서 있는 한 사내와 여자를.
사내 쪽은 몰라도 여자는 누군지 똑똑히 안다.
모를 리가 있겠나!
내전 중에 몇 번이나 맞부딪쳤던 여자인데!
‘김혜림! 그렇다는 건 옆에 있는 남자가……
벤젠 기사단 소속이었던 김혜림이 강현을 찾아 나섰다가 같이 행방불 명된 건 유명한 이야기다.
그랬던 김혜림이 흑발의 남성과 함 께 서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최강현?
그럼 내가 습격했던 자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와중에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최강현은 사이런스가 안중에도 없 다는 듯 장대낫 사내를 응시하며 검 을 뽑고 있었다.
처음부터 장대낫 사내는 최강현의 적이었던 것이다!
‘저 자식! 장대낫 사내놈을 찾으려 고 나를……. 이 나를?"…. 감히 정 찰대로 소모했어? 이런 미친 개자식 반드시 죽여 버…….
속았다는 걸 알아했으나 너무 늦어 버린 감이 있었다.
사이런스의 출혈량은 치사량에 가 까워지고 있었고,포션을 붓기엔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입 밖으 로 나오지 않을 욕지거리를 옹알거 리며 서서히 정신을 잃는 것밖에 없 었다.
*
절벽 위에 서 있던 강현이 빙백검 을 뽑아 들며 로산을 응시했다. 가이아 대륙에 들어서고 나서 처음 으로 검에 그랜드 오러를 부여했다. 그랜드 오러의 표면에 달빛이 반사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반사광을 감지한 로산이 장대낫을 꼬아 쥐며 강현과 눈을 마주쳤다.
로산은 강현의 빙백검에 맺힌 그랜 드 오러를 보곤 예사롭지 않은 눈빛 을 띠었다.
“푸른 검신에 그 외견……. 어디선 가 많이 본 것 같은데 말이지.”
“인도인에 소고기를 좋아함. 로산
이 확실하군.”
“날 아나? 잠깐! 설마 네놈……. 이럴 수가!”
한때 커뮤니티의 수배서에 잔뜩 실 렸었던 몽타주와 똑같은 외견.
지역장인 로산이 기억하지 못할 리 가 없다.
“어떻게 네놈이 여기에 있는 것이 냐!”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묻어 나온다.
카니발에 있어야 할 자가 하위차원 에서 나타났으니 당혹스러울 수밖 에.
하나 강현으로서는 로산의 당혹감 은 알 바 아니다.
곧 베이게 될 자의 감정 따위 헤
아려서 무엇하리.
강현은 빙백검을 위로 들며 무뚝뚝 한 목소리로 스킬 시동어를 을었다.
“투영.”